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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을 손가락질 하는 마음들

운영자 2010.09.14 14:16:14
조회 317 추천 0 댓글 2

    며칠 전 유명언론사 주필을 지냈던 후배와 얘기를 나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돈이 없으면 대학도 로스쿨도 다닐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라는 테마는 시의적절하다는 것이다.

 

    문득 대학시절 어느 비오는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산 자락의 암자에서 들었던 뒷방 하숙생의 신세한탄이었다. 월남전에 참전한 그는 제대 후 우체국의 말단서기가 됐다. 어느 날 그는 무심히 담배를 문 채 돈을 세다가 목이 잘렸다. 별다른 배경이 없어도 독하게 공부만 하면 기회가 있던 시절이었다. 일 년 만에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5단계를 뛰어오른 중견공무원이 됐다. 그 시절 고시는 패자부활전의 좋은 통로였다. 또 다른 비유를 하자면 로또복권과 비슷하다고 할까? 당첨되는 것도 좋지만 무지개빛 꿈이 아픈 현실을 위로해 주곤 했다.

 

    내가 목격한 인생역전의 경우도 많았다. 신문에서 거명된 총리후보를 보고 피식 웃었다. 경례를 안했다고 억울하게 영창에 갔다 온 후 그는 고시공부를 했었다. 근엄한 서울의 한 법원장은 젊은 시절 기업에 취직하는 게 소원이었다. 형사 앞 철 의자에 앉아 조사받던 청년이 머리 희끗한 법원장이 되어 미소를 짓기도 한다. 상고를 졸업하고 토굴 속에서 고시를 준비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역시 대표적인 인생역전이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어야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가부장적 세습의 전제왕권에 공산주의라는 가짜 상표만 붙인 북한보다 회사원이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이 훨씬 건강하다. 작은 거짓말에도 총리와 장관후보가 낙마하고 장관 딸의 특혜가 거론되자 즉각 각료가 경질되는 사회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20년 변호사 생활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정하냐는 것이다. 맞는 소리다. 세상은 그랬다. 그런데 천국이 아닌 한 정의가 강물같이 흘러가는 곳은 현실에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은 적당히 해도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이중성이었다. 잘못을 하고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들 했다.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에 대한 개념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게으른 꼴등이 일등과 같다면 그리고 개미같이 노동한 사람과 베짱이 같이 놀기만 한 사람이 같다면 그건 공정이 아니다.

 

    우리사회는 ‘독 속의 게’같이 조금 올라가려는 것들은 모두 뒤에서 잡아끌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통쾌해 한다. 백년 전통을 자랑하던 명문중고등학교는 평준화라는 명목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대학도 그렇고 개혁이란 명분으로 고시제도도 없어져 간다. 그럴싸한 명분은 넘치지만 이면에는 시기와 증오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청문회에서 각료후보들이 만신창이가 되는 걸 보면 피를 보고 관중들이 흥분하는 로마의 검투장이 연상된다.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장관이나 교수가 될 수 없고 부자도 되고 싶다고 해서 모두 돈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조물주가 태어날 때부터 각자에게 준 지능과 배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게 정의라고 했다. 공부는 못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만족한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영국의 경우 이튼스쿨은 나라를 다스릴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그러나 아핑검 스쿨은 한 가지 기능이라도 철저히 갈고 닦을 수 있는 장인 교육장이다. 그걸 불공정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자연도 그렇다. 나무들은 음침한 계곡에서 태어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햇볕 좋은 산등성이에서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무시하지 않는다. 진달래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면서 산을 푸르게도 하고 붉게 물들이기도 한다. 우리사회도 그런 조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너는 빨강이고 나는 노랑이다라는 색깔의 차이정도로 다름을 인식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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