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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기갑의 중추 T-34 개발사 - #1

기우(121.130) 2007.06.02 05:46:13
조회 2184 추천 0 댓글 15

 

T-34의 개발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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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소련 국방부에서 개최된 고위급 회의에서 앞으로의 전차 개발 방향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된 과제중의 하나는 최근 스페인과 몽골에 투입된 무한궤도 차량 BT-5와 BT-7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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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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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들에 장착된 무한궤도는 험지주행시에는 궤도를 이용해 주행하고 도로 행군시에는 궤도를 걷어내고 바퀴로 주행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형식의 주행방식은 미국의 크리스티 전차에서 파생된 것 이었다. 스페인과 몽골의 실전에서 무한궤도 주행은 장기간의 행군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며 더불어 다른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뢰할만한 장비라는 것 또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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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7

 

결국 논쟁은 안정적인 주행성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구동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으며 스탈린의 영향으로 도로주행용 장비를 제외하고 무한궤도 단독 주행방식이 결정되었다. 신형 프로토 타입의 설계 책임은 하르코프 코민테른 증기기관 공장의 구조 사무소에 주어졌다. 이 사무소에선 신형전차에 앞서 이미 A-20이라고 알려진 프로젝트를 1937년부터 진행 중 이었다. A-20은 BT의 설계원리에서 많은 부분을 채용했으며 개량시켰다. 구동부는 BT와 거의 유사한 방식이었지만 이 전차의 외형적인 면모는 BT보다는 앞으로 개발하게 될 T-34에 더 가까웠다. (경사진 정면, 포탑의 장갑 등) A-20은 BT-7과 마찬가지로 45mm포를 탑재했지만 BT-7과 구별되는 대형의 단일 해치를 장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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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20 시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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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다음 단계는 A-32 실험전차였다. A-20의 외형적 측면을 다량 흡수하였지만 무한궤도는 양용이 아닌 좀 더 일반적인 궤도전용으로 바뀌었다. 구동부는 5쌍의 로드휠(A-20은 4쌍)을 채택하였는데 이로 인해 중량 분배는 매우 수월해졌으며 주포는 L-10 76mm포를 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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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2 시험 전차

 

1938년 A-20(15t)과 A-32(19t)는 시험운용이 허가되었으며 야지 시험에 들어가기 전인 1939년 7월 하르코프 공장에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 두 종류의 전차는 서로 엇비슷한 성능을 내보여 최종적인 승자가 누가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추가 시연이 9월의 전차 전시회에서 있었으며 A-32는 참호와 장애물 돌파에 있어 인상적인 성능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장갑의 강화가 요구되어 전면 장갑은 30mm에서 45mm로 증가되었다. 이렇게 개조된 A-32는 A-34로 불렸고 1940년 1월에 그 첫 테스트가 가능하게 되었다. 4월달에 드디어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국방성에서 요구한 1,000km 행군을 위해 두 대의 A-34가 준비되었으며 이들은 하르코프에서 모스크바로 정해진 구간, 시간내에 도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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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34 시제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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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 도중 전차 한 대의 클러치가 망가져 일정이 수일간 지연되었지만 결국엔 모스크바로의 여정을 이루어내고 말았다. 이 전차들은 스탈린과 일행들 앞에서 기동, 화력 시범(45mm도 포함)을 선보였으며 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국방성은 육군의 허가를 받는 조선으로 T-34(A-34)의 대량 조달을 주문했다. 1940년 하르코프 공업단지는 150대의 A-34를 생산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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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신을 미장착한 T-34 obr 1940이 출고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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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7일 인민위원회 (Council of People‘s Commissars)는 600대의 신형 T-34 전차를 당해 생산하는 계획을 채택했으며 500대는 하르코프의 KhPZ에서 100대는 스탈린그라드의 STZ에세 제작될 것 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나치게 졸속으로 이루어져 목표는 채워지지 않게 되었다.

 

독-소 불가침 협정에 의해 제공되어진 수 대의 Ⅲ호 전차 G형을 분석한 결과는 소련에게 심각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T-34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Ⅲ호 G형은 T-34에 우세한 성능을 과시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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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T-34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줬던 Ⅲ호 전차 G형

 

Ⅲ호 전차에 대한 집단 테스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 전차장 큐폴라, 여유있는 포탑공간(Ⅲ호:3명 Vs T-34:1명)과 모든 승무원을 위한 차내 통신망 (T-34는 차장과 운전수만 차내 통신망이 설치되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악을 질러야 했다.) - T-34는 화력과 장갑에서 우위가 입증되었지만 Ⅲ호는 훨씬 정숙했고 자갈길 시험에서 T-34가 48kph을 달성하는 반면 Ⅲ호는 69kph를 달성하는 등 주행성능에서도 Ⅲ호는 T-34에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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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 obr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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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험에 대한 리포트가 보고되면서 T-34의 생산은 일시적으로 중단되게 되었다. 이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생산은 재개되었고 T-34의 개량 설계 또한 시작되었다. 현재 하르코프 설계팀은 A. A. 모로조프(A. A Morozov : M. I. 코슈킨은 하르코프 - 모스크바의 1,000km행군 도중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의 지휘하에 있었으며 향상된 신뢰성, 장갑, 무장을 개념으로 개량모델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이 개량형은 A-43 혹은 T-34m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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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 obr 1940의 시제품은 76mm L-11포를 장착하였으며 포신 연결부 상단의 벌브(bulb)가 구별 포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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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 obr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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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A-43모델은 더 장포신의 더 고속인 76mm F-34포를 탑재하였으며 부피가 큰 크리스티식 스프링 완충장치를 제거하고 T-50과 KV에도 쓰였던 토션바 완충장치를 채택했다. 이로써 차체내의 여유공간은 증가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빨라진 속도에 어울리는 5단 기어박스를 적용했다. 또한 차장용 큐폴라가 설치되었고 포탑 공간 또한 3명을 확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개량되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생산에 들어가기엔 개조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문제점이 발생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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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34 obr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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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1의 생산은 1939년으로 종료되었고 곧 F-34가 이를 대체하여 후기 생산형에 탑재되었다. 이 형식은 대개 T-34 obr 1941라고 불려진다. 그 사이 119대의 T-34 obr 1940가 하르코르의 KhPZ에서, 23대가 스탈린그라드의 STZ에서 생산되었으며 이것은 소련이 목표로 했던 600대 생산엔 턱없이 모자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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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해 생산분은 상향 조정되어 KhPZ는 1,800대, STZ는 1,000대가 할당되었으며 이 모두는 F-34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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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34 obr 1941

 

하지만 연이은 독일의 침공으로 KhPZ에서의 생산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1941년 9월 12일 생산 설비들의 대피가 시작되었으며 이 설비들은 우랄로 이전되었다. 곧 고르키에서 T-34의 생산이 개시되었고 하르코프의 설비들은 우랄산맥의 니즈니 타길(Nizhni Tagil)에서 재건되었다.

 

1941년, 총 3,014대의 T-34가 생산되었으며 아래의 공장들에서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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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번호. 183 KhPZ (하르코프) : 니즈니 타길로 이전되었으며 1941년 가을에 183 우랄 열차 공장 (UVZ)으로 전환되었다.

공장번호 112 : 레드 소르모포 작업장 Red Sormovo Works (고르키)

STZ (스탈린 그라드 트랙터 공장)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8cPM&articleno=10335603#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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