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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밑돌 같은 사람들

운영자 2017.05.10 11:51:34
조회 156 추천 0 댓글 0
피라미드의 밑돌 같은 사람들

  

여수 앞바다에 떠있는 섬 산비탈에는 예술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80대말의 한 농부가 젊은 시절부터 산비탈을 깍고 진흙을 다져 수십 겹의 계단식 논을 창조해 냈다. 농부는 동그란 자연의 곡선을 깨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찰랑거리는 물에 햇살이 비치는 그 다랑이 논의 둥근 기하학적 모양은 미술관에 가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추상이었다. 농부는 빚을 내서 그 산비탈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의 밥상을 떠받치기 위해 등뼈가 비틀리도록 일을 했다. 덕분에 자식들은 섬에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농부는 청춘을 바쳐 혼자 만들어 온 그 논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이제는 소 대신 혼자 경운기를 몰고 논을 갈면서 이놈도 기름한번 먹으면 하루 종일 군소리 없이 일을 잘한다고 투박한 어조로 말하면서 골 깊은 주름을 웃음으로 펴지게 한다. 혼자 일하는 아버지를 도와 주말이면 아들이 와서 논에 들어간다. 아들은 수입이 신통치 않은 벼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그러나 팔십평생 한눈팔지 않고 다랑이 논 만들기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에게 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동그란 계단식 논들은 아버지의 일생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물에 들어가 논을 갈아주었는데도 아버지는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다시 장화를 신고 들어가 삽질을 한다. 물아래의 논바닥이 평평해야 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 웅덩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은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아버지가 고집을 피운다고 불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산비탈에 홀로 서 있는 농가로 돌아와 곤한 몸을 눕힌다. 부자는 잠시 후 잠이 든다. 자는 모습이 닮았다. 한쪽 다리를 올리고 오른팔을 이마에 댄 채 부자는 잠이 들었다. 노인이 한평생 만들어 쌓아올린 부드러운 둥근 타원형으로 겹쳐 올라간 논을 보면서 그 노인은 그가 창조한 논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인 자기의 일이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미녀 탈랜트 김영애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송을 혼자 본 적이 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나이였다. 젊은날 마치 초여름 싱싱한 기운이 번져 나오는 꽃나무를 보듯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순간 취하기도 했다. 방송은 생전에 그가 여우조연상을 받을 때 대중들에게 당선소감을 말하는 걸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환한 얼굴도 그녀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사십여 년을 연기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주부로서 집안살림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연기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연기 인생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저는 연기를 할 겁니다.” 

한줌의 재로 변한 그녀는 그의 작품 속 시간의 바다 위에서 청춘의 젊음을 그대로 지닌 채 죽지 않고 웃고 울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유골이 보관된 납골당 건너편 함에는 얼마 전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간 탈랜트 김자옥의 이름이 보였다. 밤이 되면 두 탈랜트의 영혼이 잔디밭으로 나와 이 세상에서 연기할 때의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눌 것 같았다. 아름다운 삶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얼마나 했느냐가 아닐까. 바보도 30분은 한다. 보통사람도 3일은 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30년 이상을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피라미드의 밑돌 같은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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