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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때를 살아간다면

운영자 2022.12.26 10:13:27
조회 100 추천 2 댓글 0

아침 여덟시에 내게 온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때를 살아간다면 어떻게 할 건지 말해달라고 했다. 놓쳤던 것이나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도 글로 접할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잠시 혼자서 생각을 하는 데 며칠 전 우연히 만나 점심을 함께 한 목상(木商)이 떠올랐다. 그의 겨울 작업장을 가 봤다. 가파르게 경사진 산자락에서 포크레인 한 대가 나무를 자르고 그걸 골짜기로 던지면 트럭이 그걸 싣고 가는 작업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하는 외롭고 힘든 일 같았다. 목상은 수십년동안 깊은 산속의 나무를 잘라서 팔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는 일을 해 왔다고 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목상이 내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젊은 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고용되어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이나부터 그렇게 살기가 싫더라구요. 그래서 사무실을 뛰쳐나왔죠. 독신이라 부담이 없었어요. 워낙 산을 좋아했습니다. 혼자서 백두대간을 오르내리고 히말라야의 골짜기를 다니면서 인생을 보냈죠. 기본적인 건축설계기술은 있으니까요. 산을 다니다 보니까 나무가 보이고 산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목상(木商)이 됐죠. 나무를 잘라서 파는 단순한 나무 장사가 아니라 수십년 된 나무를 어떻게 잘 보존하고 가꾸면 아름다운 산이 될 수 있는지가 보이더라구요. 필요 없는 나무를 치고 좋은 나무와 바위를 살려서 산을 다시 만드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이 그런 거예요. 이제 노년을 산에 아름다운 농원을 만들어 백합나무를 심고 벌을 치면서 아내와 살고 싶어요. 그리고 산악도로를 만들어 내가 평생 좋아하는 산악자전거를 죽을 때까지 탈 겁니다.”

내 또래의 그는 세상의 조류와는 다른 흐름을 타고 인생을 보낸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이십명 정도 젊은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깊은 산속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산을 깍고 나무를 자르는 친구들이라 성질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일할 구역만 알려주지 절대로 지시를 하지 않아요. 단 한 가지는 말하죠.”

“그게 뭔데요?”

내가 되물었다.

“내가 돈 벌게 해 줄께 그 한마디예요 죽겠다고 학원다니고 일류대학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도 일년 연봉이 얼마 나 될까요? 그제 아니면 전문직을 하려고 하는데 과연 돈을 잘 버는 걸까요? 그게 젊은이들의 로망이잖아요? 나와 같이 일하는 저 포크레인 벌목공들 일 년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일억오천만원 이상입니다. 잠자리와 밥은 내가 다 해결해 줍니다. 내가 저 청년들에게 말해줍니다 껍데기만 번듯 하려고 하지 말고 번 돈으로 고급 레스트랑도 가서 와인도 마시면서 삶 자체를 번듯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벌목작업공이 그렇게 많은 수입이 있는지 몰랐다. 하긴 특수보일러를 취급한다는 먼 친척 젊은이가 있었다. 십 년도 넘는 오래전에 그는 내게 보일러공인 자신의 한달 급료가 천만원을 넘는다고 했다. 나의 사무실 근처에 용접공출신 변호사가 있다. 그는 조선소에서 용접공을 하고 번 돈으로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됐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의 수입이 일류용접공보다 못하다고 했다. 시대가 완전히 변했다. 시대의 영웅은 대통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세계를 점령해 나가는

한류스타들이다. 나는 시대가 만들어준 정신적 전족을 차고 젊은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살까? 우선 머릿속에 가득 찬 관념의 쓰레기들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세상이 던지는 기성 관념의 그물에 잡히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 뭐지? 무엇이 내게 즐거움을 주는거지?를 생각해 볼 것 같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냥 입고 있는 의상이나 장식품 비슷한 건 아닐까? 물론 반론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고 말이다. 오늘 아침 글을 쓴 동기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말해줘도 좋다는 요청이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월든’이란 수필을 쓴 소로우처럼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고 싶다. 또 법정스님처럼 눈덮인 산속 오두막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노년에 동해의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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