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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역사 1 부 : 삼성의 모태가 된 마산의 거물 이병철의 청년기

정력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7.09.10 1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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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http://blog.naver.com/djahdtk333/150008067524

삼성그룹

 

1. 처참한 실패를 통해 배우다. 

삼성그룹의 역사는 그냥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과 계승자인 이건희 회장의 도전과 승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삼성그룹을 최초로 창업하여 세계유수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두 부자의 이야기가 주가 될 듯합니다. 그 두 부자의 사업경영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삼성그룹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병철 회장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합방되던 해에 경상남도 의령의 천석 꾼 이찬우 씨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할아버지는 유학자였는데 이병철 회장은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가 세운 서당에 들어가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두 세 달이면 떼는 천자문을 1년여 만에 떼는 등 어렸을때 이병철 회장은 그다지 영민하지는 안았습니다. 하지만 천성이 남과의 경쟁에서 지기 싫어는 하는 성품이었으며 진도가 좀 늦기는 하였으나 5년간의 한문 수학을 통해 논어(論語)까지 통독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배움을 통해 이병철 회장의 평생을 삶의 지표로서 항상 논어를 가까이 두고 읽으며 사업에 임하였습니다.

 

 그 후 진주에 있는 지수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친척 형의 서울에 대한 화려한 얘기를 듣고 느낀바가 있어 서울로 전학을 가 수송보통학교 및 중동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인 열아홉 살 때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중학교 4학년을 다니던 중 보다 더 큰 세상을 꿈꾸며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동경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29년 10월 약관 스무 살의 나이로 현해탄을 건너 동경을 향해 멀고도 험한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동경 가는 바다 여행 중 이병철 회장은 2등 선실에서 심한 멀미 때문에 시설이 좋은 1등 선실로 가려고 하였으나 일본형사가 돈도 없는 조센징이 감히 1등 실을 어떻게 탄다고 그러느냐며 건방지다며 다시 돌아가라는 등의 심한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 당시 조선은 일본인들에게 4무(無의) 나라였는데 “나라가 없는 나라, 주권을 빼앗긴 나라, 기업이 없는 나라, 부자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그때 경험한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움과 분함을 평생 동안 기억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본을 누르고 우뚝 서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당시 일본은 미국의 월가에서 발생된 금융공항의 여파로 1923년 관동대지진이후 극심한 불황에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수십만명의 실업자가 발생되어 연일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젊은 청년들의 시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병철 회장도 시위대에 잠시 동참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사상과 자신의 뜻에 맞지 않아 그만 두었고, 그 무렵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친구 이순근을 사귀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객지생활로 지친 이병철 회장은 심한 각기병에 걸리고 맙니다. 나름대로 이순근의 도움을 받으면서 요양도 해보고 치료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자 결국 와세다 대학 2학년 가을에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하게 됩니다. 그 짧은 유학기간 동안 이병철 회장은 대공항의 엄습과 그로인한 경기의 급속한 후퇴와 세계경제의 변동이 서민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득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고향에 돌아와 기력을 회복한 이병철 회장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무위도식의 나날을 보내던 중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와 곤히 잠들어 있는 세 자녀를 바라보며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뜻을 세워 무엇이든 하여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결국 아버지로부터 연수 300석의 재산을 나누어 받아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자금이 부족한 듯해서 대구나 부산, 평양은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히 적당한 사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고향과 가까운 마산을 돌아보기로 결심하고 마산을 둘러보게 됩니다. 그 당시 마산은 작고 아담한 항구도시였는데 경남 일대의 농산물은 모두 모였으며 쌀 또한 일본의 식량 수탈정책으로 인하여 연간 수백만석이 마산으로 모여 일본으로 공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산을 둘러보던 이병철 회장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커다란 정미소들 앞 공터에서 산더미처럼 볏가리를 쌓아놓고 도정료를 선불로 내고도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리는 하주들의 모습을 보며 연간 수백만석의 쌀을 도정하기에는 마산에 정미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어 마산 최고의 정미소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정현용 ․ 박정원과 함께 각기 1만원씩 투자하였으나 자금이 부족하여 식산은행에 융자를 받으려 찾아갔으나 일본인 지점장은 젊은 조센징이 정미소를 한다니 어림없다는 투로 곡물가격이 변동하는 원인이 무엇이며 일본의 곡물 시장에 대하여 공부나 제대로 했냐는 등의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질문을 하며 융자를 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배우고 느낀 바를 정확히 정리하여 곡물시장에 대하여 정학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하자 깜짝 놀라며 선뜻 융자를 해주어 협동정미소를 창업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정미소 이름을 협동정미소로 정한 이유는 일본인이 대부분인 다른 정미소 주인들이 단결심 없고 어리석은 조센징들이 동업으로 정미소를 차려서 과연 잘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자꾸 비웃었기 때문에 조선 사람끼리 잘 협동해서 정미소를 운영하여 반드시 성공해서 무시하는 일본사람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자고 결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벼를 사다가 껍질을 벗겨 쌀을 만들면 되는 그래서 도정기계가 쉬지 않도록 미곡을 확보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단순해 보이기만 했던 정미 사업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적자로 창업 1년 만에 자본금의 3분의 2를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동업자 중한명이 손을 떼겠다며 자본금을 돌려 달라고 까지 하였으나, 이병철 회장은 비웃던 일본인들을 생각해 보라며 지금 그만두며 조선 사람들을 더 얕잡아 볼 것이 아니냐며 동업자를 힘들게 설득하여 딱 1년만 더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 이병철 회장은 그동안 왜 정미소를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지에 대해서 그 원인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이병철 회장은 그 원인이 바로 쌀값이 오를 때 쌀을 사다가 도정을 해서 쌀값이 떨어졌을 때 내가 팔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는 장사의 기본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은 그 후로 쌀값이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이 더 오르리라는 기대심리로 쌀을 사들일 때 오히려 내다 팔았고, 쌀값이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이 더 내려갈 지도 모른다며 내다 팔 때 오히려 쌀을 사들였습니다. 그렇게 장사의 기본에 충실한 운영을 시작한 후 머지않아 협동정미소는 흑자로 돌아섰고 그 다음해에는 3만원의 출자금을 빼고도 2만원의 이익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정미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자세히 관찰한 결과 마산에는 쌀을 운송하는 트럭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트럭을 몇 대사서 운송회사를 차리면 잘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급히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일본인 소유의 트럭 10대를 가지고 있던 ‘일출’자동차 회사를 인수하고 거기에 10대를 더 보태어 스무 대로 운수회사를 새로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직원들에게 신속하게 배달하고 다른 곳보다 운임은 더 싸게 받도록 지시하여 운송회사도 승승장구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벌게 됩니다. 정미소는 정미소대로, 운송회사는 운송회사대로 잘 굴러가자 이병철 회장은 남아도는 시간가 돈을 주체하지 못해 마산에 있는 요정이라 요정은 다 다니며 향락의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이병철 회장은 그 다음으로 토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의 날로 극심해지는 수탈정책으로 고통 받던 농민들이 땅을 팔고 고향을 떠나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속출해서 아주 싸게 내놓은 농지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사업을 통해 숫자에 밝았던 이병철은 곰곰이 따져보고는, 논 한 마지기를 50원에 사서 소작을 주면 15원의 소작료가 들어오고 소작료에서 은행 이자 3원 50전을 빼고 세금 1원, 관리비 50전을 제해도 10원의 이익이 남는다는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땅을 살 수만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은 곧바로 김해평야에 있는 경작이 가능한 전답과 매물로 나와 있는 전답을 전부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협동정미소를 통해 신용을 쌓아두었던 식산은행의 하라다 지점장에게 수지 계산서를 첨부하여 융자를 신청해 김해 인근에 있는 농토를 모조리 구입하기 시작해 1년 만에 연수1만석, 200만평의 대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병철 회장은 약관 20대에 산하를 자신토지의 경계로 삼는 경남 최대의 대지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햇빛이 쨍쨍 난다고 365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 무렵 심상찮던 중 ․ 일관계가 악화되어 중국의 노강교 사건이 일어나 청천벽력처럼 1937년 3월 중일전쟁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전시체제의 자금 확보를 위해 전시산업을 제외한 은행의 융자를 중지하고, 이미 융자해 준 대금을 모두 회수토록 자국 은행들에 지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장경제는 곧바로 얼어붙었고 전답의 시세는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갑자기 은행 융자금을 모두 상환해야만 했던 이병철 회장은 농지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전답을 서둘러 처분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땅을 샀던 가격보다 훨씬 싼 값에 팔아야만 했고 막대한 손실을 입을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할 수 없이 잘나가던 정미소와 운수회사도 모두 팔아 식산 은행의 융자금을 모두 갚고 나니 남은 것은 고작 현금 2만 원과 전답 10만 평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동업자와 함께 분배하여 청산하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병철 회장은 개인이 아무리 사업 수완이 좋고 운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돕지 않고 뜻이 올바르지 않으면 재물은 지킬 수도 없고 늘릴 수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병철 회장 서른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되었고, 인생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으로 뜻을 세워 마산에 입지하였으나, 뜻만 남고 땅은 없어진 빈 털털이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로부터 받은 연수 300석으로 시작한 이병철 회장의 첫 사업은 그렇게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그 쓰라린 실패의 아픔을 비스마르크 시대의 명장 몰트케 원수의 다음과 명언을 가슴에 새기며 극복하게 됩니다.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으며 훗날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으키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3리(利)가 있으면 3해(害)가 있다.”

“ 교만한 자 치고 망하지 않는 자 없다.”

“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 그런 연후 사업을 할 때에는 첫째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적확하게 통찰해야 하며, 둘째 과욕을 버리고 자기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해 둬야 한다. 만약 대세가 기울어 실패라는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

  

그 후로 이병철 회장은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국내외의 정세변화에 대처하면서, 결코 무모한 투기를 하지 않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 철저한 합리주의적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삼성그룹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삼성상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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