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나온 크래쉬의 데뷔앨범 'Endless Supply Of Pain' 출시 당시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본인의 부탁을 들은 지인이 한 말이다.
실력 좋은 밴드가 많아도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레코딩 수준이 미흡했고, 프로듀서 기근에 허덕이던 1990년대 초 한국 헤비메탈계에 묵직한 사운드에 흠잡기도 어려운 연주 실력과 곡 구성력을 갖춘 이들의 첫 앨범은 말 그대로 '자존심'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운드를 낼 수 있구나. 한국 밴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낼 수 있구나. 한국 메탈도 이제 세계와 경쟁할 수 있구나. 이제 우리도 끝내주는 헤비메탈 앨범을 가졌구나.
머쉰헤드, 세풀투라 등 유명 헤비메탈 밴드 앨범을 프로듀싱하던 당시 유럽 최고의 프로듀서 콜린 리처드슨과 메탈 전문 레이블 메탈포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크래쉬. 20대 초반의 젊은이 세 명(안흥찬, 윤두병, 정용욱)은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힘있는 열정과 실력으로 괴물 같은 첫 앨범을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메탈 팬들은 크래쉬를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밴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한국메탈계에서도 비주류였던
스래시 메탈은 주류의 위치에서 한국 록신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데뷔앨범에 붙은 '대한민국 메탈의 새 역사를 쓴 앨범'이라는 찬사는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 됐다.
이후 크래쉬는 2003년까지 총 네 장의 앨범을 더 내며 한국 록의 대표밴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기타 윤두병이 2집 앨범을 끝으로 팀을 탈퇴하고 하재용과 이성수(기타), 김유성(키보드), 임상묵(기타)이 크래쉬 멤버로 가세해 크래쉬 사운드를 완성해 갔다.
그리고 2010년. 7년간의 긴 공백기를 깨고 크래쉬가 '만물의 영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재용의 기타에 원년멤버 윤두병이 복귀하면서 기타 사운드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정용욱의 질주하는 드럼은 당장이라도 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에 안는 안흥찬의 보컬은 크래쉬 사운드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멤버 : 왼쪽부터_ 하재용(기타) 정용욱(드럼) 윤두병(기타) 안흥찬(베이스, 보컬) 데뷔 :1994년 1집 'Endless Supply Of Pain'
- Album
1994년 : 1집 Endless Supply Of Pain
1995년 : 2집 To Be Or Not To Be
1997년 : 3집 Experimental State Of Fear
2000년 : 4집 Terminal Dream Flow
2003년 : 5집 The Massive Crush
2010년 : 6집 The Paragon Of Animals
- COMPILATIONS
1997년 : Am I Metallica(한국)
2000년 : Speak Japanese or Die: S.O.D Fuckin' Tribute from Far East(일본)
2001년 : Indie Power (한국)
2002년 : We Don't Need Society : DRI Tribute (미국)
2002년 : Spiderman OST (아시아)
- 안녕하세요.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입니다.
크래쉬 : 안녕하세요.
- 디시를 아시나요?
안흥찬, 하재용 : 말만 들어봤어요.
정용욱 : 락 갤러리(이하 락갤)요. 전 다 들어가요.
윤두병 :저는 등산갤러리요. 지인이 들어가 보라고 해서 거기만 가봤어요.
정용욱 : 음란한 갤러리도 많이 들어가 봤어요. (웃음)
윤두병 :너무 많아요. 일일이 들어가기가 힘들더라고요.
- 그럼 다들 디시 한 번씩 들어오셨겠네요.
윤두병 : 그럼요. 디시는 옛날부터 계속 재밌었잖아요. 많이 갔죠.
- 정용욱 씨는 락갤에 들어오셨다고 했는데, 혹시 기억에 남는 글 있나요?
정용욱 :최근이었는데,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 드림 시어터) 아들이 요즘에 드럼 치거든요. 걔 드럼 치는 동영상을 보고 누가 리플을 달았는데 '태어나보니 아빠가 포트노이' 정말 웃겼어요. 하하하.
- 락갤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어요. (디시이용자 'leau')
윤두병 : 그게 무슨 말인가요?
- 락 갤러리에 들어와 달라는 거죠.
윤두병 : 아! 우리가 자주 들어가 달라는 건가요? 물론이죠. 앞으로 자주 들어갈게요.
- 이번에 새 앨범을 발표하셨는데, 무려 7년이 걸렸어요. 이렇게 늦게 나온 이유를 좀 알려주세요.
안흥찬 : 우선은 저희가 피해 갈 수 없었던 회사와의 계약 문제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다 정리됐고, 다시 정비하고 나오느라 늦은 거죠. 그 회사와의 계약 문제, 법적인 문제 이걸 해결하는데 한 4년 정도 걸렸어요.
- 원래 2004년 말에 낼 예정이었죠?
안흥찬 : 그렇죠. 2003년에 저희가 앨범이 나오고 2004년 말에서 2005년, 그때 내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계속 안 맞고, 안 되고, 틀어지고, 계속 빗나가고…. 이런 식으로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그러고 나서 거의 마무리되고 '다 다시 모든 걸 해야겠다' 해서 두병이가 다시 들어오고.
정용욱 : 두병이형 들어오고 2년이 걸린 거죠.
윤두병 : 그래서 7년 정도 된 느낌이 든 거죠. 회사 정리하는데 4년, 우리 같이 만나서 곡 작업하는데 2년.
- 그럼 실질적인 음악 준비는 2년이 걸렸다는 건가요?
안흥찬 : 사실은 2년도 안 걸렸어요. 그런데 저희가 시행착오도 되게 많았고, 예전에 만들어놨던 곡을 다시 한다든지, 새로 만들 거라든지… 이런 것들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죠.
- 사실 지난해부터 새 앨범 떡밥을 던지셨단 말이에요.
안흥찬 : 지난해 9월에 녹음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10월에 제 베이스 녹음까지 다 끝났죠. 그런데 제가 갑자기 배가 아팠어요.
윤두병 : 그때 베이스까지 했었나?
안흥찬 : 베이스까지 다 끝냈지. 세팅 다 하고 노래를 한 곡 정도 했어요. 그런데 너무 아픈 거예요. 병원에 갔죠.
윤두병 : 미련한 거죠. (웃음)
안흥찬 :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도 왜 왔느냐고 물어요. 떼굴떼굴 굴러서 간 게 아니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아픕니다' 했더니 '증상은 맹장인데, 지금 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라고 해요.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까 MRI를 찍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해서 찍었어요. 찍고 나서 30분 후에 의사가 지금은 자기네 병원에 병실 없으니까 나가자마자 아무 병원이나 빨리 찾아서 수술하라고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지금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요. 그래서 '이거 안 되는데… 내일모레 다시 얘기하자' 했더니 자기들이 책임을 못 지겠대요. 그래서 멤버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까' 얘기했더니 수술하라고 하더라고요. 평생 처음으로 병원에 들어가 수술하고…. 그리고 다시 제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 한 3개월이었어요.
- 맹장이 터진 거였나요?
안흥찬 : 터진 건 아니었어요.
윤두병 : 곪은 거죠.
하재용 : 염증이 생긴 거지요.
안흥찬 : 의사가 이런 얘기까지 했어요. 연세가 50이 넘으신 분인데 의사생활 이십몇 년 하면서 이렇게 큰 맹장은 처음 봤대요. '아 그래요?' 그러고 말았는데, 원래 제 목소리를 찾고 다시 돌아오는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배에 힘이 안 들어가니까요. 진짜 1주일에서 2주일 정도는 웃는대도 배가 아파 웃지도 못했어요.
- 목소리가 안 돌아왔을 때 무섭진 않았나요?
윤두병 : 맹장인데요, 뭐. (웃음)
정용욱 : 맹장따위가 뭘. 하하하.
윤두병 : 목수술도 아니고. (웃음)
안흥찬 : 보컬들이 심리적인 게 있더라고요. 보컬들 사이에서 노래주머니네 뭐네 말도 안 되는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어요.
- 이번 앨범 제목이 '더 파라곤 오브 애니멀즈(The paragon of animals)'인데 뜻을 좀 알려주세요. (디시이용자 '쑤')
안흥찬 : 함축적인 의미로 따지면 근본, 기본이란 의미예요. 'The man, the paragon of animals'(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에서 따온 거예요. 모든 만물의 영장이 되고 싶은 건 없지만, 기본을 지키며, 근본을 지키며. 우리 가사 내용이 다 음악도 그렇지만 되게 시니컬하고 뭐랄까… 철학적인 것도 많고 염세주의적인 것도 되게 많거든요. 주로 심리적인 게 많아요. 좋게 말하면 갱생메탈이죠.
갱생하기 위한 그런 가사로, 1번부터 11번까지 트랙 가사의 함축적인 의미가 저 안에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앨범 안에 있는 1번 크래쉬데이(Crashday), 2번 루이네이션 이펙트(Ruination Effect) 이런 것들이 목차 정도면 얘는 책 제목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 저는 원년멤버였던 윤두병 씨도 돌아오시고 해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가 생각했어요.
안흥찬 : 그것도 있는 거죠. 초심. 우리가 맨 처음에 시작한 것. 어차피 두병이가 다시 들어오면서 옛날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옛날 생각도 났었고요. 그때의 기분?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때의 기분을 100% 되살리기는 힘들지만 아련하다면 아련한 추억과 기억들이 조금씩 나면서 '아! 그때는 이렇게 했었지' 하지만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었고, 컸고, 성장했고…. 그때 초심에 거의 곱하기
알파가 돼서 나온 거로 생각해요.
- 발매 전 팬들 반응을 보니 6집 앨범을 첫 번째 앨범과 비슷한 느낌으로 갈 거라고 많이 예상하셨더라고요.
안흥찬 : 그건 제삼자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고요. 맨 처음 크래쉬가 만들어지게 된 동기 이런 걸 봤을 때 그때 기분으로 한 거지, 돌려서 보면 그게 1집 때 기분이고. 그렇게 모두 생각을 할 수 있죠. 우리도 그걸 부정하지 않아요.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이것 보다는 '그때 기분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이런 것들이 소재가 되고 근간이 돼서 좋은 앨범을 만든다'
그게 다죠.
- 7집 반응이 분분해요. 순수한 스래쉬 메탈을 추구하는 회귀적인 앨범이란 얘기도 있고, 클린 보컬을 넣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앨범이라는 반응도 있어요. (디시이용자 'Corey Taylor')
안흥찬 : 저희 CD를 들으시면 알겠지만, 레벨미터가 딱 치고 시작해서 안 내려와요. 제가 클린 보컬을 할지언정 기타나 드럼은 꾸준히 비트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저희 음악이고요, 클린 보컬을 넣어서 대중적으로 다가가려는 의도는 '0'
정용욱 : 클린 보컬 들어갔다고 대중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좀 그렇지 않아요? 들으면 아는데. (웃음)
안흥찬 : 사람들이 질문하는 거나 글들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인, 개인의 기호가 정말 출중한 분들이 정말 많구나 해요.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다고 바로 뱉어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우리가 아무 말 안 해도 좋은 글들 써주시고. 저는 그래요. 제가 오늘 새벽 저희 홈페이지에 글을 썼는데, 그냥 엄청나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헤비메탈, 스래쉬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한 비트와 리듬을 넣은 앨범이고, 우리가 그걸 생각을 해서 만든 거지, 대중적이 되거나 이걸로 록스타가 되거나, 떼돈을 벌거나, 아니면 더 깊은 마이너로 들어가거나, 그런 생각도 없어요. 그냥 리듬, 비트, 라이브에서 연주하면서 우리도 즐기고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스래쉬 메탈, 그게 이번 앨범이에요.
- 좀 억울한 면이 많이 있으시겠어요. (웃음)
안흥찬 : 이율배반적인 걸 우리에게 만날 뱉는 거예요.
- 그건 크래쉬가 헤비메탈, 스래쉬 메탈의 대표밴드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안흥찬 : 그것도 아이러니한 게 우리가 대표 밴드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다른 밴드들이 우리만큼 열심히 안 한 건 있어요.
- 열심히 안 했다는 건?
안흥찬 : 앨범이라든지 공연이라든지요. 운도 안 따랐다고 말을 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음악으로 앨범 6장을 낸 밴드는 대한민국 역사상 크래쉬밖에 없어요. 이렇게 헤비한 장르로 다장의 앨범의 낸 밴드, 이만큼 긴 역사를 가진 밴드는요.
- 헤비한 장르가 참 살아남기 힘들어요.
윤두병 : 살아 있는 게 아니죠. 사실은. 간당간당 있는 거죠.
안흥찬 : 대표밴드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죠. 우린 그만큼 감수하고 희생하고, 하고 싶은 거, 자기 사적인 거 버리고 열심히 해서 된 거죠.
- 다시 앨범으로 돌아가죠. 앨범 재킷 공모전을 열었는데, 이번 앨범 재킷이 공모전 1위 한 거죠? 어느 분이 1등 하셨나요?
윤두병 : 이대행이라는 친구예요. 우리끼리 아이디어가 나왔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해서 아이디어를 내 공모전을 했는데, 멋있는 그림들이 많이 나왔어요. 우리 음악 스타일이나 외국의 장르들 그것과 비슷한 그림들이 많이 왔는데 유독 이 그림이 멤버들한테 딱 눈에 띈 거예요. 그래서 '약간 코믹북 스타일로 콘셉트를 잡아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었죠. 우리 생각에는 잘 나온 것 같아요.
타이틀과도 잘 맞는 것
같고요.
- 어떤 의미인가요?
안흥찬 :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양복을 입고 정장을 입고 있는 현대인의 자괴라고 할 수도 있고, 파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정용욱 : 저희가 처음 공모전을 할 때 타이틀과 어떤 의미의 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걸 어느 정도 넣어줬어요. 제일 큰 카테고리로 인간, 사람을 했는데 이 그림이 나온 거예요. 그 주제에 맞는 그림이죠.
- 크래쉬를 보면 팬들과 많은 교감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공모전도 그렇고, 네 분 모두 트위터도 하시고, 밴드 페이스북도 있고요.
윤두병 : 아까도 얘기했지만, 기존에는 회사문제라든가 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기에 제약이 많았었잖아요. 저도 교체되고. 이렇게 내부적인 갈등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팬들은 항상 크래쉬의 신보라든가 새로운 모습들을 원하는데 그런 거를 못해 줬어요. 제가 들어오고 나서 팀이 재정비되고, 6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래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런 준비를 하고 있고, 뭔가 대단한 걸 갖고 나가겠다'라는
걸 조금씩
알리기 위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고, 현재로서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나 싶어서 멤버들 다 트위터 개정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인 선택도 있겠죠. 좋아하는 것도 있고…. 트위터부터 시작해서 최근 페이스북도 만들게 됐고요. 앨범이 진행되는 과정도 싹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호응을 많이 얻고 있었죠. 외국에서도 성공적인 홍보 마케팅 사례로 SNS를 쓰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하고 있는 와중이에요. 그리고 오피셜 사이트도 멋있게 하려고 공사 중이고요. 만들게 되면 트위터와 페이스북 연동이 다 잘 되게 할 계획이에요.
- 팬들이 참 홍보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홍보 메시지를 받았어요.
윤두병 :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이 자리를 빌어서 정말 팔로워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추가 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재밌게 음악 들으시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통해서 언제든지 의견 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드릴 거예요.
- 사실 트위터가 무서운 게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코멘트가 일파만파 퍼질 수가 있어요. 그건 좀 부담이죠.
안흥찬 : 아뇨. 부담 안 느껴요.
윤두병 : 그런 부담은 없어요.
안흥찬 :저희는 뭐…. 더이상 잃어 버릴 게 없는….
- 하하하. 왜요?
안흥찬 : 저희는 그냥 음악 하는 사람들이지 사회적 지위 체면, 그런 것들 보다는…. 지금 DJ DOC 같은 분들이 악동으로 돌아다니시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 사실 우리들이 그렇게 해야 해요. 외국의 예를 들면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어떻게 보면 되게 근면성실한 뮤지션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어디 가서 실언이나 망말을 할 성격들도 아니고…. 만약 멤버들
중에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도 다 이유가 있어서 했기 때문에 그걸 또 믿고. 설사 욕을 했더라도 욕할 수도 있는 거지.
정용욱 : 일파만파 퍼져도 금방 사라져요.
- 크래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팬분들이 '신곡 미니홈피, 블로그 배경음악으로 등록했다' 이런 글을 올리더라고요. 음악신의 변화를 체감하시겠어요.
안흥찬 : 네.
- 그런데 사실 앨범 전체를 다 들어야 밴드가 이 앨범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씩 곡을 들으면 사람들이 밴드의 말을 못 듣게 돼요. 아쉽지는 않나요?
안흥찬 : 아쉽긴 하지만, 그걸 바꿀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아닌 걸 알아요.
정용욱 : 저희 노래가 일단 영어라 웬만한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 그럼 더 슬픈 거 아니에요? 메시지를 듣지 않는다면요.
안흥찬 : 메시지를 듣지 않는 건 대한민국 사람뿐이고 외국 애들은 영어니까 듣겠죠?
- 왜 영어로 썼나요? (디시이용자 'ㅈㄷㄹ')
안흥찬 : 저희가 맨 처음 밴드 할 때 저희 음악 자체가 우리 고유의 음악이 아니라 서양 음악이고, 그렇다면 '진짜 큰 포부를 가지고 하자' '외국에 나가서 외국애들하고 맞짱도 떠보고 공연도 해보고 그렇게 음악을 하자'라는 의미로 시작했죠. 첫 번째 앨범도 대부분 노래가 다 영어였고요. 한국어 버전이 나오게 된 건 그때 당시만 해도 사전심의제도라는 게 있었어요. 또 로컬밴드, 로컬 국적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나 가수가 외국어 전곡으로 앨범을 못 낼 때예요.
- 으하하. 진짜요?
안흥찬 : 안 된대요. 건전가요(사회현실을 밝고 계몽적으로 그린 노래, 1970년대부터 대중가요 음반에 건전가요를 싣는 것을 의무화했다가 1990년대 들어 점차 사라졌다)가 들어가야 한대요.
- 1990년대에 앨범을 냈잖아요. 그때도 건전가요를 내야 했나요?
정용욱 : 그때도 있었어요.
안흥찬 : 1996년인가 그때 사전심의제 폐지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저희 때만 해도 심의가 있었죠.
- 놀랍네요. 건전가요는 1980년대 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흥찬 : 우리 오래 했어요. (웃음)
- 결성이 91년이죠?
안흥찬 : 네.
- 우와, 내년이 20주년이네요. 살짝 우스갯소리로, 지겹진 않으신가요? (웃음)
안흥찬 : 지겨울 때도 있고….
윤두병 : 저는 잠깐 나갔다 와서 괜찮아요. 재용이 형이 오래 있었죠.
- 원년멤버 분들(안흥찬, 윤두병, 정용욱)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정용욱 : 학원에서 만났어요. 송설이란 학원에서요. 되게 유명한 곳이에요. 뮤지션들이 공연하러 와서 공연 하고 뒤에서 레슨도 하고. 그러다가 셋이 만났죠.
윤두병 : 송설라이브클럽이라고, 거의 클럽이 전무했지? 하나 딱 있었을 때. 백두산이니 시나위, 블랙신드롬도 있었죠.
- 그때도 스래쉬 메탈을 하셨나요?
윤두병 : 그때는 거의 수강생 분위기였죠.
정용욱 : 스래쉬 메탈 하자고 뭉쳤죠.
- 하재용 씨는 같은 학원이신가요?
하재용 : 전 다른 학원이요. 뮤직아카데미라고요. 하하하.
- 그나저나 하재용 씨 정말 말이 없으시네요.
하재용 : 제가 평소에도 조용한 편이에요. 이런 자리에 오면 더 안 하죠. (웃음)
- 이번 앨범 전 곡 가사가 영어라 이 앨범으로 드디어 해외진출을 하는 건 아니냐고 말씀하세요.
정용욱 : 그래서 해외진출을 하는 건 아니죠. 영어앨범으로 이때까지 계속했거든요.
- 아까도 말씀하셨듯, 예전에는 한국어 가사가 한 곡 정도는 들어가 있었잖아요.
정용욱 : 심의가 없어진 후에도 대부분의 가사가 영어였죠. 그랬는데, 외국진출을 못 한 건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못하게 된 거죠.
안흥찬 : 음반회사라든지 관계자들이 우리 마음만큼은 아니었죠.
- 그런데 팬들도 그렇고, 평단도 그렇고 다들 크래쉬가 외국에 나가면 당장 성공할 것이라고 평가했어요. 그래서 자신감은 항상 있었을 텐데요.
윤두병 : 예전에는 군대문제도 컸죠.
정용욱 : 저희가 운이 좋은 것도 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운이 따른 것도 있었고…. 그거와 반대로 운이 좀 안 따랐던 것도 있어요. 외국진출 같은 경우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운이 안 따른 게 있었고,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제점들이 저희가 딱 나가면 확 달라붙었어요.
- 그래도 이번 앨범 곡을 아이튠으로 판매한다면서요?
윤두병 : 등록됐어요.
- 이걸 해외진출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은 거라고 보면 되나요?
안흥찬 : 시대적 상황에 저희도 부합하는 능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 중 하나죠. 그전에는 해외에 우리 앨범을 내려면 라이센스 계약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게 되게 복잡해요. 세금 문제도 있고, 앨범을 여기서 찍어서 보내느냐 아이면 거기서 받아 찍느냐도 있고. 유통하거나 광고를 했을 때 믿을 수가 없거든요.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이나 이런
데는 아예 동양인들이 하는 헤비메탈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그런 게 90년대였었죠.
지금 시대는 아이튠스라는, 아주 좋은 공식이란 폼이 생긴 거죠. 거기에 크래쉬라는 숫자가 들어간 것이고. 어떻게 보면 미국에 있는 정말 잘나가는 헤비메탈 밴드와 우리가 같은 메탈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다는 자체가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거죠. 전에는 그런 걸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정용욱 : 저희가 아무리 해외로 진출하는 루트를 다 꿰고 있고, 어떻게 일을 하면 되는지 다 알고 있어봤자 저희가 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일할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오래 못 가요.
안흥찬 : 살면서 물리적인 불가능이라는 걸 참 많이 겪었어요.
- 락갤 이용자분 중에는 밴드 하시는 분도 계신데, 한 분이 자기도 빡센 음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시면서 스래쉬같은 메탈음악은 한글 가사가 중요한지 영어가사가 중요한지 여쭤보시더라고요. (디시이용자 '얼음계곡')
안흥찬 : 그건 개인의 컨디션? 신체적인 조건에 따라 다를 거예요. 그런데 한글 자체가 숨 소모가 많은 단어예요. 밭침도 많고, 딱딱 끊기고 멈추는 데도 되게 많고. 영어처럼 스무스하게 가는 발음이 아니라서 체력적인 소모는 한글이 더 많아요. 또, 영어로 하면 일단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지만, 한국어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만 알아듣는 거죠.
- 그럼 타이틀곡 '크래쉬데이' 이야기를 잠깐 하면요, 저는 제목이 심상치 않더라고요.
안흥찬 : 왜요?
- 음악신을 향해 '우리가 왔으니까 각오해라' 이런 느낌?
안흥찬 : 그런 의미도 있고요. 그 곡을 만들고, 리프 만들고 진행하고 할 때 구성이나 이런 것들도 되게 많이 했지만, 가사도 가사지만 곡 타이틀에도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었어요. '크래쉬데이' 같은 경우는 진짜 '우리가 왔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일어나서 같이 한 번 깨부수자' 이런 의미도 있어요.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고요.
- 뭘 깨부수겠다는 건가요?
안흥찬 : 고정적인 틀에 만날 갇혀서 사는 게 대부분의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항상 그 틀을 비켜나가면서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음악을 들었을 때 공감을 하는 사람은 우리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틀 안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죠.
- 간만에 대작이 나왔다고 하는데, 오프라인에서 사기가 너무 힘들어요. 저도 좀 고생을 했어요. 매장 진열대에 꽂혀 있지가 않더라고요.
정용욱 :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가 힘들지 않나요?
- 대형 서점에서 운영하는 음반매장에서 샀는데 제가 진열장에서 찾다가 포기하고, 직원에게 문의해서 음반을 샀죠. 이게 메탈 차원의 문제인지, 가요계 자체의 문제일까요?
안흥찬 : 가요계 자체의 문제죠.
정용욱 : 일 진행상의 문제죠.
- 하하하.
안흥찬 : 아니야.
정용욱 : 다른 매장에 가서 내가 앞에다 꽂아달라고 해주면 해주는데.
안흥찬 : 너 가면 바뀌어 있어.
정용욱 : 아니라니까.
- 사족일 수도 있는데, 음반매장 가서 기분이 좀 그랬던 게 가요는 하나로 뭉쳐져 판매하고 있는데 외국곡은 팝, 락, 재즈 이런 식으로 구분을 잘해 진열했더라고요.
안흥찬 :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공중파 라디오 방송 쪽에 계신 분인데, 우리 음반이 가요에 안 꽂혀 있대요.
- 그럼 어디요?
안흥찬 : 제3세계 음반에 꽂혀 있대요
- 네? 왜요?
안흥찬 : 이게 우리나라 앨범인데 영어가 많이 들어있고, 팝에다 꽂으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고, 그래서 제3세계 카테고리에 꽂혀 있더라고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 메탈이란 장르를 주류 신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네요.
안흥찬 : 그렇죠. 그건 얘기하면 되게 길어져요. 저하고 밤새셔야 해요. 하하하.
- 이번 앨범을 1집 자체와 비교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1집부터 5집까지의 흐름에서 6집을 분석하지 않고요.
윤두병 :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항상 곡을 만들 때 누구를 위해서라던가, '팬들을 위해서 어떤 포맷으로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한 적은 개인적으로 한 번도 없어요. 그 당시, 스무 살 우리가 만났을 때 곡 작업한 건 그 당시 우리 느낌이었고, 당시 우리의 전투력, 우리의 연주력, 우리의 사상과 여러 가지 기분들이 종합적으로 우리의 목표물을 만들어 낸 거죠. 그건 거예요. 6집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우리 컨디션,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느낌을 삶에 대한 반영으로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다인데, 듣는 사람들은 1집과 6집이 연결되는 거겠죠.
1집을 의도적으로 의식한다거나 6집을 조금 더 새롭게 뭘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어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1집과 6집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건 그분들의 문제고, 저는 그 당시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6집에서도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으면 해요.
정용욱 : 1집과 비교하는 가장 큰 이유가 두병이형이 다시 들어온 일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원년멤버가 뭉쳤다는 게 이슈가 됐었거든요. 세 명이 계속 같이 있다가 한 명이 빠진 상황에서 3집, 4집, 5집이 나왔었잖아요. 그래서 그걸 좀 배제하고 두병이형이 들어온 시점부터 다시 생각하고 음악을 들으시니까 1집과 비교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윤두병 : 1집 나온 게 17년인데 상식적으로 연주력과 곡을 만드는 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 대중은 항상 밴드가 변하길 바라는데, 또 변하면 뭐라고 해요. 아이러니하죠?
안흥찬 : 못됐다니까요. (웃음)
정용욱 : 4집때 욕 엄청 먹었다니까요.
- 아! 4집에서 인더스트리얼 장르를 접목했었죠?
정용욱 : 욕도 먹었고, 좋다는 사람도 있었죠.
안흥찬 : 그렇게 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기도 했고, 외국에서도 많이 반응이 있긴 있었어요.
정용욱 : 저희는 그래서 절대 그런 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해요.
- 그래도 휘둘리게 되지 않을까요? 신경도 쓰이고요.
안흥찬 : 이제는 안 그래요.
정용욱 : 처음에는 그랬어요. 어릴 때는 막 'XXXX'라고 욕했었는데, 지금은 떠들지 말든지. (웃음)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음악 못하니까요.
- 개인적으로 1집을 듣고 6집을 곧바로 들었는데, 6집이 세지긴 했지만 반면 되게 부드러워 진 것 같기도 해요.
정용욱 : 기승전결이 있죠.
- 처음에 막 달리다가도 중간에 멜로디가 강조되고, 그리고 또 달리고. 강약조절을 일부러 한 건가 생각도 들었어요.
안흥찬 : 일부러라기 보다는 그런 느낌으로 간 거죠. 다른 파트들도 그런 느낌에 부합하는 편곡을 통해서 같은 뇌파로 가려고 노력했죠. 저희도요.
- 앨범을 안흥찬 씨 혼자 다 작사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안흥찬 :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정용욱 : 늘 그냥 우리는 맡겨요.
윤두병 : 작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다 보니까 리프 메이킹은 기타리스트가 하게 되고, 그걸 많이 연습하면서 리듬의 디테일한 거는 베이스와 드럼이 같이하고. 솔로처럼 또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부분도 우리가 하니까 '작사는 (안흥찬) 형님이 하세요' 이렇게 된 거죠.
- 베이스 치면서 보컬 잘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디시이용자 '취객민우(2)' '이유')
안흥찬 : 무조건 연습 많이 해야 해요.
- 사실 어렵잖아요.
안흥찬 : 어려운 게 아니라 몸에 안 배서 그래요. 베이스를 치면서 리듬을 맞추면서 거기에 노래를 또 해야 하는, 두 가지를 해야 하는 것에. 두 가지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힘이 드는 건 있는데, 노래 가사를 일단 다 외워야죠. 입에 달고요. 사람들 밥 먹으면서 TV 보고, 하면서 다른 거 하고 그거와 똑같아요.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가면서 노래하면 돼요. 연습을 많이 하면 그 안에서 여유가 생겨요.
다른
건 없어요.
- 얼마 전에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크래이지 포 크래쉬(Crazy For Crash)'란 무대를 기획해 후배 밴드들과 같이 공연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안흥찬 : 그게 2000년부터 한 거예요. 몇 번 했었어요. 2~3년마다 한 번씩 한 건데, 우리 밴드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쉽 하에 같이 연합공연을 하는 거죠. 2000년대 초에는 록페스티벌도 없었고, 밴드들끼리 공연하는 것도 어떤 이익에 의해서 모이는, 개런티 얼마 주고 그러는 기획의 공연이었어요. 진짜 형, 동생 이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공연이 없었죠. '우리 한 번 그런 거 해보자'
하는 취지하에 시작을 한 거죠. 그게 해가 가면서 조금씩 규모를 키워볼까 했죠. 진짜 일본에서 밴드를 데리고 와서 한 적도 있었고요. 감히 말을 하면 홍대에서 클럽 내지는 홍대에 있는 밴드 멤버들이 연합 공연을 한다, 저희가 이런 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 하지만, 메탈을 하는 밴드 라인업이 부족해요.
안흥찬 : 홍대에서 밴드들끼리 공연하는 거는 코어다, 하면 코어 밴드가 다 하잖아요. 우리는 그게 아니에요. 우리와 장르에 상관없이 친한 밴드들, 저희는 그렇게 가요. 그래서 이번에 지산에서도 그런 취지에서 다양한 장르로 했죠.
- 그럼 크래쉬가 계속 그 공연을 기획한 건가요?
안흥찬 : 다 같이했죠.
- 혹시 메탈공연기획 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디시이용자 'ㄺ')
안흥찬 : 그건 저희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많이 해요. 만약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든지 이런 걸 나눠줄 수 있죠.
- 청하는 밴드가 많이 있나요?
안흥찬 : 부지런한 똥개가 뜨뜻한 똥 집어 먹는 거예요. 와서 '도와주세요' 그러면 도와주는데 멀리서 '도와주겠어? 안 할 거야' 그러고 있으면 모르는 거예요.
- 대선배라서 무서워 할 수도 있잖아요.
안흥찬 : 무서워하면 한도 끝도 없죠. 그들이 우리를 어려워하면 우리도 어려워요. 누가 누군지 모르는데 선뜻 다가가기는 어렵거든요. 그런데 진짜 용감한 동생이 '형~ 어쩌고저쩌고' 말하면 '넌 몇 살이냐?' 묻고 '스물두 살입니다' 답하면 '너 뭐하는데? 용감하다. 전화번호
몇 번이야?' 그러죠.
- 지금 우리나라 유일의 록 음악 전문 프로그램 '타임 투 락'을 진행하시는데, 혹시 사명감이 있으신가요?
안흥찬 : 사명감? 사명감이라기보다는…. '무조건 해야 돼' 이런 게 아니라 사명감은 사실 없어요. '이게 무조건 있어야 돼' '대기업의 마인드에서 무조건 있어야 해' 이게 아니라 좋은 밴드들이 많이 나와서 (방송국) 위쪽에서 하자는 얘기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 보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얘네 괜찮고 얘네 괜찮다' 이렇게 해서 '이 밴드들 소개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올려요.
- 그게 2005년에 종영이 됐다가 지난해 다시 부활했더라고요. 그동안 방송국을 설득하신 건가요?
안흥찬 : 종종 토로했죠. '상징적인 의미가 됐든 뭐가 됐든 록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요. 그쪽에서도 기회를 엿봤었고, 타이밍이 맞았어요. 대부분 다시 방송이 나오면 전사회자는 없는데 저는 운이 좋아서 계속 간 거죠.
- 공연할 때 주로 반말을 사용하시는데 이유는 뭔가요? (디시이용자 '돌아온나롱이')
안흥찬 : 쭉은 아니었어요. (웃음)
정용욱 : 존댓말 하면 더 웃기지 않아요?
안흥찬 : '안녕하십니까' 그런 것 보다는 좀 더 친숙하게 하고 싶었어요. '노세요' '손들어 주세요' '돌아주세요' 이거 보다는 '놀자, 친구들아'. 이 순간에 이 공간에서만큼은 너와 우리는 친구다 이 마인드죠.
- 가끔 무대에서 관객들이 뛰는 거 보면 무섭지 않으세요?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나 하고요.
안흥찬 : 기특하던데요. 다칠 수도 있는 거죠.
윤두병 : 무대에서 봤을 때 잘 노는 모습을 보면 연주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신이 나기 때문에 연주가 더 좋아져요. 관객이 가만히 있고 그러면 그만큼 성의 없는 공연이 돼요. 의도하지 않게요. 흥이 안 나니까요. 그러니까 신이 나게 노셔야 돼요.
- 우리나라 관객들이 그런 면에서는 잘 놀죠?
윤두병 : 네. 요즘에 잘 노시더라고요.
- 예전에도 잘 놀지 않았나요?
윤두병 : 예전에는 뭐랄까… 많이 나눠졌었어요. 앞에 좀 놀고 뒤에는 안 놀았는데 요즘은 전반적으로 잘 노시는 것 같아요.
정용욱 : 예전 '라우드 파크 페스티벌'(매년 10월 일본에서 열리는 메탈페스티벌)에 가서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놀다 왔어요. 거기 노는 걸 보니까 한참 멀었더라고요. 그래도 요즘에는 그래도 좀 많이 노시더라고요.
-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셨는데, 한국과 외국 공연문화의 차이점은 뭔가요?
정용욱 : 일단 관객들은 뒤로 놓고, 공연 진행이나 저희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환경 같은 건 한국과 많이 차이가 나더라고요. 하다못해 시간 지키는 것도요. 라우드 파크에 공연장이 세 개 있었는데, 공연장보다 큰 전자시계가 걸려있어서 전단에 나와 있는 시간과 밴드들 나오는 시간이 딱 맞아요. 환경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윤두병 : 일하시는 분들 보니까 자부심이 강해요. 우리나라에서 본다면 잡스러운 일 하는 정도의 친구들도 프로의식이 있고요. 사이타마(라우드 파크가 열리는 곳)에서 할 때도 스태프들이 양쪽에 서 있고는 뮤지션들에게 그래요. 문제 있으면 손만 들라고요. 무대에서 문제가 있으면 우왕좌왕 안 하고 손만 들면 양쪽에서 스태프들이 튀어나와 뭐가 문제 있는지 바로 체크하고. 테스터기까지 가지고와서 일할 정도니까요.
그런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우리나라도 많이 전문화돼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많이 얘기해주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냉정할 수 있지만, 일본 사람들이 시간 칼같이 지키면서 프로패셔널하게 일을 진행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는 그런게 있어요.
정용욱 : 스태프들이 1분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뭔가를 다 찾아서 해요.
- 우리나라가 록 저변에 비해 록페스티벌이 많은 편이라고 저는 봐요.
안흥찬 : 그렇죠.
- 이걸 록신에 희망적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상업화 싸움이라고 봐야 할까요?
안흥찬 : 그나마 다행인 거죠. DJ페스티벌이나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 같은 아이돌 나오고 하는 공연에 비해서 그나마 아직은 상업적으론 록페스티벌이 관객을 집결한다든지, 그거에 부응해 주류든 뭐가 됐든 사람들이 돈을 쓰는 문화가 가장 잘 돼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DJ페스티벌에 (돈을 쓰는 문화가) 정착이 됐다면 록페스티벌은 더 작았을 거예요.
정용욱 :록페스티발에 아이돌이 안 나오니까 그게 제일 다행이죠.
윤두병 : 개인적인 바람은 록페스티벌이면 국내든 해외든 록 스피릿이 있는 밴드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MR 틀고, 무대에 댄서를 올린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린스테이지에서 우리가 하는 것도 좋지만, 좀 국내 다른 밴드들에도 기회가 좀 많았으면 해요. 지금 보니까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이 있더라고요.
- 그 공연은 조금 소프트한 느낌이죠.
윤두병 : 그러니까요. 어떻게 보면 지산에 나왔던 밴드들이 그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고 생각해요. 세분화시켜서 했으면 좋겠는데, 금전적인 게 문제죠. 이런 식으로 DJ페스티벌, GMT 같은 게 나오는 것 환영해요. 대신 록페스티벌에는 록적인 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 그런 면에 있어서 이건 록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잘 살려낸 공연이 국내에서 있었나요?
안흥찬 : 없어요.
- 한 번도 없었나요?
윤두병 : 펜타포트 초창기? 괜찮지 않았나?
정용욱 : 그렇죠.
안흥찬 : 1999년도?
정용욱 : 그때가 참 라인업이 좋았죠.
- 비 와서 취소됐잖아요. 뭐 사람들은 대부분 망했다고 보고요.
정용욱 : 그래서 문제죠.
안흥찬 : 펜타포트가 아니라 트라이포트지.
정용욱 : 라인업이 그렇게 좋으면 망해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죠.
윤두병 :그러면서 점점 뭔가 세분화되기도 했지만 (록페스티벌이) 더 소프트해지고 이렇게 된 것 같아.
정용욱 : 그리고 아주 큰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타임투록 페스티벌'이 국내 밴드들, 록하는 밴드들은 다 나오고 좋죠.
윤두병 : 괜찮지. 아예 그럴 바에는 세분화되는게 좋은데, 윗사람들은 돈이 안 되니까….
- 그런데 그곳에서 주로 돈 쓰는 사람들은 메탈 팬들 같은데요? (웃음)
정용욱 : 메탈 팬들 돈 잘 안 써요.
안흥찬 : 그게 문제예요. 그 사람들이 많이 쓰고 그러면 더 많은 밴드가 올텐데 그 사람들이 CD며, 티켓이며 많이 안 사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순진한 애들이 다 티켓사고, 그런 밴드들이 성공하는 거죠.
- 어떻게 보면 메탈이야 말로 CD 판매가 가장 중요한 장르인데, CD 시장의 변화가 안타깝겠어요.
정용욱 : 안타깝긴 한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안흥찬 : 아까 이야기했지만, 물리적인 불가능. 이것도 물리적인 불가능 중 하나예요.
정용욱 : 저희가 아무리 안타까워 해봤자 어쩔 수 없어요.
- 한 분이 한국시장에서 음악 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질문하셨어요. (디시이용자 '악밴')
안흥찬 : 일장일단이 있죠. 힘들지만 여기서 하기 때문에 이만큼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만약 더 큰 곳으로 나가서 눈에 띄지도 않을 밴드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여기서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앞으로 지나온 것에 대해서 살을 덧붙이고 미사여구를 넣어서 막 얘기하는 것 보다는 지금과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이 남는 관객이 있나요? (디시이용자 '열린책들')
안흥찬 : 기억에 남는 관객이요? 음….
윤두병 : 옛날 헬멧 브라더들, 다이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 헬멧 쓰고 다이빙 했나요?
윤두병 : 예전 초창기 때 바이크 헬멧 쓰고 점프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정용욱 : 지금은 관객이 아니라 뮤지션인데 피아 심지. 걔가 약간 돌아이 관객이었어요. 만날 공연하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걸어 올라와서 무대에 누워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눕고 내려가요. 관객석에서 놀다가 걸어올라오고. 처음에는 누군 줄 몰랐어요. '뭐야 이 돌아이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심지.
- 되게 놀라셨겠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팬이 피아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니. 하하하.
정용욱 : 그 뒤에 자기가 아는 척하고, 우리와 얼굴도 트고 그랬는데 그러다가 피아를 하게 된 거죠.
안흥찬 : 피아 1집을 제가 프로듀싱을 했거든요. 녹음 시작할 때는 키보드가 없었어요. 녹음하고 있는데 키보드 할 사람이 있대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했는데 누가 와요. 걔가 걔(심지)더라고요. (웃음) 자기 능력 잘 살려서 밴드 안에서도 역할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애정이 가는 후배 밴드들이 있나요? (디시이용자 '리암')
안흥찬 : 피아도 그렇고, 요즘에는 아폴로 18. 아이들이 진짜 거지같이 생겼는데 (웃음) 착하고 음악도 되게 열심히 하려고 하고요. '일본이나 미국에, 돈이나 이런 걸 떠나서 그냥 가서 해보고 싶어요' 그런 마인드도 되게 많고, 이미 가서 많이 했고. 내년에도 가서 또 할 예정이고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정용욱 : 최근에 메소드(Method)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친하지는 않았거든요. 이번에 어떻게 친해졌는데 멤버들이 다 저와 동갑이에요. 저와 동갑 찾기가 되게 힘들거든요. 피아 멤버들과 친해진 것도 두 명 빼고는 헐랭이랑 (옥)요한이랑 기범이랑 저랑 동갑이에요.
- 그 말씀은 사람들이 점점 갈수록 메탈을 안 한 다는 얘기네요.
안흥찬 : 안 하죠.
정용욱 : 하여튼 제가 음악 시작하고부터 항상 막내였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어요. 젤 오래된 게 그나마 피아 멤버들과 시나위 드럼치던 이동엽 그 친구. 그렇게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메소드 멤버들이랑 친해져서 알고 보니 친구더라고요.
- 좀 슬프네요. 계속 막내였다는 그 사실이.
정용욱 : 중간에 잠깐 막내 아니었죠. 오영상이라는 기타리스트. 그 친구 들어왔을 때 잠깐 빼고는 막내였죠.
- 제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해가 조금 안 갔던게, 크래쉬를 인디밴드라고 지칭하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안흥찬 : 인디밴드라고 하든 메이저 밴드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개인이 우리를 인디밴드라고 얘기하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고, 크래쉬를 인디밴드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도 없어요. 아주 간단하게 TV에 나오면 메이저 밴드고, TV에 안 나오면 언더그라운드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런데 그건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의 아주 말도 안 되는 기준에 맞춘 거지요. 우리 밴드를 인디밴드라고
하고, 우리보고 메이저 밴드라고 하고 이런거 상관 없고 신경 안 써요.
- 그럼 좀 가벼운 걸로, 멤버들이 한 문신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디시이용자 'Brooke')
윤두병 : 타투는 다 있는데, 이건 개인의 취향이에요. 의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거고, 의미 없이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죠. 저는 없어요.
정용욱 : 저는 의미가 다 있어요. 스파이더맨도 두병이 형이 해 준 건데, 제가 스파이더맨을 되게 좋아해요. 거미를 좋아해요. 그리고 '바닐라스카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요.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문구라서요.
안흥찬 : 정작 네가 보기엔 힘들잖아.
정용욱 : 다 아는데 뭘.
- 다른 사람 보여주려고 한 거 아닌가요?
정용욱 : 그런 건 아니고요, 문구가 제 몸에 들어왔다는 의미죠.
- 존경하는 아티스트를 알려주시겠어요? (디시이용자 '토룡이' '좀머')
정용욱 : 데이브 롬바르도(슬레이어)요. 드럼치는 사람이면 다 좋아하죠.
윤두병 : 저는 밴드로는 슬레이어(Slayer) 제일 좋아하고, 기타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랜디 로즈, 다임백 데럴(판테라). 돌아가신 그분들 좋아하죠.
하재용 : 저도 좀 비슷해요. 랜디 로즈 좋아하고, 다임 백 좋아하고. 특이하긴 하지만 보컬과 기타를 같이 하는 제임스 헷필드(메탈리카)요.
안흥찬 : 저는 슬레이어 좋아하고, 베이스치고 노래 부르는 사람 중에는 모터 헤드의 레미. 스팅도 좋아한다고 말을 할까 말까?
- 하하하. 왜요?
안흥찬 : 감성이 좋긴 한데, 저하고 맞지는 않아요. 감성이 좋은 건 인정하는데.
정용욱 : 본조비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본조비(Bon Jovi) , 디오(Dio).
윤두병 : 하나하나 얘기하면 다 좋지.
- 메탈 입문자들, 메탈을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음반이 있나요?
윤두병 : 슬레이어의 '헬 어웨이츠(Hell Awaits)' 음반 추천합니다.
정용욱 : 자켓 보고 '어머!' 이러고 안 들을걸?
윤두병 : 그래도 추천!
-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메탈을 접할 기회가 없어요.
안흥찬 : 안 틀어준다니까요.
윤두병 : 메탈 같은 경우는 찾아서 들어야 해요.
- 댄스 음악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닌데, 몇 년 동안 텔레비전에서 댄스음악만 나오니까 힘들더라고요.
안흥찬 : 우리나라 음악 들으시는 분들도 바뀌어야 될 게 일본이나 미국 이 친구들은 자기들이 (음악을) 찾아다녀요. 혼자 찾아가고. 화장실 갈 때도 같이 가는게 우리나라 사람들이에요. 혼자서 다니고 이래 버릇해야 하는데 그냥 TV에서 나오고 라디오에서 나오고 길가다 나오고 그것만 듣고 '아, 이게 유행이구나' 하고 벨소리 등록하고. 누가 옆에서 뭐 한다고 하면 '그거
뭐야?' 그러고 또 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아끼는 거에 대해 자기 스스로 투자하고 지키고 노력할 줄 알야야 하는데….
정용욱 : 메탈리카(Metallica) 3집이요.
- 하하하. 갑자기 뜬금없이?
정용욱 : 자꾸 다른 얘기 하잖아요. (웃음) 메탈리카 3집이요.
윤두병 : 아, 추천?
정용욱 : 마스터 오브 퍼펫(Master Of Puppets).
안흥찬 : 그거 좋다.
정용욱 : 반드시 들어야 해요.
- 그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 음악신이 획일화 된 건 대중의 잘못이 크다는 이야기네요.
안흥찬 : 그렇죠. 그렇게 길이 들어버린 것이죠.
- 세상 살기 빡빡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용욱 : 서로 잘못이 있어요. 음악하는 사람도 잘못 많고 듣는 사람도 잘못 많고. 음악 하는 사람들도 록하네, 헤비메탈하네 시작했다가 조금 인기가 생기면 바뀌고. 되게 많아요.
- 그러면 록 선배들의 예능 출연을 좋게 보지는 않겠네요.
윤두병 : 저는 안 좋게 봐요.
정용욱 : 저도요.
윤두병 :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정용욱 : 안 돼 보여요.
윤두병 : 모르겠어요. 그분 나름대로의 사상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메탈하시는 분들이 방송에 많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메탈을 많이 알렸으면 좋겠어요.
윤두병 : 음악으로 알려야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정용욱 : 그게 활성화가 돼서 흥찬이형 나오라고 해 흥찬이형이 나와 있는 걸 본다는 걸 상상하면 어우~ 오글오글.
윤두병 : 네가 만약 카메라 들이댔는데 재밌다면 나는 괜찮다는 거지. 팀 색깔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의도에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 메탈을 하면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나요? (디시이용자 '구유즈')
윤두병 : 일단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아까도 얘기했지만, 관중이 미쳐서 날뛸 때 연주가 정말 잘 돼요. 진짜 좋은 연주를 볼 수 있고, 관객들 환호 듣고…. 무대에서, 항상 공연하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많이 느끼죠
정용욱 : 저도 무대 위에서 그런 것도 있고, 이번에 좀 느낀 게 제가 마스터링 다 된 결과물을 일본에서 들었어요. 제가 일본에 갈 일이 있어서 갔는데 그 사이에 마스터링 결과물이 나왔어요. 그걸 이메일로 받아 이어폰을 꽂고 듣는데 진짜 '우와~ 이거 어떡해' 이랬다니까요. 그런 것도 있고요, 이런 걸 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한다고 생각하면 배가 되죠.
안흥찬 : 저도 공연할 때 기타 앰프나 베이스 앰프나 그런 데서 나오는 큰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큰 공간이든 작은 공간이든 거기서 살이 떨릴 정도의 큰 소리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습할 때도 그렇지만, 연습할 때는 좁은 공간에서 해 조금 다른데, 공연할 때는 내 맘대로 노래하면서 같이 맞춰서 연주하고요.
하재용 :공연 때가 가장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것 보다는요. 우리 음악을 듣고 관객이 좋아한다는 생각,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미치는구나' 그런 생각 들면 저절로 흥이 나죠.
- 마지막으로 메탈음악의 전망이 어떨까요? (디시이용자 '바퀴순')
윤두병 : 우리나라에서요?
안흥찬 : 깝깝하죠. 우리가 맨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그 깝깝한 걸 알고 시작한 거고, 시작할 때도 좋아지겠지 생각을 했지만 정말 엄청나게 개선될 거라는 건 생각도 안 했어요.
정용욱 : 버티기예요. 얼마나 버티느냐.
안흥찬 : 그냥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좋아서 하는 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더 좋겠죠. 하지만, 결과가 안 좋게 된다고 해서 우리가 좌절하고 포기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음악이 좋아서 모인 집단이에요.
- 네. 알겠습니다. 혹시 팬들에게 뭔가 알리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윤두병 : 저희 앨범 초판 앞에 '크래쉬'라는 문구가 뒤집혀 찍혔어요. 'CRASH'가 되어야 하는데 'HSARC'가 되었죠. 지금은 제대로 나와요. 의도하지 않게 초판이 레어아이템이 됐어요. 어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앨범을 펼쳐서 거울에 보면 똑바로 보인대요.
안흥찬,정용욱,하재용 : 우와~.
윤두병 : 완전 레어가 됐어요. 소량이 지금 풀렸는데, 초판 그냥 가지고 계시고, 제대로 된 거 사세요. 하하하.
- 긴 시간 인터뷰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이용자분들께 동영상 인사말 남겨주세요.
제대로 묘한 기분이었다. 무대와 청중을 장악하던 크래쉬를 무대 아래에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올려다보던 몇 년 전 내 모습을 기억해내니 이렇게 네 사람과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인터뷰 후 나도 모르게 "우와, 진짜 신기해요"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고, 이에 보컬 안흥찬은 "우리도 사람이에요. 하하하"라는 말로 답해줬다.
'메탈이란 단어가 있었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한국 메탈신. 이 가운데 탄생한, 스래쉬 메탈 본래의 장점을 극대화한 크래쉬의 신보는 천편일률적인 가요계에 지친 음악팬들에게 오아시스같은 존재다. "연주하는 자신들도 즐기고, 듣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라는 안흥찬의 말처럼, 음지에서 때를 기다리던 메탈 팬들은 이제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펴며 한바탕
신나게 놀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그들에게 매일매일이 'Crashda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