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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고향이 개천?

운영자 2012.03.12 17:30:07
조회 324 추천 0 댓글 1

  시인 고은씨와 이웃집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작은 상에 안주로 계란 프라이 두개와 소주 한 병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몇 마디 나누는데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엄 변호사! 나하고 밖에 나가 공원에 가서 한판 붙으까?”

 

  그가 주먹을 잡고 권투선수 모션을 취했다. 답답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틀림없었다. 그가 덧붙였다.

 

  “가슴을 한방 쳐서 속을 좍 열어주고 싶어.”

 

  막연하지만 그가 답답해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뒤집어쓴 가면을 벗겨내고 포장을 한 내 자신의 진짜 속을 보고 싶다는 대시인 특유의 행동언어인 것 같았다. 그 뒤로도 그의 말은 화두같이 내 머리를 맴돌았다.

 

  대한변협신문의 인터뷰기사를 맡고 수십 명의 변호사들을 만났다. 신기한 게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순간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변호사 중에도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과 꽉 닫혀있는 사람이 차이가 많았다. 출신배경이나 성장과정을 물으면 입을 다무는 사람들은 아직도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마음 문을 닫아둔 것 같았다.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런 사람들은 두꺼운 포장지로 이중삼중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문득 그런 모습이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은시인이 내 가슴을 짜개내고 싶다고 한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마음 문이 활짝 열린 사람들은 거침이 없었다.

 

  빈민촌에서 물지게를 졌다는 변호사회장도 있었다. 주방용품을 팔러 다니다가 무릎을 꿇고 빌어봤다는 변호사도 있었다. 갑자기 양다리가 마비되어 근 오십년을 업혀 다니며 변호사 일을 한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가 도박꾼에게 몽땅 털리고 식구들이 야반도주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막노동자, 택시기사, 공사장십장, 하사관의 아들 등 근엄하고 귀족 같아 보이던 법조인들의 출신배경이 의외로 춥고 스산한 음지였다. 존경하는 유명한 장관은 그 엄마가 창녀촌을 단골로 다니던 젓갈장사이기도 했다.

 

  과거의 신산스런 삶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찡하고 존경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인간은 모자라고 허술한 틈을 통해 마음이 흐르게 되어 있나 보다. 아들 학비 때문에 판사직을 그만뒀는데 그 부분은 절대 쓰지 말아달라고 한 분도 있었다. 아들이 그걸 보면 마음아파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들은 이미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건강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우리시절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능력만 있으면 고시를 통해서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바늘구멍이지만 사회저변에 고여 있는 가스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였었다. 세상이 법조인들을 기득권층으로 매도하면서 무섭게 두들겨 패고 있다. 들춰보면 가장 서럽고 힘들게 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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