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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전문 화가 변호사

운영자 2011.07.19 11:04:49
조회 413 추천 0 댓글 0

흔들림이 없이 조용히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원중 변호사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요란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25년 전 법률사무소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잔잔한 호수 같은 맑은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물위에 유유히 떠있는 백조가 물속의 발은 부지런히 움직이듯 그의 이면은 부지런했다. 그는 일찍이 세무 쪽으로 자신의 업무를 특화했다. 조선일보에 보도된 ‘이 시대 최고의 변호사들’라는 기사에서 그는 조세분야의 권위자로 나와 있다. 20대 로펌대표들이 선정한 분야별 최고의 변호사명단이었다. 그런 인정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법조문과 세금을 계산하는 숫자에 파묻혀 삭막하지도 않다. 실력을 자랑하는 중후한 화가이기도 한 까닭이다. 젊은시절 그는 물감으로 얼룩진 파카차림에 캔버스백을 짊어지고 어둠 컴컴한 시간에 화실을 나오곤 했다. 매주 산과 들을 누비면서 스케치를 하고 다녔다. 사무실과 집의 한쪽 구석에 이젤과 물감을 준비하고 지난 20년간 그림을 그려왔다. 그는 세무전문 베테랑변호사이면서 화가였다.

 

<변호사란 이제 편안한 옷 같아요 >

 

맑은 하늘에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던 2011년6월9일 오후 2시경 역삼동부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얼굴의 그가 나를 맞이했다. 아는 사이였다. 사법연수원동기이고 검찰청에서 함께 실무수습을 했었다. 오래된 타자기로 밤늦게까지 한자 한자 오타가 나지 않도록 문서를 작성하는 그의 꼼꼼한 성격을 검사들은 뒤에서 칭찬했었다. 소박한 사무실 구석에는 마라톤의 완주순간을 찍은 그의 흑백사진이 보였다. 그는 인생이란 마라톤에서도 결승점까지 도착한 변호사였다. 그와 마주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자신이 평생 해 온 일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이 성공이었느냐 실패였느냐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처음 개업했을 때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죠. 돈보다 작은 사건이라도 의미가 있는 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이 변호사가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이 세상에서 소명을 수행하기 위한 직분이라는 것으로 변했어요. 활동하기에 따라서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할 수 있고 세속과 성직의 중간쯤으로도 갈 수 있는 게 변호사인 것 같아요.지금에 와서는 변호사를 뭐라고 표현할까? 나한테 알맞은 옷 같은 편안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요.”

 

숙성시킨 오래된 장맛 같은 직업적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철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는 지금 한별이라는 중간크기의 로펌의 대표로 있다. 상황을 알고 싶었다.

 

“요즈음 중소로펌은 어떻게 운영되어 갑니까?”

 

내가 물었다.

 

“변호사가 늘어가고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예전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와서 상담을 하고 갔는데 요즈음은 부장만 되도 와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변호사들이 가서 브리핑을 하죠. 그거야 변호사들의 업무영역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를 단순한 심부름꾼 정도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변호사는 전문가로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작하는 변호사들에게 그런 심부름꾼이 되는 건 피하라고 가르치죠.”“요즈음 젊은 변호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 역시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한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젊은 변호사들이 직접 시행사를 하는 경우를 봤어요. 찾아오는 의뢰인을 보니까 학력도 없고 머리도 별로 좋지 않는데 돈을 왕창 버는 걸 본 거죠. 저 사람도 하는 데 더 똑똑한 우리가 못할 게 뭐냐 이거죠.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요? 변호사들이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법을 한 사람들이라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어요. 오랫동안 시행사를 한 사람들은 인허가나 여러 문제에 있어서 법을 뛰어넘는 나름대로의 재주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 보지 못하는 거죠. 젊은 변호사들이 함부로 직접 여기저기 덤빌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돼지꿈>

 

“돈은 많이 벌었습니까?”

 

내가 단순하게 물었다.

 

“어떤 변호사라도 일 그 자체만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번 돈으로 재테크를 잘해야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한 것 같아요. 총명한 머리와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준 사람에게 돈까지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자꿈을 이루었다가 허무해진 연수원 동기 얘기 하나 할까요?”

 

그가 싱긋 웃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동기변호사가 어민들의 단체소송을 맡았죠. 거액이 걸린 소송이었어요. 일심에서 승소하고 가집행까지 붙었어요. 상대방인 공기업에는 일단 돈을 먼저 주지 않을 수 없죠. 성공보수만 100억원을 받았어요. 20년 전쯤이니까 지금으로 치면 몇 백억이죠.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얘기처럼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겁니다. 그 변호사는 벤츠를 사서 굴리고 기사에게까지 아파트를 사 줄 정도로 주위에 선심을 썼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혔어요. 돈을 받았던 어민들도 신나게 썼는데 모두들 이자까지 붙여 반환해야 했던 겁니다. 집들을 날리게 된 거죠. 어민들은 매일아침 악덕변호사라고 쓴 현수막을 가지고 그의 사무실 앞에 모여 꽹가리를 치면서 시위를 했었죠.”

 

전설이나 옛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일들이 우리들 주위에 더러 있었다. 그가 얘기를 계속했다.

 

“저도 그런 꿈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지방에서 최대의 땅 사건이었어요. 죽은 사람의 엄청난 넓은 토지가 원인무효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 있는 거였어요. 입증도 간단했어요. 상속인편에 서서 소송을 제기했죠. 이 사건만 잘되면 변호사를 그만두고 잘 살 수 있겠구나 하고 가슴이 뛰었죠. 그런데 일 년쯤 지나다 보니 내 의뢰인이 진짜 상속인이 아닌 겁니다. 동명이인의 인물이 왔던 거죠. 앞에 어른거리던 무지개가 갑자기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허무했죠. 씁쓸한 마음으로 소송을 취하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어요.”

 

변호사의 세계는 재미있다. 그런 부자의 꿈이 있다면 누구나 가시 같은 기억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있다.

 

<작은 아픔들>

 

“변호사로서 아팠던 일을 말해 볼래요?”

 

내가 물었다.

 

“대부분은 잊어 기억이 떠오르질 않네요.”

 

그의 대답이었다. 그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픔을 물에 흘려버리듯 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모래에 새기는 사람도 있고 바위에 새겨 잊지 않고 계속 피를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과거로 돌아가는 표정이었다. 잠시후 그가 뭔가 기억의 우물에서 간신히 떠올린 듯 말을 시작했다.

 

“일심에서 승소를 한 사건이었어요. 항소심으로 갔는데 주심판사가 두 번이나 불러 청구원인을 바꾸라고 하는 겁니다. 그 정도면 확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권유하겠지 하고 판사의 말대로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인사이동이 있어 재판장과 배석들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엉뚱하게 저한테 패소판결이 선고된 겁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원망스럽더라구요. 그때는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불가능했죠. 고맙다고 하던 의뢰인도 갑자기 냉정해 지더라구요. 제가 돈을 모두 물어준 적이 있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낸 거죠. 그리고 계속 저를 진정하고 고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때 힘들죠. 요즈음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이상한 나쁜 풍토가 생겨나는 걸 봅니다. 그냥 자기의 주장을 하고 입증을 하면 될텐데 상대방변호사를 욕하고 비난을 하는 겁니다. 제 얼굴에 침뱉기인데 변호사끼리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요.”

 

<그의 위안 예술>

 

이제 화제를 바꾸어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화가로서의 삶은 어땠죠?”

 

“원래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시절만 해도 그걸 허락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변호사가 된 후 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 준 적이 있는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일요화가회에도 참석해서 열심히 배웠죠.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잠깐만요”

 

그가 갑자기 신나는 표정으로 구석으로 가서 얇은 잡지 한권을 가지고 왔다. 그의 그림이 소개된 미술잡지였다. 나는 그가 펼쳐 보여주는 그의 그림을 보았다. 눈 덮인 겨울 산자락에 고만고만한 집들이 보인다. 그루터기가 남은 밭은 두꺼운 눈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푸른 겨울하늘로 올라가는 시골집들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니까 법을 대할 때와는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지난주에도 한강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싱싱한 진홍빛 장미 밭을 돌아다녔어요. 그걸 보면서 어떻게 구도와 색조에 변화를 줄까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은 창조의 세계로 끌어들일까 고민했죠. 이제 25년이면 변호사도 대충 접을 때가 된 것 같아요. 후반부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그림을 잡았다는 건 정말 저에겐 축복 같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힘이 닿는 대로 물감을 접할 겁니다.”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자리를 뜰 때가 됐다. 일어나는 내게 그가 결론 같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저의 경우 변호사로 일반회사원보다 조금 나을 정도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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