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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의 두 번째 상대인 제2중동 총사령관 오킨렉

카이텔 2006.01.18 17:43:31
조회 4600 추천 0 댓글 9

 

클로드 오킨렉 (1884-1981)

 

1884년, 올더숏에서 오킨렉은  전통 있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군인 집안임에도 불고하고 매우 가난하였다. 그래서 오킨렉은 어릴 적부터 힘들게 일했고, 노력 끝에 장학생으로 버크셔의 웰링턴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오킨렉은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고 1904년에 졸업하여 제62펀자브연대 장교로 배치되었다.
제62펀자브연대 장교로 지내던 오킨렉은 1914년에 1차 대전이 터지자 참전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상대로 이집트,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 예멘의 아덴에서 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오킨렉은 인도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게 되는데 1923년에서 1924년까지 인도 병참부 부 부장을 하게되며, 1929년에서 1930년까지 제1펀자브연대 제1대대장으로,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인도 퀘타의 참모학교 교관을 하였다.  
1933년에서 1936년까지는 페샤와르 연대장을 하게되는데, 이 때 페샤와르 연대가 있던 부근 지역으로 침략하는 타민족 침략자들을 상대로 싸우며 영토를 안정시켰다.
이렇게 인도에서 오래 근무하던 오킨렉은 점차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되었다. 그리고 후에 기회가 되면 인도인의 군대를 발전시켜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오킨렉은 인도군 부 참모장을 하게되며, 1938년부터는 인도의 영국 주둔군의 오랜 병영이 있는 메루트 지역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메루트의 사령관을 하던 오킨렉은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고, 1940년에 북부 노르웨이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파견되며, 직속 지휘부대로 영국, 폴란드,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25000명의 제4군단과 제5군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오킨렉은 나르비크에서 주둔하나 독일군의 대규모 침공으로 밀렸고, 결국 철수하게 되었다.
돌아온 오킨렉은 인도군 총사령관으로 1941년까지 하게되나 얼마안가 처칠의 눈에 띄어 대장으로 승진한 후 아치볼드 웨벨 원수의 후임으로 중동 총사령관에 파견되었다.
1941년, 이집트, 이란, 중동지역을 모두 지휘하는 중동 총사령관에 오른 오킨렉은 처칠으로부터 북아프리카를 위협하는 독일군의 지휘관 롬멜을 향해 반격하라고 명하나, 오킨렉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며 처칠의 명을 반대하였다.
오킨렉은 롬멜을 공격하기 위해 우선 8군의 신임 야전사령관을 물색했고, 2명의 지휘관을 발탁하게 된다. 한 명은 포병 장교 출신으로 동아프리카에서 빠른 진격으로 아오스타 공작이 이끄는 이탈리아 주둔군을 격파하고 500명의 희생으로 5만 명을 생포한 지중해 함대 총사령관인 앤드류 커닝햄 제독의 동생 알란 커닝햄 장군이었고, 다른 지휘관은 중동군 부 참모장으로 있던 닐 리치 장군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 일은 새로운 무기를 들여왔는데, 바로 크루세이더 전차였다.
우선 커닝햄을 8군의 사령관으로 명했고, 리치를 휘하 30군단의 군단장으로 명하여 1941년 11월에 Crusader 작전을 실행하였다. 연합군의 전력은 2개의 군단과 1개의 사단으로 8군을 구성하였고, 700대의 전차와 1000기의 전투기였다. 추축군은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 10, 20, 21 군단, 414대의 전차와 320기의 전투기를 보유하였고 전투가 진행됨에 따라 전투기는 지원을 받아 800기까지 보충하게 되었다. 그 중에 연합군 전차는 새로 받은 그랜트, 스튜어트, 크루세이더 전차가 많아졌고, 아프리카 군단은 2부대의 전차 사단을 가졌지만, 보병 사단은 1부대뿐이어서 보병 병력은 부족하였다. 또한 이탈리아 부대의 상황도 믿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한다.
전투가 개시된 후 추축군이 패하여 토브룩을 향한 공세가 저지되었으며, 2450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고, 36500명이 포로가 되었고, 386대의 전차와 850기의 전투기가 피해를 보았다. 연합군은 승리를 기뻐했으나, 그들에게는 18600명과 이외의 전투기, 전차의 많은 피해라는 예상 보다 과도한 피해를 입은 것이며 실제로 전투 중에서 진격한 커닝햄의 전차 부대는 롬멜에게 졌고, 적절하게 공중 지원도 부른 롬멜의 공격에 커닝햄은 공포에 질려 퇴각을 청하나 오킨렉은 전선을 사수하라 했고, 결국 많은 피해를 부른 것이다. 결국 오킨렉은 중도에 커닝햄을 8군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신 리치를 8군의 사령관으로 명하였다.
어째든 승리한 오킨렉은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개인 부관이 되었으며 롬멜이 강화된 토브룩 전선을 피해 이동한 새로운 전선 가잘라를 향하여 공세 준비를  리치가 이끄는 연합군은 175000명의 병사와 949대의 전차를 준비했고, 롬멜에겐 8만 명의 병사와 390대의 전차가 전부였다. 수적으로 완벽한 연합군의 우세였다. 전투는 개시되었다. 남쪽으로는 자유프랑스 여단이 지키는 비르 하케임 요새가 있었는데, 롬멜은 이곳을 간단히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요새를 지키는 자유프랑스 여단의 지휘관 마리 쾨니히 장군은 열렬하게 저항하였고, 북쪽은 토브룩이 동쪽으로 가는 길에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허나 롬멜은 이 위기를 절묘하게 넘겨 리치의 8군을 격파하였다. 추축군은 32000명의 병력 피해와 114대의 전차를 잃었지만 연합군은 98000명의 피해와 540대의 전차를 잃은 엄청난 승리였다. 거기에다 토브룩은 고립되어 롬멜에게 점령되었다.
오킨렉은 400km나 퇴각하게 되었으며, 처칠이 그렇게나 중요히 여기던 토브룩이 함락되었다. 오킨렉은 리치를 해임했고, 1942년에 임시로 직접  8군을 맡아 엘 알라메인에서 15만 명의 부대와 1115대의 전차와 1000문의 대포, 1500기의 전투기로 롬멜의 10만의 병력과 585대의 전차, 500기의 전투기와 1차 전투를 벌였다. 롬멜과 오킨렉 둘 다 전술상의 승리를 얻지는 못하였다. 대신 오킨렉은 전략상의 이점을 보았고, 엘 알라메인에서 롬멜을 저지했으나 더 이상 전선에서 남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이미 대다수의 유능한 장교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남은 장교들은 무능한 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많았다. 이 단점을 깨달은 전투에서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나 많이 힘들었다. 거기에다 이미 자신이 중동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전임자 아치볼드 웨벨 원수도 받은 처칠과 휘하 정치인들의 정치적 간섭이 더 심해진 것이다. 정치적 간섭은 오킨렉과 부하들을 더욱 지치게 하였고, 지금 더 심해진 이유는 롬멜을 향한 지속된 패배와 확실치 못했던 승리와 미국이 계획한 상륙 작전인 토치 작전에서 영국이 아무 것도 못한 체 이곳에서 저지 당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것이다.
처칠은 결국 오킨렉과의 대립 끝에 그를 해임하고 중동 총사령관을 해롤드 알렉산더로 명하였다. 8군의 사령관은 윌리엄 고트를 명하려했으나 비행 사고로 고트가 죽자 대신 버나드 몽고메리를 임명했다. 해임된 오킨렉은 대신 인도군 총사령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대신 인도에서 이전에 품었던 인도군 발전을 실행에 옮겼다. 그의 발전 시도로 인도군은 이전과는 다른 현대적 부대로 바뀌었고, 많은 인도 군인들은 오킨렉을 좋아하였다. 여기서 발전시킨 인도군은 버마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동하며 특히 북아프리카에선 뛰어난 지뢰 제거로,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전투에서는 용맹한 부대로 활약하게된다.
1945년, 마침내 2차 대전은 종결되었다. 오킨렉은 1946년에 왕의 부관직을 끝낸 후 원수로 임명에 기사의 작위까지 받게되었다. 허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정책에 대해서는 불명예스러운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1947년에는 인도군 총사령관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최고 사령관이 되어 인도 분립을 위해 파키스탄과 인도의 군대를 나누었는데, 도중에 파키스탄 측에게 불공평하게 했다는 고발을 당했다. 거기에다가 당시 인도 총독 마운트배튼과 사이도 안 좋았으며, 총독에게 사임을 강요받았다.
오킨렉은 1947년에 사임하였고, 1948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군 행정 분야에서 근무하였다. 1968년이 되자 군에서 완전히 퇴역하여 모로코의 마라케시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조용하고, 겸손하게 삶을 보내다가 1981년에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킨렉의 별명은 "The Auk"로 개인적인 면모는 사치, 허식, 위선을 싫어하고 솔직했으며, 그러한 점은 병사들에게 존경심을 받게 하였다한다.

 

 

 
 
중동군 사령부에서
몽고메리, 웨벨, 오킨렉
오킨렉의 전임자 웨벨도 롬멜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지휘관이었다. 허나 오킨렉 보다는 그 준비 기간이 길지도 모른다. 왜냐면, 보기와는 달리 웨벨은 군의 보수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웨벨과 오킨렉은 롬멜에게 패했는데, 그 근본 원인은 롬멜을 상대할 만한 전술가인 야전 사령관이 마당치 않았기 때문일것이다.
 
물론 롬멜과 싸운 야전사령관들이 무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롬멜을 상대하기에는 힘든 수준의 지휘관들이기 때문이다. 닐 리치는 롬멜을 상대하기에는 빠른 전술가가 아니었고, 님은 롬멜과 비교해서 평범한 군인이었고, 고트는 대규모 부대 통솔에는 부족하고 오히려 위험하였다. 커닝햄은 롬멜의 빠른 공격에는 당황해했다. 하지만 다른 전선에서 싸웠다면 더 낳았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커닝햄은 이미 동부 아프리카에선 뛰어난 전공을 보였고, 고트는 롬멜과 같은 2차 대전 시기의 지휘관들처럼 용감하고 공격적이었고, 님은 여러 훈장을 받으며 전공을 보였고, 1차 대전 때는 적의 포격을 피하며 부상병들을 직접 구하였고 롬멜의 공세 때도 동료들과 부하들을 끝까지 탈출시키고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리치는 이미 여러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웨벨, 오킨렉, 알란 브룩 같은 뛰어나 전략가들의 참모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다만 오코너만은 롬멜과 상대하기에는 좋은 적수였다. 허나 오코너는 롬멜과 동등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대결하지 못하여 포로가 되었다.
 
인도 여군 사열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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