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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빌어봐

운영자 2021.07.05 10: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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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빌어봐




아들이 사기죄로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작은 보험에 들었었는데 아들이 보험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되어 보험회사가 제삼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것 같았다. 아들의 통장에는 내가 보내준 돈이 그 보험금 이상 충분히 있었다.

“변상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보험회사를 속여 계약을 한 거죠.”

검찰 서기가 늪 가의 악어처럼 단번에 아들을 물어 사기죄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철 의자에 앉은 아들은 그 질문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 옆에서 젊은 검사가 팔짱을 끼고 독사눈을 한 채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예 아들을 사기범으로 만들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아들 옆에 있던 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보험금을 변상할 능력이 없긴 왜 없어? 아들 통장에 내가 보내준 돈만 해도 충분하고 애비인 내가 그 몇 십배라도 갚아줄 능력이 있는데 말이야.”

“가만히 계시지 못하겠어요? 아버지가 아닌 변호사라면 벌써 검사실 밖으로 내쫓았을 겁니다. 저 지금 많이 참고 있습니다.”

“아들을 사기범으로 생사람 잡고 있는데 애비가 그걸 참고 있으라고? 쫓을라면 쫓아봐라. 어디 한번 붙어보자.”

내가 흥분해서 검찰 서기에게 계속 덤벼들며 소리쳤다.

“한 번만 더 유도신문으로 잡으면 내가 이 검사실 바닥에서 뒹굴어 버릴 테니까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경험없는 검사나 서기의 공명심은 허위의 사실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었다. 나는 육탄전에 가까운 행동으로 검사와 서기가 아들을 사기범으로 조서를 꾸미는 걸 막았다. 그리고 아들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다급할 때 나오는 집안의 북쪽 함경도 기질이라고 할까? 아니면 조선 시대 무서운 임금에게 덤벼 이백년 동안 산채에서 숨어 살았던 조상의 유전자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들이 궁지에 빠졌을 때 아버지마다 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시청율이 높았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조폭의 두목으로 나온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이 있었다. 그를 변호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 느꼈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사고를 쳐서 검사실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아버지가 오셔서 젊은 검사에게 끝도 없이 머리를 숙이면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더라구요. 막 무릎을 꿇으려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지방에서는 유지고 누구한테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대단한 아버지가 검사한테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사정하는 걸 보니까 내가 화가 나더라구요.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그렇게 빌 사고를 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검사 새끼한테는 나도 머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어른이 되어 골프장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던 강력검사 홍준표와 시비가 걸렸고 그 악연으로 한바탕 세상의 풍파가 일고 드라마까지 나오게 된 주인공이었다.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로 나온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아들이 사기죄로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애비로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본인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판사 시절 내가 보기에 그는 목이 곧은 편이었다. 자기 생각과 기준 이외에 남의 의견은 귀에 들어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의 표정에서 고민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담당 검사에게 가서 아버지로서 무릎을 꿇고 빌거나 아니면 싸워봤어? 아들을 위한 건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아니요,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데”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들을 담당하는 새까만 후배 판사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빌 수 있어? 마지 못해 하는 게 아니라 눈물을 흘릴 정도로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절 할 수 있냐는 말이야.”

“------”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법관 생활을 하면서 지녔던 자존심을 허물어뜨려야 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삼십년이 넘게 변호사를 해 온 나는 판사생활과 최고의 법학자인 후배에게 이렇게 나의 솔직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사람을 살리는데 법률이고 판례고 나는 다 개똥 같다고 생각해. 가장 힘이 있는 건 무릎을 꿇고 절실하게 비는 거야. 간절하게 비는 힘은 쇠도 녹일 수 있어. 제 속이 차 있다면 무릎을 꿇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무릎을 꿇었다고 해도 잃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들을 위해 한번 해봐. 나도 최근에야 깨달은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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