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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결혼 2

운영자 2010.10.28 12: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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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퇴근해서 돌아오던 나는 아내에게 뭔가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 놓인 좌판에서 사과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부사’라는 금딱지가 붙은 사과 한 알을 사서 소중히 들고 가 아내에게 주었다.


  둘이 누우면 무엇 하나 더 놓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방에 있는 나는 더없는 부자였다.


  정초 어느 날, 아랫집에 물을 얻으러 갔더니 얼굴을 찌푸리면서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어 그 옆집 보일러실로 들어가 고여 있는 물을 떠왔다. 그 물로 밥을 하니 밥이 새빨갰다.


  “밥 색깔이 왜 이렇죠?”

  하영이 내게 물었다.


  “보일러 옆 통에 고인 물을 떠왔는데.. 그게 녹물이었나 보구나.”

  그래도 우리는 그 밥을 맛있게 먹었다.


  하영은 석유곤로보다 가지고 있던 전기 곤로를 더 자주 사용했다. 어느 날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마당에서 여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계량기 훽훽 돌아가는 거 보세요.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전기로 밥을 해 먹는 게 틀림없어요. 분명 2층 구석방 여잘 거예요.”

  중년 여인네가 노골적으로 빈정거렸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각 세대마다 자기가 사용한 전기료를 지불하는데도 남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하영을 위해서라도 내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처가로 인사를 가니 장인께서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셨다.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장모님은 사위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한 채 얻어줄 테니 와서 사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우리 둘 다 부모의 손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딸이 고통 받는 걸 볼 수 없는 처가 부모의 고집을 꺾기가 힘들었다. 그해 말 하영의 부모는 집 옆에 넓은 2층을 전세로 얻었다. 나는 마지못해 그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영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어느 날, 우연히 육군본부에 갔다가 전방을 지원하면 장교관사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집이라면 보증금이 필요없다. 그리고당당하게 내 권리로 집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주저없이 6.25 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로 유명했던 철원평야의 6사단으로 임지를 지망했다. 서울 지역 부대에 근무하기는 빽을 서도 힘들었지만, 자청해서 최전방으로 간다는 데야 인사권자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하영의 집에서는 막무가내였다. 철책선이 있고 군인들만 우글거리는 전방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헤어져도 좋다는 뜻마저 내비치는 것 같았다. 처가 옆에 산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전방부대로 갈 명령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시 한번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았다. 하영이 더 이상 나를 따라오기 힘들어 한다면 가슴 아프지만 여기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곱게 자란 여자가 전방까지 따라올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곱지 않은 처가살이보다는 들판에 세워진 움막 같은 바라크 집이라도 좋으니 내 집에서 살고 싶었다.


  전방으로 가기 전날 오후, 나는 집으로 가서 주섬주섬 속옷가지 몇 개를 군용백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거예요?”

  “전방 부대에.”


  “난 안 갈래요.”

  하영의 표정은 단호했다.


  “알고 있어.”

  “그럼, 난 어떻게 해요?”


  “먼저 전방부대에 가서 관사를 얻어놓고 기다리겠어.”

  “난 거긴 못 가요.”


  “오기 싫으면 안 와도 왜. 하지만 기다릴께.”

  철원의 화지리로 향하는 시외버스가 포천을 지나 황량한 겨울 들판을 뚫고 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반원형 양철 군용막사와 부대들만이 눈에 띄었다. 겨울 해는 벌써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지고, 저녁 어스름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검은 먹물을 푼 듯 깜깜해졌을 무렵 나는 긴장감이 감도는 사단사령부 앞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철컥 하는 금속성의 음향과 함께 큰 외침이 들렸다.


  “정지! 바닥에 엎드려 뻗쳐!”

  나는 차가운 흙바닥에 양팔을 벌리고 배를 깔고 엎드렸다. 대검을 꽂은 보초가 다가와 암구호를 대라고 했다. 나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전방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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