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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누나

운영자 2019.03.11 15:47:10
조회 130 추천 0 댓글 0
거창시 외곽의 어둠이 덮힌 거리는 적막했다. 수은등만 푸르고 차갑게 아스팔트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길옆의 낮은 단층집 문 앞에서 애자 누님이 나와 있었다. 혼자 사는 일흔일곱 살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시골의 독거노인이 되어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을까봐 걱정이 됐었다. 통풍이 심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빈 방에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혹시라도 고독사하는 사고를 겪기 전에 한번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것이다. 친척이라도 몇 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세상이다. 모두가 외로운 처지가 되어 자신의 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늙은 누님은 내가 온다고 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소반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그만 종지에 명란젓이 있었다. 동생에게 주는 아껴두었던 반찬인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 누님”

“주민 센터에서 한 달에 쌀 10 킬로그램을 배급받아. 혼자 먹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돈도 50만원 주고. 그걸로 충분히 살아. 그런데 혼자 죽어서 냄새나는 시체가 될까봐 제일 걱정이 돼.”

우연히 시선이 옆의 벽으로 갔다. 가끔씩 들리는 요양보호사의 핸드폰 번호가 굵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종이가 붙어있다. 시신을 우연히 발견하면 그 번호로 연락을 하라는 취지 같았다.

“말할 사람도 없고 적적해서 어떻게 해?”

“하루 종일 강아지 하고 둘이서 있어 그래도 이제는 할머니 나이가 된 저 놈이 많이 위로가 돼.”

구석의 철망 칸막이 안에서 새까만 눈이 튀어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호기심어린 눈길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의 말년은 누구나 잎을 다 떨어뜨리고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고독해 지는 것 같다. 내가 이따금 보았던 꽃피고 새 울던 누님의 청춘이 떠올랐다. 누님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주변에서 특수한 타자를 치는 기술자였다. 정부문서를 한자를 섞어 만들어 주었다. 누님은 당시 내게 가끔 일을 맡기러 오는 엘레트 공무원을 보면 정말 멋있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본인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도 선망의 눈초리로 보는 것 같았다. 그게 누님의 가장 싱싱하고 활력이 넘치는 세월이었다. 젊음 그 자체가 축복인 걸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내기도 한다. 누님의 얼굴에 겹쳐 벌써 십년이 다 되어가는 죽은 시인의 얼굴이 희미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혼자서 살다가 죽은 강태기 시인이었다. 폐암이었던 그는 하루 열다섯 시간 간호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누워 있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시인이었다. 요 밑에 공책을 두고 기침을 하면서도 한 줄 한 줄 마지막 시를 써 나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하고 험하게 살아왔으면서도 그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고 내게 말했었다. 창을 통해 보이는 아침이슬이 맺힌 호박꽃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지구는 휘황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음향으로 가득 찬 멋진 곳이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평생 길고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을 텐데도 그는 감사하고 있었다. 감사하는 그에게서 인생이 보석같이 빛나는 걸 나는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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