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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딸기의 겨울

운영자 2011.06.09 18:48:19
조회 279 추천 0 댓글 0

이따금씩 전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다보면

지금은 고층건물과 두꺼운 아스팔트 아래 지층에 묻혀있던 과거의 우리사회가 생생히 떠오른다. 서가 구석에 노랗게 변색된채 박혀 있던 화가 백영수씨의 회상록을 우연히 읽었다. 어떻게 나의 책장에 들어오게 됐는지도 명확히 모른다. 1983년경 나이 육십이 된 화가 백영수씨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지나온 삶들을 회상하면서 글을 쓴다. 그의 회상에는 우리가 이슬을 먹는 신선같게만 여긴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더러 묘사하고 있었다.


1. 칼 들고 설치는 시인 박목월. 다방벽화 조지훈, 서정주


해방후 백영수씨는 소공동의 조선호텔앞에 있던 플라워라는 찻집겸 경양식집을 자주 다녔다. 당시 그곳은 문인들과 화가들의 일종의 집합장소였다. 대부분 커피 한잔으로 하루의 자릿세를 내고 원고료라도 받는날이면 가장 값이 싼 오무라이스를 먹었다고 한다. 어느날 백영수는 플라워에 갔다가 시인 박목월과 구상이 난투극을 벌이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박목월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찻집 주방으로 뛰어가 칼을 들고 나왔다. 박목월은 자리에 앉아있는 구상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찻집은 곧 수라장이 됐다. 탁자가 넘어지고 컵이 깨지고 말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날카로웠다. 화가 백영수는 평소에 그렇게 겸손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시인 박목월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그 찻집에 단골인 시인 조지훈은 구석에 딱 버티고 앉아 있었다고 화가 백영수는 회상한다. 머리통이 남들보다 커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조지훈 시인은 언제나 코 끝에 안경을 걸고 팔짱을 끼고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그 모습을 보면 거만하게 생각되지만 말을 해보면 한시용어를 자주쓰는 박식한 그는 순진한 아이와 같았다고 한다. 그는 미당 서정주에 대해서도 이렇게 묘사한다. 서정주는 언제나 흰 두루마기에 찌그러진 모자를 쓰고 반쯤 취한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플라워에 들어왔다. 서정주는 플라워에 잠시 앉았다가 나가 대포 한잔 마시고 다시 플라워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또 나가 한잔 마시고 들어오곤 했다고 한다. 그의 회상록을 통해 유명한 우리의 화가들의 모습도 소개된다.


2. 화가 이중섭


하루는 그가 있던 명동의 콜롬방이라는 과자집에 앉아 있었다. 당시 예술인들이 모이는 명동 아지트에 플라워 외에 콜롬방과 돌체다방이 있었다고 한다. 별달리 얘기할 것이 없어도 그런 곳에 가면 언제나 다정한 얼굴들이 있었고 그런 친구들을 보기 위해 자주 들리곤 했다는 것이다. 콜롬방으로 화가 이중섭이 하얀 붕대로 머리 전체를 칭칭 감은 채 들어와 그의 앞에 앉았다.


“웬일이야? 어디 많이 다쳤어?”

그가 깜짝놀라 이중섭에게 물었다.


“다치지 않았어. 이놈의 머리가 너무 뻣뻣해서 아무리 빗어도 자꾸만 뻗쳐 나잖아. 그래서 머리 눕힐려구----”

이중섭의 입을 쑥 내밀며 대답했다. 그 당시 ‘자유문학’이란 월간지가 어려웠던 화가들에게는 일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화가 백영수는 이중섭과 함께 다방에서 잡지의 삽화를 그렸다. 일이 없을때면 두 사람은 손장난을 했다. 이중섭은 다 피운 담배갑 속의 은박지를 싹싹 펴서 연필로 간단한 컷을 그려보곤 했다. 다방의 테이블이 나무였고 또 그것이 오래되어 오돌도돌해서 연필을 움직일 때 마다 여간 재미있지 않았다고 한다. 간간이 깊은 홈에는 종이가 약간 찢어지기도 하고 깊이 박혀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연필이 생각한 곳보다 빗나가기도 하여 이 놀이를 할 때마다 이중섭은 스릴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려낸 것을 구기고 또 그려내곤 했다는 것이다. 그것들중 남은 것이 지금도 이중섭의 작품으로 엄청난 가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이중섭이 장판지 돌돌 만 것을 가지고 다방으로 들어왔다. 탁자위에 그것을 풀어내는데 장판지를 길게 반장으로 갈라 그곳에 연작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이미 장판지 몇군데는 갈라져 있었다. 여러사람이 모여 그 그림을 보았다. 그중에 김환기화백도 있었다.


“자네 왜 좋은 그림을 장판지에 그렸나? 캔버스에 하지 그거 꺽이잖아?”

김환기가 이중섭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잠시후 그 그림을 돌돌말며 이중섭이 중얼거렸다.


“누가 캔버스 살 줄 모르나? 그래도 그림은 좀 아는 모양이야” 


3. 화가 이인성.


6.25전쟁이 끝난 서울에는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화가 이인성은 평소에는 냉철하고 담담한 성격이지만 술만 마시면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해방 전에도 그는 술만 먹으면 조선총독부 정문에 가서 소변을 보고 돌아왔다. 술이 조금만 거나해져도 깨끗한 현관에 소변을 보고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었다. 그의 버릇을 잘아는 사람들은 그가 술을 마시면 아예 도망을 했다. 이런 이인성씨가 서울이 수복이 되자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가 통금이 넘은 시간 술을 먹고 집동네 있는 파출소를 지나갈 때였다.


“누구얏!”

순경이 소리쳤다. 술만 마시면 발동하는 이인성의 성미가 나타났다.


“너는 누구얏!”

이인성이 대들었다.


“거기 섯!”


“니가 거기 섯!”

이인성도 소리쳤다.


“안 서면 쏜다”

약이 바싹 오른 순경이 소리쳤다.


“쏴라!”

이인성이 맞받았다.

“탕_”

그 한방의 총성으로 이인성은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화가 백영수는 당시 주변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렇게 쓰면서 사실은 경찰관이 공포를 쏜다는게 운나쁘게 이인성씨에게 맞은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도 이인성은 제법 알려져 있었고 술취한 버릇은 동네파출소에서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천재화가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고 적고 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나의 작은방 벽에는 이인성이 습작으로 그렸다는 아주 작은 유화 한점이 걸려있다. 베니어판을 사각으로 작게 짜른후 그 위에 종이를 풀로붙이고 그린 그림이다. 누런 흙언덕길 옆으로 찌그러진 허름한 이층집들이 보인다. 언덕위에는 검게 녹슨 함석지붕의 창고가 보인다. 그 길위로 힘없어 보이는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대구 변두리의 한 그림수집상에게서 산 이인성의 습작그림이다.


4. 영화배우 최은희.


피난시절 예술인들이 즐겨찾던 부산의 금강다방에는 영화인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한창 예쁘던 최은희가 생글거리면서 테이블 사이를 오갈 때면 꼬집어 줄 정도로 귀여웠다고 화가 백영수는 회상했다. 아직 어렸던 최은희는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선생님 나 돈 조금만 꿔주세요”하곤 했다. 그렇게 돈이 되면 최은희는 부산에서 상영되고 있는 외국영화를 보러갔다. 얼마후 생활이 어려운 최은희는 영화배우 최지희와 함께 그 근처의 다방에서 정식으로 일을 한 후에는 돈을 꾸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영화배우 최은희의 남편은 촬영기사 김학성이라는 사람이었다. 6.25전쟁당시 종군하다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말수가 적은 호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김학성이 화가 백영수에게 처인 최은희의 초상화를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화가 백영수가 김학성에게 안내되어간 최은희가 사는 집은 어느 창고 속이었다고 한다. 창고안은 부서진 의자, 가구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었고 창고 안의 계단을 조금 올라가 지붕 중간쯤에 다다미가 깔린 조그만 방이 최은희 부부의 방이었다고 한다. 화가 백영수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김학성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멍청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루하면 곧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날씨가 잔뜩 흐린 어느날 김학성이 다리가 쑤신다며 산책을 나가고 창고안에는 화가 백영수와 영화배우 최은희만 남았다. 찌푸렸던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천정틈으로 빗물이 새서 떨어졌다. 최은희는 방 한구석에 쌓아놓았던 깡통을 재빠른 솜씨로 물이 떨어지는 곳에 정확히 가져다 놓았다. 곧이어 적막한 창고안엔 어느 우주의 음악이 연주되는 듯 “통탕 똑 통탕 딱 똑-----”소리가 울려 퍼졌다. 습기찬 창고안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후끈후끈 올라오고. 그 순간의 묘한 느낌을 화가 백영수는 달콤하게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1953년 그 그림은 서울에서 발행된 ‘신태양’이란 잡지의 표지로 실렸다고 한다.


5. 가곡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


박화목의 시에 윤용하가 곡을 붙인 ‘보리밭’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화가 백영수가 다니던 명동길의 시공관 앞골목은 항상 윤용하가 서 있었다. 윤용하는 얼굴이 불그스럼하게 술에 젖었고 언제나 만족한 미소를 띠면서 너무 평온해 보여 그를 볼 때마다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를 보는 듯 했다고 한다.

윤용하는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돈 30원 있어?”

라며 손을 내밀었고 대개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그 액수는 차 한잔 값도 되지 않아 누구든지 줄 수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그렇게 대여섯명에게 돈을 받아서 윤용하는 근처의 술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키고 나왔다. 윤용하는 매일같이 명동 네거리와 술집을 왕복했다고 한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날이 그가 죽은 날이었다. 그 얼마후 윤용하가 사망하기까지 생활이 기사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윤용하는 죽기 며칠전부터 밥을 한끼도 먹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명동 네거리에서 한푼씩 얻어 사먹은 막걸리로 연명했다는 것이었다. 기사와 함께 윤용하의 집이 실렸다. 판자집도 그런 판자집이 없었다. 얼마나 좁은지 화가 백영수는 큰 개집정도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환갑을 맞아서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쓴 화가 백영수씨도 지금은 계산상 80세가 넘게 됐다. 책을 읽는 나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오래된 글을 통해 그와 대화를 한다. 또 그가 묘사한 여러 예술인들의 정말 인간다운 어렵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삶을 다시 생각한다.인간에게 남녀관계는 영원한 관심사인 것 같다. 나이 환갑의 그는 파리에서 시인 김소운과 최은희의 염문을 글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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