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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운영자 2017.03.07 20:36:26
조회 242 추천 0 댓글 1
종편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중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다큐멘 터리를 더러 본다. 유명한 인기 탈랜트나 가수의 현실생활이나 진솔한 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뇌리에 그들은 무대처럼 화려한 생활을 할 것이라는 착각이 입력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칠십대의 탈랜트 백일섭씨가 혼자 사는 모습이 나왔다. 그는 나이 먹고 아내와 헤어진 것을 ‘졸혼’이라고 평가했다. 집에서 따로 나와 혼자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혼자 마트에 가서 햄을 사고 햇반을 사는 모습이 나온다. 더러 동네 찜질방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나 보다. 찜질방 구석에서 혼자 떡만두국을 앞에 두고 늦은 저녁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알려진 이면에는 눈물을 흘리며 자라난 어린 시절 고통의 그림자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엄마와 헤어지고 계모의 밑에서 중학교까지 천대받는 생활을 한 것 같다. 뚱뚱한 그가 척추 협착증으로 혼자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니까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쓸쓸한 노년을 살아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제 일 같이 뇌리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년퇴직을 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출근을 하지 않으니까 야, 이상하다”라고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다. 


30년 동안을 기계같이 출근하던 직장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회사의 철책상이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이 아버지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매일 글래스에 소주를 따라 들이켰다. 얼근히 취하지 않으면 우울한 하루가 너무 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보다. 그러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게 됐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가 혼자 냉수에 밥을 말아 꽁치통조림을 반찬으로 먹는 뒷모습을 봤다. 힘이 빠진 어깨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늙고 병들고 외로움을 겪는 과정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예순네 살이 되던 해 이른 봄 어느날이었다.


 아버지한테 갔더니 조용히 침대에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면서 “나도 이렇게 되는 구나”라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다가온 죽음의 천사를 보면서 내게 그렇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입원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살아서 올라가도 내려올 때는 죽어서 내려 올 거야”


사흘 후 의사는 아버지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작별인사 시간이 온 것이다. 처음에만 약간 긴장했을 뿐 아버지는 이미 체념한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고 오라고 손짓했다. 아버지가 침대에서 악수를 하자고 어머니 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같이 사는 사십년 동안 무섭게도 하고 그랬는데 미안해. 사실 사랑했어.”


죽음 저쪽으로 가는 아버지의 멋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그 말을 듣는 어머니의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어서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엄마나 동생에게도 잘해주고 삼촌도 맛있는 거 잘 사줘라”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신뢰하는 것 같다. 식구들과의 인사를 끝내고 졸리운 듯 크게 하품을 한 아버지는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의 성품이 사람의 죽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27년을 더 사셨다. 인간은 늙으면서 고독해 지는 것 같다. 어머니는 성당에도 다니고 붓글씨도 쓰면서 노년을 보냈다. 더러 저녁이면 조용히 혼자 앉아 밥과 김치를 먹는 어머니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쳐야 하는 고독의 과정인지도 몰랐다. 심장이 약해지고 숨이차서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서 부터는 어머니는 아파트 창가에서 어둠이 짙게 밀려올 때까지 거리를 달리는 차들을 내려다보며 노년의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푸념같이 내게 말했다. 


“너무 오래 살았어. 내가 나이 구십까지 살 줄 몰랐어. 이제 사는게 지겨워.”


그 말을 하고 한달후 서리풀 공원에 화사하게 철쭉이 피던 봄날 어머니는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어머니의 남은 삶이 일주일 정도임을 알려주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 같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혼자 남겨두고 가는 아들이 못내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죽음을 앞두고 하나하나 지시하기 시작했다.


“내 영정사진은 육십 대 때 한복을 입고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을 써라. 그리고 성당에서 손님들이 와서 연도를 해 줄 텐데 그 사람들 섭섭하게 하면 안 된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며칠 있다가 성당 앞에 있는 우리가 자주 가던 음식점에서 고기를 사드려라.”


어머니는 내가 평소에 드리던 용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었던 같다. 며느리인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천 만원을 줄 테니까 이건 너를 위해서만 써라.”


이어서 어머니는 손녀, 손자, 딸들에게 천만원씩 주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아들인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아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두고 이북에서 혼자 내려와서 평생 살면서 외로운 게 제일 고통이었단다. 그렇지만 아들 그거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야. 형제가 없이 너 혼자만 외아들로 남게 해서 엄마가 미안해. 잘 견디며 살다와 아들”


죽음을 앞두고도 어머니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화장장에서 하얀 뼈 한 뭉치로 변했다. 

  

이제 내 나이가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간 나이보다 한 살 더 먹었다. 눈도 어깨도 몸속도 여기저기 녹이 슬고 뻘건 녹물이 흘러 나오는 것 같다. 책을 보다가 낮이면 혼자 밥을 물에 말아서 무말랭이를 반찬으로 해서 먹을 때가 있다. 혼자 밥을 먹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떠오를 때가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젊음이 어느 날 소리 없이 잦아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녁이 왔다. 꽃피고 새우는 것 같던 젊은 날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그래도 끝이 보이는 지금의 노년이 살던 중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 지금 여기에서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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