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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의 꿈속

운영자 2021.07.19 09: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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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의 꿈속




삼십년간 변호사를 해 오면서 살인사건을 참 많이 맡아서 했다. 살인범들은 자신이 살인했다는 기억을 얼른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의 행위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어서 급급했다. 살인을 했으니까 댓가를 치르겠다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처절하게 반성을 하는 경우도 현실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살인에 대한 자각과 고통은 엉뚱한 곳에서 오는 것 같았다. 한번은 감옥 안에서 어떤 살인범이 이런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이 살인을 했는지 아닌지는 수사보다 이 감옥안에서 자는 모습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그의 얼굴에는 뭔가 확신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어떻게?”

내가 되물었다.

“내가 있는 감방 안은 모두 살인범들이예요. 몇 달을 함께 있으면서 봤는데 잘 때 꿈속에 뭐가 나타나는 지 소리치고 식은 땀을 흘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예요.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났을 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죽인 사람이 꿈에 나타나 자기 목을 조른다는 거예요. 죽은 사람들이 살인을 한 사람들의 꿈 속에 꼭 나타나요. 그게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는 사람들은 살인범이 아닌 거죠.”

그의 말이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그 귀신이 떠돌다가 자기를 죽인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내게 말을 해주는 그는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인색한 과수원 주인 영감을 다른 일꾼과 함께 얼떨결에 목 졸라 죽였었다.

“살인을 하던 순간의 감정을 솔직히 말해봐. 위선이 섞인 법원용 말고 진실한 마음을 말이야.”

“제 경우는 고용된 방글라데시사람과 둘이서 과수원 주인영감 방에 들어갔었어요. 평소 그 영감님이 얼마나 우리를 막 대하고 돈에도 인색했는지도 몰라요. 그냥 참고 일을 했었죠. 그런데 그날 방글라데시에서 온 인부에게 깜둥이새끼라고 무시하는 말을 쓰면서 막 대한 거예요. 그 사람도 한국에 온지 일 년이 넘어서 욕하는 건 알아들었거든요. 그 방글라데시인이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영감의 턱을 한 방 날렸죠. 나가떨어진 영감의 부릅뜬 눈을 보니까 ‘너희들 이제는 죽었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만약에 살아서 다음날 아침이 되면 우리가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목을 졸랐는데 죽은 영감의 퉁방울 같은 눈만 떠올리면 지금 이 감옥 안에서도 온 몸에 소름이 끼쳐요.”

살인은 순간에 그렇게 격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내를 죽인 남편의 변호인이 된 적이 있었다. 연극영화과를 나와 영화감독이 된 남편은 끔찍하게 아내를 사랑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워 잠에서 깬 아내의 침대에 가져다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던 그 남편은 어느 날부터 허리가 심하게 아파 집에서 스스로를 유폐하다 싶이 살았다. 영화감독으로 아카데미상을 받고 싶었던 소망을 가졌던 그의 희망이 병 때문에 꺽였다. 어느 날부터 그에게 망상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그의 장인이 딸을 몰래 데려갈 것 같은 피해망상이었다. 장인은 문화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장인의 제자쯤 되는 셈이었다. 그에게 정신분열의 진단이 내려졌다. 모든 게 끝이었다. 케리어 우먼이던 아내는 잘 나가던 천재 남편의 정신병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집 한쪽 구석방에 숨겨둔 남편처럼 그도 혼자 어두운 방에서 아내만 기다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부부만 있던 집에서 아내가 죽은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아내를 죽인 사실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변호사인 나보고는 밤에 누군가 은밀히 침입해서 아내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가 죽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살인의 기억을 말소해 버렸다.

“아내가 꿈 속에 찾아왔어요?”

내가 물었었다.

“검은 빌로드 원피스를 단정하게 입고 나를 찾아왔어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보고 잘 있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는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본 현실 속의 살인범은 그런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이 꿈 속에서 다시 만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 관계도 참 여러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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