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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위선사회

운영자 2022.07.18 09:52:57
조회 160 추천 1 댓글 0

오후 세시 삼십분 나는 그 남자와 함께 법원의 1009호 조정실로 들어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여판사와 그 여자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의 의뢰인인 남자는 유부녀인 그 여자와 불륜 계약을 맺고 은밀히 동거했었다. 사랑으로 시작한 그들의 불륜이 소송으로 끝맺음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반하고 몰입했다던 그 여자는 은은한 비둘기색의 고급 명품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달걀형 얼굴에 청순미가 도는 느낌이었다. 남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미인이었다. 여판사가 먼저 그 여자를 보고 물었다.

“같이 살아주면서 얼마를 받았어요?”

그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대략 삼억원쯤 되는 것 같아요.”

“그 돈은 얼마 동안 살아주는 데 대한 댓가였나요?”

“일 년 정도요.”

“그 액수면 좀 비싸지 않은가?”

여판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매춘의 댓가가 법대 위에서 당당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판사가 비싸다는 말에 그 여자가 즉각 이렇게 반응했다.

“저는 대학을 나와 국회의원 여비서도 하고 사업도 한 케리어 우먼입니다. 그리고 다른 경력도 있습니다.”

매춘에도 학력 경력이 좋으면 명품으로 취급이 되고 가격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하기야 미녀 탈랜트에게 재벌회장이 백지수표를 줬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그 여자가 말을 계속했다.

“헬스클럽에서 만난 저 남자가 저와 같이 살자고 하면서 한 달에 팔구천 만원은 보장한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준다고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유부남과 불륜계약을 맺고 돈을 받는단 말인가요?”

여판사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 무렵 남편이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았어요. 남편과 가정불화도 있었구요. 저 남자가 그 사실을 알고 나보고 만나자고 했어요. 돈은 충분히 준다고 했어요.”

“한 달에 팔구천만원씩을 그냥 준다고 했나요?”

“네 그냥 준다고 했습니다. 각서도 써줬구요.”

이번에 여판사는 내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네 저 여자 말대로 같이 사는 댓가를 충분히 줬습니다. 그 외에 BMW와 보석을 사 준 금액이 사억 오천 만원이 넘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 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냥 준게 아닙니다. 그건 도로 찾아야겠습니다. 시가로 치면 이십억이 넘습니다.”

여판사는 그 말을 듣고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아파트도 절대 줄 수 없습니다. 저한테 모든 걸 준다고 했던 남자입니다. 제가 특히 괘씸하게 생각하는 건 저 남자가 나와 같이 살자고 해놓고는 뒤로 외국에 있던 본처를 귀국시켜 데리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본처가 사는 그 아파트 옆에 똑같은 아파트를 사달라고 한 거죠.”

나는 그 여자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박하게 사는 서민들이 그들의 불륜과 거액의 댓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불륜의 댓가로 준 것은 반환청구가 불가능했다. 그 여자가 승리했다. 돈이 많은 그 남자는 당당한 태도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돈을 벌어서 십억짜리 수제 포르쉐를 주문해서 그걸 타고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수십억짜리 별장을 샀다가 버리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면 자기 돈 가지고 명품으로 보이는 미녀를 데리고 사는 게 뭐가 다릅니까?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나 가치관도 사람에 따라 다른 거 아닙니까?”

그런 식의 사고에 동의 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나니까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그가 치사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십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면서 보고 들은 악취나는 사회 하수구의 모습은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란다. 결혼제도가 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속에서 일부일처제는 이미 실종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차라리 법적인 싱글로 지내면서 이성과 사귄다는 말로 프리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수구 옆에 사는 직업을 가지고 그 악취가 배었기 때문에 편견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마광수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발표했다가 구속이 됐었다. 그 소설의 내용은 거의 예전 화장실의 음란한 낙서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교수가 그런 글을 썼다는 데 대해 여론이 들끓고 법의 단죄를 요구했다. 그가 자살하기 전 우연히 만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즐거운 사라는 여성의 성적해방을 솔직하게 얘기한 건데 왜 법이 나를 감옥까지 보냈는지 모르겠어. 담당 판사가 일부일처주의가 무너져 가는 건 알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 문학이 법의 단죄를 받으면 포르노는 왜 안받죠? 자유롭게 간통을 하고 그걸 책으로 내서 자랑한 여성탈랜트는 왜 법이 관여하기를 포기하죠?”

마교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 속 아이같이 임금님의 수치를 솔직히 얘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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