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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운영자 2021.03.29 10: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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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직장에서 면직처분을 받은 오십대 쯤의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지난 세월 참 잘못을 많이 했습니다. 먼저 진급을 하려고 경쟁자들을 욕하고 비난했어요. 항상 눈에 불을 켜고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싸워왔죠. 그래도 진급이 늦어질 때가 있었어요. 괴로웠죠. 그 괴로움도 나보다 경쟁자가 먼저 진급했다는 데서 오는 질투와 시기였죠. 평생을 경쟁하고 비교하고 살았던 공직생활이 삭막하고 힘들었어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나이 먹은 지금까지도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는 그런 상처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군에서 직업 장교로 복무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느새 동기생들은 대령으로 진급하고 장군이 된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나만이 아직도 하급장교인 육군 대위로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는 억울함이 들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러다 꿈을 깨서는 그런 경쟁 사회 속에 있지 않은 현실을 느끼고 감사한다. 친하게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이 있었다. 산동네 판자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집에 가서 잔 적이 있다. 낡은 블록 벽의 뚫린 구멍을 통해 방안으로 겨울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아침이면 찬밥 한 덩이와 라면 스프를 넣은 뜨거운 물이 그의 국이었다. 그의 대학생활은 비참했다. 일 년 벌어서 일년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그는 팔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취직을 했다. 취직을 하고 한번은 그가 작성한 대학노트를 보여주면서 이런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수백개의 원단마다 어느 공장에서 만들고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공책에 쓰고 달달 외웠어. 그리고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이 다 퇴근한 후면 혼자 남아서 불을 끄고 수백개의 원단 샘플들을 손으로 만져보는 연습을 했어.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도 가지런히 떡을 썰고 한석봉이 반듯한 글씨를 썼듯이 나도 정확히 손으로 원단샘플을 구분해 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는 원래 그렇게 노력하는 친구였다. 그는 대기업에 오래 있지를 않고 몇 년후 혼자 샘플 가방을 들고 홍콩의 구룡상가 오래된 골목 포목상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중국 사람들은 정말 거래선으로 뚫기가 힘들어. 중국에서 하루 종일 샘플을 들고 이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 걸 깨닫고는 사무실 구석 책상틈에서 마른 빵을 씹어먹을 때면 눈물이 울컥 나. 낯선 나라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니까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비참해. 그래서 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어. 구태어 비교한다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만 비교하기로 했지.”

우리가 오십대 초반쯤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는 드디어 성공을 거머쥔 것 같았다. 그는 뉴욕의 부유한 백인들이 사는 동네에 좋은 저택을 구입 해 살고 있었다. 여러명의 미국인들을 고용해서 회사를 경영하고 홍콩과 서울에도 그가 하는 커다란 식당이 있었다.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만족할 거야. 앞으로는 사업도 좋은 사람들과 만나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일만 할거야. 그냥 돈만을 벌기 위해 싫은 놈들과 만나 술사주고 돈주고 마음에 없는 비위를 맞추는 로비는 절대 하지 않을거야. 짧은 인생인데 남들이 얼마나 잘 살건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나대로 즐겁게 살 거야.”

그는 그렇게 행복의 나라로 건너간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베드로의 앞날을 예언한 부분이 나온다.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그 옆에 있었다.

“주님 요한은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물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예수가 반문했다. 비교하지 말고 각자가 자기 운명을 따라 자기 길을 가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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