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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 복이와요

운영자 2022.09.12 10:18:43
조회 148 추천 1 댓글 0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을 보았다. 물고기가 많은 낚시 포인트가 있듯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소위 명문 학교였다. 나는 운 좋게 명문이라는 곳을 간 덕에 진짜 복 있는 친구 한 명을 구경했다. 재벌 아들이라고 해도 교만하거나 막 나가면 나는 그를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장관도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은 잠시 피었다 지는 꽃 같기 때문이었다. 순간의 감투를 영원으로 착각했던 그들은 박탈감이 더 큰 것 같다. 내가 진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친구는 부러움을 넘어 존경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있다. 그는 현금왕이라고 불리던 부자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재벌회장들이 초창기 그의 아버지에게 가서 자금을 융통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친구는 천재성을 타고 난 것 같았다. 어려움 없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엠아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평생 교수로 평탄하게 지냈다. 정년퇴직을 한 그는 지금 문화재급 보물 몇 만점을 전시하는 개인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수집한 보물이 너무 많아 그 보관과 관리를 위해 최고의 박물관을 설립했다고 했다. 그가 상속받은 재산의 액수를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멀리서 바라보기에 그의 인생은 부침이 없어 보였다. 그는 최고의 재벌가와 사돈 관계가 되고 사위가 주요언론과 방송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그는 돈과 명예 힘을 가지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부러운 것은 재산보다 그의 성품이었다. 부자인데도 그는 소박하고 검소했다. 다른 친구한테 전해들은 얘기가 있다. 그가 유학하던 시절 아버지가 아들을 보러 갔었다. 간신히 살 정도의 돈만 보냈던 아버지는 아들이 생활에 쪼들리지 않나 속으로 걱정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들은 아버지 앞에 예금통장을 내놓으면서 아버지가 보내주신 돈을 절약해서 모았다고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낡은 차를 운전하면서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주위에서 겸손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내가 보기로는 그는 위선적인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품의 진면목을 알고 있다. 고등학교시절 그와 같은 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수학 시간만 되면 앞이 깜깜했다. 영어도 실력이 바닥이었다. 두 과목이 대학입시의 관건인데 그렇다고 과외를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영어과외를 하는 친구에게 자료만이라도 얻어 볼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었다.​

“비싼 돈을 내고 과외를 하는데 내가 왜 그걸 너에게 거저 빌려줘야 하지?”​

냉철한 거절이었다. 경쟁사회에서 공짜로 얻어보려는 내가 염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가난한 자식의 무기는 뻔뻔함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다가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 수학 좀 가르쳐 주라.”​

“알았어. 학교가 끝나면 같이 우리 집에 가자.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나는 좋은 수학 선생을 얻는 행운을 얻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그를 따라 혜화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조건물이 있는 넓은 잔디밭에는 그의 야구클럽과 배트가 놓여 있기도 했다. 그는 나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화려한 반찬은 아니지만 접시에 불고기가 놓여 있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내가 몸이 부실해지자 고깃간에 가서 허연 돼지비계 이백그람을 사서 다져 준 적이 있었다. 특별식이었다. 서민들은 일년에 고기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 저녁을 먹은 후에는 성실하게 나를 가르쳤다. 싸인 코싸인 탄젠트를 배우고 인수분해와 방정식의 개념을 깨달았다. 그는 한 학기 동안 꾸준히 나를 가르쳐 주었다. 시험을 앞두고 있어도 자기 공부보다 나를 우선순위로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고 있다. 그 시절 나는 그가 부자인 걸 모르고 그 역시 나의 가난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우정이었다. 명문을 다닌다는 건 그런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둘다 칠십고개 가까이 있다. 내 방에서 보이는 드넓은 동해바다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다. 적막한 나의 방에 핸드폰의 음악이 울리면서 동시에 그 친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그 친구였다.​

“윤교수구나 반가워 그리고 고마워”​

동해 바닷가 마을에 혼자 있는 내게는 전화한통이나 카톡의 글 한 줄도 정말 감사하다. 그와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가르쳐 준 거 항상 감사하고 있어.”​

“무슨 소리야 그때 같이 공부한 걸 가지고.”​

그는 아직도 겸손이 몸에 밴 것 같다. 오늘 아침은 감사에 대한 걸 묵상하다가 어제 걸려 온 그의 전화가 떠올라서 글을 썼다. 성경을 보면 있는자는 더 있을 것이고 없는 자는 있는 것 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했다. 그걸 어리석게 물질적 빈부의 차이로 해석하고 오해한 적도 있었다. 요즈음은 그 말을 감사로 인식하고 했다. 감사하면 더 감사할 것들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있던 복마저 가버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평하는 사람이 평생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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