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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줄 간 호적이 무서워

운영자 2010.11.25 18:50:20
조회 421 추천 0 댓글 0

  금년 쉰아홉 살인 김복순씨는 쌍꺼풀 진 커다란 눈에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대학 구내식당에 파출부로 나가는 그녀는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교 측에서는 정식직원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사코 사양했다. 파출부로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겸손이 더 눈에 띄는 착한 여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신설동에 있는 동료의 집으로 찾아갔다. 일이 바쁜데 갑자기 식당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는 이층 방을 빌려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층 방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화장대 위에 지갑이 얹혀 있었다. 그 지갑 사이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비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른 그 수표를 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이층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방망이질을 했다. 그 집 대문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십리나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뒷머리를 낚아채며 ‘도둑이야’하고 소리 지를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아니 아주머니! 누군데 빈방에 들어왔다 가는 거죠?”

  젊은 여자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뒤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아차’하고 후회가 되었다. 돈을 도로 집어넣고 원점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이층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난 수표를 안 만졌어요’라고 몇 분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경찰서에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의 단추를 누르는 아래층 여자에게 싹싹 빌었다.

  “신고하지 말고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결국 그녀는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다. 컴퓨터 조회결과 같은 유형의 범죄가 15회나 더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구치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저는 기술이 있는데도 도둑질을 해요. 또 돈이 있는데도 남의 물건을 훔쳐요. 여자들은 흔히 멘스 때가 되면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무 때나 훔쳐요.”

  그녀가 솔직히 잘못을 고백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도둑질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급료는 저축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전셋 방도 있었다. 그 전날도 식당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돈을 보고 임자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그녀의 변호를 의뢰한 임석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참 성실한 분인데 아마 아들 때문에 그럴 겁니다.”

  임목사가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무 살 때 아들을 낳고 남편과 헤어졌다. 기술을 배워서 미장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항상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마음속에 후회로 남았다. 어느새 아들도 서른한 살이 됐다. 천막공장에서 일하던 아들은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IMF가 터지자 실직자가 되었다. 아들은 엄마의 전세방에 얹혀살면서 채소장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트럭에 야채를 싣고 골목을 다니면서 팔면 벌이가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뚝방교회 정전도사의 도움으로 중고 트럭을 싼값에 구할 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사밑천이었다. 방을 빌릴 때 낸 보증금을 빼자니 당장 살 곳이 없었다. 파출부인 그녀의 신용을 믿고 돈을 꾸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돈을 훔치려고 했다면 아들 장사를 시켜줄라고 그랬을 거예요. 그 외에는 남의 돈을 탐낼 여자가 아니에요.”

  임목사의 추측이었다.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경찰서로 뛰고 담당 검사에게 사정을 하러 다니는데도 아들이라는 사람은 어머니 면회 한번 가지 않아요. 착한 엄마에 불효막심한 아들입니다.”

  15범이라는 전과는 목사의 두둔을 합리화시키기에는 너무나 큰 장애물이었다.


  “어떻게 해서 남의 물건에 손대는 버릇이 시작됐어요?”

  내가 물었다.


  “저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도벽이 있었어요. 당번이 되서 운동시간에 교실에 남았어요. 우연히 짝꿍의 필통 속에 돈이 보였어요. 꺼내 가졌지요. 그 아이가 돈이 없어진걸 알고 울면서 선생님께 얘기했어요.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눈을 감게 했어요. 그러면서 훔친 돈을 선생님에게 나중이라도 가져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도둑질이 시작됐어요.”


  스무 살 무렵 그녀는 미용학교를 다녔다. 졸업 무렵이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는데 돈이 없었다. 그녀는 세 들어 살던 집 마루에 놓인 탁상시계를 훔쳤다. 그게 적발됐다. 집행유예선고를 받은 첫 번 째 전과였다. 그녀는 흔히 “호적에 빨간 줄이 갔다”는 말이 떠올랐다. 호적에 자신의 잘못이 적혀 있어 이제부터는 그 누구에게도 떳떳치 못한 인생이 된 것으로 착각했다. 얼마 후 그녀는 어떤 장교와 사귀었다. 그 남자는 결혼을 하자며 혼인신고부터 서둘렀다. 단순했던 그녀는 호적을 본다는 말에 기겁을 하고 거절했다. 좋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왔으나 그녀는 모두를 보내야 했다. 흉터 같은 전과를 호적에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포자기했다. 미용사로 있으면서 남의 물건에 수시로 손을 댔다. 어설픈 도둑질로 전과만 숫자가 올라갔다. 전과가 많으니까 빈집 툇마루에 앉았다가 걸려도 절도미수였다. 그 누구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그녀는 전과가 있어도 호적에는 올라가지 않는 것을 알았다. 전과를 알기 위해서는 별도로 신원증명서나 컴퓨터 전과조회를 해야만 나오는 것이었다. 단편소설 ‘진주목걸이’에서는 인생의 시간을 다 흘려보낸 후에야 배상해야 할 진주목걸이가 가짜라는게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육십이 되어서야 호적은 전과기록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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