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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아줌마의 소망

운영자 2011.06.14 10:20:24
조회 291 추천 0 댓글 0

  무거운 공기가 형사법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청석은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모두들 애를 태우며 초조한 기색이었다. 사건들은 기계적으로 처리됐다. 이윽고 나는 오십대 중반의 상습절도범 정여인의 사건번호를 부르며 변호사석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나의 단골손님이었다. 젊은 검사가 “전과가 여덟 번에 이번에도 남의 돈 몇 만원 가져갔네?”라고 사무적으로 물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색이다. 벌써 시선을 책상 위에 떨어뜨리고 다른 기록을 보고 있었다. 법적으로 간단하고 증거역시 충분했다.


  “변호인 신문하시죠”

  재판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부 몇 년 징역을 살았어요?”

  좀도둑질로 낭비한 인생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

  그녀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사실 알고 물었다. 남의 푼돈 을 제대로 가져가지도 못하고 감옥생활 십 여 년이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난한 어부의 아내였다. 이 십 여 년 전 그녀는 가족과 상경했다. 안전한 땅에서 일하면서 잘살고 싶었다. 남편은 막노동을 하고 그녀는 인부들에게 밥을 팔았다. 공사장 일거리가 떨어지고 나서부터 봉제공장에 나가 인형을 만들었다. 한 달에 8만원을 벌었다. 그 무렵 즈음 남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방세 5만원을 낸 나머지 3만원으로 가족이 한 달을 살아야 했다. 불행도 세 박자로 다가왔다. 봉제공장이 부도가 났다. 이번에는 파출부로 나섰다. 어느날 어린 딸이 책값내야 한다면서 울었다. 그녀는 일하던 집 안방에 놓여있던 돈 뭉치중 몇장을 살짝 빼들고 나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죄의 늪에 빠져들었다. 버릇이 된 것이다.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치챈 주인에 의해 파출소로 넘겨지기 시작했다. 전과자딱지가 붙자 법은 점점 냉혹해졌다. 삼십대부터 오십대중반의 할머니가 되기까지 반은 감옥에서 산 셈이 되 버렸다. 내가 신문을 계속했다.


  “최근에는 가게 카운터에 놓인 지폐를 몇 장 슬쩍한 거죠?”

  내가 장난기 섞인 것 같이 물었다. 범행의 경미함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다. 작년 그녀는 옷가게 점원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진열대 위에 놓인 만원 짜리 몇 장을 움켜쥐다가 걸렸었다. 이번사건도 신발가게에서 탁자 위에 놓인 신발값을 보고 도벽이 발동했다. 범죄경제학적으로 그녀는 항상 손해만 본다. 몇 만원 훔치려다가 징역만 일년씩 사는 것이다. 식당 주방에서 월 백 만원씩이나 받는걸 생각하면 그녀의 도벽은 정말 안타까웠다.


  “ 방청석에 딸이 왔나 고개를 돌리고 찾아보시죠.”

  내가 손가락으로 방청석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녀의 절대고독을 은근히 시사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그녀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 들었다.


  “있어요 없어요?”

  내가 재촉했다. 감옥출입이 잦아지자 하나 딸 마저 그녀를 버렸다. 마지막에 그녀는 내가 봉사요원으로 있는 시설에 들어갔었다. “아무도 없죠? 거 봐요. 자꾸 그러시니까 따님도 안 오지”


  내가 주의주듯 말했다. 딸은 어머니가 알려지면 이혼 당한다고 겁을 먹었다. 세상은 그랬다. 잘나야만 나의 부모였다.

  “이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저한테 부탁 했었죠?”


  내가 일주일전 서울구치소를 찾아갔을 때였다. 그녀는 빨리 재판이 확정되면 추운 강원도의 교도소로 이감을 간다고 했다. 더구나 그곳은 공장에 나가 일을 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희망은 따뜻한 남쪽의 감옥이었다. 겹겹이 옷을 껴입은 그녀는 지금 있는 서울의 구치소사정도 얘기했다. 기결수를 모아두는 방이 난방공사중이라 아주 춥다는 것이었다. 형의 선고가 조금이라도 늦어져야 사람들의 온기가 있는 미결 방에 계속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더운 온돌방에서 잘 살 것이지 왜 번번히 그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자꾸만 이런 짓 하고 엉뚱한 부탁을 해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그렇지 알건 다 안다.


  “미안해 하지 말아요. 자꾸 잘못해야 변호사도 먹고 살죠.”

  농담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순간 환하게 웃었다. 마음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나는 재판에서 변론 마지막에 재판장에게 모든걸 솔직히 전달했다. 법에 의해 새까맣게 덧칠이 된 사람을 변호하기 힘들다. 뭐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으니까. 평상시의 마음을 전할 뿐이다. 똑같은 세상이 사람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범죄의 습관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은 지옥이다. 어둠침침하고 추운 감옥 안을 드나들며 일생을 보낸다. 마약중독자가 환각의 멍에를 벗지 못하듯 도벽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부정한 것을 보고 아파하는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천국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마음에는 감사와 평화가 충만하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현실과 유혹은 엇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보는 시각이 가지각색일 뿐이다. 파라다이스를 여는 열쇠는 바로 그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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