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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을 때는 그냥 앉아 있어요

운영자 2020.03.23 10:06:22
조회 159 추천 1 댓글 0
며칠 전 점심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보러 갔었다. 그의 회사의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그가 나타났다. 잠시 얘기를 하는 사이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버튼을 누르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대화 내용이 자연히 나의 귀에 들어왔다. 중요한 용건이 아닌 것 같았다. 근래 일어났던 일들을 주고받는 잡담이었다. 앞에 앉은 친구는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얘기하고 있었다. 서서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동시에 두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사정에 따라서는 앞에 있는 나의 존재는 없어지고 전화기 저쪽의 상대방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요즈음 종종 겪는 일이다. 내 쪽에서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아내와 식사를 한 후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사이에도 대화를 방해하면서 여러 곳에서 전파가 날아온다. 여론조사도 있고 상품광고 부동산을 사라는 광고 등 끊임없이 부부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벨이 울리는 일상이다. 아내는 그런 전화도 바로 끊지 못했다. 콜 센터의 일하는 사람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내가 친절하게 일일이 응답하는 사이에 나라는 존재는 앞에서 안개같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 잔을 들고 조용히 일어나 나의 골방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전화 받기 곤란하다는 양해를 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불친절한 것인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모임에 참석해 보면 시종일관 스마트 폰을 들고 누구에겐가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일만 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는 몸은 모임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 같았다. 문득 어떤 책에서 본 한 광경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도자는 “앉을 자리에 있을 때 앉고 설 자리에 있을 때 선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대답하자 수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앉아있을 때 벌써 서 있을 것을 생각하고 서 있을 때는 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밥을 먹지 않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하지, 하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앉아있을 때는 앉아있고 서 있을 때는 서 있을 뿐입니다.”

의미 있는 말이었다. 젊은 시절 교회에 갔다 오면 아내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참 이상해.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앉아있으면 가계부에 적을 숫자만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 내가 평소에 숫자놀음은 아주 싫어하는데 교회에만 앉으면 그래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순간순간 내가 할 일에 열중하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념에 빠져 끌려 다니고 있었다. 내 마음은 항상 동시에 몇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는 멀티 시스템 같기도 했다. 인간관계에서도 동시에 여러 일을 하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전에 유명 신문사 정치부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한 게 떠오른다.

“좀 세력이 있다는 정치인한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가보면 말이야. 나까지 포함해서 동시에 기자 여러 명을 불러놓고 얘기하는 거야. 그런 경우 속으로는 참 불쾌해.”

그 정치인은 동시에 여러 일을 하려다가 오히려 손해를 본 것 같았다. 예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시키지 않으신다. 일생을 통해 매순간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 임무를 충실히 하는 동안 나에게 다른 의무는 없다. 믿는 자는 그래서 시간이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노년의 요즈음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여행도 더 하고 싶고 드럼도 춤도 바둑도 배우고 싶고 주민센터에 가서 명상도 국선도도 하고 싶다. 그런데 주님은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생각을 화두 삼아 글을 쓰는 일에 더 기쁜 마음을 주신다. 그분은 내게 ‘그냥 좋아하는 일 하나만 여유롭게 해’라고 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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