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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는 문학

운영자 2022.04.11 10:01:06
조회 80 추천 0 댓글 0

이십대 무렵 나는 통속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고시공부 시절은 청계천 헌책방에서 소설을 여러 권 사서 배낭에 넣고 절로 갔다. 공부하는 암자의 뒷방에서 달콤하고 흥미진진한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었다. 신혼초도 마찬가지였다. 산동네 한집에 열세 가구가 사는 쪽방에 살면서도 비가 축축하게 오는 날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추리소설을 읽었다. 배가 출출하면 냄비에 국수 한 그릇을 끓여 먹고 다시 소설을 읽었다. 섹스와 살인이 반복되는 통속 소설 속에서도 나는 작가가 숨긴 문학적 의도를 더러 들여다 보곤 했다. 그 속에는 슬픔이 있었다. 동시에 절망속의 기쁨이라는 요소도 있었다. 비참한 불행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주인공에게 나는 마음의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가지는 평범한 행복조차 포기하고 가난과 고독속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악을 추적하는 형사의 집요함에서 나는 인생의 비밀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삼십대가 되면서 취향이 조금 바뀌었다. 예를 들면 펄벅의 대지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같은 작품이 좋아졌다. 그 책에는 통속소설보다 더 깊은 작가의 사상이 들어있었다. 그 책들을 읽은 후에는 마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다.

세월을 통과하면서 살아남은 명작들에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었다. 사십대가 되어서는 작심하고 고전을 읽었다. 솅케비치라는 작가가 쓴 쿼바디스를 읽었다. 그리고 울었다. 누렇게 변색 된 종이에 깨알 같은 글자가 인쇄된 책 속에 나의 영혼의 물결을 심하게 일으키는 어떤 게 분명히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나는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게오르규의 ‘25시’를 읽고도 울었다.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는 인간을 바꾸는 절대자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토스토엡스키의 작품의 중간에 나오는 죠시마 장로는 변장하고 나타난 예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전에는 그분의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죄의 댓가는 죽음으로 알라고 했다. 그러나 비참한 속에서 들리는 작은 기쁨의 노래소리를 듣고 삶이 죽음을 이겼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문학가들은 세상에 물질적인 밥을 주지는 못하지만 사상이라는 정신적 양식을 주면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고맙고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의사였던 노신은 중국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문학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영국의 작가 크로닌은 의사를 하다가 작가로 변신했다. 그는 챠트의 용어만 알다가 나이먹고 소설을 쓸려고 하니까 한심하더라는 자기 고백을 쓴 글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있었던 탓인지 그들은 문학적 욕심이나 명예욕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마음을 문학의 제단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자신의 시골의사 체험을 형상화한 크로닌의 작품에서는 욕심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맑고 투명한 사상이 느껴졌다. 깊이 얽힌 복잡한 생각들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들은 경험이었다. 인생의 깊은 사실들이었다. 의사로 행하고 싸우고 괴로워하면서 얻은 것들을 그는 썼다. 글로써 세상에 유명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의 눈을 덮는 다른 욕심도 없어 보였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우주에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길가의 풀까지도 환희의 씨가 되는 걸 글로 나타내고 있었다. 나도 글 쓰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작은 글을 써 왔다. 여러 문인들을 만났다. 어떤 분은 세상이 문인을 박대한다고 불평을 했다. 아마도 사회가 문인에게 지불하는 돈이 부족하다는 말 같다. 나같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아마츄어로 글을 쓰는 사람은 문인들의 입장에서는 아류일 것이다. 덕분에 외부의 시각으로 그들을 볼 수 있다. 문인의 보수란 돈으로 헤아릴 게 아닌 것 같다. 문인의 보수란 출판사가 그에게 지불하는 돈이 아닌 것 같다. 또 세상이 그에게 바치는 칭찬의 말도 아니다. 문인의 보수는 그가 하늘로부터 받는 깨달음이랄까 사상이 아닐까. 사상과 돈은 전혀 질이 다르다. 그것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 그것을 글로 썼을 때의 그 만족 또 이것을 세상에 발표해서 다소의 동의를 얻었을 때의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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