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AI 매터스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AI 매터스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개념글 리스트
1/3
- 싱글벙글 한국인이 일본에서 유튜브로 성공하는 방법...jpg ㅇㅇ
- “우크라전 도왔는데 우린 도움 못 받아”…트럼프 뒤끝 스탈린
- 거만했던 딩크 부부의 최후 만화.manhwa ㅇㅇ
- “팬티 벗어서 닦아라”… 오징어 게임 촬영장 직원들 "한국콘텐츠진흥원 내 고닉팠
- 1만 병력+특수부대까지 추가 투입..美, 이란 압박 '최대치' 검토 뽀롱
- 이혜영, '반려견 낙서' 학대 논란 후 올린 깨끗한 강아지 사진 ㅇㅇ
- "뭉치자" UAE, 다국적 연합군 구성해 호르무즈 해협 개방추진 뽀롱
- Ai로 이국종 교수 목소리로 의사 유튜버 만들었노 카와이쨩
- 쟤랑 가는 길이 다름. 조나단 밥그릇 튼튼 ㅇㅇ
- BTS 광화문 공연에 가장 많았던건 mz아닌 40대였다 ㅇㅇ
- 실화)붉은사막 기사 썼다고 기자한테 살해협박ㄷㄷㄷ ㅇㅇ
- 동양인이 서양인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면 안 되는 이유 ㅇㅇ
- 홍서범·조갑경 며느리, 혼인신고 안했다…본인 성으로 '딸' 출생신고 ㅇㅇ
- 싱글벙글 새로운 시즌으로 컴백한 네고왕 근황.JPG 수인갤러리
- 싱글벙글 실시간 주식 첨해보는 주린이들 근황 하이바라
'나치에게 항복할까, 말까?'
나치가 처음으로 침공한 나라가 어디일까요. 안슐루스를 당한 오스트리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뮌헨 협정을 당한 체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역시 폴란드일겁니다... 다만. 더 힙스터들은, 나치가 침공한 나라는 바로 독일 그 자체였다고 말합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보편적인 견해를 따르지만, 힙스터들의 말 역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치의 독일 장악은 솔직히 말해서 독일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서 민주적으로 행해졌다... 라기 보다는 과반은 근처에도 못간, 애매하게 강한 지지세를 갖춘 양아치 정당이 깡패짓하고 협잡꾼 보수주의자들과 결탁히여 공화국의 기둥을 마구 부수며. 거의 침공처럼 여겨지는 방식으로 행해졌으니까요. 이 글은 그 침공의 끝물. 나치의 독일 장악 직전에서, 몇 안되는 공화국 우호 정당 중 하나인 중앙당이 어떻게 나치에 항복했나... 를 그들의 회의록을 인용해 다룹니다. 중앙당은 독일 통일 이후 개신교 제국에서 소수파로 전락한 가톨릭 집단의 권리 보호를 위해 형성되었고, 가톨릭을 핍박한 비스마르크와 싸우며 성장했습니다. 가톨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똘똘 뭉쳤기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들과 강경 보수주의자가 공존한 이 당은 제국 시절에도 언제나 손꼽히는 정당으로 제국 정계에서 군림했습니다. 1차대전의 결과로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중앙당은 사민당이 건국한 공화국 정치의 메인플레이어로 우뚝 섰습니다. 적지 않은 보수주의자들이 '빨갱이 공화국'을 백안시 하고,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공화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궐기하는 상황에서 중앙당은 괜찮은 공화국의 동지였죠. 초인플레이션을 끝내고 경제가 회복되며 사민당이 초기의 입지에서 밀려나자, 중앙당은 아예 총리도 몇번 배출하며 공화국의 정계를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바이마르 공화국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1929년은 대공황의 해였습니다. 의회는 기능 부전 상태가 되었고, 거리는 전쟁터가 되었으며, 나치가 발호했죠. 히틀러는 독일 보수주의자들과의 야합으로 총리가 될 수 있었고, 이후 제국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한 공민권을 정지시켰습니다. 그런 연후에 제국의회에 사실상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죠. 수권법. 입법부는 행정부에 모든 것을 토해내라. 임시 의사당으로 지정된 크롤 오페라 하우스를 나치 돌격대원들이 둘러싼 가운데. 중앙당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토의를 시작합니다... 1933년 3월 23일 오전 10시 15분 의제: 정치적 상황 / 의장: 카스 신부 *카스 의장은 *슈테거발트, *하켈스베르거 박사와 함께 히틀러 총리와 나눈 면담 내용을 보고했다. 그는 히틀러에게 수권법이 중앙당에게 수용 가능하려면 특정한 보장들이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법 과정에 제국 의회가 계속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스 : 중앙당 리더. 신부님. 민주주의에 적대적이지 않았으나 혼란한 정국을 타개할 리더는 필요하다 여겼고 신앙을 제일 우선한 보수주의자. 중앙당 말아먹곤 바티칸에 박혀서 나치랑 교회간의 타협, 제국협약 주선하곤 거기 쭉 있었다. 1952년 사망. *슈테거발트 : 가톨릭 노조 지도자. 초교파주의, 보수주의자. 전후에도 살아있는 잠깐동안 정계활동 하며 초교파주의 기독교 정당 CDU의 빝바탕을 닦았다. 1945년 사망. *하켈스베르거 : 기업가. 보수주의자. 나치와 중앙당 사이의 가교. 1938년 게슈타포한테 수사받다 의심스럽게 사망. 법안 심의를 위한 실무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며, 특정 사안들에 대해서는 수권법이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히틀러 총리는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고 전했다: 1. 제국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는 시행되지 않을 것이다. 2. 법률안 심의를 위해 제국 의회와 협의하는 실무 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다. 3. 법 앞에 평등한 원칙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나, 중앙당원들이 공무원직을 유지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4.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의도가 없다. 5. 각 주의 현 상태는 유지될 것이며, '수권법'이 주 정부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6. 기존의 가톨릭 교회 권리와 연금 수급권은 유지될 것이다. 7. 정교협약과 학교 교육권은 수권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어진 보고에서 카스 의장은 현재 당이 처한 '지극히 어려운 상황'을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당의 본질을 지켜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법안을 거부했을 때 당과 국가에 닥칠 '불쾌한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쁜 상황을 막기 위해"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2/3 찬성표가 나오지 않더라도, 정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하려 할 것이며, 대통령 또한 이미 수권법에 동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카스 의장은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의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슈테거발트 의원은 보충 설명을 통해, 히틀러가 의회를 매년 몇 차례 소집하여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했음을 언급했다. 또한 노동조합이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브뤼닝 전 총리는 현재 당이 '강요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앞으로 고난의 시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약속이 실제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결정적인 문제는 과연 향후 나치당 내에서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히틀러가 권력을 유지할지, 아니면 그보다 더 과격한 이들이 주도권을 잡을지가 관건이다. (더 과격한 이, 에른스트 룀. 1934년 장검의 밤으로 숙청) 수권법은 지금까지 의회가 요구받은 것 중 가장 터무니없는 요구다. 조국과 당의 전체 상황을 너무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향후 몇 년간 건전한 재정 운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전무하다. 정부가 제공하겠다는 보장책들 역시 결코 확실하지 않다. 중앙당의 미래가 산산조각 날 위험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렇게 되면 당은 다시는 재건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의장은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분명히 인지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과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당선시킬 때 '대통령이 헌법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이제 대통령조차 수권법에 체념한 상태이기에 헌법 전체가 큰 위험에 처해 있다. 비록 도덕적으로 이 찬성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있더라도, 찬성표를 던지는 결정을 내리기가 매우 고통스럽다고 브뤼닝이 언급했다. (회의 일시 중단) 회의는 크롤 오페라 하우스에서 정부 성명이 발표된 후 재개되었다. 카스 의장의 제안에 따라 시험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의원단의 의견이 만장일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토론 끝에, 당의 존립과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의원단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당 의원단은 수권법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의하였다. 카스 의장이 당을 대표하여 찬성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회의 종료: 오후 5시 * 즉 중앙당은 답도 없는데 어쩌지... 하며 번민하다. 결국 나치를 믿고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약속을 지켰냐고요? 그럴리가요. 1 -> 대통령의 유대인 참전용사 핍박 반대 생까고 싹 조지는 등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의사는 많이도 씹혔습니다. 2 -> 제국 의회 자체가 무력화되었습니다. 3 -> 수권법 2주 뒤 직업 공무원 제도 복원을 위한 법 BBG를 통과시켰고 이 법에 의해 중앙당원들을 포함해 많은 공무원들이 쓸려나갔습니다. 4 -> 상술한 BBG는 사법부 공무원에도 대거 적용되었습니다. 이외에도 1936년에는 게슈타포의 각종 행정 조치는 행정재판소의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게슈타포가 불법적 행위 해도 사법부가 제지할 수 없다) 법 개정을 하는 등, 나치는 사법부를 강간했습니다. 바이마르 사법부의 주류는 철저히 보수적이었고 민주주의를 경멸했으며 나치에 기울어 있었음에도 그러했습니다. 5 -> 이듬해 나치는 각 주의 정치적 권리를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기존 정부는 무력화되고 의회는 해산되었으며 나치 지역당 리더인 가우라이터들이 권력을 쥐었죠. 6 -> 안했습니다. 각종 가톨릭 단체 해산하고 연금 수급권도 마음대로 손댔죠. 7 -> 나치는 가톨릭 학교에도 엄청나게 간섭했습니다. 가톨릭 교육이 아니라 '민족적' 교육을 받아야 했고 각종 가톨릭 청년 단체는 해산되어 가톨릭 잼민이들은 유겐트에 들어와야 했죠.히틀러는 이렇게 협박과 거짓말을 통해 권력을 잡았으며, 이 짓거리를 1945년 4월 30일까지 계~속 합니다. 결국 뒈져야 끝났죠. 전과있는 사기꾼 양아치 이거 믿는거 아니라니까... 여태 쓴 정보글 모음집https://m.dcinside.com/board/newconservativeparty/5337698
작성자 : Ashige_good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