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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의 삶

운영자 2022.05.30 10:36:37
조회 152 추천 1 댓글 0

군대 시절 절실할 정도로 장군이 되고 싶어 하는 상관이 있었다. 그는 보병 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를 했다. 서울법대를 졸업한 그는 고시공부를 하다가 다시 법무장교로 군에 입대해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계룡산의 무당을 찾아가 장군이 될 수 있을지 점을 치기도 했다. 그는 동기생 중에서 서열이 제일 앞이었다. 그는 소원대로 장군이 됐다. 그 부하 장교였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훈련 시절 나는 항상 꼴등이었다. 무거운 철모와 배낭을 견디지 못해 낙오됐다. 아픈 탓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군대발로 고문관 소리를 듣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밀어주는 빽이 없어 최전방 철책부대에 배치됐다. 그때 나는 지위가 상승되고 외연적으로 확장되는 것만 삶의 방법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초등학교 사학년 어느 날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담임선생은 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간 후에 나를 남으라고 해놓고 책상 앞에 국화꽃이 담긴 꽃병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혼자 그 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갔는데 왜 나만 혼자 남아있나 약간은 불만이었다. 꽃을 보는 것 보다는 다른 아이들처럼 만화를 보고 놀이를 하는 게 더 좋았다. 선생님이 시키니까 다음은 무심히 꽃을 보았다. 눈이 부실정도의 노랑이 가슴에 들어왔다. 차츰 진한 꽃향기가 나의 영혼을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교무실로 갔던 선생님이 돌아왔다. 선생님은 교실앞 자기 책상으로 나를 부르더니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던 대학노트 한 권을 꺼내서 내 앞에 펼쳐놓으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쓴 시란다. 한번 봐라.”

노트에는 선생님이 쓴 시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그는 교사라는 직업으로 밥을 먹고 본질은 시인인 것 같았다. 다른 교사는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려고 뛰는데 그 선생은 시인이 되기 위해 자기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인간의 삶이란 가로로 펼쳐나가기도 하지만 있는 그 자리에서 세로로 깊숙이 내려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었다. 직업 장교를 하던 군대시절의 나는 세로의 삶을 선택하자고 마음먹었다. 보직과 진급에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다.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최전방을 지원하는데 경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진급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름의 정신적 자유가 있었다. 최전방 산꼭대기 눈덮인 막사 안에서 나는 문학책을 읽고 공부하던 법학을 좀 더 깊숙이 파 내려갔다. 전방고지의 낡은 바라크 건물은 나만의 득음바위라고 할까. 세로의 삶을 선택한 내게는 먼저 내면의 깊숙한 곳이 보이고 동시에 머리위의 높은 하늘이 보였다. 나의 속으로 파고 들어가 처음으로 그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 무능력이 보였고 그동안 가졌던 턱없는 욕심이 눈에 띄었다. 밤새 순찰을 돌고와 우연히 펼치게 된 전도용 성경은 내게 너는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아니고 그 아래의 토기그릇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선한 것이라고는 없는 부패한 죄덩어리라고 꾸짖었다. 내 자신의 존재를 그때 조금 발견 했었다. 나는 그냥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었다.

짜장면을 만드는 어떤 사람은 자기는 최고의 짜장면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돈이 목적이고 업장을 확장하고 싶어하지만 자기는 짜장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했다. 어떤 기술자는 일센티 짜리 플라스틱 나사에 자기의 전부를 걸었다. 영국의 작가 써머셋 모옴은 화가 고갱의 얘기를 쓰면서 장군 국회의원 같은 직종도 있지만 예술가 같이 일생을 한 분야에 전념하는 가치 추구도 있다고 했다. 나는 군에서 준위라는 한 계급장으로 평생을 보내면서 최고의 헬기 조종사가 된 사람을 봤다. 그런 세로의 삶도 있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세로의 삶은 하늘이 관여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나를 군에서 끌어내어 작은 법률사무소안의 변호사로 안착시켰다. 가로의 삶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이동시켜 주신 것이다. 사회인이 되어 군대에서 장군이 되고 싶어하던 상관과 다시 만났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는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다음번 선거에 나갔다가 또 떨어졌다. 몇 번의 낙선 후 그는 몸이 마비된 채 입원실에 있다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인간에게는 가로의 삶과 세로의 삶이 있다. 평면적 삶과 입체적 삶이 있다고 할까. 가로로 사는 삶의 평면적인 확장은 경쟁과 다툼을 일으킨다. 이웃과 충돌한다. 미움이 그치지를 않는다. 그러나 위아래 세로로 하는 확장은 평화를 준다. 강가 땅의 등기명의자는 다른 사람일 수 있지만 그 광경은 시인의 소유다. 사람들이 가로삶의 부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가난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한다. 세로로 사는 삶의 부가 따로 있다. 국가나 사회도 비슷한 것 같다.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세계의 땅을 점령해서 확장하는 나라도 있었다. 덴마크 같이 작은 땅 안에서 나무를 심고 가축을 길러 부자가 된 나라도 있다. 사회의 사업도 한 아이팀에 전념한 백년기업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세로의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위아래로 뻗어갈 공간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영원한 평화가 땅에 임하려면 세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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