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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전선의 승리를 이끈 연합 육군 총사령관

카이텔 2006.01.23 02:12:29
조회 1476 추천 0 댓글 4

 

윌리엄 슬림 (1897-1970)

 

1897년, 슬림은 버밍엄의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다. 군에 들어가기 전에는 점원이나 기술자로 일했고, 1914년에 1차 대전이 터졌을 때 사병으로 입대하였다. 배치된 부대는 위릭셔 Royal 연대였는데, 상관들은 슬림의 재능을 파악했고, 장교가 되게끔 훈련시켜주어 소위가 되었다. 슬림은 터키 전선으로 향하였고 다르다넬스 해협에 상륙한 후 오스만제국과 싸우다가 1915년에 갈리폴리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부상 때문에 후방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고, 회복하여 이번에는 프랑스 전선 싸운 후 얼마안가 메소포타미아 전선으로 파견되어 1917년에 이라크 함락전투에 참여하였다.
종전 후 1919년에 대위로 승진했고, 이때부터 인도군으로 배치되어 제6구르카 소총부대 장교로 1934년까지 근무하며 1926년 도중에 인도 퀘타의 참모대학을 들어가 학급 1등으로 졸업하였다.
1934년까지 오랜 시간을 구르카 부대에서 보낸 후 영국으로 돌아와 캠벌리의 참모대학 교관을 3년간 한 후에 이번에는 제7구르카 소총부대 제2대대장으로 다시 배치되었다. 1939년에 준장으로 승진했고, 인도 벨가움의 상급장교학교 교장을 하였다.
2차 대전이 터졌을 때는 10 인도 여단장으로 수단에 파견되어 동부아프리카의 이탈리아군을 향한 공격에 참가했으나 1941년에 아비니시아 북부 에리트레아에서 큰 부상을 입어 전투에서 빠지게되었다.
1941년에 회복한 후 10 인도보병사단을 맡아 레반트 지역(레바논과 시리아 부근 전체)에 주둔한 비시프랑스군을 향한 연합군의 공격에 참가하며, 독일의 공군 지원을 받으며 버티던 레반트 총독 든쯔는 항복합니다. 그리고 중동과 인도간에 안전한 보급과 통신을 위해 페르시아를 소련과 함께 침공할 때 슬림의 10사단도 참가하였다. 그렇게 슬림은 1942년까지 10 사단을 맡았고 1941년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1942년이 되자 슬림은 2차 대전 당시의 활동 중에서 가장 크나큰 활동을 하게될 버마 전선으로 향하였다. 동남아 전투는 이미 1941년, 진주만 공습과 같은 시기에 일본의 기습으로 시작되었고 시암과 동맹하고 비시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부근 지역의 협조를 얻은 일본은 남방원정군을 조직해 테라우치 히사이치 원수를 총사령관으로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들을 차례로 점령해갔다. 연합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로 구성된 ABDA 사령부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싸웠으나, 일본군의 우세로 패하였다.
결국 일본은 버마전선에 대치하게 되었다. 일본은 우선 버마의 동남부 지역인 테나세림을 점령하여 그곳의 비행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슬림은 인도 17사단과 버마 1사단으로 구성된 버마군단을 맡아 가장 중요한 도시인 미얀마의 항구 수도 랑군(현 양곤)을 방어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 미 공군의 클레어 센놀트의 중국 의용 비행대대 플라잉 타이거즈가 허약한 극동 영국 공군을 돕게되어 제공권 강황에 큰 보탬이 되었지만, 버마의 주요 비행장은 랑군과 일본의 점령 전선의 접경지대 가까이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초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랑군을 점령하였다.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15, 16군을 파견했으나 그들도 일본을 막지 못하였으며 슬림의 군대는 인도로 퇴각해야 했다.
1942년, 인도 15군단을 맡은 슬림은 방글라데시 지역 동남부의 치타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고, 노엘 어윈을 야전사령관으로 명하여 방어 임무를 맡기고 접근전, 공중 보급, 집중 방어와 공격, 육상부대와 공군부대간의 협력과 관련한 구상을 하며 버마 남서부 해안 지역인 아라칸을 향한 공세를 하였다. 그리고 아키야브 섬과 마유 반도를 수복하려 하나 휘하의 어윈이 작전을 망쳐버렸다. 보수적이고 정면 공격적이며, 무능한 어윈은 일본과의 전투에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고, 기껏 버마 중부 해안 부근까지 간 것이 일본군은 즉각 보강되어 버마를 향한 1차 아라칸 반격은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물자를 잃었고, 사기가 떨어졌고, 슬림은 물러남을 강요받았다. 다행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쫓겨난 것은 어윈이 되었다.
다음 공세를 위해 슬림은 대량으로 무기와 장비를 교체하며, 차량 수송은 험난한 버마 지형을 버틸 만큼의 한도로 정했고, 더 확실한 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공세 실패 후 얼마안가 침투한 77 인도 보병여단 친디츠의 적은 힘으로 기습하는 놀라운 활약으로 사기가 회복되었다.
1943년, 드디어 전환기가 찾아왔다. 슬림은 이제 15군단장에서 동부 전투군 사령관을 거쳐 버마 방면 육군 부대들이 규합된 14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버마 북부전선에서 내려오려던 중국의 지휘관 쑨리옌(손립인)과 스틸웰은 미트키나를 점령하여 버마를 향할 가까운 비행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남부 전선에서도 신임 15군단장 필립 크리스티안이 마유 반도를 향한 공세를 시작했고, 마웅다우라는 작은 항구와 주변 철도 터널을 수복했으며, 일본군의 반격에도 당당히 버티고, 이전에 받지 못한 공군 지원을 확실하게 얻었다. 마침내 아드민 전투에서 승리하고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중부 전선에서는 코히마를 점령하고 임팔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버마 전선에서 가장 큰 공방전인 임팔 전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양쪽 다 고통과 피해를 입으며 싸웠다. 마침내 임팔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일본은 5만 5천명의 병력 피해를 입었고 그중 1만3천5백 명이 전사했다. 물론 연합군도 1만7천5백 명의 희생을 치러야했다. 허나 임팔 전투의 승리를 버마 전선에서 일본과 연합군간에 마지막으로 크나큰 대결을 치른 것이라 할 수 있었고, 이 승리 덕분에 슬림은 기사의 작위를 받았다.
1944년, 이제 반격이 시작되었다. 남부 전선에서는 아키야브 섬 공세를 탈환했고, 해안을 거의 장악해 갔다. 북부 전선은 미국, 중국과 친디츠의 활약으로 중국과 버마 간의 요충지 바모를 탈환하였다. 중부 전선의 슬림이 이끄는 14군은 6개 보병 사단, 2개 기갑사단, 3개의 독자적 보병 여단을 가지고 버마를 가르며 지나는 이라와디 강을 건너 버마 중심의 만달레이를 공격하였고, 버마의 중심 요지인 메이크틸라도 일본군에게 크나큰 피해와 물자 손실을 준 후 장악하였다. 그리고 만달레이를 탈환하였다.
다음 목표로 Operation Dracula를 계획하여 랑군을 향한 진격전 형식의 해상, 육상, 공상 3방면의 빠른 진격을 시도하였고, 후방에는 구르카 부대를 낙하 투입시켰다. 심지어 랑군 내에서 아웅산 수지의 지도아래 일본을 상대로 저항하던 항일자유연맹과도 협력하였다. 마침내 버마의 가장 중요한 항구 랑군마저 되찾았다. 이제 슬림의 14군은 동남아시아 육군 연합부대로 개명되었고, 마지막 전투를 앞에 두었다. 패배한 일본군은 산과 계곡에 숨었고, 안전한 일본군 진영으로 도망칠 계획이었다. 슬림과 연합군은 이들을 재빠르게 공격했고, 퇴각 준비가 덜 된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으며, 도망치려해도 연합군의 매복 기습과 포격을 당하였다. 일본은 어설픈 후퇴로 남은 일본군의 절반인 1만 명의 피해를 입었는데, 연합군의 희생을 한 움큼으로 보일 정도로 적었다한다. 버마 전선의 승리를 마치고 다음 전선 공세를 위해 인도로 복귀한 부대는 얼마안가 원자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 전쟁이 끝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슬림은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제국 국방대학 총장을 지내며 1948년에 군에서 퇴역하였다. 그런데 퇴역하자마자 다시 군으로부터 복귀를 요청 받아 다시 군 생활로 돌아와 바로 당시 육군참모총장직인 제국참모총장으로 1952년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1953년에는 원수로 임명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총독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의 분립 여론으로 영국의 연방총독부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슬림이 전쟁 영웅이라는 점 덕분에 인기를 얻었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이 여왕의 방문을 환영하게 해주었다.
1959년에 총독직 말에 Unofficial History와 Defeat Into Victory의 회고록을 출간했는데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한다. 총독직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와 자작의 작위에 명해졌으며, 1970년, 73세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슬림의 별명은 Uncle Bill이었다하며, 버마 전선에서의 활약은 영웅적인 모습이었다. 비록 희생과 패배도 있었지만 지역 이동이 힘들고 대다수 진영이 배수진이 되어버리는 버마에서 형편없는 보급 상황을 극복하고 싸워본 적이 없는 일본군의 광신적 방어와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은 슬림이 위대한 명장임을 입증하고 있다.    

슬림과 웨벨
1943년 시기의 웨벨은 인도 총독 겸 총사령관이었다.
 
1945년, 싱가포르에서
가운데 동남아 연합군 총사령관 마운트배튼 제독이 있다.
1959년, 오스트레일리아 총독 시절
왼쪽이 슬림, 가운데는 1959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한 알렉산드라 공주, 오른쪽은 슬림의 아내이다.
런던에 있는 슬림의 동상
그의 주변에는 2차 대전 시기의 육군에서 영국의 승리를 이끈 대표적 지휘관에 속하는 버나드 몽고메리, 알란 브룩의 동상도 함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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