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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차의 생애...

오작서생 2005.10.26 20:18:33
조회 1361 추천 0 댓글 12


참 오래도 살았다... 나는 1943년 우랄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이 부른 제식명칭은 T-34/85... 특별난 호칭이 없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날 그렇게 불러줬다. 태어나자 마자 나는 열차에 실려 서쪽으로 향했다. 독일군의 전차들은 만만찮은 녀석들이지만 나와 다른 형제들 보다 쪽수가 적었다. 우리는 파시스트와 싸우는 우리 우방인 미국의 셔먼녀석과 맞먹을 정도로 생산되고 있었고, 또 스탈린 같은 든든한 녀석이 우리 뒤를 봐주고 있었다. 내가 나온지 2년이 되었을까... 미치광이 독재자가 일으켰던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냉전이라는 또 다른 대립국면이 곧 닥쳐오게 된 것이다. 많은 나의 형제들이 철의 장벽에 선 가운데, 나는 열차에 실려 멀리 동쪽땅으로 보내졌다. 스탈린동무에게 아부를 하여 자기가 태어난 땅의 두목이 된 김일성의 군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나와 약 200여대의 형제들은 변변한 전차 하나도 없는 38선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일제히 우리는 남침했다.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됬다. 그러나 남한군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했다. 메뚜기(L-5)를 타고 와서 폭탄을 떨궈 우리 형제를 대파시키는 가 하면, 수류탄이나 박격포탄을 들고 육탄으로 전차에 뛰어들기도 했다. ...너무나 무모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이 가진 대전차포나 바주카포의 사용법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됬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더 위험했겠지만... 중간에 유엔군이 참전해서 미군소속의 채피전차가 우릴 잠시 가로막았지만, 그 친구가 우리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그래서 낙동강까지 내려오게 됬는데... 낙동강에서 인민군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우리는 북쪽으로 일제히 후퇴해야 했다. 유엔군에 의해 제공권이 뺏기면서 우리 전차들의 입장도 참 서글퍼졌다. 그래도 난 전쟁이 끝날때 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재수가 좋았는 지 몰라도... 휴전선에 배치되어 또 언제 쌈이 나려나 기다리던 차에 새로 태어난 동생들이 찾아왔다. T-54/55라 불리는 녀석들인데 요놈들이 전후에 공산군의 주력전차가 되었단다. ...난 이제 물러나야 하는 몸이 된 것이다. 용광로 행인가? 명예로운 박물관행인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돌연 나는 열차에 실리고 배에 실리더니 영 엉뚱한 땅에 도착하고 말았다. 온통 모래 뿐인 땅...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사막이라는 곳인가? 나는 이집트군에 동생들인 T-54/55와 함께 배치되었다. 상대 이스라엘군의 전차는 M48, AMX-13, 슈퍼셔먼등이었다. 제대로만 싸울 수 있다면 저 녀석들에 전혀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동토의 땅에서 태어난 내 동생들은 사막전에서 애를 먹었고, 전차병들은 쩌죽을 지경에 처했다. 그뿐만 아니라 농사짓다, 양치다 온 이집트군 병사들은 너무나도 조종이 간단하기로 소문난 나의 조종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차, 미숙련의 전차병들... ...이쯤 되면 싸움은 뻔해진 것이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결국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근데 나는 그대로 살아남았고, 아직 쓸만했는 지 또 배에 실려 동쪽으로 가게 되었다. 사막으로 끌고갈 땐 언제고 이제는 정글에 나를 패대기 쳤다. 동토가 녹으면 생기는 진창길을 경험해본 나이기에 월남의 정글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월맹군들도 우리를 아주 소중히 다뤄줬다. 그러나 밀림에서 나는 함부로 쏘다닐 수가 없었다. 모든 전차가 그렇지만, 2차대전 후로 전차는 항공기들을 조심해야 했다. 제공권은 미국이 꽉 잡고 있었다. 나와 동생들은 낮에는 덩쿨과 풀로 감싸여 숨어 있다가 밤에만 조심조심 이동할 수 있었다. 월남전도 끝났다. ...미국이 힘이 모자라 그런게 아니라 월남정권의 무능과 패악, 부패 덕분이었다. 당최 싸울 의지가 없는 자들이었다. 사이공을 함락시킨 후, 얼마 안 있어 나는 또 배에 실렸다. 도대체 얼마나 부려먹을 셈인가... 요놈의 인간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인도였다. 케시미르지방에서 인도는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으로 맨날 치고 받고 있었다. 이때 나는 이미 일선에서 후기 전차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명색에 전차라서 보병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에게 가장 큰 의문은 나 언제 제대할까...하는 것이다. 동생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하긴 얘들도 내 나이만큼 쓰일지 모를 일이라 내 제대일 같은 건 계산할 수도 없는 지 모르겠다. 인도에서 좀 놀다가 난 또 딴데로 팔렸다. ...몇 십년만에 다시 유럽땅을 밟았다. 발칸의 화약고 유고였다. 내가 유고전에 등장한 사진은 신문에 나서 화제거리가 됬다. 아직도 2차대전 시절 전차가 굴러다닌다고,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겐 흥미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2차대전 고물이 아직 전쟁터에서 뭐하냐고 그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대체 언제까지 날 부려먹을 셈인지... 그러나 역시 무기는 쓰기 나름이다. 2차대전 고물이고 뭐고... 미공군의 다리미가 유고군 기총에 떨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누가 알았으랴... 그 돈 덩어리가 총알 몇개에 맞아서 떨어질 줄은... 티토가 구축한 유고슬라비아가 조각조각 나고 있는 동안, 나는 또 배에 실렸다. 언놈이 나를 인터넷 경매소에 올렸고, 낙찰되었다고 그랬다. 날 산 작자들은 날 영화에 출현시켰다가 테마카페의 장식으로 처분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말인 즉슨... 이제 나도 제대라는 말인데... 허... 43년에 태어나 근 50년을 여러 국가를 전전하며 복무했으니 참으로 오래 짠밥을 먹은 셈이다. 영화를 찍고 나서 나는 테마카페의 장식품이 아니라 한 콜렉터의 소장품으로 팔렸다. 그 작자는 구식이나 고물을 모아 놓는 게 취미였는데, 아직 움직이는 나를 사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돈을 받아 먹을 모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열리는 전차쇼에 참가하게 됬는데, 거기서 나는 아직도 빌빌거리며 잘 굴러가는 티이거놈을 보았다. 세월이 무상해서 그런지, 아님 당대에도 내가 나름대로 빠른축에 들어서 그런지... 녀석은 정말 늙은이 처럼 빌빌거리면서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고 사진찍고... ...그런식으로 퇴역후의 삶을 즐기는 데, 동생인 T-54가 콜렉터에게 팔려 내가 있는 창고로 오게 되었다. 녀석도 퇴역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직 쌩쌩한 동기들이 많단다... 뭐 소문을 들어보니 북한에선 남아 있던 내 동기들이 예비역으로 아직 돌려지고 있단다... 듣고보니 불쌍한 것이다. 최근에 들은바에 따르면 남한군은 M48을 M60에 준하도록금 무장과 장비를 덕지덕지 쳐발랐고, 그것도 모자라 K1을 도입하고, 또 그것도 안된다고 K1A1이란 놈을 만들고, 그것도 만족 못 한다며 K2라는 괴물을 시제품으로 내놓았다. 싸움나면 누가먼저 기선제압할 지 모르지만, 전차전 나면 참 꼴사나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창고에서 다 죽어가는 늙은이를 줘패는 폐륜아가 나올지도...   ----------------------------------------------------------------------------------------- 구라를 적절히 섞어 만든 T-34/85의 생애올시다...            아직도 북에서 예비군 복무중인 T-34 영감들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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