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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알, 우동 한그릇의 추억

운영자 2011.06.28 11:33:48
조회 277 추천 0 댓글 1

 스물 세 해 전의 일이다. 신촌 산언덕 한 지붕 열 가족의 셋집 구석방에서 우리부부는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내는 대학원생이었고 난 교육기관에 연수중인 육군중위였다. 두 평방은 당시 많이 쓰던 스폰지요를 한 장 깔고 나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찬장이나 옷을 넣어두는 장롱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나는 아침이면 노랗게 도금한 양은찜통을 가지고 수돗가로 내려가 물을 길어왔다. 아내는 그 물로 쌀을 씻어 석유풍로에 등산용 코펠을 올려놓았다.

  우리의 신혼은 멀리 여행가서 민박집에 묵으면서 사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했었다. 당연히 그 혜택도 사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에게 평생을 벽돌장 하나하나를 직접 쌓아올리듯 인생의 행복 탑을 쌓아올리자고 제안했었다.


  난 매일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 가서 두툼한 책들에 파묻혔다. 저녁 늦게 돌아올 때면 난 그래도 신랑이 되고 싶었다. 추석 무렵 골목길 입구의 구멍가게에는 알전구 아래 빨간 사과들이 탐스럽게 놓여 있었다. 사과마다 붙인 금딱지가 나를 가져가라며 반짝였다. 난 주머니를 털어 사과 한 알을 샀었다. 그것 밖에 살 돈이 없었다. 그러나 그 반들거리는 사과는 나의 진정한 마음이고 사랑이었다. 혼자 구석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내가 사과를 받으면서 미소를 지었었다. 전방으로 배치되어 철원부근의 바라크 관사에서 살 때였다.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는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부부는 장대비를 맞으며 논이 펼쳐져 있는 길을 걸어 허름한 시골중국집을 찾아갔다. 거기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었었다. 그 따뜻하고 구수한 국물 맛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때 나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작은 아파트에 포니 승용차 한 대만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사회적인 포부도 나름대로 있었다. 다섯 평 정도의 사무실 구석에  읽고 싶은 수필이나 소설책을 가득 쌓아놓고 사는 자유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점, 약방, 한의원, 변호사등이 내가 바라는 직종이었다.


  재산목록 1호로 7인치 흑백 텔레비전을 샀었다. 난 그게 얼마나 귀했는지 지금도 스위치 하나 다 기억에 떠오른다. 후에 형편이 나아진 어느 날 그 재산1호는 아파트의 경비아저씨에게 시집을 갔다. 점심값을 아껴 난 아내 모르게 아파트청약통장을 만들었다. 통장을 받아든 순간 아내의 눈에 물기가 어리는 걸 느꼈다. 봄이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낙엽이 지고 하얀 겨울이 지나갔다. 일년 이년 세월은 꿈같이 흘러갔다.


  “아빠 저 결혼하고 싶어요”

  대학을 졸업한 딸이 밥상에서 내게 말했다. 그 옆의 아내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 한 머리였다. 신혼 생활 초의 아내의 모습이 딸에게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어떤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내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딸아이에게 묻는다.


  “머리도 좋고 잘사는 집 남자. 그리고 생긴 것도 잘생겼으면---”

  여자들에게는 누구나 백마 타고 오는 왕자의 꿈이 있나보다. 아내는 딸아이에게만은 자신이 고생한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딸아이가 나간 후 나는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변호사가 된 나는 서초동에 주택 겸 사무실을 지어 살고 있다. 유목민같이 수없이 전전하다가 마침내 우리는 서초동 법원 부근에 허름한 집을 샀다. 조각전공인 아내는 일층부터 직접 개조해 나갔다. 마음에 맞는 색조의 타일을 골라 바닥에 깔았다. 벽과 문의 모습도 아내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함께 여행을 했던 소렌토 뒷골목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태리가옥이 우리의 모델이었다. 아내는 철물점에 가서 기하학적 무늬를 가진 창틀을 주문했다. 창 옆에는 흰 페인트칠을 한 덧창을 만들어 붙이고 그 앞에 빨간 꽃이 있는 화분들을 놓았다. 이층 삼층 차례로 아내와 내가 젊은 시절 함께 쌓아올리자고 했던 탑을 완성해 갔다. 아내는 페인트를 사다가 섞어가면서 외벽에 칠할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어느새 나의 집은 여성지에서 소개하는 아내의 작품이 됐다. 30평의 지하서고에는 그동안 내가 읽은 수천 권의 책들이 벽마다 꽉 차 있다. 이제는 아내와 맛있는 음식점 정도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갈 정도는 됐다. 지난해에는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의 자작나무가 깔린 대륙을 횡단했다. 젊은 시절은 항상 미래에 대한 얘기가 부부간의 대화였다. 요즈음은 점점 과거의 추억이 저녁에 포도주 한잔을 앞에 논 우리부부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결혼 초에는 교회에 나가 천 원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오천 원을 낼 때도 부담이 됐는데 이제는 매번 만원을 즐겁게 내요.”

  아내는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인정이 후한 편이다. 나도 지난해 큰맘먹고 능력에 벅찬 기부도 해 봤다. 의외로 기부한 액만큼 난 돈에 대한 끈끈한 욕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기부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의 더러운 재물욕을 청소하는 행위였다. 이제는 능력의 일부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의일부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사람을 위해 내놓고 싶다.


  “우리가 굽이굽이 인생길을 헤쳐왔는데 언제 가장 행복했지?”

  내가 아내에게 종종 묻곤 한다.


  “ 신촌셋방에서 당신에게 사과 한 알 받았을 때 그리고 장대비를 맞으면서 우동 한 그릇 먹으러 갔을 때 그때가 행복했죠.”

  아내의  변함 없는 대답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 이심전심의 미소를 짓는다. 정말 보석같이 귀한 것은 행복을 감지할 수 있는 싱그러운 젊음의 감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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