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비극과 삽질, 그리고 원 샷 라이터. G4M 1식육상공격기 Ver - 1.2

티안무 2006.02.28 20:08:42
조회 6226 추천 0 댓글 37

비극과 슬픔의 쌍발폭격기 돌아올 수 없는 영원의 날개를 홰치며 미츠비시(三菱) G4M 1식육상공격기 - 연합국 코드네임 : 베티 Mitsubishi G4M Type 1 land-based attack aircraft - Allied code name : Betty 1. 런던조약과 일본해군의 항공력 증강 1930년대, 워싱턴 해군군축조약에 이허 런던조약을 거치며, 이후 희망을 걸었던 구축함, 순양함 보유전력까지 제한되어 일본해군은 대미, 영에 대하여 피할 수 없는 열세에 놓입니다. 이에 일본해군은 다시 부족한 전력을 항공전력으로 확충, 육상 기지에서 발진하여 적의 주력함을 타격하는 장거리 공격기의 개발에 매진합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바로 미츠비시의 혼죠 키로(本庄 季郎) 기사가 설계한 G3M 96식육상공격기였습니다. 당시 96식육공은 적군인 중국공군은 물론이거니와 일본해군의 주력전투기인 A5N 95식함전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고고도에서 중국본토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고, 이에 큰 영향을 받은 일본해군은 96식육공의 단점으로 지적받은 도양(渡洋)폭격 능력을 향상시킨 새로운 후계기의 개발을 명하고, 1937년 9월 혼죠 키로에게 이를 12시(試)육상공격기로 발주합니다. 2. 비극의 시작, 쌍발 폭격기의 한계 해군이 미츠비시에게 요구한 12시육상공격기의 요구사항은 실로 터무니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원래 얘들 노는 게 다 그렇지만) 그 규격은 쌍발폭격기인 96식육공과 같은 수준에 400km/h 이상의 속력, 4,800km 이상의 항속거리를 갖추라는 것이었지요. 속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고, 또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선 큰 연료탱크가 필요한데 이는 모두 기체를 대형화시키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고 실제 96식과 동일한 크기로 기체를 만들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혼죠 기사는 쌍발폭격기론 성능저하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해군에게 4발 폭격기를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해군 항공관계자들에게 4발 폭격기 개발안을 소개하나 즉각 해군 항공본부 기술부장 와다 소우(和田 操) 중장에게 거부당합니다. 와다 : “왜 4발 공격기가 필요한가?” 혼죠 : “2발의 엔진은 속력과 항속거리에, 2발은 방어력과 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4발 공격기를 만든다면 이것은 분명 종래에 없이 성공적인 기체가 될 것입니다.” 와다 : “용병에 관한 것은 군이 결정한다. 미츠비시는 그냥 가만히 군의 요구에 따라 쌍발 공격기를 만들면 되는 일이야.” 물론 지금 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판단이고 터무니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왜 일본해군 수뇌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가? 그것은 결국 군축조약과 이에 따른 점감요격작전의 대두 때문이었습니다. 점감요격 작전이란, 결국 보조전력으로서 적의 주력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마침내 자군의 주력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비로써 자군의 주력이 출동해 적을 격멸한다는 작전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 육상공격기는 주력이 아닌 소모품이었고, 소모품을 굳이 4발로 만들어 보유량을 줄이기보다는, 비록 방어력과 생존성을 줄이더라도 같은 비용에 최대의 공격력과 질적 우세를 확보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개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소모품]에 방어력과 생존성을 고려할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또 하나는 앞에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96식육공의 전과가 ‘쓸데없이’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호위전투기는 물론 적 요격기보다 더 빠르고 멀리, 높게 날 수 있었던 96식육공은 소위 거대하고 고출력 엔진을 장비한 폭격기의 발전이 전투기의 발전을 앞질러, 향후 우수한 무장으로 장비한 폭격기들에 의해 전투기는 필요 없게 될 것이란 ‘폭격기 무용론’을 불러 들였습니다. 여기에 다시 ‘방탄보다는 속력과 기체를 줄여 피탄 확률을 낮추는 것이 더 합리적“이란 말도 안돼는 주장이 도입됩니다. 이 1930년대에 일본해군 항공대의 전투기 조종사 육성은 1/3으로 크게 줄어들게 되고, 나머지는 전부 뇌격기와 폭격기 조종사에 집중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폭격기 만능론‘의 정점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가 있었습니다. 당시 해군이 그나마 이 쌍발 폭격기의 생존성을 위해 추진한 것은 고작해야 장거리 전투기로 13시쌍발육상전투기를 발주한 정도로 이것도 흐지부지 되어 결국 폐지됩니다. (대신 이 기체를 바꾼 것이 야간전투기 월광(月光)입니다.) 이제 해군의 요구에 따라, 방어력과 생존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육상공격기를 만들어야하는 혼죠의 선택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방어력을 포기한 이상 다른 성능을 절대적으로 향상시켜 피탄확률을 줄이고 생존성을 높이는 방법밖엔 없었지요. 당초 96식육공에 사용되던 830마력 킨세이(金星) 2형 엔진으로 400km/h대의 속력은 무리였고, 이에 새로운 1,500마력급 엔진인 신형 카세이(火星) 11형을 택하게 됩니다. 이로서 속력과 출력에 관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건 바로 항속거리의 문제인데, 일제 엔진 가운데선 가장 연비가 좋지 않았던 카세이는 96식육공보다 더 많은 연료를 필요로 했고, 동체에 폭탄과 방어기총을 실어야할 폭격기에 더 이상 연료탱크를 늘리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결국 혼죠는 고육지책으로 주익을 밀수(蜜水)처리, 통째로 연료탱크로 사용하는 인테그랄(Integral) 방식으로 5,600~6,000리터에 달하는 연료를 탑재합니다. 대신 동체의 연료탱크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동체를 확장하고 96식육공까지 외부에 장착하던 폭탄, 어뢰를 폭격 투하창을 설계한 내부에 장착. 공기저항을 줄이고 속력과 운동성을 향상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 인테그랄 연료탱크는 내부에 방탄장비를 설치할 수 없었고, 수리가 필요할 때는 주익을 통째로 갈아야하는 문제가 있었음에도 해군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다만 혼죠가 탑승원들을 위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후방에서 추격하는 적기를 요격하기 위해 다른 설계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체를 통통한 담배형으로 설계, 미익 후방사수석에 20mm 기관포를 달아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후에 혼죠는 자신의 회고록은 ‘바다 독수리의 항적’에서 이 1식육공을 끝내 4발 폭격기로 만들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지요. 여하튼 예정대로 설계가 진행되어 1939년 9월에 시작 1호기가 완성, 다음 10월에 처녀비행을 한 해군의 심사결과 요구사항을 뛰어넘는 444km/h의 속력 및 5,358의 장대한 항속거리를 기록해 1941년, 일본기원 2601년 4월에 제식 채용되어 G4M 1식육상공격기란 이름으로 양산에 들어갑니다. 당시 일본해군은 이 1식육공의 뛰어난 운동성과 쉬운 조작, 96식육공보다 빠른 속력과 고고도 비행능력을 높게 평가했으나 아무도 이 기체의 터무니없는 방어력을 지적하진 않았습니다.  비극이 시작되었지요......... 3. 태평양전쟁과 육공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전함과 항공기의 첫 정식대결은 바로 1941년 12월 10일, 영국의 KGV급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 리논(Renown)급 순양전함 리펄스(Repulse)가 오자와 지사부로(小澤 治三郞) 제독이 파견한 제1항공함대 소속 96식, 1식육상공격기들에게 격침된 전투였습니다. 당시 영국이 자랑한 대공병기 밤밤 포로 무장한 이 두 전함이 고작 뇌격기 몇 기에 격침된 사건은 큰 충격이었고 전함에 대한 항공기의 절대적 우위를 증명하는 전투임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쓰레기들에게 대영제국의 함선들이 격침되었단 것은 저도 충격 -_-) 몇몇 작은 섬으로 출격장소가 한정된 태평양전선에서, 장대한 항속거리를 이용해 적 항공대의 사정권 밖에서 적을 요격하는 1식육공의 개념은 일견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병기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방어력을 포기한 항공기가 과연 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겠습니까? 실제 과달카날 전역 동안, 1식육공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 육상항공대가 운영하던 P-40, P-100보다 1식육공이 더 높은 고도에서 수평폭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 자체의 생존성이 높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고고도에서 폭격을 해서 명중률이 개판이었다는 -_-) 이후 1식육공 이상으로 고고도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들이 나타나면서부터 1식육공은 단순한 사냥감으로 전락했고, 충분한 항공전력으로 보호되는 적 함대에 대해선 저고도 어뢰투하가 필수적인 뇌격이 본래의 약점이 겹쳐지며 17기의 1식육공이 렉싱턴에 뇌격을 가하다 13기가 격추, 뇌격도 실패한 것을 본다면 이는 보다 자명하지겠지요. 1식육공의 방어력은 극히 취약한 것이라, 그 넓은 주익에 7.7mm 탄환 몇 발만 꽂혀도 금세 불덩이가 되어 격추. 일본해군으로부터는 1식 라이터, 미 해군으로부터는 원 샷 라이터라는 악명을 날립니다. 1식육공의 몰락은, 전쟁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너무 쉽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초반의 전함 2척의 전과 또한, 일본해군이 1식육공의 약점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전쟁 말기까지 이를 운영해야 하는 실수로 이어지게 된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지요. 결국 주력이 된 1식육공의 생산라인을 변경할 수도 없었던 일본은 1,850마력의 카세이 25형을 장비하고 주익의 연료탱크방탄장치를 갖춘 대신, 항속거리를 줄인 34형을 만들어내나 때는 1944년 말. 일본 항공대가 기어오를 하늘 따위도, 폭격기들이 공격할 적의 방어기지도 없었습니다. 결국 남아있던 1식육공들은 자살공격기 오카를 날라주는 삽질을 하다 격추되거나, 역시 가미가제 특공기(...이걸?)로 사용되며 사라지게 됩니다. 그 생산량은 무려 2,416기. 일본해군의 항공기 가운데서는 제로센 다음가는 생산량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沖縄)로 항복문서를 전하러 가는 사절단의 운송을 마지막 임무로, 전후 1식육공은 수송기로 복원작업에 투입되거나 거의 해체되는 최후를 맡습니다. [십자를 그리니 은근슬쩍 유럽풍이 나는군요.[ 당시 1식육공을 타고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1식육공은 다음과 같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건 조종이 능숙한지 서투른지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운이었습니다. 적의 총알이 맞는지 맞지 않는가 하는 문제였으니까요.” “어쨌든 방어 장비가 전혀 없는 비행기였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전부 불덩이가 되어 격추되었습니다. 전투기는 달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공(中攻 - 1식육공의 별칭)은 그럴 수도 없었지요. 중공을 타고도 살아있는 사람은 대단한 행운아입니다.” 통상 일본 내부에서 1식육공의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폭격기로선 상상할 수 없이 명쾌한 기동성과 비교할 수 없이 장대한 항속거리를 가졌다고. 그리고 미츠비시 특유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기체라고.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식육공이야말로, 일본이 물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동태 대가리였기에 패한 것을 가장 자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과연 일본이 “물량을 자랑하는 연합국”에게 졌을까요? 1943년까지 연합함대의 전력은 태평양함대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쓰레기를 주력으로 한 수뇌부의 어리석음과 전술 및 전략의 후진성. 그리고 그 자신도 폭격기 지상주의자로 결국 자신이 창조해낸 1식육공에 몸을 싣다 격추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머릿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분명 제2차대전 - 태평양전선을 통해 일본해군은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수 있는 어떤 모범적인 전술을 구사한 동시에 결코 되풀이 되선 안돼는 전술도 만들었다고.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단순한 스펙과 초반의 화려한 전과, 그리고 쓸데없는 기능을 가지고 1식육공을, “그들의 조상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명기의 반열에 올리는 일본의 경우와 직접 1식육공에 몸을 싣고 그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했던 사람들이 후세에 회고하는 저 말들이, 아마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주는 의미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상의 짧은 글을 마치겠습니다. G4M1 1식육상공격기 11형 상세사항 전장 : 19.94m 전고 : 4.90m   전폭 : 24.88m 익면적 : 78.12㎡ 자체중량 : 7,000kg 완비중량 : 9, 500kg (덩치는 B-17이랑 비슷한 놈이 무게는 1/3이군요 -_-) 최고속도 : 426km/h -고도 4,200m 상승한도 8, 500m   항속거리 : 2,852~4,288km 프로펠러 : 해밀튼 정속 3날 프로펠러 엔진 : 미츠비시 공냉복렬성형 14기통 공칭 1,410마력 카세이 11형 2기 승무원 : 7명 각 버전 총생산량 :  2,416기 무장 : 7.7mm 기관총 4정[전방, 상부, 동체 좌우의 총좌), 20mm 기관포 1정(미익 총좌), 항공 어뢰 1발 또는 800kg 폭탄 1발 또는 250kg 폭탄 4발 바리에이션 G4M1 1식육상공격기 11형 1938년 4월에 개발명령이 나온 G3M시리즈(96식 육상 공격기)의 후계기. 1940년 12월에 완성해1941년 4월에 정규 채용. 11형, 12형을 합쳐서 1,200기가 생산. 11형 : G4M1. 최초의 생산형으로 카세이 11형 탑재.   12형 : 엔진을 카세이 15형으로 변경한 것으로, 4,000m에서 5,500m의 고도에서 전개능력이 가능. 주익에는 연료탱크에 자동소화장치가 장착되었고 양산 663호기부터는 주익 아래에 방탄고무를 장비. 11형과의 차이는 엔진 위쪽에 공기 흡입기가 붙은 것. 13형 : 12형의 시험 제작기로, 11형의 양산 241호기를 개조한 것.   G4M2 1식육상공격기 22형 G4M1의 성능을 향상하기 위하여 1,800마력 카세이 21형을 탑재한 것으로, 프로펠러가 VDM전동가변형(불량이라 유압식으로 변경)으로 교체되고 완비중량을 9,500kg에서 1,2500kg으로 증강. 주익, 미익, 수평미익의 변경에 의한 안정화. 폭탄투하창의 통상장비. 측면 7.7mm 총좌의 폐지, 미륜(尾輪)의 수납식 변경 등등 '실전에 도움은 개뿔도 안돼는' 개량이 행해진 형태. 1942년 11월부터 시작해 1,152기가 생산. 22형 : 1942년 11월부터 생산.   22형 갑(甲) : 3식6호 전기탐색기구(레이더)를 장비, 동체 측면의 무장을 7.7mm로부터 20mm로 교체. 50기 생산.   22형 을(乙) : 동체 상부 20mm 기관포를 99식1호에서 2호로 교체한 것. 50기 생산.   24형, G4M2A : 진동이 큰 히세이 21형을 감속 비율을 변경한 카세이 25형으로 교체.   24형 갑(甲), G4M2Aa : 24형을 22형 갑에 준한 장비로 한 것. 15기 생산.   24형 을(乙), G4M2Ab : 24형을 22형 을에 준한 장비로 한 것. 170기 생산.   24형 병(丙), G4M2Ac : 기수의 7.7mm 기관총을 13.2mm 기관총으로 교체.   [잘 아시는 애니 칵핏을 보시면, 아주 개그물로 나오지요. 음속뇌격대라나........ 오카(櫻花)가 아마 헬 캣이랑 최고속력이 비슷할텐데........(먼산)] 24형 정(丁), G4M2E : 자살로켓 오카의 모기(母機)로서 제작된 형태.   25형, G4M2B : 엔진을 고고도용의 히세이 27형으로 교체한 것. 1기만이 시험제작.   26형, G4M2C : 저급의 연료에 대처한 히세이 25형 을(乙)를 장비. 2기가 시험제작.   27형 G4M2D : 배기 터빈 장비 시험 제작기. 항공병기창이 테스트.   G4M3 1식육상공격기 34형 1943년 12월부터 생산에 들어간 G4M계의 최종형으로 방어강화형. 주익의 구조를 완전 변경해, 연료 탱크에 고무피복을 입히고 속도도 늘렸지만 중량이 무거워져 항속거리는 저하.(그래도 4,300km 이상) 그리고 당시의 다른 일본군용기가 그랬듯이 자살공격을 감행. 약 60여기가 생산. 34형, G4M3 : 기본형.   34형 갑(甲), G4M3A : 대잠 초계기로 장비 변경된 기종. 일부는 수송기로도 사용.   36형, G4M3C : 1945년 1월에 테스트. G4M3의 3, 15호기를 개조한 배기 터빈 실험기.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모태 솔로도 구제해 줄 것 같은 연애 고수 스타는? 운영자 25/07/21 - -
83309 우라 VS 반자이 [3] F씨(210.192) 11.03.25 253 0
83308 국보법을 유지해 통일의 주춧돌로 삼자 [9] qwer(203.226) 11.03.25 142 0
83307 근데 1984년이 소련에 무슨 의미있는 해임? [1] 탈영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5 142 0
83305 몽고메리가 명장이냐? [5] 사자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5 318 0
83301 소련이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어떤꼴났을까? [4] ㅁㄴㅇ(124.28) 11.03.25 224 0
83300 무슨 소리인가? 스탈린 오르간이라니? 어그로끄는아이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5 139 0
83298 (연재글) 패튼장군과 로렌전역(로렌전역의 개관.1) [2] 어그로끄는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5 741 0
83297 네오나치 카페의 soldat 이놈 제2의 세계사광이 될 확률이 높아보임. [2] 어그로끄는아이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71 0
83295 아앍 hoi2 1차대전 모드 빡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교훈을 얻었지요 [7] 슐레딩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547 0
83294 HOI2 AOD ICR 이거 걸작 중에 걸작이네......... [1] 118.41(118.41) 11.03.24 537 0
83293 히틀러vs스딸린 [3] 처칠의아가리(175.124) 11.03.24 190 0
83292 광팔인가 뭔가 [4] 랏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18 0
83291 니들 좀 너무한거 아닌가? [1] 나광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07 0
83289 임팔작전 수습한 넘 [3] 탈영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415 0
83288 보드게임 돈 [4] sdf1(180.69) 11.03.24 307 0
83287 나`광팔 다시보거라 Wehrmach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75 0
83286 근데 독일연방군은 리비아에 지상군 투입 안하냐??????????????? [2] 에르빈 롬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309 0
83285 ★ 광팔이 광분하는 장면 보려면 심갤로 와라 ㅋㅋ [1] ㅇㅇ(118.130) 11.03.24 143 0
83283 갤이 왜이럼 요하임 파이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49 0
83282 잘못된 거 있으면 알려줘 [2] S-300V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79 0
83281 태평양 전쟁 기록사진 - 오키나와 전투 [5] 이하노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984 0
83279 지금 2대갤 왜이러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F씨(210.192) 11.03.24 198 0
83278 광팔이는 아는게 너무 많다 [2] 일본해병대(222.239) 11.03.24 141 0
83277 추남아저씨&풍후&홍순기에게 주는 승차권 부잔(125.179) 11.03.24 92 0
83276 수무제 양만춘의 대의大義 [1] 청림책사풍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90 0
83275 내가 만약 랍스타가 될수 있다면 [5] meltyhonn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94 0
83274 서쪽을 가리키며 양만춘이 피눈물을 흘린다. 울면서 말하길 [3] 황룡[黃龍](114.30) 11.03.24 201 0
83273 야 풍후하고 그 동맹인가 뭔가 하는 놈들 [1] S-300V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60 0
83272 광팔아 형이라고 지랄하지마 [6] S-300V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49 0
83271 참 신기해.. [2] meltyhonn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16 0
83270 요동에 제2의 수나라를 세운 수무제(隨武帝) 3부 [1] 황룡[黃龍](114.30) 11.03.24 150 0
83269 요동에 제2의 수나라를 세운 수무제(隨武帝) 2부 황룡[黃龍](114.30) 11.03.24 109 0
83268 요동에 제2의 수나라를 세운 수무제(隨武帝) 황룡[黃龍](114.30) 11.03.24 267 0
83267 콜디스트윈터 이거 읽어본 훃들 있음? [3] (183.101) 11.03.24 110 0
83265 일본이 1965~90년에 한국에 빌려준 차관 내역 [1] 코른의병사(210.107) 11.03.24 584 0
83264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차별없이 대했다면, [2] 블러드써스터(210.107) 11.03.24 138 0
83263 사실 독립운동가들 대부분 양반세력 아니었냐? [1] 코른의병사(210.107) 11.03.24 130 0
83262 천황이 군부에게 이용당한 증언과 증거들을 추적한 책 블러드서스터(210.107) 11.03.24 77 0
83261 일본이 아시아를 구했다는 얘기는 취소한다. 코른의병사(210.107) 11.03.24 44 0
83260 200년간 전쟁이 없어서 일본에게 개발렸다는게 변명이 될 수 없는 이유. 블러드써스터(210.107) 11.03.24 88 0
83259 러일전쟁 일본제국의 승리에 아시아인들이 열광한 이유 저거넛(210.107) 11.03.24 105 0
83258 임진난때 명군 지원 었없으면 조선은 [1] 블러드레터(210.107) 11.03.24 115 0
83257 진심으로 왜 일본제국 통치시기를 마치 조선시대보다 못한냥 말하는지모르겠어 저거넛(210.107) 11.03.24 49 0
83256 근데 솔직히 우리가 일제의 만행드립칠만한 입장은아니지 블러드레터(210.107) 11.03.24 82 0
83255 나는 구 일본제국을 근대동양의 로마제국으로 정의하고 싶다 저거넛(210.107) 11.03.24 97 1
83252 대일본 제국의 중전차를 맛봐라!! meltyhonn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4 174 0
83249 추남아저씨 소환글 [4] 부잔(211.253) 11.03.24 172 0
83248 미 레벤워스 육군지휘참모대학의 2차대전 관련 자료, 논문들 [1] 이제큐터(124.195) 11.03.24 169 0
83246 셔먼 식별가이드 - Index [4] ㅋㅌㅊㅍ(121.151) 11.03.24 289 0
83245 셔먼 식별가이드 네번째 장 - 셔먼 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냐?? [42] ㅋㅌㅊㅍ(121.151) 11.03.24 1462 1
뉴스 추성훈 아조씨도 여행지서 일당 벌어 '밥값은 해야지' 디시트렌드 07.2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