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큰스승 김상협 - 공원이 된 아들

운영자 2016.07.05 09:36:29
조회 254 추천 0 댓글 0
공원이 된 아들 

  

오마치는 일본의 알프스라는 히다의 눈 덮인 연봉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고장이다. 고산지대의 겨울은 혹독한 추위와 폭설의 연속이었다. 그 깊은 산 속에 구레하방적의 공장과 바라크 기숙사들이 세워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김상협은 그 공장의 공원으로 취직했다. 당시 구레하 방적은 일본 내에서 생산능력 2위를 자랑하는 큰 회사였다. 구레하 방적을 세운 일본기업인 이토추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면사 도매상에서 일하던 그는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그 무역회사를 통해 미국 영국으로부터 중고품방적기계를 수입하여 방적업을 시작했다. 그는 고산지대의 값싼 전력과 풍부한 노동력을 감안해 공장을 설립했다. 김상협은 공장 기숙사에서 일반 남자 공원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당시 일본인 공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이 넘었다. 임금수준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노동자보다도 못했다. 공원들은 대부분 15살에서 20살까지의 여자들이었고 칠팔세의 아이들도 있었다. 철야작업이 진행되어 세계최초로 심야작업을 위해 공장 내 전등을 켰다는 기록을 세울 정도의 회사였다. 정규 노동시간외 에 잔업도 많았다. 그곳은 지독히 추운 눈의 나라였다. 김상협은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기숙사에서 공원들과 똑같이 자고 똑같이 형편없는 음식들을 먹었다. 방적공장은 사람이 생존하기에 혹독한 상황이었다. 김상협은 기름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방적기계에 매달렸다. 기계의 제원부터 시작해서 기능이나 작동방법 그리고 잦은 고장까지 노트에 꼼꼼하게 적고 외웠다. 기계가 고장이 난 경우는 직접 분해했다가 다시 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기계가 머릿속에 훤히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작업현장의 일뿐만 아니라 제품, 품질, 노무, 회계, 인사, 판매, 홍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공부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면사의 강도나 습도 그리고 무게 등을 측정해야 하는 품질관리업무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수치들을 일일이 주판으로 계산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김상협은 경리여직원에게서 주판을 배워 장부를 정리하다가 한밤중이 되어야 기숙사의 얼어붙은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리창을 열면 북국의 찬 눈기운이 흘러들어왔다. 기숙사 함석지붕의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교대를 하는 공원들은 목도리로 콧등까지 싸매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으로 덮어씌운 채 작업장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늙은 공원이 그에게 더러 위로의 말을 던졌다.

“이런 곳에서는 쓸쓸해져서 견디기 어려울 거야. 동경제국대학까지 나온 젊은이가 이해가 안 돼. 여기는 큰 눈이 수시로 내리지. 눈사태가 자꾸만 나는 바람에 기차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아.”

“정말 몹시 차군요”

김상협이 늙은 공원에게 동의하는 듯 말했다.

“작년엔 영하 25도까지 내려갔지”

늙은 공원의 말이었다.

“눈은요?”

“글쎄, 보통 몇 척이었지만 많이 내릴 때엔 열두자는 넘었을 거요.”

하얀 눈빛이 바라크 기숙사들의 나지막한 지붕을 한층 더 낮아 보이게 했다. 공장건물은 웅웅대는 기계음을 내면서 산속의 고요를 깼다. 그에게 감기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콧물이 줄줄 흘러내릴 때가 많았다. 구례하방적의 사주인 이토추는 일본재벌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됐다. 그는 방적공장에 동경제국대학출신인 김상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있었다. 김상협은 조선갑부 집 아들인 걸 알았다. 견디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이토추 회장은 직원들의 보고에 놀랐다. 김상협은 다른 노동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오히려 그들을 감싸고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단 한마디의 불평도 김상협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고 공장책임자가 보고했다. 이토추회장은 김상협의 과묵하고 성실한 태도에 반했다. 이토추회장은 김상협의 아버지인 김연수사장에게 말을 넣어 아들을 자신의 사위로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것은 엄청난 의미였다. 일본의 거대재벌과 조선기업인의 연합이었다. 당시도 재벌들이 서로 자식들의 결혼을 통해 세력을 형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버지 김연수 회장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거절했다. 그 배경은 민족의식이었다. 수많은 돈을 번 조선인들이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일본 하오리를 입고 일본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 김연수회장은 출장을 갈 때도 꼭 한복을 챙겨 트렁크에 넣고 가서 입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풀을 먹인 하얀 두루마기를 평생 입었다. 김상협이 공장에서 일할 때 동생 상돈이 형을 위로할 겸 다녀갔다. 김상협이 잠시 귀국했을 때였다. 막내 동생인 상하는 귀국한 형이 가지고 온 노트가 책상위에 있는 걸 보고 무심히 들춰본 적이 있었다. 방적기계들의 그림과 명칭 그리고 제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정치학 전공인 형이 왜 그걸 공부 하느냐고 물었다. 형인 김상협은 아버지가 시킨 일이니까 이왕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동생에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구례하 방적은 원료의 부족으로 많은 설비를 놀리고 있었다. 이토추 회장은 앞으로의 공습위험을 피하면서 설비를 활용하려는 대비책의 하나로 설비를 조선이나 만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조선이나 만주는 공업의 자급 자족도를 높이기 위해 이를 몹시 원하고 있었다. 경성방직의 김연수는 아들을 통해 구례하방적과의 협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동시에 구레하방적주식회사에 투자도 하고 있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3358 종교 장사꾼 운영자 24.05.20 58 2
3357 주병진 방송을 망친 나는 나쁜 놈 운영자 24.05.20 52 0
3356 대도를 오염시키는 언론 운영자 24.05.20 35 1
3355 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4.05.20 41 1
3354 악인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운영자 24.05.20 32 1
3353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운영자 24.05.20 32 0
3352 쥐 같은 인생 운영자 24.05.20 34 1
3351 좋은 사람의 기준을 깨달았다 [1] 운영자 24.05.13 106 2
3350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운영자 24.05.13 61 0
3349 국무총리와 도둑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운영자 24.05.13 85 0
3348 도둑계의 전설 운영자 24.05.13 49 1
3347 바꿔 먹읍시다 운영자 24.05.13 46 0
3346 반갑지 않은 소명 운영자 24.05.13 47 0
3345 대도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운영자 24.05.13 45 0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75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81 2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64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66 0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69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84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74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100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78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85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72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77 1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84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91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106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95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106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106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100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99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135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138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113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115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133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119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108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115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125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144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211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205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213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117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338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226 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