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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권검사 약전

운영자 2011.06.16 12:27:10
조회 1210 추천 0 댓글 0

  2005년 7월 21일 05시 30분. 납색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내려다 보는 아산병원의 장례식장 앞에는 영구차 한대가 조용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입을 꾹 다문채 희극적인 미소를 머금은 김대권 변호사의 슬픈 영정이 나왔다. 그 뒤를 따라 관 속에 누운 김변호사가 아들 친구들에게 들려나왔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검사가 되어 지청장을 지낸 그의 위패에는 김대권이란 이름 석자만 흰 종이위에 남아 있었다. 이제 두시간 후면 그는 한줄기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이름마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질 것이다. 하소연하듯 나를 보는 영정사진 위로 27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특유한 표정이 겹쳤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78년 8월 31일 오후였다. 막 입대한 나는 바라크 막사 일층의 한 내무반에 배치 받았다. 그 때 건너편 침상에 코믹한 미소를 짓는 남자가 있었다. 양쪽 눈썹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검은 사마귀가 보였다.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거 우리 모두 똑같이 군대에 처음 왔는데 단결해서 잘 버텨 나갑시다. 그래야 덜 당하지.”

  그는 엘리트 특유의 냉랭한 거부감이 없었다. 김대권 그는  나의 경기고등학교 3년 선배였다.


  “조교들과의 껄끄런 모든 협상은 내게 위임하도록.”

  그는 자청해서 해결사 노릇을 맡았다. 훈련 장교들이 우리들을 기합주기 시작했다. 관물대 위에 발 걸고 팔굽혀펴기, 쪼그려 뛰기, 연병장 선착순 등을 시켰다. 진땀 흘리는 우리 중대원들에게 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친구들도 체면이 있을 테니까 어느 정도는 들어주고 인격모독적인 부분이 있으면 거부해.”

  그는 우리들의 총명한 리더였다. 다음날 교육장교가 줄을 서있는 우리 중대원 80명에게 각자 매점으로 달려가 바지단 묶을 고무줄을 하나씩 사오라고 명령했다. 훈련병인 우리들의 경쟁과 소란을 기대한 것이다.그 때 줄 속에 있던 그가 이렇게 외쳤다.


  “야, 뭐 80명이나 우르르 뛰어가냐? 한명이 가서 고무줄 80개 사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쉬면되지.”

  맞는 말이었다. 한명만 가고 다른 사람들은 그늘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혔다. 그는 우리들의 대변인이 되어 교육장교도  단번에 포섭했다. 입대 일주일 후 그가 나를 데리고 PX로 갔다. 거기서 그는 담배와 소주 그리고 과자들을 사서 나보고 내무반으로 가져 가라고 했다. 그의 탁월한 능력으로 우리는 즐겁게 먹고 마셨다. 그의 소탈한 성격과 넉넉한 마음은 벼르고 있던 면도날 교관들을 모두 녹여버렸다. 한번은 그가 PX에서 여자시계를 사자고 했다. 반짝거리는 금도금을 한 예쁜 시계였다. 나는 그를 따라 시계를 비닐봉지에 넣고 고무줄로 칭칭묶어 땀에 절어있는 주머니에 소중히 보관했다. 흙먼지가 뿌연 연병장을 기면서도 쉬는 시간이면 우리는 주머니속의 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흙과 땀을 가득 머금은 그 시계는 우리의 진솔한 사랑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그는 면봉을 구해  먼지가 낀 시계줄의 틈새를 닦아냈다. 그만큼 치밀한 사람이었다. 당시 연애중이던 아내는 그 시계를 받는 순간 감동했었다고 했다. 딸 아이는 엄마의 얘기를 전해듣고는 자기도 그런 신랑감을 찾는다고 했다. 유난히 춥던 그 해 겨울. 훈련이 끝나고 나는 수도군단사령부로 배치를 받았다.다음해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이 죽고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로 선배인 그가 명령을 받고 왔다. 한겨울을 썰렁한 군용건물 사무실에서 같이 보내면서 더욱 친해졌다. 한번은 부대근처 식당에 고기를 먹을 때였다. 드럼통에 연탄불을 집어넣은 화덕에서 고기가 굽히고 있었다.그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어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말이지, 인생이란게 무슨 종교를 믿어야만 행복해 지는게 아니라 순간순간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지금 이 순간은 이 석쇠에서 고소하게 구워지는 이 고깃점을 맛있게 먹는게 행복이고 말이지.”


  그 시절만 해도 고시합격으로 영감대접을 받는 그였다. 젊은시절 일찍 출세한 사람들에게 흔한 과시나 허영을 넘어선 소박한 철학이었다. 그 이년 후 내가 철원의 전방사단에서 근무할 때였다. 아직 감상적이었던 나는 폭행합의금을 직접 받아 피해자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다. 그게 꼬투리가 되어 보안부대에서 내가 뇌물을 먹은 것으로 상부에 보고 했다. 난 영문도 모른채 육본 검찰부로 소환됐다.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검찰부장인 신중령은 의심하면서 나를 다그쳤다.


  “야 엄대위, 그러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라.”

  섭섭했다. 선의가 악의로 매도됐다. 그 때 선배인 김대권 대위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당시 육본 검찰장교였다.


  “제가 알아서 조사할 테니까 부장님은 가 계시죠.”

  그가 신중령에게 말했다. 같이 훈련받던 나는 김선배에게  조사를 받는 입장이 됐다. 그는 혼자 열심히 뭔가 타이프를 쳐서 위로 올렸다. 그리고 난 아무 탈이 그곳을 나왔다. 사실 그 사건에 관련된 육본의 다른 법무관이 있었다. 그는 복도에서 나를 보자 자기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면서 나를 외면했다. 자기 신상에 혹 해가 될까봐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사람마다 그렇게 다 그 무게와 값이 달랐다. 그는 제대한 후 강력검사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밤의 대통령 조양은도 검거하고 남대문 일대의 험한 소매치기들을 일망타진했다. 연일 신문기사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는 지청장으로 승진을 하고 정치쪽으로 나갈 뜻을 비치기도 했다. 그와 박희태의원 둘사에에 누가 검찰폭탄주의 원조인지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언제부터인가 신문의 인사란을 보면 그는 한직으로 돌기 시작했다. 너무 설친다고 윗사람들 눈에 벗어난 것이다. 아랫사람이나 후배들에게는 보스인 그가 위에는 아부를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만난 그가 내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야, 평생 검사해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야. 사표 써야겠어.”

  떠나야 할 때 떠날줄 아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변호사도 활동적으로 했다. 곧 최고소득의 변호사 대열에 끼고 법률회사를 차렸다. 박찬종 선배의 선거전에 유세차량도 지원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사회적 출세의 꿈을 접는 것 같았다. 직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는 뭔가 내부에 자기행복을 찾은 듯 했다. 바쁘다 보니 몇 년간 그를 보지 못했다. 한번은 바람결에 그가 담도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건장하던 그의 몸이 바람빠진 풍선 같았다. 그런데도 표정은 전혀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형, 어떻게 된거야? 죽는거야?”

  내가  방정맞게 물었다. 그 정도로 서로 편한사이였다.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튼 내 설명을 들어봐.”

  그는 흰 종이를 내놓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했다. 어느새 그는 암 박사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에 덧붙였다.


  “말도 마. 밤에 잘때면 암덩어리가 척추신경을 눌러서 밤새 옆으로 누워서 꺽꺽대. 그렇지만 어떻게 하냐? 할 수 없지.”

  그는 자신의 고통을 남 말 하듯 했다. 죽기 한달 전까지 그는 동창회에 출석해서 친구나 후배들에게 비아그라를 선물 하기도 했다. 앞으로 동창회에 나오지 않으면 죽은 걸로 알라고 농담하듯 통보도 했다. 암이 점점 번져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넘어지면서도 참석했다. 어느새 그의 시신을 실은 차가 갈마터널 직전에 왼쪽으로 빠져 화장장으로 향했다. 내 차는 그가 탄 차를 뒤에서 따르고 있었다. 금년 초 여행중일 때였다. 꿈에 우연히 김선배가 나타났다. 처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이었다. 꿈에서 깬 나는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생생하게 의뢰인과 대화중이었다.


  “형이 꿈에 나타나서 손을 흔들면서 가길래 죽은줄 알았지. 이렇게 살아있는 걸 보니 정말 좋으네, 정말 좋아.”

  진심이었다. 그가 특유의 코믹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걱정마, 아직은 안죽었어. 그런데 말이지 항암치료 때문에 대머리가 됐어. 그래서 이렇게 중절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다닌다. 이 스타일 어때?”

  그가 명랑한 어조로 말했다. 도대체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아니었다. 난 그에게 얼마전 내가 병원에 갔을 때의 얘기를 했다. 아픈사람에겐 아픈 얘기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의사는 내게 전립선암의 의심이 있다고 말했었다.


  “뭐? 전립선암? 난 이제는 그 방면에는 박사야. 좋은 약하고 치료 잘하는 의사와 병원을 연락해 줄께.”

  다음날 그는 내게 전화해서 자기가 세밀하게 알아놓은 정보를 말해줬다. 말하고는 다시 스펠을 불러보라고 확인했다.


  “형 같이 밥먹으러 갑시다. 내가 맛있는걸 사죠.”

  “밥은 뭘? 난 아파서 집에가 누워 있는게 훨씬 좋아.”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사흘 전 그의 사무장한테서 운명하셨다고 전화가 왔었다. 지금 내 눈앞에는 화장장의 불화로 구멍이 시꺼멓게 입을 벌리고 있다. 김선배가 들어있는 관이 그 앞에 놓여있다. 인생의 봄에 우리는 만났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이 됐다. 그는 윤기가 반들거리는 낙엽이 되어 공중제비를 하고 땅에 떨어졌다. 열심히 삶을 사랑하다가 떠났다. 한겨울 추위속에서 나뭇가지에 지겹게 매달려 떠는 추한 낙엽보다 가을바람 소슬할 때 먼저 떨어진 그가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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