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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로 포장되는 ‘권위’의 허구

운영자 2009.02.23 10:54:27
조회 2632 추천 3 댓글 3

 우리나라에는 성인(聖人)만큼 권위를 누리고 있는 서구의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많다. 관습적 사고에 젖어 있는 한국의 대다수 지식인들은 사대주의에 빠져 있어서, 자기만의 독자적 텍스트는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한 말을 가지고 곧잘 ‘권위주의적 사고’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곤 한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내가 성에 대해서 쓴 글은 입에 거품물고 욕하는 사람들이 미셀 푸코 등 서구의 성철학자들이 쓴 것이라면 낙서조차 신주모시듯 떠받드는 꼴을 많이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채털리 부인’이나 ‘엠마누엘 부인’의 성희는 멋진 자유분방함의 표현이고, ‘순이’나 ‘사라’의 성희는 그저 퇴폐적인 방탕일 뿐이다. 


 지금까지 학문의 성인처럼 숭앙되는 서양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은 철학뿐만 아니라 윤리학이나 자연과학에 있어서까지도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가운데서도 특히 ‘시학’은 지금까지도 연극 또는 무학이론의 성서와도 같은 권위를 누리고 있다. 거기서 그는 카타르시스 효과는 비극의 ‘연민’과 ‘공포’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카타르시스 이론을 관심깊게 연구하다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양성체질(陽性體質)을 가진 서구인의 관점만으로는 카타르시스 효과의 해명이 미흡하다고 느껴, 카타르시스 효과를 한국인의 음성체질에 결부시켜 고찰한 논문 <음양사상과 카타르시스>(1987, ‘마광수 문학론집’에 수록)를 쓰게 되었다.


 양성체질의 서구인에겐 음양의 상보(相補) 원칙에 따라 음성적 성격의 비극이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음성체질의 한국인에겐 양성적 성격의 희극이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가벼운 해학미와 외설미, 그리고 해피엔딩 위주의 우리나라 고대 민중소설이 비극적 장엄미와 무거운 현학적 설교 위주의 서구소설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한국 학자들의 사대주의적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나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다시 현대 대중예술에 결부시킨 논문 <연민과 공포에서 질투와 선망으로>(1991, 연세대 ‘인문과학’ 65집에 수록)를 써보았다. 연극보다 한결 더 박진감있고 ‘클로즈업’ 효과가 가능한 영화가 출현하여 대중을 사로잡고 있고, 연극도 고대 그리스의 대형 야외무대나 근대 정통주의 대극장 무대 같은 데서보다는 배우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최근의 추세에 비춰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보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화의 보급은 대형화면을 통해 공포스런 장면을 많이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에 대한 면역기능’을 갖춰주게 되었고, 대중적 심미감의 상승에 의해 외모에 대한 관심이 커짐으로써, 배우의 예쁜 얼굴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더 카타르시스 효과를 가져온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물론 남자의 경우는 외모보다 사회적 신분이나 능력 등이 더 큰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남녀평등사상의 보급과 더불어 남자 역시 미모가 더 중요해짐을 알 수 있다.


 미모의 주인공(아직은 대부분 여성이지만)이 ‘미인박명’으로 끝날 때, 관객은 비로소 질투심을 진정시켜 시원한 느낌을 얻는다. 남주인공의 경우엔 관객이 그에게 느꼈던 질투와 선망의 감정이 남주인공의 몰락에 따른 사디즘의 충족과 자기위안으로 바뀜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연극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에도 해당되는데, 나의 이러한 생각은 소설치고 미녀 아닌 여주인공이 없고 잘나지 않은 남주인공이 없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사소한 문제제기로 생각될지 모르나, 보다 대중적 심미감정에 접근할 수 있는 가설이라고 본다. 아무리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라 하더라도 그의 이론이 2000여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고전이나 외국 텍스트에 대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사대적(事大的) 집착이 우리를 한결 더 관습적 사고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정신질환이 모두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귀신들린 자’가 곧 정신병자라는 성경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민신은 사실 정신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미 과거의 유물로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마귀 쫓는 의식’을 하다가 환자가 맞아죽는 사건이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끔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일부 한국인들의 비합리적 무지(無知)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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