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운영자 2011.08.30 14:26:50
조회 499 추천 0 댓글 0

  저녁 무렵이었다. 회색구름 틈으로 붉은 해의 희미한 윤곽이 대법원 옥상위에 걸쳐있다. 탁자에는 햄버거가 놓여 있었다. 아내가 미국 아들에게 간 바람에 홀아비 신세다. 그때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친구인 김옥신변호사였다.

 
  “나다, 우리 집에 와서 저녁먹자. 밥 먹고 VOD로 영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를 같이 보자.”

 
  김변호사의 집은 걸으면 십분쯤 되는 곳에 있다. 그라면 비오는 날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맨발로 찾아가도 되는 사이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졸업하고 고시공부시절도 함께 지냈다. 그는 판사를 오래하다가 변호사가 됐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보면 오랫동안 몸에 밴 예의껍질이 두껍다. 후배판사들을 만나 혹시 실수를 할까봐 주의를 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선비기질이 판사들에게 아직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몸속에 밴 판사 물을 빼주려고 노력했다.

 
  이제야 심심할 때면 둘 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명동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린다. 왕년에 양희은이 노래하던 오비캐빈 자리도 찾아보고 짬뽕국물이 맛있던 뒷골목 중국집도 갔다. 40년 동안 버티고 있는 젊은 시절 미팅을 하던 명동입구의 찻집 포엠에 들어가 와플을 먹기도 했다.

 
  김변호사의 아내가 매콤한 오징어 국에 불고기를 구워서 내왔다. 착한 여자다. 밥 먹고 둘이서 퍼질러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트인 넓은 도로위로 링컨 컨티넨털이 달리고 있다. 주인공인 악덕변호사의 활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돈 많은 의뢰인을 잡으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번 잡으면 껍데기를 벗긴다. 그 정도면 변호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주인공인 악덕변호사가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의뢰인으로 다가온 것이다. 겉은 순진해 보이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이 악마는 주인공 변호사를 돈으로 가지고 논다. 그리고 서서히 그물을 조인다. 악덕변호사는 자신이 누명을 써보고 총에 맞으면서야 비로소 정의가 뭔지를 깨닫는다. 변호사의 현실의 일면을 아프게 찌르는 영화였다. 끝나고 김변호사와 토론을 벌였다.

 
  “의뢰인의 거짓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다 법정에서 말해주고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면 그게 통할까?”

 
  내가 물었다.

 
  “알면서 거짓말을 해주면 안 되겠지.”

 
  김 변호사의 대답이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변호사가 너무 많다. 한 법원장은 법정이 거짓말 대회 같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이 거짓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잘 돌아가는 머리로 얕은 꾀를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걸 보면서 누군가는 울기 때문이다. 교활한 의뢰인의 거짓을 알 수 있으면서도 돈 때문에 동조하는 변호사는 공동정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그 책임의 물결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559 환상살인 (14) 운영자 11.12.08 259 0
558 환상살인(13) 운영자 11.12.08 251 0
557 환상살인(12) 운영자 11.12.08 247 0
556 환상살인 (11) 운영자 11.12.08 330 0
555 ‘아름다운 삥’이라뇨 운영자 11.12.02 316 0
554 분야별 전문가를 법 공장으로 운영자 11.12.02 266 0
553 변호사 기자를 구합니다 운영자 11.12.02 286 0
552 거짓말해주는 게 변호사의 서비스일까? [1] 운영자 11.12.02 367 1
551 박원순과 이석연 [3] 운영자 11.09.30 936 3
550 합의를 매수로 보는 미국검사의 정의관 운영자 11.09.30 417 1
549 복수법률사무소로 가자는 일본변호사의 얘기 운영자 11.09.30 387 1
548 환상살인(10) 운영자 11.09.29 433 0
547 환상살인(9) 운영자 11.09.29 264 0
546 환상살인(8) 운영자 11.09.29 311 0
545 스스로 심판자가 되는 사람들 [1] 운영자 11.08.30 424 0
544 용접공이 된 대위의 눈물 운영자 11.08.30 649 2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운영자 11.08.30 499 0
542 환상살인(7) 운영자 11.08.29 347 0
541 환상살인(6) 운영자 11.08.29 477 0
539 야구방망이와 솜방망이 운영자 11.08.17 456 0
538 까치집과 변호사 둥지 운영자 11.08.17 350 0
537 환상살인(5) 운영자 11.08.17 353 0
536 환상살인(4) 운영자 11.08.09 445 0
535 환상살인(3) 운영자 11.08.09 1186 0
534 특수강도범과의 대화 운영자 11.08.03 453 0
533 변태성욕자들과의 전쟁 운영자 11.08.03 829 0
532 성폭행범과 꽃뱀 운영자 11.08.03 552 0
531 프랑스 대권주자의 성폭행스캔들 운영자 11.08.03 262 0
530 군사반란법정 - 2 운영자 11.07.28 457 2
529 군사반란법정 - 1 운영자 11.07.28 522 1
528 내가 본 12.12사태 - 2 운영자 11.07.28 496 2
527 내가 본 12.12사태 - 1 운영자 11.07.28 643 2
526 환상살인(2) 운영자 11.07.26 375 0
525 환상살인 (1) [2] 운영자 11.07.26 605 0
524 문재인과 민동석 운영자 11.07.21 644 1
523 변호사란 무엇인가? [1] 운영자 11.07.21 461 1
522 존경하는 재판장님들 앞에 서서 운영자 11.07.21 418 0
521 젊은 변호사들의 모임 ‘공감’ 운영자 11.07.19 332 1
520 세무전문 화가 변호사 운영자 11.07.19 413 0
519 잠시후 기쁨의 잔이 넘칠 것이다 운영자 11.07.05 312 0
518 수의사와 무기수 - 2 운영자 11.07.05 361 0
517 수의사와 무기수 - 1 운영자 11.07.05 336 0
516 나의 유서 -사랑하는 내 아들 그리고 딸아 운영자 11.07.05 364 0
515 한우물정수기 강송식 사장 운영자 11.06.30 582 1
514 어떤 치과의사 [1] 운영자 11.06.30 476 0
513 감옥갔다온 수의사얘기 - 희랍인 조르바가 된 부자수의사 [1] 운영자 11.06.30 350 0
512 사과 한 알, 우동 한그릇의 추억 [1] 운영자 11.06.28 277 0
511 김동리아들 김평우변호사 - 좋은 선배들 운영자 11.06.28 5302 0
510 티파니의 보석과 검정 슬리퍼 운영자 11.06.28 269 0
509 각오한 가난 뒤의 자유 운영자 11.06.23 41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