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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있는 곳에 병 있다

박유진 2009.03.09 11:56:18
조회 2562 추천 3 댓글 4

 병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실 죽음에 이른다고 해서 다 병은 아니다. 생노병사를 초월했다는 석가도 결국 위장병으로 죽었는데, 여든살을 채우고서 죽었으니 그것은 병사(病死)라기보다는 노사(老死)였다. 그러니까 살 만큼 다 살고나서 죽기 임박해서 걸리는 병을 일반적인 ‘병’의 범주에 끼워넣을 수는 없다.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덜 살았을 때 걸리는 병만을 우리는 ‘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병에는 불치병도 있고, 만성적인 고질병도 있고, 또 감기나 몸살 같은 자잘한 병들도 있다. 그리고 과거에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던 치명적 전염성 질환도 있다.


 지금 우리는 75세 정도의 평균수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로 올라갈수록 평균수명은 짧았다.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은 약 30세 정도였고 원시시대로 올라가면 20세도 못되었을 거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연장된 것은 역시 의학의 발달 덕분이다. 전염성 질환을 퇴치시키는 약이 개발되고 유아사망률이 낮아지면서부터 인간의 평균수명은 급격히 늘어났다. 이것만 봐도 인간의 수명 역시 ‘타고난’ 운명 탓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옛날 사람들은 다 단명할 운으로 된 사주팔자를 타고났고, 요즘 사람들은 다 장수할 사주팔자를 타고났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위생상태의 발달 역시 전염성 질환을 많이 없애주었다. 특히 기생충 질환 같은 것은 위생상태의 개선에 의해 현저하게 줄어든 질병의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병, 이를테면 홍역이나 천연두, 흑사병 같은 것은 거의 없어진 데 비하여 새로운 전염병이 생겨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이즈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의학자들의 예상에 의하면 넉넉잡아 21세기 초반만 돼도 에이즈 치료용 백신이 개발될 거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더 무서운 질병이 안 생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전염성 질환은 끊임없는 의학발달에 의지하여 그것을 치료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런 병으로 죽는 게 운명 탓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거나 괴롭히며 각자의 생존을 영위해나가는 먹이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불쌍한 소나 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듯이 뇌염모기 역시 먹고 살려고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회충이나 촌충 따위의 기생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전염성 질환과의 싸움은 인류가 역사를 계속해나가는 한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염성 질환 및 이와 유사한 병을 일단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오는 병’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페스트나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병은 아니라 하더라도 감기나 폐렴 등이 다 전염성 질환에 속한다. 또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공해병 역시 외부로부터 오는 질환이다. 공기나 물이 맑아지면 자연히 없어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등으로 생기는 외과적 질환 역시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오는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교통사고를 줄이면 격감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병들을 낫게 하려면 개개인의 노력이나 개별적 치료법 가지고서는 안된다. 요즘 공해식품을 먹지 않고 무공해식품만 먹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선전해대는 의학자나 건강연구가들이 많은데, 다 근치와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예컨대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담배만 끊으면 된다는 식인데,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해도 탁한 공기로 뒤덮인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담배만큼이나 나쁜 스모그를 마시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나 외딴 산골짜기로 들어가 산다면 혹 모르되, 담배 끊고 무공해 채소만 먹는다고 해서 무병장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 염려증’ 노이로제나 영양실조로 고생하기 딱 알맞다.


 그러므로 이러한 ‘외부로부터 오는 병’에 대해서는 역시 범국민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 자연파괴가 극도에 달했다. 40여년 동안 파괴시켜놓은 국토와 자연을 원상복귀시키려면 적어도 1백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문학자들의 진단이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공해 없애기 운동(또는 정책)을 벌여야 한다. 과거엔 전염병 예방백신을 개발하는 데 들였던 노력을, 이제는 공해 없애는 데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를 타고서 교외로 달려가 ‘무공해 물’을 마시고 ‘무공해 공기’를 호흡하기보다는, 자동차 사용을 절제하는 게 낫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도시 한복판에 머물며 ‘공해식품’을 먹어치우더라도 자동차 안 타는 것이 더 큰 ‘치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무공해 연료개발이나 과도한 농약사용의 금지 등이 정부차원에서 따라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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