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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나, 남들이 보는 나

운영자 2020.02.24 10:00:36
조회 200 추천 1 댓글 0
1995년 봄경이다. 청송교도소를 다녀온 한 목사가 그곳에서 징역을 사는 죄수의 얘기를 전했다.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에 손을 뒤로 묶인 채 감옥 바닥에 엎드려서 징역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엎드려서 그릇에 담긴 밥을 개처럼 핥아 먹는 삶이 너무 비참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목사는 변호사인 내게 그 죄수를 살려줄 수 없느냐고 사정했다.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 죄수는 삼십년을 징역을 살았다. 어려서는 거지였고 그 다음은 도둑 인생이었다. 나는 그의 재심을 청구하면서 그를 세상의 법정에 올려놓았다. 알고 보니 그는 고관 집에 들어가 물방울 다이아를 훔친 유명한 절도범이었다. 그의 재심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나기 시작했다. 재판장이 보는 시각은 다른 것 같았다. 거지 출신에 도둑질이 뼈에 박혔다면 구제 불능이라는 판단인 것 같았다. 그 당시만 해도 범죄인이면 죄를 짓지 않고 위험성만 있어도 판사가 십년 동안 감옥에 쳐 박아 놓을 수 있었다. 그게 없어진 사회보호법의 내용이었다. 나의 생각은 달랐다. 금촛대를 훔쳐간 장발장처럼 인간에게는 참회가 있을 수 있었다. 판사는 점쟁이도 아니었다. 죄짓지 않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건 악법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부잣집 아들인 고교동창 하나가 나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너를 이상하게 보고 있어. 네가 좌파라는 거야.”

그 친구의 주변은 재벌가의 아들들이 많았다. 그들은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과 죄인을 찾았다. 하나님은 귀족이나 사제가 아니라 평범한 목수로 세상에 왔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 방송에서 출연요청이 있었다. 운동권 출신으로 유명한 임종석씨가 사회를 보는 토크쇼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뜨기 위해 스타 범죄자를 변호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의 형식을 가장한 아픈 비난이었다. 나는 교도소 내의 인권유린을 말했다. 다음날 조선일보의 사회면에는 공명심에 들뜬 변호사가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법무부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허름한 복장의 칠십대쯤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아껴두었던 지폐 몇 장이 든 흰 봉투를 내게 주면서 힘을 내라고 하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반독재투쟁으로 감옥에 오래 살았던 유명한 목사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 법조인들의 산행모임이었다. 청계산을 올라갔다 내려와 법조선 후배들이 그 부근의 고기 집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술잔이 오고 갔다. 법원장과 검사장이 있고 현직 판검사들이 많았다. 재판얘기부터 시작해서 말과 말이 들끓고 고기 연기가 퍼진 공중에서 그 말들이 부딪치기도 했다. 자그마한 남자가 뻘건 숯불을 들고 와 음식 상 가운데 놓고 불판을 갈아 끼웠다. 그가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이런 말을 했다.

“주간지에서 변호사님이 무료 변호하는 사건을 봤어요. 저희같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힘없는 놈들은 모두 변호사님을 존경해요. 저기 저 사람들 같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우리 같은 놈들은 싫어해요. 하나도 존경하지 않아요. 그 감옥안의 죄수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가 내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일어나 갔다.

“저런 고약한 놈이 있나?”

옆에서 그 모습을 본 부장판사 출신의 선배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집에 돌아와 한밤중에 나의 책상에 앉아 ‘나는 누구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내가 있었다. 하나님이 보는 나도 있는 것 같았다. 그 모르는 늙은 목사는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천사 같았다. 비난과 증오의 눈이 번들거리기도 하고 비판과 날카로운 눈도 있었다. 관대한 눈도 있고 공평한 눈도 있었다. 날카롭게 나를 꿰뚫어 보는 적의 눈이 더 정확한 것 같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에 이름이 나오는 순간 사탄은 내게 공명심과 허영을 불어넣었다. 내 눈으로 나만 보는데 과대평가가 있고 오해와 불행이 싹튼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그래도 이십 오년 전 청계산 밑 식당의 청년의 한 마디는 성령의 숯불 위에 구워진 물고기처럼 내게는 귀한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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