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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18 - 진짜 앞잡이

운영자 2019.10.21 12:28:48
조회 130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18


진짜 앞잡이


1924년 1월 하순이었다. 한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가진 대머리 박춘금(朴春琴)이 총독부의 경무국장실로 들어왔다. 마루야마 경무국장의 전보를 받고 동경에서 급히 온 것이다.

“어서오십시오, 박춘금 상.”

경무국장이 반가운 얼굴로 박춘금을 맞았다. 박춘금은 경무국장이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지난번 관동대지진 때 우리 일본제국을 위해 뛰어주신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폭동내막을 털어놔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겠습니까?”

박춘금은 보통학교도 마치지 않고 일본에 건너가서 떠돌아다니던 건달이었다. 그는 일본 야쿠자 이상으로 칼을 잘 썼다. 그는 관동대지진 때 일본 경시총감을 찾아가 죽은 조선인 5000명의 시체를 처리해 주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교포수용소로 찾아가 그곳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노동을 요구했다. 거기서 나온 임금은 그의 수입이었다. 그는 조선인 노무자들을 상대로 밥장사로 돈을 벌었다. 교포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경무국장이 계속했다.

“지금 저희 총독부에서는 조선인 단체들을 연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박춘금 상의 노동상애회(勞動相愛會)가 그 중심에서 일을 해주십사고 이렇게 모신 겁니다.”

“우리 노동상애회가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해야 할 조선의 단체들은 어떤 게 있습니까?”

박춘금이 되물었다.

“송병준(宋秉畯)계(系)인 조선소작인상조회(朝鮮小作人相助會), 민원식(閔元植)계인 국민협회를 비롯해서 유민회, 조선경제회, 단풍회, 동광회, 대정실업친목회, 국민회, 유도진흥회, 청림회 총 11개 단체가 있고 대표가 34명가량 됩니다. 이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사상을 선도하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협조라는 바탕을 이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며칠 후 조선인 관변단체연합회가 결성됐다. 

동아일보가 당장 총독부의 친일집단 조성 공작을 공격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그 핵심내용은 이랬다.

‘관변단체인 유지(有志)연맹의 강령이라는 것은 세상의 이목을 기만하려는 데에 불과하다. 그 도배(徒輩)들의 과거 경력을 보라. 그리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실상은 일본과 조선의 철저한 융화다. 그러나 그들이 사이비적 주의와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총명한 일반민중은 동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조선의 독립운동의 기세를 꺾기 위한 것이다.’

사설이 나간 날 밤 친일단체 연합회의 이풍재(李豊載)가 동아일보의 송진우(宋鎭禹)와 김성수(金性洙)에게 전화를 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오랫만에 만나 옛 이야기나 하면서 술잔을 나눕시다. 요리점 식도원으로 오시오”

동아일보의 송진우와 김성수는 찜찜했다.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옹졸한 짓이었다. 그들은 약속장소로 갔다. 그들을 부른 이풍재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연맹은 탄생부터 대일본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거액의 제국 예산을 쓰는 기관이오. 그런데 우리 조직에 대해 동아일보가 맹랑한 소리를 써대니 지난날의 우정을 봐서나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나 퍽 섭섭하단 말씀이야.”

“이(李) 선생은 여기에 친구로서 나온 거요? 아니면 친일연맹을 대표해서 나왔소?”

송진우가 되쏘았다. 김성수도 얼굴이 굳어졌다. 

“그야 양쪽 모두라고 할 수 있소.”

“그러면 우리는 돌아가겠소.”

김성수가 옆에 앉았던 송진우 쪽에 가자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수 있으면 가 보쇼.”

이풍재의 말투가 협박조로 변했다. 주춤해서 그를 쳐다보는 김성수와 송진우를 보고 이풍재가 말했다. 

“어떻소?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와 밀약을 맺고 손을 잡으면 매우 유리할 것이고, 동아일보가 끝끝내 그렇게 나오면 멸망이 있을 뿐이오.”

송진우가 분노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경무국장 마루야마가 그렇게 말하라고 합디까?”

“뭣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지금 여기가 무슨 자리인줄 알아? 동아일보가 우리 연맹원에 대해 인신공격을 한 잘못을 깨닫고 신문을 통해 공개사과하지 않고는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단 말이야.”

“우리 신문은 이 나라 이 사회의 누구에 대해서도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 게 회사의 방침이오. 그렇지만 틀린 일을 할 때에는 그것이 누구든 싸우는 것이 신문의 사명이오.”

송진우가 소리쳤다. 그때 옆방 문이 열리면서 웃통을 벗은 박춘금이 부하 10여 명과 함께 우르르 몰려나왔다. 접시가 날아가고 맥주병이 박살이 나며, 그곳에 있던 기생들이 아우성을 치고 방안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박춘금은 김성수와 송진우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놈은 죽여버린다.” 

김성수와 송진우가 반 죽도록 얻어맞고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박춘금이 그들에게 협박했다. 

“어떻게 하겠소? 신문지상을 통해 공개사과를 하겠소? 못 하겠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소.”

김성수가 정면으로 거절했다.

“그건 안 되는 일이오.”

옆에서 송진우가 덧붙였다. 

“못 하겠어? 그렇게 말하는 건 이 박춘금이란 인간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지.”

박춘금은 단도를 꺼내 요리상 위에 콱 박았다. 살기가 등등했다. 박춘금의 부하건달들이 뒤에서 공포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자, 그러면 훌륭하신 양반들 앞에서 내가 한 발 양보하지. 공개사과가 그렇게 자존심이 상한다면 대신 신문에 내는 건 그만두고 우리 연맹 앞으로만 사과문을 보내고 그와 함께 3000원을 주쇼.”

박춘금이 협상안을 내놓았다. 박춘금은 그 이전에도 몇 번 동아일보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일본인 노동자들이 입는 핫피(法被: 고용인·직공 등이 입는 상호가 찍힌 겉옷) 복장에 단도와 몽둥이를 들고 부하건달을 차에 태우고 와서 신문제작을 방해했다. 그는 동아일보가 모금한 재일동포 위문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자기가 조직한 ‘노동상애회’가 재일동포 노동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조직폭력배들을 이끌고 일곱 번이나 찾아오는 동안 경찰당국은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 

“내가 양보했는데도 못 듣겠단 말이지?”

눈에 핏발이 선 박춘금이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옆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이라면 당시 일본인 고위층이 아니면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결국 송진우는 개인적 자격이라는 걸 전제로 인신공격은 유감이었다는 짤막한 글을 써 주었다. 김성수도 개인적으로 3000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썼다. 

다음날 김성수는 3000원을 들고 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방을 찾아갔다. 마루야마는 지난밤 식도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미 보고를 통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돈을 박춘금이에게 전해주시죠.”

김성수가 돈 보따리를 마루야마 책상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그 돈을 내가 왜?”

마루야마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국장님은 박춘금이 말끝마다 자기 뒤에 총독부의 마루야마가 있다고 하는 걸 모르십니까? 박춘금은 세상에서 무서운 게 없는 모양입니다그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내가 3000원을 주겠다고 한 건 박춘금의 권총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자를 예쁘게 보고 후원을 아끼시지 않는 마루야마 상의 체면을 생각해서 돈을 내는 거니까 이 돈을 제가 연맹에 줄 때 입회를 하시든지 아니면 직접 전해주시죠.”

박춘금의 협박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여론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민간의 유지들 40명이 모여 언론압박을 탄핵하는 민중대회를 열기로 했다. 조선인 변호사단이 구성되고 그들은 총독부와 검찰당국에 항의를 제기했다. 마루야마는 몰래 박춘금을 일본으로 보냈다. 마루야마는 친일파인 박춘금의 유지연맹을 통해 김성수와 송진우가 쓴 각서를 매일신보에 흘렸다. 매일신보에 송진우의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왔다. 매일신보는 그후에도 사설과 평론을 통해 송진우에 대한 인신공격을 했다. 

송진우의 친필(親筆)이라는 자체가 동아일보 내부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편집국장이던 이상협(李相協)이 사장 송진우의 인책을 주장하면서 사표를 제출했다. 민족의 대변기관인 동아일보의 사장이 친일 폭력배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송진우가 사표를 냈다. 김성수 역시 사임했다. 경영진 전부가 사퇴했다. 경영진의 총사퇴로 동아일보는 기능이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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