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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95 - 만주에 방적공장

운영자 2019.08.26 16:54:34
조회 128 추천 2 댓글 0
친일마녀사냥


95


만주에 방적공장


일본은 남경의 장개석(蔣介石) 정부로부터 황하 이북을 떼어내기 위해 송철원(宋哲元)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찰정무위원회(冀察政務委員會)라는 완충정권을 만들었다. 중국에 또 다른 정권을 형성해서 장개석의 존재를 희미하게 하는 전략이었다. 일본 군부는 그들이 지원하는 화북정권을 조종하면서 설탕, 밀가루, 직물 등 중국에 부족한 생활필수품을 대대적으로 수출했다. 그것은 장개석 정부의 관세수입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국제경쟁력이 떨어지자 중국 내 방적공장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반발했다. 도처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장개석 국민당 정부는 일본의 경제침투를 비난했다. 

김연수(金秊洙) 사장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 틈을 타서 중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경성방직의 제품이 기존 일본제품이 차지한 중국 시장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전쟁 중이라 수송이 어려웠다. 원료구입도 점차 더 힘들어졌다. 반면에 시장상황은 희망적이었다. 경성방직의 제품이 만주와 화북에서 인기가 올랐다. 조선인 방적회사인 경성방직의 제품이 중국시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김연수 사장은 중국 통주(通州)나 잉커우에서 공장을 설립해 수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개인 명의로 잉커우방직회사에 투자했다. 잉커우방직은 일본직물 유입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인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중국 도시마다 마적(馬賊)과 범죄자들이 들끓고 치안이 확보되어 있지 않았다. 통주와 잉커우에 공장 설립을 포기했다. 도요타 직기에서 중국의 창덕(彰德)에 공동으로 방적공장을 세우자고 제안을 했다. 도요타 직기는 이미 상해에서 중국인과 ‘신신방(申申紡)’이라는 방적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신방’이란 회사에서 창덕에 공장을 건설하던 중에 중일전쟁이 터져 공사가 중단됐던 것이다. 도요타 직기는 경성방직과 오랫동안 거래를 해오고 있었다. 

김연수는 공동경영에 찬성했다. 기업 경영상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 보였다. 김연수는 투자를 약속하고 상해의 현장을 알아보았다. 상해 역시 치안이 엉망이었다. 공장 운영이 불가능했다. 천진에 있는 중국인 회사인 항원방직(恒沅紡織)에서 합작경영을 제안해 왔다. 항원방직은 방기(紡機) 4만 추를 지닌 공장으로 이미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었다. 중국인 방적회사는 일본군 점령지에서 중국인만으로는 그 경영이 불안했기 때문에 경성방직과 합작을 해보려 한다는 것이었다. 경성방직으로서는 공장을 건설하기보다는 기존시설에 투자하는 게 유리했다. 천진은 일본군 점령으로 치안이 확보된 상태였다. 6대 4의 비율로 합작에 동의하고 투자하기로 했다. 그 무렵 북경의 일본 특무기관인 흥아원(興亞院)의 정보장교가 김연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원방직을 인수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항원방직은 앞으로 저희 부대에서 몰수할 예정입니다.”

“몰수할 예정이라뇨? 왜 군부에서 개인기업을 몰수합니까?”

“장개석 군대가 물러가면서 우리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방적공장을 파괴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방직공장을 몰수해서 피해를 입은 일본 기업인에게 배상조로 넘겨줄 계획입니다.”

결국 일본 기업인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이미 우리는 투자를 한 상태입니다. 항원방직은 중국인의 기업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투자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주장이었다. 사실 장개석 군대가 실지로 일본인 공장을 파괴했는지 어떤지는 불명확한 상황이었다. 일부 파괴됐다면 전쟁 과정에서 일본 전투기의 공습으로 파괴됐을 가능성이 더 컸다. 특무대 정보장교의 은근한 협박이 나왔다.

“그렇다면 김 사장님은 우리 흥아원의 계획을 무시하고 계속 그 회사를 경영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되리라고 보십니까?”

당시 일본 군부는 만주와 중국의 여러 지점에 군의 정보공작부대를 은밀히 설치하고 모든 분야에 힘을 뻗치고 있었다. 그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연수는 만주에 방적회사를 설립하기로 방향을 돌렸다. 그는 교통의 요충인 봉천 남쪽의 소가둔(蘇家屯)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소가둔은 봉천 조금 못미처 있는 드넓은 벌판 한가운데 있었다. 소가둔에서 남만주 분선철도가 대련으로 이어졌다가 안봉지선으로 갈라져 조선 국경을 통해 경성으로 이어졌다. 북동쪽으로 16km만 가면 비옥한 만주평원의 중심에 있는 푸순과 만주국의 최대도시이며 공업기지인 봉천이 있었다. 

봉천은 인구가 100만을 넘었다. 만주국 최대의 공업단지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17만 평의 공장 부지를 사들였다. 회사 이름은 남만방적(南滿紡績)으로 정했다. 남만방적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는 이미 조선 사업가들 중에서는 최고의 신용과 자금동원 능력을 가진 기업가였다. 조선 식산은행과 만주 흥업은행에서 융자받았다. 거액이었다. 그 무렵 평양에서 은행이 털린 사건이 있었다. 절도범들이 조선은행 평양지점에 땅굴을 뚫고 들어가 75만 원을 털어간 사건이었다. 도난당한 75만 원은 평양에 있는 모든 은행의 현금보유고였다. 김연수가 융자받아 굴리는 사업자금은 4200만 원이었다. 

일본인 사업가 중에서도 그런 거액의 융자를 쓸 만큼 신용을 겸비한 개인기업가는 없었다. 김연수 사장은 사업상 필요할 때 로비스트로 철종의 사위였던 박영효(朴泳孝)를 활용했다. 전문경영인도 아니고 출근도 하지 않지만 박영효의 경우 총독부 당국이나 식산은행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대신 해주었다. 그는 만주의 공장을 설립하는 데 조선인 고원훈(高元勳)과 김사연(金思演)도 활용했다. 고원훈은 조선인으로서 최고위직인 전북도지사에 올랐던 관료 출신이었다. 고원훈은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관료들과 막역한 관계였다. 

남만방적의 설립절차에 활용한 김사연도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인물이었다. 그들을 만주국 일본 수뇌들과의 연결통로로 삼았다. 사업은 현실이었다. 회사의 임원구성은 김연수가 사장, 박흥식(朴興植), 민규식이 이사, 현준호에게 감사를 맡겨 조선인 부자들을 끌어들였다. 김연수는 만주국 정부에 방적회사 설립허가원을 제출했다. 만주국은 이미 일본의 군부가 실권을 잡고 조정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모든 연줄을 동원했다. 일본 귀족원 세키야 데이자부로 의원이나 총독부 요직에 있던 일본인들을 중간에 넣어 부탁을 하기도 했다. 

1939년 6월 초여름의 햇빛이 따가운 어느 날이었다. 김연수 사장은 조선총독부 외사부장인 마쓰자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퇴근 후 저녁이나 합시다. 말씀드릴 것도 있고.”

총독부 회의 때 인사를 했던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시죠.”

“6시경 희락에서 만납시다. 비서가 예약해 놓을 겁니다.” 

희락은 고관이나 부자들이 단골인 진고개의 요릿집이었다. 

그날 저녁 은은한 등롱(燈籠)의 빛이 비추는 희락의 대문을 김연수 사장이 들어섰다. 외사부장 마쓰자와가 먼저 와서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다다미방이었다. 구석의 도고노마에는 사무라이의 갑옷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근대 일본의 석판화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요리상이 나왔다. 몇 차례 술잔을 주고받은 후에 마쓰자와가 본론을 꺼냈다. 

“김 사장님, 만주에 방적공장을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돌아갑니까? 우리 총독부 상공과에서 관심을 갖는 것 같던데요.”

“허가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이런저런 규제가 많아 아직 정식으로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기본 인적·물적 시설은 됐는데 행정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군요.”

마쓰자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핵심을 꺼냈다. 

“제가 그 허가 건을 힘껏 도와 드릴 테니 김 사장님도 내 청을 하나 들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연수 사장은 순간 긴장했다. 고위 관료가 그렇게 말하면 뭔가 큰 걸 부탁하는 게 틀림없었다. 국방헌금이나 비행기 헌납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이라뇨?”

김연수가 되물었다.

“이건 김 사장님과 나만의 내밀한 얘깁니다만 실은 얼마 전에 만주국 경성주재 명예총영사였던 박영철(朴榮喆) 씨가 작고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후임으로 김 사장님을 추대하기로 했어요, 김 사장님 말고는 다른 적임자가 없어요.”

명예총영사란 만주정부의 관직이었다. 일제(日帝)는 실업인에게 명예총영사란 직책을 주고 있었다. 죽은 박영철도 상업은행장을 지냈다. 기업인이 하는 명예총영사의 역할은 일본제국의 정책을 앞에서 선전해 주거나 정치자금이나 국방헌금을 내라는 소리였다. 하는 일은 없었다. 행사 때 들러리 정도였다. 김연수 사장은 잠시 침묵하며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원래부터 무슨 관직이나 공직의 감투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죽을 때까지 사업에만 순수하게 매진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전에 와타나베 경기도지사님이 일방적으로 저를 도의원에 임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임기 3년 동안 한 번도 의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정치나 벼슬은 애당초 관심도 없고 거리를 두려는 게 제 신념입니다. 그러니 외사부장께서도 그런 저의 생각을 배려해 주셨으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김연수는 고개를 굽히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람들 사이에 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을 중심으로 하는 김씨가(家)는 조선 민족의 상징적인 대표로 되어가고 있었다. 경성방직은 민족기업이고 사원들은 자신들이 민족을 대표한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형 김성수(金性洙)는 동아일보를 통해 민족의 정기를 부르짖고 있었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국적은 일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집안이나 기업은 민족적 색깔을 분명히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가였다. 입장이 달랐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사업가로서는 파멸을 의미했다. 경제활동이란 타협을 전제로 상대방과 색깔이 섞여야 하는 면이 있었다. 

“좌우지간 오늘은 이쯤에서 헤어집시다. 정 그러시다면 저도 다른 분을 구해 보겠습니다.”

다시 마쓰자와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이 있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마쓰자와는 다른 얘기 전에 선언하듯 이렇게 말했다. 

“김 사장님, 부디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나는 김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해서 최종적으로 다른 사람을 천거했습니다. 그랬더니 총독 각하께서 다짜고짜 김 사장님 이름을 꺼내시며 저더러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호령하시니 전들 어쩝니까? 저는 총독의 명령에 저항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김연수 사장에게 명예총영사라는 직책이 부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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