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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 오는 병에 걸렸어

운영자 2021.06.07 10:55:03
조회 193 추천 3 댓글 1

나이 들면 오는 병에 걸렸어




대학동기인 친구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나 성모병원에 있어. 올 게 왔어. 나이 들면 오는 병에 걸렸어.”

순간 나는 그가 암 선고를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다.

“어디가 아픈 거야?”

내가 되물었다.

“왼팔과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뇌경색이래.”

“풍을 맞았구나.”

“그래 우리들 아버지 세대에는 중풍에 걸렸다고 하는 거지.”

나는 그에게 순간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줄까 속으로 생각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나도 그렇다는 말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다.

“너만 한쪽을 못 쓰는 게 아니야. 나도 왼쪽 눈의 시신경이 죽어서 못 봐.”

내가 나의 상태를 말했다.

“한쪽 눈을 쓰지 못하면 노동능력의 상당부분이 감수되는데 몇 퍼센트더라?”

어쩔 수 없이 법률사무소 사무장을 평생 해 온 그의 직접적 본능이 발동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프다는 소리에 그의 목소리에 생기가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내가 병원에 갈 께”

내가 말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면회가 안 돼. 가족도 못 만나는데 뭘. 그리고 얼마 있다가 재활병원으로 옮겨갈 거야. 오지 마.”

그의 대답이었다. 이제 그도 이 사회와의 인연을 멀리하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평소에 중풍으로 몸을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이 배어있었다. 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의 스산한 이십대가 저물 무렵이었다. 법무장교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나는 어느 날 점심시간 무렵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를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사장은 부대에서 차로 십여분 거리에 있었다.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한 아버지는 퇴직금으로 변두리에서 작은 연립주택을 짓고 있었다. 찦차를 타고 아버지가 있는 공사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공사장 바닥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운전병과 함께 아버지를 찦차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달렸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는 전신 마비상태가 됐다. 병원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공허했다. 삼십년 가까이 시계추 같이 고정적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일 년 전 퇴직했다. 그건 아버지에게 사회와의 단절이었다. 그리고 중풍으로 몸이 마비된 것은 오래된 목가구가 어느 날 갑자기 비틀려 쪽이 떨어져 나가면서 무너져 내리는 과정 같았다. 밥을 먹을 때 반은 들어가고 반은 흘러나오는 수치를 아버지는 참기 힘들어 했다. 팔에 꽂힌 링거의 주사줄을 다 뜯어내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기도 했었다. 집요한 의지 덕에 아버지는 재활에 성공해서 지팡이를 짚고 혼자 걸어 다닐 정도가 됐었다. 육군 대위로 삼십 고개에 들어선 나의 삶이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날로 변했다. 전세 아파트에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아들 딸을 돌보는 가장이 되어야 했었다. 슬픈 속에서도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겨냈다. 고통을 통해서 빗장이 걸려 있던 나의 마음이 열렸다. 그 분은 우는 마음 허탈에 빠진 마음 어둠에 잠긴 마음에 다가오셨다. 내가 기진맥진해서 한발도 나아갈 수 없을 때 찾아오셨다. 고통을 마주보게 하시고 고통을 느끼는 신경줄을 끊어주셨다. 그게 은혜였다. 아버지도 세상 무대에서 내려오고 몸에 녹이 슬어 붉은 물이 흘러내릴 때 그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그 분을 찾았다. 그리고 십자가를 손에 쥐고 죽음의 강을 건너 영원한 나라로 건너갔다. 아버지 육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나도 항상 어떤 두려움이 있다. 태어나면 늙어야 하고 병이들면 죽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도 삶에 집착하는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은 죄인이다. 나는 반신마비가 온 친구가 병원에서 평생 최초로 가지는 고요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도 과외선생을 하느라고 자신의 고시공부를 할 수 없었다. 입에 밥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변호사로 있는 친구들이 일하는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내면에 피를 흘렸을 것이다. 이제 그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 세상의 온갖 바람이 잠들고 물결 고요한 속에서 그 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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