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변호사의 길

운영자 2019.06.17 16:08:14
조회 145 추천 1 댓글 0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고교동창한테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난감한 사건에 휘말려 젊은 변호사를 선임했어. 변호사가 영 성의가 없어. 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고 의견서를 미리 써 내라고 통지가 왔는데 안 써 내도 된다는 거야. 그리고 재판날짜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

사무적으로 일하는 바쁜 의사가 환자의 고통이나 호소에 둔감하듯 젊은 변호사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재판에 걸린 당사자의 마음은 절실하다. 

“바쁘다고 해서 내가 억울한 사정을 카톡으로 보냈는데도 열어보지도 않았어. 그러면서 무조건 돈을 주고 합의를 하래. 그래야 정상참작을 받는다고 말하는 거야.”

“무슨 사건인데?”

“내가 사람을 때린 적이 없어. 그런데 나한테 맞아서 상해를 입었다는 거야. 절대 그건 아니거든. 잘못이 없는데 왜 합의금을 내 차라리 국가에 벌금을 물고 말지.”

대충 감을 잡을 것 같았다. 뭔가 그에게는 억울한 점이 있는 것이다. 변호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아픔에 공감해 주는 일이다. 그리고 일단 의뢰인의 시각에서 그 일을 보아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변호사의 시각에서 현명하게 사건에 대처해야 한다. 법원에 내야 하는 서류도 성의를 바쳐야 하는 그의 작품이다. 33년 전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나도 그 변호사와 비슷했던 적이 있다. 의뢰인이 오면 내 눈으로만 그를 봤다. 법과 판례라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판단했다.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불안과 고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돈을 벌게 해주는 고객일 뿐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 해외여행도 가고 상류층 생활에 편입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 의사가 남긴 글을 읽고 변호사가 가야 하는 길을 알게 됐다. 그 의사가 쓴 글의 내용은 대충이랬다. 가난한 집에서 성장한 그는 어렵게 의사자격증을 땄다. 지금으로 치면 흙수저 출신인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취직할 병원이 없었다. 그는 탄광촌의 의무실로 가게 됐다. 어느 날 그 탄광에서 낙반 사고가 있었다. 그는 암흑 같은 막장으로 내려갔다. 광부 한 사람이 떨어진 바위에 다리가 깔려 있었다. 지하갱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머리 위에 박힌 돌이 쏟아져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광부의 다리를 절단해서 데리고 나와야 살릴 수 있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광부의 다리를 자르고 그 광부를 세상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망과 저주만 쏟아졌다. 그게 세상이었다. 그가 쫓겨나 다음으로 간 곳은 시골 마을의 작은 의원의 대진의사였다. 그곳에서는 밤중이라도 어떤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왕진을 가야 했다. 비가 퍼붓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진창길을 한참이나 걸어가서 환자를 보았다. 혼자 사는 임산부를 찾아가 진땀을 흘리며 아이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새벽에 돌아와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고 쉬려고 할 때 다시 응급환자 가족이 문을 두드리면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의원의 노의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시 젖은 외투를 걸치고 비가 쏟아지는 밤길로 나가게 그게 의사네.” 

그런 생활을 평생 해온 노 의사의 말이었다. 나는 글 속에 나오는 젊은 의사처럼 변호사로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백 년 전 크로닌이라는 의사 출신 영국 소설가의 ‘인생의 도상에서’라는 작품에 나온 내용이다. 의뢰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변호사는 사건을 맡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2649 깨달음으로 가는 두 길 운영자 22.05.30 153 1
2648 세로의 삶 운영자 22.05.30 152 1
2647 숙성된 정신 운영자 22.05.23 159 3
2646 완장 돌리기 운영자 22.05.23 186 1
2645 우리시대의 이상은 운영자 22.05.23 167 1
2644 죽는순간 하고 싶은 것 운영자 22.05.23 189 1
2643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봉사 운영자 22.05.23 142 1
2642 일꾼의 품삯 운영자 22.05.23 138 1
2641 해만 안끼치면 되나 운영자 22.05.16 180 2
2640 경박하지 않은 깊은 국민 운영자 22.05.16 168 2
2639 사람을 만들어야 운영자 22.05.16 140 1
2638 돈 버는 목적 운영자 22.05.16 210 1
2637 착한 영이 들어오면 운영자 22.05.16 172 1
2636 작지만 큰 나라 운영자 22.05.16 137 0
2635 천직 운영자 22.05.16 129 2
2634 이 삶이 전부일까? 운영자 22.05.16 159 1
2633 사상이 뭡네까? [2] 운영자 22.05.09 248 0
2632 바란 것과 얻은 것 운영자 22.05.09 198 1
2631 횡재가 횡액 운영자 22.05.09 200 3
2630 글을 잘 쓰려면? 운영자 22.05.09 116 1
2629 선행의 타이밍 운영자 22.05.09 106 0
2628 2달러와 쵸코파이 운영자 22.05.09 112 1
2627 어느 국회의원의 억울함 운영자 22.05.03 166 2
2626 청지기 정치인 운영자 22.05.03 121 1
2625 큰 정치가 운영자 22.05.03 126 1
2624 좋은 정치의 모델 운영자 22.05.03 125 0
2623 불평의 해독제 운영자 22.05.03 119 1
2622 노력의 천재들 운영자 22.05.03 157 1
2621 노인들의 나라 운영자 22.05.03 149 1
2620 시대의 양심 운영자 22.04.25 132 0
2619 도시의 자연인 운영자 22.04.25 132 1
2618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운영자 22.04.25 169 1
2617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운영자 22.04.25 137 2
2616 역사와 싸운 용감한 대법관 운영자 22.04.25 145 0
2615 용감한 판사 운영자 22.04.25 121 0
2614 아버지 아들 모범판사 2대 운영자 22.04.25 130 0
2613 댓글 운영자 22.04.25 105 1
2612 눈이 부리부리한 중위 운영자 22.04.18 142 0
2611 공부의 일등급 운영자 22.04.18 125 1
2610 원룸에 사는 행복 운영자 22.04.18 130 1
2609 젊은부부의 아름다운 인생 운영자 22.04.18 111 0
2608 어떤 희망으로 죽을까 운영자 22.04.18 89 1
2607 연탄의 추억 운영자 22.04.18 99 1
2606 시골의 노인 찻집 운영자 22.04.18 96 1
2605 사표를 내는 심정 [1] 운영자 22.04.11 131 1
2604 묵호의 작은 책방 운영자 22.04.11 103 1
2603 쌀가게 예수영감 운영자 22.04.11 105 1
2600 에이지즘 운영자 22.04.11 100 1
2599 예술의 신 운영자 22.04.11 84 1
2598 영혼 밭에 떨어진 노래 운영자 22.04.11 89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