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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채플시간

운영자 2021.06.21 10:17:04
조회 174 추천 2 댓글 1

이화여자대학교 채플시간




이십여년전이었다. 이화여자대학 총장이 채플 시간에 와서 변호사로 살아가면서 겪은 얘기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의 영광된 자리라 감사하며 초청에 응했었다. 강연하는 당일 연단에 올라서자 넓은 홀에 들어찬 여대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높은 단 위에 서면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들으러 온 여대생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마음과 귀를 꽁꽁 닫아놓은 게 느껴졌다. 감점이 되지 않으려고 의무적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온 얼굴들이었다. 책상 위에 리포트나 과제물을 놓고 처리하기도 하고 다리를 꼬고 팔장을 낀 채 지루한 표정을 짓고 눈을 감고 있는 있기도 했다. 옆에 앉아있는 대학총장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흡인할 수 있는 화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위축이 되면 오히려 말을 더듬고 당황해서 같은 말을 또 하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화술을 가진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진땀을 흘리고 간신히 강연을 마쳤다. 그냥 내가 체험한 이야기 한 토막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대충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탈주해서 도망을 다니는 절도범이 비오던 어느 날 밤 여대생 이 세 들어 사는 방으로 침입했다. 지방 출신의 가난한 여대생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알바를 몇 개나 뛰었다. 그녀의 방으로 들어온 탈주범은 쫓기고 있다고 하루 밤만 그곳에서 머물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를 측은하게 본 여대생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지어 탈주범에게 먹였다. 따뜻한 작은 방에서 몸을 녹이고 배를 채운 탈주범은 뭔가 그녀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 물었다.

“소원이 뭐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밖의 공터에 주차해 둔 차의 트렁크 속에 가득 든 돈을 떠올렸다. 돈 많은 청담동 부자집에 들어가 턴 돈뭉치들이었다.

“알바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돈방석에 앉아보는 게 소원이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돈을 주면 충분한 보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두둑하게 주면 당분간 그녀의 방에 은신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가 잠시 그 방을 나갔다가 잠시후 돈이 가득 든 무거운 검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가 그녀에게 그 가방을 건네 주었다. 그녀는 말없이 가방을 받아 지퍼를 열었다. 속에 돈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가 그 돈뭉치를 꺼내 방바닥에 돈방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는 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방을 당분간 은신처로 삼어도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앉았던 돈방석에서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돈을 다시 가방 속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말했다.

“이제 비도 그치고 날이 밝아오니까 가세요.”

그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그는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밥 한끼 얻어먹은 댓가로 너무 많은 돈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엉거주춤 쫓기듯 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따라 나오면서 손에 든 돈이 가방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 가지고 가세요.”

그는 순간 다른 계산을 했던 자신이 쑥스러워 말했다.

“그러면 얼마라도 받아요 신세를 졌으니까”

“아닙니다. 받을 수 없어요. 저는 제가 아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예요. 앞으로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사세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탈주범과 지방 출신 가난한 한 여대생과의 짧은 순간의 공존과 그 의미를 이화여대 채플시간에 전해주고 싶었다. 강연을 듣는 이화여대생들의 상당수는 나중에 대한민국 지도층의 부인이고 엘리트들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한 여인이 지녀야 할 개결한 자존심과 탐욕의 우상이 아닌 신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몇 달 후 이화여대생이라고 하면서 한명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그날 채플 시간 저희들의 경박한 태도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여대생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우주는 언제나 귀가 열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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