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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 자식을 밀어버린 엄마

운영자 2010.01.22 11:55:27
조회 612 추천 0 댓글 3

     도대체 상습절도범 같지 않았다. 열일곱 살의 동안이는 하얀 얼굴에 섬세한 얼굴선을 가진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인상이었다. 일자로 난 얇고 짙은 눈썹 밑에 있는 작고 고운 눈동자에서는 선량한 기운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았다. 초라하고 오래된 낡고 퇴색된 건물인 안양교도소의 을씨년스런 모습은 그 아이한테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그러나 그 소년은 빈집털이로 잡혀온 지가 세 번째였다. 나는 법원으로부터 그의 국선변호를 맡으라는 결정을 통보받았다. 변호사라는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이기에 언제나 나는 국선변호를 충실히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미진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거 생긴 거 하곤 다르게 벌써 세 번째네. 너 이러다가 정말 상습범 되면 청송보호감호소 가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아니?”

     나는 엄하게 훈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동안이는 머쓱한 태도로 손을 머리에 가져다 긁는 시늉을 한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다. 착하고 소심한 성격이 엿보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는 계시니?”

     “네, 아버지는 S신문 광고부장이고 어머니도 있어요.”


     “정말이니?”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부모가 있다면 이렇게 국선변호까지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면회도 오지 않고 변호사도 선임해 주지 않았단 말이야?”

     “네, 처음에는 힘써줬는데요. 자꾸 하니까 이번에는 혼 좀 나봐야 한데요. 아버지가 경찰에 왔을 때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고 그래서 요번에는 면회 한번 안 오고 그냥 재판받게 됐어요.”


     동안이는 약간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모로서 여러 번 째면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소년이지만 이번에는 동정을 받지 못하고 상습범으로 취급되어 중형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버릇 고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가 있다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재판이 열리고 바로 끝이 났다. 그가 순순히 자백을 하고 세 번째 사건이니만큼 정상참작의 여지도 별로 없었다. 법정을 나오는데 웬 삼십대 말쯤 보이는 여자가 머뭇머뭇 따라 나온다. 둥그런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전통적인 미인형의 얼굴이다. 나는 그녀를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제가 동안이 엄맙니다. 이번에는 버릇을 고쳐주느라고 일체 힘을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 동안이 변호를 하시는지요? 담당 판사님 잘 아십니까? 잘 아신다면 제가 술값이라도 드릴 테니까 좀 빼내 주세요.”

     그녀는 약간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한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습니까? 일억 정도 주시겠습니까? 미안하지만 동안군 변호료는 이미 국가에서 충분히 받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부모가 이렇게 애정이 없어도 되는 건지요. 자식이 잘못했으면 일곱 번씩 칠십 번이라도 용서하는 게 부모 아니겠어요? 한번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벼랑 끝에 놓여 있는 자식을 그대로 밀어 버린다는 말입니까? 자식은 죽는데 버릇을 고치면 뭐합니까? 그냥 가세요. 그리고 정 자식을 생각한다면 부모부터 반성문을 진심으로 쓰세요. 그러면 그건 제가 재판장에게 뒤늦었지만 제출하지요.”


     나는 마구 쏘아댔다. 돈을 줄 듯한 태도로 변호사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는 사고 자체에 먼저 혐오감이 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이 돌아갔다. 다음날 사무실로 그녀가 다시 찾아왔다. 그 손에는 밤새 고민한 생각을 쓴 반성문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걸 재판장에게 제출했다. 다른 석방의 사유는 없었다. 반성문을 본 재판장이 부모가 그래도 자식을 돌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상참작을 해 줄 것이고, 부모라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교도소로 보낼 것이다.


     그로부터 삼주일이 흘렀다. 어느 날 오후 청바지에 티셔츠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동안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인사를 왔다. 어머니와 아들이 둘 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인사를 온 것이다.


     “변호사님, 정말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식을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리고 웃는 엄마라는 말이 정말 가슴에 박혔어요. 제가 못난 엄맙니다. 앞으로 잘 할 거에요.”


     “원, 별말씀을요..  제가 실례를 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버지도 기뻐하시죠? 신문사 부장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겁니까?”

     나는 다시 한번 동안이가 했던 말을 확인했다. 잠시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쳤다.

     “저, 사실은 동안이 친아버지가 아니에요. 제가 새로 시집을 간 남편이에요. 모자가 얻어먹고 사는 것만도 죄송한데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아들인 동안이는

     “엄마, 이제 내가 도둑질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이 될게, 걱정마.”

     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들 모자는 나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 그들과 얘기하던 탁자 위에는 모자의 진심이 담긴 설록차 한 상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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