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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북아프리카 전투 9.

김유식 2005.07.21 18: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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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아이젠하워 등장   롬멜은 엘 알라메인 패전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불운이 아니고 바로 로마와 라스텐부르크가 그의 경고와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결과였던 것이다.   또한 몽고메리의 제8군이 독일군보다 우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 다도 제8군은 제공권(制空權)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니 지상군이 아무리 용감해도 제공군에 대해서는 무력할 수밖에­. 바로 이런 점에서 두 번이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1942년 엘 알라메인에 서 또 그 다음에는 1944년 아르디느 공세 때가 그랬다. 그래서 두 번이나 대기갑 병력은 무력화하고 보병부대는 전투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롬멜은 아프리카에서 몇 번이나 패전을 해도 이를 이용해서 승리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미국군이 모로코와 알제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제는 아 프리카 원정의 최후가 온 줄로 각오했다.   이제 롬멜 전면에는 8만의 미군과, 그리고 배후에는 2만 5천의 영국군이 패주(敗走)하는 롬멜군을 크게 협공해 오게 되었다.   친 독일 군인 패탕의 현지군대가 기도하는 다소의 저항이 있었으나, 미 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는 포, 차량, 병력을 아프리카 북안(北岸)에 상륙 시켰다. 거기서부터 튜니스, 트리폴리 그리고 토부룩까지는 꽤 멀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 문제였다.   미국군을 누가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베를린과 로마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영국군을 격멸시킬만큼도 지원해 주지 않았는데 이제 두 적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1942년 11월 8일 밤, 롬멜은 제164경사단장 룬겔스하우젠 장군 지휘소에 있었다. 무전차에서 히틀러의 승리를 약속하는 연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카프초 부근에는 피로와 패전에 지친 제19, 제164경사단, DAK 병사 들이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이날 밤, 롬멜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룬겔스하우젠 장군에게 말했다.   『원정은 실패했소, 아프리카는 잃었지. 로마와 라스텐베르크가 사태를 수습하지 않고 빨리 구원조치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를 누가 지켜 낼 것인지.』   바로 이것이 롬멜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현실 앞에서는 아 무 구실을 못했다.   수많은 패잔병만이 보였을뿐―.   제21기갑사단은 11월 6일, 7일 사이에 후카 지구에서 적 전차에 격멸되 었고 알라메인 전선에서 구해낸 30대의 전차 중에서 4대만이 남았다. 엘 알라메인 전방에서 편성된 나말 대위의 제2아프리카 포연대는 백명밖에 남 기지 않고 전멸당했다. 제606 고사포 대대 제3중대도 후카 전선에서 거의 다 전사되었고, 총사령관 휘하의 지칠 줄 모르던 전투부대도 기아와 불면 으로 사망자꼴이 되었다.   세 번 빼앗은 할파야 고개도 세 번째로 빼앗겨 끝장이 났다. 가자 라인 도 잃었고 메키리 대상로(隊商路)도 물려주고 벤가디도 잃었다. 그리고 이 제 키레나이카까지 내어주는 것이다.   11월 13일 패군 롬멜군의 선두는 1,000킬로미터나 후퇴해서 마르사 엘 브레가 진지에 도달했다.   11월 24일 키레나이카와 트리폴리타니아 경계선의 필레니 개선문 옆에서 롬멜과 켓셀링 그리고 이탈리아의 바스티코, 카봐렐로 양 원수의 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무솔리니의 명령 즉,「마르사 엘 브레가 사수」를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롬멜은 아프리카에서의 승전을 완전히 단념하고 트리폴리타니아 철퇴를 고집했다. 이탈리아 장군은 롬멜에게 대들었다. 켓셀링은 중재하려 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롬멜에게는 한 가지 목표밖에 없었다. 가급적 빨리 트리폴리 또는 튜니 스로 후퇴하여 군대를 유럽 대륙으로 되돌리는 것뿐이었다.   롬멜은 11월 27일, 이 문제를 가지고 히틀러에게 건의를 하기 위해 필레 니 개선문 앞을 떠났다. 도중 비엔나에 들려 잠시 아내를 만난 롬멜은 15 시 15분에 총통사령부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숨어 있는 볼프스샹체로 갔다. 그는 먼저 카이텔 장군 의 숙소에 들려 한 시간가량 북아프리카 전황을 설명하고 철퇴를 제안했다 . 카이텔, 요들 그리고 히틀러의 막료장 슈문트 소장은 말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한결같이 롬멜의 의견에 찬의를 표하는 것 같았다. 18시에 세 사람이 히틀러에게 불려갈 무렵에 롬멜은 퍽 낙관적이었다.   롬멜을 맞은 사람은 히틀러뿐만 아니라, 공군 원수 괴링도 있었다.   『아프리카는 어떤가?』 하고 히틀러는 입을 열자, 롬멜은 영국군이 알라메인을 돌파한 이유를 설 명했다.   『그들의 자재는 뛰어났고 포병은 강력하며 많은 전차에 제공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에게 격파당해도 기동적 용병이 불가능했었다는 사실과 연료 부족도 설명했다. 그러나 괴링은 빈정거렸다.   『하지만 귀관의 차량들은 황급히 바닷가를 따라 도망했지 않소? 아마 연료가 풍부했던 모양이지.』   『탄약도 없었습니다.』   롬멜은 화가 났다. 그 열로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토부룩와 벤가디에 버린 수십만발의 포탄은 뭐요?』   괴링의 반박은 날카로웠다. 히틀러는 그들의 언쟁을 듣는지 안듣는지 아 무 말이 없었다.   『화기도 불충분했습니다.』   『화기는 모두 어떻게 했소? 도중에 다 내버렸소?』   그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히틀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기를 가지지 못한 자는 죽는 게 좋아.』   그 소리에 롬멜은 걸상을 차고 일어났다.   『총통!』   하지만 히틀러는 테이블을 탕 치며 롬멜의 저항에는 아랑곳 하지않고 말 을 계속했다.   『무기를 버리고, 지켜야할 포를 버린 자는 죽는 게 좋단말야.』   사실 히틀러에 있어서는 일진이 나쁜 날이었다. 그날이 포위된 스탈린그 라드의 사수를 명한 날이었고 또 아프리카의 철퇴 건의를 들었으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또 소리를 질렀다.   『나폴리에 포가 얼마나 있나?』   『수송가능한 수는 6천입니다.』   『곧 보내라!』   그러나 그것으로 롬멜이 위로를 받을 수는 없었다.   『총통! 이제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자기 주장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로코와 알제리아에 연합군이 상륙 한 이상 북아프리카는 지켜낼 수 없다고, 그리고 이탈리아로 후퇴해야만 유럽대륙을 지킬 수 있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롬멜의 입을 다물 도록 못을 박았다.   『북아프리카는 사수한다.―철퇴할 수 없어. 이건 명령이야 원수!』   사실 그것은 명령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말이 지니는 마력을 잘 알고 있었다. 군인들은 명령 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롬멜은 프러시아 전통정신으로 이 말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는 상한 마음으로 할 수 없이 전선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괴링과 함께 무솔리니를 만났으나 헛 약속뿐, 그가 실제로 얻고자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11월 8일 아침, 그때까지 거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장군이 강대한 침공함대와 더불어 카사브랑카, 오랑, 알지에 앞바다에 나타나 돌격대군을 상륙시켰다.   루즈벨트와 처칠은 이 대담한 작전을 토치(햇불)작전이라고 이름지었다. 사실 이 작전은 모험적이었다. 왜냐하면 모로코, 알제리아, 튜니시아는 프 랑스령으로 패탕 원수 정부와 발을 맞추어 독일과 휴전조약을 맺었기 때문 에 교전국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른바 독불협력(獨佛協力)체제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완전장비를 갖춘 몇 개사단이 있었다.   이 지대를 영국과 미군 비밀공작원이 잘 움직여 상륙작전을 순조롭게 했 다. 드골파는 연합군측, 패탕파는 독일편―이렇게 되어 있는 판국에 마침 이들이 상륙할 예정지역이 패탕파편이어서 적대행위를 못하게 이들은 공작 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했던 이 공작도 상륙 직전 패탕파인 다를랑 제독이 우연히 현지에 옴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다를랑은 즉시 반격에 나서서 미국 군을 포화로 맞았다. 미국군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것으로 알고 군악대 까지 준비를 했으나 느닷없이 반격을 받은 것이다. 알지에에서는 두 척의 구축함이 격침되었고 오랑에서는 미국군 1개 돌격대대가 전멸당하고 또 구 축함이 둘이나 물 속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24시간이나 걸려 프랑스측을 눌러 놓았다.   아이젠하워가 공작원의 꾀임으로 체포된 다를랑을 포섭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즉각 패탕에게 다를랑 파면을 요구하였고 다를랑은 미국군에게 붙어버렸다. 공식 프랑스 사령관이 아이젠하워 편에 들어간 것이다. 앵글 로 색슨 외교술의 성공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방송에서 수일 전까지만 해 도 「배신자, 파시스트, 도둑놈」이라고 불렀던 인물이 이제부터는 미·영 아프리카군단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다를랑은 1942년 12월 26일 오후에 사무실 입구에서 봉니에 드 라 샤펠이라는 스무살 난 청년의 저격을 받아 1시간도 채 못 넘기고 병원 에서 사망하고 만다.   하여간 미군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불령 튀니지를 점령하고 여기에 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튀니지를 제 압하는 선착경쟁에서 아이젠하워를 이기기는 했으나 그 승리의 가치는 의 문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앞으로 25만에 가까운 독·이군이 이 교두보를 확보 지탱하기 위해서 투입되게 된다. 만일 이 병 력의 5분의 1이라도 수 개월 전에 롬멜에게 보내었다면 그때쯤에는 정녕코 나일 강을 건넜을 것임에는 틀림없고, 영·미군의 북아프리카상륙은 없었 을 것이며 지중해는 연합군의 수중에서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역사는 잘 알려지게 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장군을 등장시키게 된 것이다.   (28) 튀니지로 가는 길   11월 11일 나폴리와 트로파니에 있는 이탈리아군 비행장은 오래간만에 바빴다. Ju 52가 연이어 이륙한 것이다. 모두 40기였다. 귀중한 짐들이 실 려 있었다. 튀니지로 향하는 켓셀링 휘하의 제5공수연대로 지휘관은 코호 중령이었다. 그는 튀니지에 교두보를 구축하여 22만의 인구를 가진 중요한 항구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융커스 수송기로 아프리카를 향하는 청년들은 용감했다. 사병은 대부분 이 스무살 안팎인 청년들이었고 장교들은 백전연마의 용사들이었다. 융커 스는 지중해 상공을 날았다. 그리고 튀니지에 도착했다.   『착륙준비!』   한 대 한 대 미끄러지둣이 착륙했다. 이리하여 튀니지는 흔들리는 프랑 스의 방향을 연합군으로 돌리지 않게 하고 현지 프랑스 총독을 중립화시키 는데 성공했다.   튀니지 공항은 공군 사령관 하링하우젠 대령의 지휘하에 11월 9일에 재 빨리 점령되고 이어 후속부대들이 도착했다.   프랑스군은 공항 주변에 있는 참호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총은 쏘지 않았 다. 에스트바 총독은 한밤중에야 독일군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 프랑스 사단장 말레 장군을 비행장으로부터 철수시켰다. 이리하여 24시간 후에 코호 연대는 편하게 엘 아우이나 공항에 내려 튀니지 시가를 통과하여 유명한 포슈 장군의 병영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튀니지에 독 일군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병력은 단지 1개 연대에 지나지 않았 다.   한편 서쪽에서는 케네스 A N 앤더슨 장군의 영국군 제1군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미국 제1기갑사단 B지대도 로비넷트 장군의 인솔로 튀니지로 향하 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튀니지 점령을 며칠동안에 끝낼 줄 알고 있 었다.   비가 내렸다.   이 비가 미국군에게 불운을 안겨 주었다. 길은 단번에 진흙바닥이 되었 는데 미군은 이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11월 15일 튀니지에는 아직 독일 군 대부대는 없었지만 우선 사령부는 부상당했던 상처도 낫지 않은 네링 장군을 보냈다. 그가 맡은 것은 튜니시아 제90군단이었다. 이것은 사단 정 도도 안되는 병력이었다. 코호 연대 외에는 비치히 소령의 공수 공병이 있 을뿐이었다.   그후 네링의 전력에는 칼레 중위의 제105 기갑 정찰중대가 가담했고 다 행히도 제20고사포 사단의 88밀리 중대가 와주었다.   이 기묘한 제90군단 본부는 장군 1명과 연락장교 1명밖에 없었다. 참모 장 폼투는 아직도 코카사스에서 부임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 유령 사단은 놀라운 군사적 성과를 거두어 용기와 대항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 었던 것이다.   비제르타에서도 독일군 진입은 모략 덕분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튀 니지 야전 제1 대대가 로마에서 보강되어 왔다.   이 틈을 미국과 영국은 놓친 것이었다. 전후 미국과 영국 전기에는 자주 비제르타를 미리 점령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후회하는 글이 자주 발표되 었다. 그러나 실제 당시로서는 아이젠하워의 공수부대가 비제르타에 무사 히 진주할 수 있는지 보장이 없었다. 그당시 이 튜니시아의 세 번째 도시 요, 전략요충인 군항은 프랑스 측 데리안 제독 휘하의 해병대가 지키고 있 었다. 병력은 1만 5천, 그리고 제독은 패탕파였다. 그래서 아이젠하워는 상륙을 중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영국 제1군 사령관 앤더슨 장군은 알지에에 상륙한 부 대를 시켜 비제르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네링 장군의 공수부대 때문에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지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방관했다. 비치히 소령이 이끄는 공수 공병대대는 곧장 비제르타 남방의 마츄르와 아비오를 연결하는 도로를 따 라 포진을 했다. 그리고 곧장 서쪽으로 나가 영국군 보병 제78사단 선발대 앞을 가로막았다.   앤더슨 장군은 위력정찰을 계속했다. 전차대도 내보내었다. 비치히는 싸 우면서 유리한 점까지 후퇴하여 제프나 터널까지 이르러 공격을 모두 격퇴 했다. 여기서 영국군은 1943년초까지 한 발도 나가지 못했다. 이 터널 싸 움은 규모는 적었으나 튜니시아의 베르덩이 되었다.   공수부대와 교대한 튀니지 대대는 이 놀라운 방위로 수많은 철십자장을 받았다.   1942년 11월 17일 새벽, 루돌프 본 하사는 오토바이 소대 병력과 함께 비내리는 튀니지 비행장에서 떨고 있었다. 이들은 적 배후에서 뭔가 일을 저지르는 것이 장기였다. 켐파 소위가 명령을 전달했다. 가베스 비행장!   『어떤 곳일까?』   본 하사가 지도를 가리켰다.   『가베스 안에 있지.』   가베스는 튀니지와 롬멜을 연결하는 중요지점이었다. 여기를 놓치면 500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는 롬멜의 튀니지 후퇴를 보장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가베스도 프랑스의 발레 장군이 점령 하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어느 편에 붙을른지 모른다. 흔히 그의 부대는 독일군 수색대를 방해하기도 하고 또 체포하여 무장을 해제시켜 돌려보내 기도 했다.   켐파 소위는 50명의 부하 그리고 사령관 호위중대를 끌고 융카스 12기에 분승하여 가베스로 떠났다. 비행장 위로 왔다. 느닷없는 예광탄이 날아 올 라온다. 기관총으로 쏘아온다. 비행장 경비를 맡은 프랑스군 장갑차에서 쏘아올리는 것이었다. 몇 대가 피해를 입었다.   장소를 옮겨 가베스 서방 40킬로 지점에 내렸다.   『프랑스놈들, 괘씸한 녀석들이야.』   『가베스 비행장은 백병전으로 탈취하고 말아야지.』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 이 문제는 곧 융카스의 공격으로 해결되었다. 비행장을 지키던 프 랑스군 소령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실로 위태로운 순간이 었다. 왜? 사흘 후에는 아이젠하워가 가베스 전방에 전차대를 보냈기 때문 이다. 이 미국군을 만난 독일군은 무서운 반격으로 격퇴했다. 불과 한 두 중대가 1개연대 이상이나 있는듯이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가베스를 지킬 이탈리아 스페르가 사단 2개 대대가 올 때까지 이곳을 잘 지켜냈다.   튀니지 남서방은 발렌틴 대령의 연대가 지켰다. 그의 부대는 공수병군으 로 편성된 부대로 고도로 기계화되어 50밀리 대전차포, 고사기관총으로 무 장되어 있었다. 이들의 제1진은 11월 20일에 비제르타로 본부와 제3대대는 곧장 마츄르 지구로 진출했다. 발렌틴 대령은 마츄르지대 지휘관으로서 지 휘를 했다. 여기는 그후 치열한 싸움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츄르에는 이탈 리아 보병 2개 대대와 돌격포 1개 대대가 있었으나 믿음직하지 못했다. 발 렌틴은 서둘러 천연 고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코호연대와 연결, 제프나 ―마츄르―테볼바―마시코를 잇는 방어선을 완성시켰다.   11월 26일, 영국군 본국 제36사단이 공격을 가해왔다. 이탈리아군은 금 방 손을 들었으나 발렌틴은 대전차포로 이를 막았다.   이윽고 앤더슨 장군은 11월 29일에 발렌틴 진지에 공격을 재개했다. 벌 써 제1, 2대대가 도착해 있었다. 이제 진짜 1개연대가 갖추어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곳, 즉 발렌틴 좌측 메디스 엘 바브 지구는 그렇지 않았다. 코호의 공수병은 테볼바를 지나 바브까지 진출했으나 발레 장군의 프랑스 부대의 저항을 받았다. 켓셀링의 급강하 폭격기가 프랑스군을 두들겼으나 시간이 늦어 그새 이곳은 미 영 양군 2개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격 전―코호는 후퇴했다.   튀니지의 길이 열려 한때 튀니지는 위기에 몰릴듯했으나 네링의 88밀리 는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여 전쟁에 경험이 없는 미국군을 격퇴시켰다.   테부르바의 위기도 있었지만 역시 88밀리가 막았다.   이곳을 지키는 중대는 테부르바를 향해오는 적 부대와 이틀동안에 걸쳐 싸웠다. 20대의 전차가 격파되었다. 그중 12대는 하파하 중대가, 그리고 픽트 상사가 거느리는 고사포 연대 중대는 4대였다. 연합군은 물러갔다.   작은 위기는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다시 새 병력을 투입했다. 11월 28일 북서쪽 해안 셀라트 곶에 2천명의 연합군이 상륙한 것이다. 그 목적은 비치히 전대를 포위하여 비제르타 방위선을 격파해 버리는데 있었다.   또다시 불길한 소식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 공수부대 1천명이 자그판 북방에 내렸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튀니지 제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연약한 방위선을 돌파할 셈임이 분명했다.   네링은 셀라트 곶에 독립 혼성대대를 보내어 방위에 성공했다. 상륙부대 는 포로가 되든가 아니면 배로 쫓겨갔다. 알고보니 2천명이 아니고 단지 5 백명 뿐이었다.   자그판에 내린 적 공수부대에는 교두보 구출로 이름난 제190기갑정찰중 대가 달라붙었다.   여기에서도 다행히 입수된 정보가 과장된 것임이 들어났다. 듀 파스 북 방 드피엔느에 강하한 것은 불과 5백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중요 장비 때문에 행동이 불여의한 동안 기갑중대와 이탈리아군 스페르가 사단에 속한 부대에 포위되어 그 태반이 포로가 되었고 백명 가량이 도망 을 쳤다. 그들은 서로 훗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몇 주일동안 네일은 이러한 그날그날의 적당한 응급전술로 싸워왔으나 1 1월 29일에 이르러서 피셔 소장 휘하의 제10기갑사단 주력이 비제르타와 튀니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신형 전차 티이거(호랑이) 3대였다. 56톤내지 60톤이나 되는 이 괴물은 전설적인 88밀리 포를 갖춘 것으로 어느 전선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 는 정예무기였다.   물론 몸집이 커서 100킬로만 달리는데도 9백리터나 되는 연료를 없애고 또 하천이 넘쳐 길이 질퍽거리고 산길이 많은 튜니시아에는 이 괴물에게는 최적지라고 할 수 없었지만…….   티이거는 사실 동부 소련 전선에서 스탈린의 이름난 T­34형 전차를 대 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차였다. 그러나 막상 튜니시아 전선에 투입해 보 니 여러가지 초기적인 결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300킬로 쯤 달리면 엔진에 장애가 일어나고 통신기에도 고장이 잦았다. 그리고 변 속장치(變速裝置)도 자주 듣지 않았다.   그러나 티이거는 테부르바 전투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병들은 이 믿음직한 전차에 신뢰를 던졌다. 3대는 니더 작센의 팔링보스텔에서 왔다. 류더 소령이 최초의 제501중전차대대를 편성한 곳이다. 티이거을 튀니지로 싣고 온 것은 류더 자신이었다. 제1중대장은 이름난 전차 장교 폰 노르데 대위였다. 그 옛날의 용사가 은갑주를 쓰고 전장에 임하듯이 폰 노르데 남 작도 언제나 출격시에는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노르데, 공수부대의 발렌틴, 코호, 비치히 그리고 장갑정찰대의 칼데, 그 후임인 하이네 등 모두가 한결같이 명지휘관이었고 뛰어난 튜니시아군 의 수비대였다.   한편 비제르타 튀니지 지구에는 제10기갑사단 부대가 집결하여 어느 곳 으로든지 작전을 할 수 있는 차비를 갖추고 있었다. 12월 1일 네링은 테부 르바 부근에 진출한 미·영군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   비제르타 서방 지구는 부로이히 대령이 지휘했고, 중앙 지구는 제10기갑 사단장 피셔 소장이 맡고, 또 이탈리아군이 튀니지 남부를 지켰다. 다리와 바퀴를 가진 것은 모두 투입되었다. 제7기갑연대, 제86전차 보병연대, 제1 0오토바이대대, 제90전차 포병대대, 제90정보대대의 일부, 티이거 중대, 8 8밀리중대가 그 전부였다.   인구 22만의 튀니지 시내에는 30명의 수비대가 남았을 뿐이었다. 88밀리 포 2문이 쓸쓸히 도시 입구를 지키고 있을 뿐.   네링의 목적은 전진중인 적을 테부르바 지구에서 포위하는 것이었다. 테 부르바 시내에는 아직도 발렌틴의 공수부대 1개 중대와 공병 1개 소대가 웅거해 있으면서 영국 근위여단과 미국 B군 지대가 이 가시 같은 군대를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여의치가 않았다. 공수병은 11월 25일부 터 완강한 저항을 계속하여 적의 배후에 기지를 구축한 꼴로 버티고 있었 다. 코호 대령은 테부르바를 포위하는 적을 남서쪽으로 칠 셈으로 알렌트 준위의 공병소대를 파견했다. 알렌트는 영국군 후위를 돌파하여 테부르바 에 버티고 있는 우군 공병과 연락을 가진 다음 공동으로 미·영군의 중요 한 테부르바―메제스 엘 바부 연락로를 차단해버렸다. 이것이 테부르바 포 위작전의 제1단계였다.   알렌트 준위는 물 속에 뛰어든 고기처럼 움직였다. 엘 바탄 서쪽 4킬로 미젤다 강에 걸려 있는 다리 양편에 두 기관총을 마련했다. 이것은 미젤다 강의 유일한 다리였는데 폭약이 없어 폭파를 할 수가 없어서 수류탄을 묶 어서 달아놓았다.   영국 트럭 부대가 왔다.   대폭발!   파괴된 트럭은 보기좋은 바리케이트가 되어 다리를 사용 불능상태로 만 들어버렸다.   뛰어내린 자들은 전원 기관총탄의 밥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밤, 테 부르바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알렌트는 이 요충을 지켜내었고 영국군 1개 여단과 미국군 제1기갑사단의 일부 보급선과 후퇴를 가로막았다. 한편 피 셔 장군의 독일 제10기갑 사단은 미·영군에 대한 포위 작전은 한때 성공 한 것같이 보였으나 전사(戰史)에 보기 드물지 않는 「우연이라는 이름의 장군」이 그들앞에 등장했다.   11월 28일 듀 파스에서 포로가 될 운명을 간신히 면한 미국군 공수부대 는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코호 연대의 일부가 테부르바 지구의 포위를 완성 할려고 할 무렵, 때마침 메제스 엘 바브 지구로 기어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느닷없이 전면도로에서 나타나 포진하고 사격을 가할 때까지 코 호 부대는 상대가 어떤 부대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어디서 뛰어들어 왔는 지도 모르고 아귀처럼 싸웠다. 이때문에 시작된 전투로 독일군 포위작전은 차질을 가져왔고 영국, 미국군 일부는 포위망을 벗어나 테부르바, 시디 누 실로, 또 메제스 엘 바브 지구로 후퇴할 수가 있었다. 길을 잃은 공수부대 일부 덕분으로.   4일간 계속된 테부르바 전은 독일군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그것은 튜 니시아에 있어서의 제1라운드였다.   독일군의 오랜 전투 경험이, 수와 무기에 훨씬 뛰어났지만 이제 새로 온 미·영군을 이겨낸 것이었다. 영국 제11여단, 미국 B지대는 모든 장비를 잃었고, 또 미국 제1기갑사단 제18보병연대는 대 손해를 입었다. 어떤 영 국대대는 전멸했다. 튀니지에 후송된 포로는 1,100명, 적의 전차 134대가 전장에서 잔해를 남기고 포 40문을 빼앗겼다. 아이젠하워 침공군은 쓰라린 패전을 맛보아야 했다.   독일 측에도 손해는 적지 않았다.   전사자 중에는 사병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티이거 중대장 폰 노르네 대 위가 있었다. 제디다 북서의 격전지 오리브 숲에서 티이거의 다이히만에게 연락하려고 장갑차에서 뛰어내린 순간, 포탄은 사정없이 그의 두 다리를 날려버렸다. 다이히만 대위는 노르데를 죽인 미국 전차 2대를 격파하여 원 수를 갚았으나 티이거의 포탑에서 뛰어나가는 순간, 숲속에 숨어 있던 영 국 보병의 저격탄 때문에 쓰러진 것이었다.   알렌트 준위도 죽었다.   그전날 그에게 총통 사령부에서 기사 십자장 수여 통지가 도착되었지만 전우들은 그것을 그의 관 위에도 놓아주지 못했다. 알렌트는 후퇴하는 적 의 후위부대와 싸우다가 두부에 관통상을 입은 것이다. 공병들은 그를 밀 짚더미 위에 눕혔으나 전투가 다시 벌어져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 는 전투지에서 깨끗이 타버리고 말았다.   테부르바는 엘 알라메인이나 스탈린그라드와 같은 대격전은 아니었으나 이 전투에서 튜니시아라고 하는 독일 교두보가 확보된 것이었다.   네링 장군의 급조 전쟁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44년 11월의 미국 참모본부기록은 이 북아프리카 전에 대해서 사무적으로 확인하고 있 다. 즉 그것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되었다.   「독일군은 튀니지로 가는 경쟁에서 미국, 영국군을 앞질러 이기고 말았 다.」   (29) 제5기갑군의 탄생   튀니지로 나가는 경주에 있어서 독일은 이겼다. 교두보(橋頭堡)는 확보 되고 롬멜의 일차적인 후퇴로는 열렸다. 그러나 카사브랑카, 오랑, 알지에 지역에서는 증강되고 있는 아이젠하워군이 자꾸만 밀어닥치고 있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튜니시아에 있는 독일군 병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튜니시아라는 교두보를 점령하고 적어도 남방에서 튜니시아 해안선으로 진출하여 롬멜의 튜니시아 교두보 돌입을 저지하여 동쪽의 몽고메리의 제8군과 연결을 짓자는 것이었다.   뻔한 전술상의 초보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12월 초까지도 이 간단한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다. 휘하선봉대, 공수부대 및 보병대가 12 일에 본느에, 15일에 태베사에, 25일에는 메제스 엘 바브로 진입하고 28일 에는 드디어 세이라트 지구 가프사, 카세리네 고개를 점령은 했지만 이것 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링이 버티고 있어서였다.   이때 기후(氣候)는 독일군에 편을 들었다. 미국군은 아프리카의 고약한 길과 날씨에 익숙지 못해 고전을 거듭했다. 진흙 속에 빠지는 오토바이와 전차의 수가 늘어났다. 반면 독일군은 요령이 좋았다.   경험이 무경험을 보기 좋게 이긴 것은 발렌틴 대령의 경우에서만 보아도 많았다. 그의 병사들은 티네 다리 남쪽에 배치한 대전차포 2문을 가지고 4 0대의 영국군 전차를 격퇴했다. 그다지 좋지 않은 길목을 노려 들어오는 적을 양동으로 유인하여 일시에 88밀리포로 때렸다. 그리하여 그는 이것을 10번이나 거듭해서 슈이기와 테블바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적군을 거세할 수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니 제프너 터널에서의 비치히 대대가 벌인 교묘한 작전이 나, 또 벌가 중위가 공수병 1개중대를 거느리고 시디 누실 고지에 감행한 기습작전이니, 그리고 12월 8일 비젤타 해안의 중포대와 함께 1만 2천명의 프랑스군을 무장해제시킨 일등, 모두가 뛰어난 업적이었고 또 용기와 지도 력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트릭이었고 끝내는 무서운 패전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는 정세를 네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히틀러의 최고 사령부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롬멜군을 아프리카에서 철수시키려고 교두보 튜니시아를 확보한 것일까? 아니면 다 시 아프리카에서 공세를 취할 셈인가?   1942년 12월 3일, 라스텐부르크의 총통사령부에서는 흥미진진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제 이런 문제가 바로 회의에서 풀려지는 모양이다.   히틀러는 폰 아르니므 대장과 치글러 중장을 동부전선으로부터 소환했다 . 먼저 도착한 치글러는 곧 히틀러의 영접을 받았다. 히틀러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튜니시아에 제5기갑군을 새로 편성하는데 폰 아르니므 대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치글러는 상임전권대리(常任全權代理)가 되어 달라. 이 새로운 직명의 임무를 설명한 히틀러의 말이 재미있다. 즉 롬멜의 전철 을 밟아서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한사람의 사령관에게 걸려 있으면 안된다. 이 직무는 군사령관이 전선을 시찰중에 그 권한을 행사하여 임기 응변(臨機應變)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치글러 장군은 유능한 군인이며 또한 냉정한 현실가여서 신 기갑 군의 편성을 물었다. 동석한 카이텔이 대답했다. 3개 기갑사단, 3개 기계 화사단이 튜니시아로 가고 있으며 공군의 정예 헤르만 괴링 사단도 있다. 치글러는 다시 그만큼의 대군에게 지중해를 건너서 보급을 계속할 가능성 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물론!』   히틀러가 대답했다. 치글러는 그렇다면 북아프리카에서의 공세는 가능하 리라고 보았다. 그는 승락했다. 치글러는 현지 아랍인이 독일측에 붙어 반 란을 일으킬 것까지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치글러는 보급의 계속을 보장해 달라는 말을 거듭하고 힘 있게 말타섬 점령계획까지 대담하게 털어 놓았다 . 이윽고 아르니므 대장이 왔다. 그 역시 치글러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신 기갑군에 몇 개 사단이 소속하는가?』   『보급선은 튼튼한가?』   이 두가지에 대한 히틀러의 확약을 받자, 폰 아르니므는 치글러와 같은 정세분석을 했고, 히틀러도 시인을 했다. 두 사람은 용약, 튜니시아로 향 했다.   12월 9일 네링은 일반 명령으로서 여지껏 거느리고 있던 제9군단과 헤어 졌다. 「우리가 놓여졌던 입장은 전사상(戰史上) 달리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 글중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사실 그랬다.   같은 날 아르니므 대장이 신 제5기갑군의 지휘권을 갖게 되었다. 하이글 대령, 폼투우 대령등 뛰어난 장교들이 그와 함께 왔으나 역시 아프리카 원 정군이 지녀온 숙명적인 문제로 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호소의 효과도 없 었고 전차와 물자도 충분히 오지 않았다.   아이젠하워 침공군에 대한 무거운 짐은 역시 공수연대, 제10기갑사단 그 리고 웨버 장군의 지휘로 튜니시아에 도착해 있던 제756산악병 연대의 어 깨에 계속 얹혀 있었다. 특히 제756연대는 12월의 전투와 슈이기 고개에서 의 7월초의 전투, 그리고 악명높은 랑제리네 고지와 크리스마스 산 전투에 서 이름을 떨쳤다.   크리스마스 산의 미국군은 이 전술적인 요충을 「롱 스톱 힐」이라고 불 렀다. 이들은 194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무서운 전투를 선물로 받았다. 바 로 이 고지에서…… 그들은 이 산을 지키고 있던 영국군과 함께 독일군을 상대로 피흘리기 시합을 했던 것이다.   독일군은 쫓겨났다. 그러나 독일 부대는 다시 기계화 부대의 엄호를 받 아 백병전으로 근위사단을 격파하여 튀니지 서쪽을 옹위하는 고지를 점령, 500명의 영국군이 항복을 했다.   정말 이 고지는 「롱 스톱 힐」이었다. 멜니시아 작전이 끝날 때까지 끝 내 이 고지는 탈환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30) 부란덴부르크 특별부대   아직도 롱 스톱 힐의 크리스마스 전투가 한창일 무렵, 트리폴리에서 2백 킬로 떨어져 있는 브에라트 진지의 바이엘라인 대령의 방에서 젊은 대위 한 사람이 남부 튜니시아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적 전선 배후에 세 가지 점이 파랑색 십자형으로 그려져 있었다. 오랑과 알지에를 연결하는 철도상의 강과 와디에 걸려 있는 철교였다. 테베사, 가프사, 트쥬르 지구 였다. 이 철도는 연합군의 중요 보급로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선로를 따 라 전신과 전화선도 달리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 때였다.   튜니시아에서의 제90군단의 총괄 보고서를 통해 네링 장군은 여러가지 전략적, 전술적 처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폭파부대, 특수 전투부대는 서방으로 깊이 침입했다. 철도, 교량, 병 참(兵站) 기지에 대한 그들의 성과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증거가 없다. 잘된 일이다. 만일 증거가 있었다면 연합군 정보기관은 전 후에 그 증거를 기초로 대원들을 문죄(問罪)했을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진 상은 이러했다.   프리츠 본 케넨 대위는 남서 아프리카의 농장주 아들로 영어를 모국어( 母國語)만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부란덴부르크 연대 제13중대장이었다 . 이 부대의 반은 케넨과 함께 최초의 공수부대로서 튜니시아에 왔었다. 1 2월 5일에는 나머지 반도 나폴리로부터 도착했다. 이들은 바닷가의 목가적 인 하마메트에 자리잡고 오렌지와 시트론 숲에 둘러싸인 별장에 기거했다. 그러나 편히 쉴 수 있을 틈은 없었다. 튜니시아 전초기지에 꽃불이 오를 때마다 케넨 특수부대가 달려갔기 때문이다.   부란덴부르크 대원은 일반 전투를 위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들의 고정 임무는 적 전선 배후에 들어가 우군 포병의 조준을 돕고 또 적의 연락망을 절단하고 이정표를 바꾸어치기하기도 하고 도로를 파괴하는 등의 일이었다   1942년 12월 26일 밤, 그들은 또 다시 출격했다. 비제르타 공항에서 3대 의 Ju 52가 글라이더를 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화물용 글라이더는 결코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다. 손잡이가 붙은 판위 에 한 사람씩 쪼그려 앉아야만 했다. 때때로 조종사 뒷자리에 앉은 케넨 대위는 뒤를 돌아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몇 번이나 돌격한 체험으로 태연 한 공병 중사 한스 노이만, 그 뒤에는 통역관 레지날드 다데, 그리고 슬로 카 중사, 그 뒤로 다섯 명, 그 이상은 탈 수가 없었다.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자기 계획과 자기 임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시트 밑에는 무기와 장 비 그리고 150킬로의 폭약이 가득 든 상자가 들어 있었다.   밧줄이 달빛에 번쩍인다. 고도 2,500미터 상공에서 목표 70킬로를 앞두 고 비행기는 글라이더를 떼어낸다. 사방은 고요해졌다. 글라이더는 소리없 이 날아간다.   조종사는 선회시켜 기수를 낮춘다. 바람소리와 함께 지면이 육박해 온다 . 좌석에 달라 붙는다.   『잘 돼야 할텐데…….』   150킬로의 폭약이 걱정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조종사는 알맞게 기 수를 들었다. 착륙 썰매가 돌을 차고 가면서 소리를 낸다. 두 번째가 뒤따 라 내려온다. 이것도 성공했다. 그런데 세 번째가 보이지 않았다. 뒤에 알 고 보니 끌고 가던 융커스 기가 잘못해서 다른 독일군 편대에 섞여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대원들은 서로 수근거리며 집합하여 엎드렸다. 기총 조정! 사방은 고요 했다. 폰 케넨 대의, 노이만 중사, 그리고 전령 한 사람이 몸을 도사리며 300미터 앞에 있는 다리로 달려갔다.   『크구나!』   케넨이 중얼댔다. 살금살금 접근해 갔다. 적의 초소 안의 프랑스군은 아 마 병사에서 알레리아 포도주를 마시거나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케넨이 암시쌍안경(暗視雙眼鏡)을 들여다 보았다. 병사의 벽에 검은 글이 보였다. 시디 브 바켈.   『됐다.』   전령이 되돌아가서 다른 병사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폭약을 끌고……. 케넨이 안전장치를 풀었다. 노이만이 폭약 장치 부설을 지휘했다. 3킬로를 다리 윗 부분 세 곳에 1킬로씩, 교각 뒷면과 중앙교각의 넓은 면의 선로 밑에 두 개의 70킬로짜리를 장치했다. 그동안 한 사람은 전선을 절단하기 위해 전신주로 올라갔다. 펜치가 없어서 도끼로 잘랐다. 요란한 소리가 났 다. 마지막 전선이 잘려 나가자, 전주는 반대편으로 쓰러져 매달려 있던 군인은 하마터면 떨어질 번했다. 다음은 도화선작업이었다.   『어디 있어!』   『그것은 세 번째 글라이더에 있었는데…….』   케넨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에잇 개새끼들!』   그러나 뇌관이 붙어 있는 도화선 몇 개를 안가지고 있는 자를 부란덴부 르크 공병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노이만이 가지고 있었다. 하나 그 가 가진 것은 연소 시간 60초짜리여서 너무 짧았다. 조심해야 했다. 노이 만은 두 개의 주요 폭약이 점화하자, 호각을 불기로 했다.   달빛이 은은한 밤에 호각소리가 났다. 다리 위에 있던 세 사람이 달려갔 다. 노이만은 귀를 기울였다. 타기 시작한다. 다음 것도. 이제 20초 남았 다.   가까운 와디 기슭까지 갔을 때 폭발소리가 났다. 돌덩이가 날았다. 하지 만 이들은 순간 느낀 것은 공포 아닌 승리였다.   이들은 처음 약속한 집합장소로 달렸다. 병사에서는 사방으로 총을 쏘았 다. 케넨은 다시 자리를 옮겼다.   『전원 무사한가?』   『아니요.』   『셋이 못왔습니다.』   글라이더도 수류탄이 날려버렸다.   날이 샐 무렵, 아랍인 안내자가 제벨 브 라므리에 조그마한 와디 골짜기 를 발견, 거기서 쉬고 잤다. 걷는 것은 밤에만 했다.   정오쯤 되어 보초가 경보를 발했다. 아랍인이 골짜기로 걸어오고 있었다 . 통역이 나갔다. 손짓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전원이 달려 왔다. 한 사람이 아라비아 망또를 벗어던졌다. 벨가였다. 그는 행방불명이 되었던 자로써 팔레스티나 태생인 아랍인과 통할 수가 있었다. 아랍인들은 친절하게 이들을 위험 지대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65킬로의 강행군으로 산을 빠져나가 작전 후 6일만에 마크나시로 들어갔다. 이때 또다시 행방불명자 하네스 펠트만이 나타났다. 그는 당나 귀를 타고 왔다. 이제 단 한사람 슬로카 중사만이 없었다.   폰 케넨 대위가 20명을 데리고 와서 엘 크빌로 날아간 밤, 다른 10명은 하게나워 소위의 인솔로 카세리네 북방에 있는 다리를 습격했다.   그러나 이들 일단은 착륙부터 실패했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장갑차 부대에 잡히고 프란츠 베트네렉 하사와 빌리나크롤맨 중사만이 담배 67가 치, 콜라 한 병, 그리고 탄환 7발이 든 권총 2자루를 가지고 천신만고 끝 에 독일군 전선으로 돌아왔다. 튜니시아 농민들은 그들에게도 조력을 해 주었다.   그리고 지도상에 세 번째의 파란 십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2주일 후인 1월 10일 튜니시아 남부 트쥬르 지구의 교량을 폭파하기 위 해 떠난 비스핑그 대위와 클리마 상사는 트럭으로 케빌리를 떠났다. 작전 지구 가까이 이탈리아 전진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대도 진행중 프랑스 보안대에 들켜 간신히 위험을 피했다. 그러나 적의 심리를 이용해서 다음날 다시 시도했다. 잘 진행되었다.   클리마 상사는 유유히 중앙 교각에 폭약을 달고 나머지는 상부와 선로 사이에 장치했다. 그는 10분간용 도화선에 점화하고 트럭은 전속력으로 되 돌아갔다. 10분 후 산기슭에서 정지―쌍안경으로 보니 다리는 그대로 당당 히 서 있었다. 15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   클라마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20분이 되었다.   『이상하구나, 내가 보고 올께.』   비스핑그가 말렸다. 열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철교 앞에서 기적을 울렸 다. 전원 눈길을 보낸다. 폭음! 그들은 그 결과를 다음날 항공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폭파된 다리 잔해 사이에 기관차와 화차가 굳어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군도 보복수단을 취했다. 케넨의 본부를 기습할 셈이었던 모양이다. 잠수함이 하마메트 부근에 파괴 공작단을 보냈다.   해안을 지키고 있던 보초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조명탄을 3발 쏘아올렸 다. 레인저 부대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독일군은 이에 즉각적인 공세를 취 해서 대위를 장으로 하는 이들은 결국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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