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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산에서 쑥을 뜯어먹고 살았어

운영자 2021.05.03 1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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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산에서 쑥을 뜯어 먹고 살았어




내가 그 노인을 찾아간 것은 이천십사년 오월 십팔일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었다. 백 세가 가까운 노인이 작은 아파트의 문 옆에 있는 작은 방에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고 불렀다. 젊어서부터 평생 수도생활을 해 온 분이라고 했다. 육십년대 그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서 만든 수도원이 포천에 있었다고 했다. 그 노인은 누워있던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마치 높은 산의 암벽을 오르는 것 만큼이나 힘들어 보였다. 노인은 벽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의지하고 거실로 나왔다. 근육이 바짝 말라버린 새 같은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아파트에는 노인 또래의 늙은 아내만 함께 살고 있었다. 노인의 입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성경 귀절들이 웅얼거리며 흘러나왔다. 성경이 피에 녹아 들어가 육신이 되고 영혼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의 떨리는 음성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여기 옆에 하나님이 계셔. 영(靈)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

이미 저세상 쪽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한 노인의 음성에서 는 절대자에 대한 굳은 확신이 느껴졌다.

“산에서 이세종을 만났는데 키가 작은 사람이었어. 밥을 구걸하러 다니는 거지 같은 모습이었지. 산에서 쑥을 뜯어먹고 살더라구. 그런데 보니까 성자인 거야.”

나는 어떤 글에서 ‘이세종’이란 인물을 역사 같이 읽은 기억이 있었다. ‘도암의 성자’라고 불리던 이세종은 조선조 말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한 공부는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깨 넘어 간신히 한글을 깨친 정도였다. 그는 어느 날 친지의 집에서 우연히 성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성경을 빌려다가 집에서 틈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성경이 진리임을 깨닫고 금욕적이고 절제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근면하고 성실한 그는 땀을 흘리는 정직한 노동으로 수십 마지기의 논과 밭을 마련했다. 어느 해 도암면에 가뭄과 흉년이 들자 그는 가지고 있던 양식을 굶는 사람들과 나누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그를 존경하고 지혜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한 명씩 찾아들었다. 일제강점기였던 그 시절 그는 신사참배를 피해 화학산에 은거하여 산막에서 살았다. 그 산막에도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찾아가곤 했었다. 그가 산에서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그의 뜻을 이어 우리나라 토착 수도원인 ‘동광원’을 창설했다. 구한말 태어난 머슴 출신의 강증산 같이 한 종교를 창설하기에 충분한 인물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자라고 해서 내가 찾아간 그 아흔 여섯살의 노인은 산에서 이세종을 만나 함께 했던 것 같았다. 앞에 있는 노인이 쇳소리가 섞인 음성으로 더듬더듬 힘들게 말을 계속했다.

“이세종이 사는 산막에 사람들이 모여 그 얘기를 듣곤 했지. 그 때 한 여자가 공책에 그 말을 받아쓰곤 했었어. 그게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 무렵 어느핸가 홍수가 나서 거기 살던 사람들의 살림이 모두 넘치는 개울물에 떠내려갔어. 아마 그때 그런 공책도 다 유실됐을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촛불같이 꺼져가는 내 앞의 늙은 성자의 한마디도 후일이면 귀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혼자 느끼시는 것은 어떤 겁니까?”

내가 물었다. 평생을 수도 생활을 한 노인이 인생의 마지막에 다가오는 생각들을 알고 싶었다.

“나는 이미 죽을 때가 지났지. 그런데도 생명이 붙어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나도 선한 일을 한 게 없어. 전에 잘했다고 여겼던 것도 지금 보면 아니야. 다 명예욕이고 욕심에서 했던 거야. 인기 얻으려고 꾸미고 조작했었어.”

그 말을 들으면서 인간은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성경속 바울의 탄식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노인은 찾아간 내게 그가 육필로 메모해 놓은 글들의 복사본을 선물같이 건네주었다. 흔들리는 노인의 필체로 한자가 가득한 영계에 대한 난해한 글들이었다. 그 얼마 후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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