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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42~43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5 22: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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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7화 18화 19화 20화 21화 22화 23화 24화 25화 26화 27화 28화[유혈/고어] 29화 30~31화 32~33화 34화











115.


"에이, 그건 좀 아니다."


7시간 뒤, 심문실의 스크린 앞 의자에 다시 앉은 오로라는 CIA 내 스타벅스에서 사온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면서, 메가라가 내뱉은 말들을 못 미더워했다. 오로라는 오컬트를 신뢰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믿는 것들은 귀신 내지 폴터가이스트 현상 뿐이었다. 하지만 메가라가 오로라에게 말해준 비밀들은 죄다 허무맹랑하고, 마치 히어로 영화와 만화에서 볼 법한 설정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얼음, 바람, 돌, 풀... 이런 걸 만들어내서 다룰 수 있다고요? 엘사는 그런 거 한 번도 안 만들던데요?"

오로라는 엘사를 그저 스칼렛이 옛 언니를 그리워해 이름을 붙였고, 그저 우연의 일치로 닮았다는 생각 이상의 의심은 하지 않았다. 스크린 속 메가라는 보좌관이 가져온 조간신문을 눈어림으로 읽고 있었다.


"저기요, 메가라. 제 말 아직 안 끝났는데요."


오로라가 스크린을 콕콕 두드리며 말했다.


"엘사가 그런 걸 안 만들었다라... 그럴 리가 없는데. 아마 당신이 보지 못한 사이에 이미 능력을 발현했을지도 몰라요, 정말로 본 적 없어요?"


"정말 모른다니까요."


오로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스칼렛과 엘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적당히 숨기고, 조작해서 말할 셈이었지만, 엘사의 능력 발현과 종류에 대해선 오로라가 아는 건 전무했다.


"그리고 너무 판타지잖아요. 인체 실험, 뭐 그렇다 쳐요. 80여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없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근데...그건 거의 마법 범주에 해당하는 소설같은 이야기예요."


"스칼렛이 매었던 가방에서 나온 자료들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오로라, 당신은 스칼렛을 믿죠?"


"당연히 믿죠!"


"그럼 제가 말했던 것들도 다 믿어야 해요."


메가라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 제목에 시선을 옮겼다. 메가라는 이미 뉴욕 타임즈에서 CIA의 뒷돈을 받아 먹는 주간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바 있었다. 메가라는 스칼렛의 작업 일부를 보안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넘겼고, 그들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온 기사는 '러시아에서 행해지는 네오 나치들의 인체 실험'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나치,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2차 대전 추축국의 핵심이었다.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면 나치를 옹호하는 짓은 금기였다. 나치는 자극적인 단어였고, 자극적인 제목은 관심을 끌기 쉬웠다. 하물며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는 기사를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정의를 부르짖는 애국자가 될 수 있었다. 글자는 방사능과도 같았다. 보이지 않는 사상과 이념, 사실은 머릿속에 스며들어 정신을 피폭시킨다. 메가라의 여론전은 나름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럼...대체 그 능력을 가져서 뭐하게요?"

"뭐...능력이 강하고, 잘 조절만 한다면 굳이...지금같은 재래식 무기의 필요성이 떨어지겠죠. 장비에 비해 유지비도 적게 들 테니 말이예요."

"그걸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악용과 선용은 관점 차이예요. 아마 오로라 당신에겐 모든 단체가 악인으로 보이겠지만요."

"그럼 당신들이 나치랑 다른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오로라의 입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생각해봐요. 우리가 나치를 욕하는 것 중 하나가 유태인 실험이고, 더 나아가 일본의 마루타를 욕하잖아요. 왜 당신들은 남을 욕하면서 자신들을 포장해요?"


메가라는 신문 읽기를 잠시 그만두기로 했다. 읽고 있던 페이지 쪽수를 외운 메가라는 오로라를 마주보았다. 메가라는 스칼렛을 살리기 위해 수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작전을 바꾼 적이 있었다. 기사도 성공적으로 나왔으며, 현재 메가라는 상당히 여유가 생겨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승자의 역사죠."

"네?"

오로라가 의문을 표했다.



"우린 역사적으로 승자이자, 영웅의 나라였어요. 하지만 그 이전엔 뭐였죠? 그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원주민들 몰아내고, 그들을 잡아 노예로 만들어버리곤 했죠. 식민주의이자 제국주의가 혼합된 역사를 우린 겪지 못했어요. 그 시대에는 도리어 우리가 야만인이었죠. 근데...이미지가 바뀌었잖아요, 이미지가."



오로라는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오로라는 블루라운드에서 회계 부서에 있을 정도로 유능했지만, 역사는 재무제표를 보는 데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것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었고, 살아남았다.


"1차 대전, 그리고 2차 대전 때 명분이 충분한 절대 악이 생겼죠. 그리고 당신네 나라와 저희 나라는 같이 연합했고, 싸워서, 이겼어요. 수백년 동안 야만스러운 짓을 했던 우리 전 세대들이 40년 만에 영웅으로 거듭났다니까요?"


"영웅이 된 게 어때서요?"

오로라가 반문했다. 점점 오로라의 배경지식으론 알아듣기 힘든 말들이 메가라의 입에서 튀어나와 총알이 되어 오로라에게 탄막을 형성하는 것 같았다.


"전 나쁘다고 한 적 없어요. 어느 나라건 이미지 변경은 하는 법이니까요. 근데...저희 나라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쿠르드 민병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봐요. 이스라엘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폭격을 구경하려고 밤에 따로 의자를 구해와서 그걸 '감상'해요. 백린탄도 쓰고요. 쿠르드 민병대는 어떻죠? 터키와 관계를 고려해서 군대를 철수하려 했고, 민병대는 거의 버리다시피 쫓겨났어요."


"....그런 건 처음 들어봐요."


"오로라, 내가 볼 때 당신은 마치 새장 속에 사는 카나리아 같아요. 일단 배 잘 채우고, 관심사만 쳐다보며 사는 그런 부류. 쓴 소리 하게 되서 미안한데, 세상 살다 보면 관심 없는 것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게 다 지식이 되거든요. 그래야지 넓은 시각과 생각의 폭을 가질 수 있게 돼요."


메가라는 신문지의 끝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묘하게 중독적이어서, 메가라는 만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세계 곳곳에서 욕을 하죠. '저게 민주주의냐', '돈의 탈을 쓴 돼지'라거나... 하지만 전쟁은 안 일어나잖아요? 우린 힘을 가지고 있고, 이전 전쟁에서 쟁취한 승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힘이 닿게 되는 편들이 선을 넘어도, 우린 그걸 묵인하거나 포장해요."


오로라는 어느 정도 메가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국방력의 크기는 세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크기를 의미했다. 오로라는 이제 깨달았다. 이성과 논리를 판단하기엔 객관성의 한계를 알기엔 부족했다.


"역사가 기억할 거예요...."


오로라가 말했다. 아무리 작은 진실이라도 전 세계 사람들 중 하나라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역사가 되고, 작은 글귀나마 역사로 치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패자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이해라기보다 동정을 하고 살아왔으니까."


"그럼 정말로...당신 말이 맞다면 아이들을 무기화 시킬 거예요?"


"그건 제 권한 밖의 일이예요. 일단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겠지만...극단주의자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훈령을 내릴 수도 있겠죠?"


메가라는 차분히 말했다. 메가라 입장에선 오로라의 지식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쉽게 풀어서 얘기했지만, 메가라의 눈에는 오로라가 아직 이해를 완전히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비춰졌다.


"더러운 역사죠. 앞으로 역사는 흘러갈 테고요. 오로라, 전 당신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해요. 엄청 부당하다 생각하겠죠. 그런데...이게 현실이예요."


메가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오로라는 착잡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전 그 역사에서 탈출할 거거든요."


"예?"


오로라가 눈썹을 모으며 의문을 던졌다.


"스칼렛을 보면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해두죠. 이 일이 잘 끝나면...사표 내려고요. 안보팔이도 이제 신물나요."


"그 말은..."


"제 생각이 당신 생각하고 비슷해졌단 뜻이예요. 너무 극단적으로 살아가면 얻는 것보다 잃는게 더 많아요. 나가기 전까진 권한 안에서 최대한 스칼렛 살리고, 아이들이라거나 그런 부속된 프로젝트들은 최대한 윤리를 벗어나지 않게 조절해 볼 테니까..."


메라가는 낮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걱정 하지 말고, 좀 웃어요."










116.


안나는 한참을 호숫가에 앉아 멍하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박자박 풀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앙...나 언..니."


졸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엘사였다. 안나가 고개를 돌리자, 졸린 눈을 비비면서 비적비적 걸어오는 엘사가 있었다.


"엘사? 좀 더 자지 않구..."

"조금 시끄러워서 깨버렸어요..."


엘사가 헤헤 웃으며 안나의 다리 사이에 등을 보이며 앉았다.

"무슨 ....얘기를..하신 거예요?"


안나는 엘사에게 한스와 나눈 말을 전해줄 수 없었다. 한스에게 거짓말로 둘러대긴 했지만, 엘사를 넘기고 자주 찾아볼 거라는 말은 거짓이라도 엘사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올 게 뻔했다.


"언니 도와주는 아저씨하고 잠깐 말다툼이 있었거든."


"싸우면...나빠요."


엘사가 안나의 팔을 잡고 끌어안으며 말했다. 따뜻한 엘사의 체온이 난로처럼 안나의 차가운 몸을 채워나갔다. 안나의 겉을 맴돌던 추위는 곧바로 누근해졌다.

"언니를 도와주는 좋은 아저씨잖아요."

엘사는 전화기의 주인이 바뀐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앙나 언니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건 맞지....."

안나가 턱을 긁으며 엘사의 머리띠를 다시 정돈해 주었다.


"저 이글루는 멜리사가 만든 거예요?"

엘사가 안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응, 엘사는 기억 못하겠지만, 우린 저 호수에 퐁당! 하고 빠졌었어. 그런데 멜리사가 얼음으로 우릴 구해줬고, 날 살려줬어. 엘사의 눈가루와 비슷하게 얼음을 내 가슴에 새겨넣었더니, 아픈 게 모두 사라졌어."


"진짜요...? 우와아...."


어둠 속에서 엘사의 눈은 이 순간만큼 유난히 빛난 적이 없었다. 엘사는 멜리사의 얼음에 치유 능력도 있는 것에 대해 신기해했다. 하지만 그 설레임으로 채워진 눈에 슬픔이 덧입혀졌다.

"그럼 전 이제 필요 없어지는 거예요...?"

"아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하니?"

안나는 엘사가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비자기애성 행동 중 하나였다.

"우리 엘사도 소중해. 엘사가 아니었다면 난 진작 죽었고, 멜리사도 못 만났을거야. 너희 둘 다 언니한텐 소중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돼. 알았지?"

늘 그랬듯, 안나는 엘사에게 손가락을 내밀었고, 엘사도 당연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걸어 고리를 만들었다.

"우린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 뭐가 되었든 간에...언니는 너희들을 놓지 않을 거야."

안나는 엘사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너무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네. 엘사, 만약에 이 일이 끝나면 뭘 하고 싶니?"

"네?"

엘사가 의아해했다. 안나는 엘사의 땋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이 일이 완벽히 끝난다고 하여도 엘사와 멜리사가 실험을 받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안나는 어떻게든 두 동생이 힘들어 하는 실험들을 겪지 않게 지켜볼 것이었다. 인사 파일도 개인 클라우드와 각종 저장장치에 복사해 두었기 때문에 안나에겐 협상과 협박 카드가 동시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뭐든 좋으니 말해보렴. 언니가 할 수 있는 데까진 들어줄게."


"언니랑 같이 있고 싶어요."


엘사가 위로 손을 뻗어 안나의 볼을 매만진다. 얕은 눈가루가 볼에 묻어 스며들었고, 설레임이란 씨앗이 마음의 밭에서 싹을 틔운다.


"언제나 같이 있을 거야. 다른 건 없니?"


엘사는 우움,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엘사가 말끝을 흐리며 헤헤 웃었다.

"언니 먼저 말해도 될까? 언니는...우리 멜리사하고....엘사하고 같이 캠핑을 가고 싶어. 우리 셋이 탔던 검은 차 기억나니?"


엘사의 머리가 찰랑거리며 안나의 윗팔을 두드렸다. 끄덕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차 말고, 엘사의 머리처럼 하얀 색에 아주 큰 캠핑카를 하나 빌려서... 어디 시골 같은 데로 가서 일주일 동안 늘어지게 놀고 싶어."


"초콜릿도 챙길 거죠, 사탕도요?"


"당연하지, 드럼통 째로 사 가자!"


엘사는 상상만 해도 기쁜 것처럼 까르르 웃었다. 엘사의 웃음소리가 호수 건너편으로 날아가 그들만의 메아리가 되었다.


"저녁이 되면 모닥불도 피우고, 거기서 바베큐를 구워서 먹고, 간식이 먹고 싶으면 마쉬멜로우를 구워서 먹고... 밤이 깊어지면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면서 잠들고 싶어. 이런, 천장개방 옵션이 포함된 걸 구해야 겠는데."


"많이 비싼가요...?"


이미 안나는 CIA에 재직했을 때와 샐리맨더에서 활동했을 때의 정식 계약, 그리고 비정식 계약 작업들을 성공시킨 것에 대한 보수들을 저축하고 있었다. 돈을 물처럼 쓰지만 않으면 엘사와 멜리사를 데리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안나는 검소하게 살아왔다. 사실 돈을 어디에다 써야 할 지 생각해두지 않았고, 근근히 간식 조각들과 작업에 필요한 사제 장비들을 구입하는 것이 안나의 대표적인 지출들이었다. 그나마 간식들도 뮬란이 살아 생전에 안나에게 반 강제로 알려준 소비 방식이었다.


"그렇게 안 비쌀 걸? 그리고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사 주고 싶어."

"고마워요, 앙나 언니."

"난 너희들이 있어준 게 더 고마워."


둘 사이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안나는 언젠가 엘사에게 진짜 엘사에 대해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임을 직시했다. 안나가 엘사의 어깨를 주물렀고, 엘사는 아픈 느낌이 들었는지 끙끙대었다.



"...엘사, 만약에, 정말 만약에 엘사랑 닮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니?"


"저와 닮은 사람이 있어요?"


"확정은 아니지만... 만약에 있다면."


아직 진짜 엘사의 생사는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엘사가 살아있다면, 미리 엘사와 멜리사의 심정을 들어보고 안나가 적절히 대처해야 했다.


"무섭고.... 신기할 것 같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 같아요. 저처럼 초콜릿을 좋아할 거 같아요."


이 엘사는 진짜 엘사의 어릴적 모습과 판박이었다. 증오란 걸 느끼지 못하고, 항상 남을 배려하는 성격은 안나로 하여금 엘사를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멜리사가 엘사랑 닮지 않았다면, 그건 아니었다. 엘사가 가지고 있는 푸른 눈과 똑같았으며, 안나의 기억 속에선 안나와 놀았던 엘사의 모습이 멜리사의 평소 성격과 아주 흡사했다. 그리고 얼굴형도 아주 닮아 누가 보면 쌍둥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아이들은 엘사의 아이이자, 안나의 동생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공통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사람도 저랑 가족이었으면 좋겠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요. 초콜릿처럼요."


엘사는 보기 드물게 당차게 안나에게 말했다.


"배려해 줘서 고마워, 엘사."


"저야말로 고마워요."


엘사가 안나 주변에 눈가루 더미들을 만들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도 엘사는 흐흥거리며 이윽고 안나를 둘러싼 분지 모양 눈더미를 쌓아올렸다.


"언니야말로...멜리사와 제 능력을 거리낌 없이 봐주셨잖아요."


눈더미에서 하얀 빛이 조금식 새어나왔다. 이글루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음...사실 조금 무서웠어."

"네?"

"처음 만날 때, 음...엘사가 가운 입은 사람들한테 맞아 기절할 때, 언니는 모퉁이 뒤에 있었어. 그 이전 층에서 엘사를 때린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나무...돌...불 같은 것들로 죽어 있었거든."

"전 안 죽였어요..."


엘사는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안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알아, 엘사의 능력은 사람을 해하는게 아니라, 위하는 성격이잖아? 아무튼... 좀 기괴했다...고 느꼈어. 자연에서 볼 법한 물체들이 사람을 죽였다는게."


안나는 엘사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방탄복 파우치 속에 숨겨둔 동전 크기의 초콜릿의 포장지를 벗겨 엘사의 입에 물려주었다. 아기새처럼 받아먹은 엘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 안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엘사를 보고 나니까...내가 알던 사람하고 아주 비슷한 거야. 그리고 엘사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고 깨달았지. '이 애들은 잘못이 없구나' 하고 말이야. 그 때 빨리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머리는 괜찮니?"


안나는 그 때 권총으로 맞아 혹이 났을까봐 엘사의 머리를 더듬거렸다.


"안 아파요오...언니 잘못 아니예요오..."


엘사는 간지러운듯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도 혹의 볼록한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서, 엘사 너를 내팽개치고 도망간 나쁜 과학자가 있어서, 그 사람을 혼내주고 오며 보니까, 엘사가 주변에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던 거야. 그 땐 나도 위험을 느꼈지. '아, 저기에 휘말리면 나도 다치겠구나.'. 하지만...엘사 넌 나에게 중요한..."


말을 잇기엔 힘든 단어가 혀 끝에서 멈췄다. 패키지, 안나는 엘사를 만나기 전 그저 패키지2라고만 인식했었다. 이 단어를 꺼냈다간 엘사가 안나와의 인연이 그저 허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었고, 이젠 더 중요하고, 소중한가족이 되었어. 엘사도 그렇게 생각하지?"


"넴!"


엘사가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이젠 너희들의 능력이 무섭다고 생각 안해. 오히려 아름답지. 멜리사의 능력은 조금 과격해도 언니와 엘사를 구할 때 쓰였고, 언니의 발작을 치료까지 시켜 주었어. 엘사는 어때, 예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나는 눈가루에 닿으면 어떤 상처든 다 낫잖아? 이걸 무서워하는 게 더 이상한 거야. 그러니까, 엘사."


"네?"


엘사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보았다.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는 눈더미 속에서 엘사의 행복한 미소가 갓 피어난 목련처럼 화사했다.


"언제까지나, 우릴 보며 웃어주렴."










117.


앙나 언니이, 우리 언제 출발할 거예요?

음, 내일 저녁에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낮에 움직이면 들킬 수 있거든.

그럼 그때까지 뭐 할 거예요?

지도 보면서 위치 찾고...마지막으로 쉬어 둬야겠지? 엘사와 멜리사와 같이.

하지만 심심할 거 같아요.. 아니, 죄송해요. 앙나 언니는 지금 힘드실 텐데...죄송해요오...

...제스처 게임이라고 아니?









118.



이두나는 문 밑으로 억지로 약들을 밀어넣고 사라진 한나를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문을 두들기던 검은 빗소리는 고요에 섞여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방에서 복도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미풍이 쉭쉭거리며 복도의 창문들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들려오는 발소리는 없었다. 이미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을 시간이었다.



오늘 한나가 이두나를 찾아오는 일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목소리조차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두나는 한나가 이유없이 스칼렛을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나는 이두나를 납치한 사람들 중 하나일 테고, 이두나는 인질이었다. 한나가 오기 전엔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문 밑 입구로 밀어넣어주었고, 그들은 이두나의 말에 아무런 대꾸조차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는 러시아 여군이라 하더라도 순진함이 없잖아 있었고, 납치에 가담했기보다는 그저 편승해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목소리와 성격이 스칼렛과 흡사해 이두나는 순간 혼동했지만, 그 아이의 정겨움이 그리워서 난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한나..."


이두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문 앞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한나는 스칼렛을 죽이기 위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한스의 사주를 받고 임했겠지만, 한나는 스칼렛이 가족을 학대했다는 기억 속의 명분으로 이 저택에 있었다.



이두나는 스칼렛을 3일 밖에 만나지 못했다. 처음 면접이 있었을 때, 스칼렛은 소년병을 사살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나의 가족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칼렛이 소년병을 죽인 것은 공리주의와 전체주의에 따른 당연한 발상이었다. 스칼렛의 행동에는 단순한 쾌락을 추구했다는 느낌은 묻어있지 않았었다. 그리고 3일간 있었던 스칼렛의 모습에는 냉혹한 킬러라기 보다는 레옹 같은 입체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두나는 한나를 설득했지만, 한나는 믿지 못했고, 결국 약을 남기고 자리를 박차고 말았다. 아침이 되면 한나가 다시 수프를 들고 돌아올 것이었다. 그 때가 되면, 한나에게 정겹게 얘기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마치 바닷속에 빠진 거대한 금고 안에 갇혀 있는 압박이 이두나의 두 팔에 들려 있는 것 같았다. 이두나는 한나가 돌아올 때까지 그녀가 준 반창고와 연고로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응급처치했다.



반창고를 몇 개 붙이지 않았는데도, 이두나의 양 손은 마비에 걸린 것처럼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 수프를 먹을 땐 숟가락이 아니라 마실 수밖에 없다는 선택지가 강제되었다. 이두나는 씁쓸히 웃으며 부산물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가 누워 있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두나는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려고 했을 때, 별안간 문 앞에서 부시럭거리는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두나는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고, 그만 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이두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혹시 몰라 문 밑 입구를 손가락으로 밀어보았다. 칸막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나?"


문 밖의 상대방은 한나처럼 문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문을 타고 옷감 특유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저 자는 듯한 낮은 숨소리만을 가까이에서 뱉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인가..."

어쩌면 이두나를 납치한 사람들 중에서 이두나의 경비를 서다 지쳐 자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이두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를 향해 겨우 두 걸음 걸어갔을 찰나였다.


"엄....마아...."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스칼렛도, 메가라도 아니었다. 매 끼니 때마다 이두나와 얘기를 나눴던 한나였다.


"아빠아아..."


한나는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앳되어 보이는 나이에 몸 쓰는 일을 하니 부모님을 찾는 것도 당연하다고 이두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있어....누군지 모르겠어....."

악몽을 꾸는 것일까, 한나는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해애.... 제발 알려줘...."

문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둔기의 타격음이 아니었다. 여전히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문 앞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못 믿겠어...나조차도..."

한나의 흐느낌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지우려는 것처럼 빗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이두나는 다시 문으로 돌아와 기대어 앉았다. 적이라도,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아가야."

이두나가 조용히 한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아....?"

한나는 잠들면서도 이두나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어딨어어..."


기약 없이 누군가를 찾는다는 일은 찾는 이로 하여금 지치고 슬프게 만들었다. 이두나도 그런 경험을 몇 년간 겪었고, 지금은 포기했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이두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러기에 이두나는 잠시 한나에게 '엄마'라고 속이기로 했다. 이두나의 돌발행동에는 지금껏 찾지 못한 아이들로 인해 쌓여진 죄책감을 풀으려는 얄팍한 이기심도 조금 들어있었다.


"미안해, 우리 아가. 엄마가 많이 늦었지?"


"그럼 안아줘어....부탁이야....제바알...."


한나가 문에 팔을 비비는 소리가 들렸다. 음원을 향해 팔을 뻗어도, 벽처럼 우뚝 서 있는 문에 좌절되고 만다.


"엄마아..."


"미안해, 우리 딸. 엄마가 당장은 우리 한나를 만날 수가 없어. 하지만 우리 한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주겠니?"


이두나의 말을 들으려는 듯 문 밖의 울음소리가 줄어들었다.


"우리 한나가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 엄마는 알고 있단다. 많이 지칠 거란다. 그리고 그걸 짊어지기엔 엄마 눈에는 아직도 어린애인걸."


"우웅...."


"그러니까, 엄마가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지치고, 힘들다면....잠깐은 숨어 있어도 된단다.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을 테니까. 잠시만 그 힘든 곳에서 도망쳐 주렴."


이두나는 스칼렛이 살아 있기를 바랬고, 스칼렛만큼은 아니어도 한나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한나가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이두나의 속삭임을 듣고 마음을 바꿔주기를 이두나는 원했다.


"그래도 돼....?"


"그래도 됀단다. 우리 아가, 아가 잘못은 하나도 없어."


한나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듣고 싶은 말을 듣게 되어 안정을 되찾은 것일까. 한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 대신, 그녀의 숨소리만이 이두나에게 들려왔다. 이두나는 아까 정리해 두었던 남은 연고와 반창고 상자를 한나가 했던 것처럼 입구 밑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잠시 생각을 바꿔 테이블에 놓인 펜 하나를 가져와 반창고 상자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필기를 마친 이두나는 입구 밑으로 두 물건을 쑤셔 밖으로 내보냈다. 한나가 일어나면 써 두었던 편지를 읽을 것이었다. 한나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잠시 미뤄둬야 할 때였다. 훌쩍거리며 코골이를 하는 한나의 잠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러니... 울지 말고, 웃어 주렴. 한나 아렌."


남편의 성이자, 자신의 성을 붙여준 이유는 가슴을 옥죄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도와주고 싶고, 보살펴 주고 싶은 모성애가 한나에게 향했기 때문이었다. 스칼렛이 본다면 스톡홀름에 빠졌다고 생각하겠지만, 한나는 어떤 위협을 가하지 않고, 껍데기를 벗은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이두나는 한나의 본 모습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빗소리는 이두나가 침대에서 이불을 가져와 문 앞에 기대 잠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나 아렌과 이두나 아렌은 닿지 못했음에도, 어느 새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119.

엘사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안나에게 칭얼대었고, 안나는 멜리사에게 했던 것처럼 '코 톡톡'을 해 다시 잠들게 했다. 안나 또한 잠에 들기로 했으며, 남아있는 보온 팩 중 2개를 엘사의 등과 멜리사의 등에 붙였고, 안나는 두 아이를 끌어 안는 방식으로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8시간 뒤, 안나는 아침 9시에 눈을 떴다. 잠을 푹 잤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전에 파우치를 해제하지 않아 몸 전체가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멜리사의 다리가 안나의 파우치처럼 배 위에 턱 올려져 있었다. 안나가 흘끔 오른쪽을 돌아보자, 거의 대자 형으로 쿠아 쿠아 잠에 빠져 있는 삐죽머리 멜리사가 눈에 들어왔다.



'좀 무겁네....'


왼쪽을 돌아보자, 엘사는 요람 속의 갓난아기처럼 두 손을 모아 웅크리며 자고 있었다. 안나는 두 아이가 깨지 않게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멜리사의 다리를 들어 바닥으로 내렸다. 안나는 멀리 갈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잡을까 싶어 mp5를 챙겼고, 엘사가 벤 백팩에서 소음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글루 밖으로 나오자, 어젯 밤 안나와 두 동생이 구멍을 뚫고 추락해 빛이 들지 않는 호숫가엔 마치 종교적 의미를 가득한 것 같은 진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늘이 져 있는 곳이 많았고, 안나와 이글루가 바로 그 자리였다. 하얀 입김이 솟아올랐고, 안나는 mp5에 소음기를 돌려 끼우면서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호숫가에 다시 가 앉았다. 호숫가엔 햇빛이 내리쬐었고, 차가운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햇빛 안에 들어온 안나의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어느 정도 떨림이 잦아들자, 안나는 방수 파우치에서 핫라인을 꺼내 다시 전원을 켰다. 핫라인의 새 주인일 한스가 지금쯤 새 지도와 이미지를 보냈을 터였다. 휴대폰이 켜지자, 안나는 이젠 익숙한 동작으로 빠르게 당텍의 메신저로 스크린을 이동시켰다. 안나의 예상대로 자료들은 수신되었고, 당텍에게 받았던 것보다 더 큰 용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운로드 되어진 이미지들에는 저택의 전경과 내부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발코니가 여럿 있었고, 벽돌로 만들어진 3층 정도의 저택을 가스등으로 보이는 전등이 세워진 돌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저택의 사방에는 2층 발코니 위로 각각 CCTV가 1개씩 설치되어 있었다. 침투할 때 염두해 둬야 할 문제로 안나는 기억해 두기로 했다. 다음은 내부의 모습이었다. 내부에 설치된 CCTV는 없었고, 수수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고급 호텔에서나 볼 법한 샹들리제가 층마다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두껍고 긴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리스 신전에서 볼 법한 양식의 대리석 기둥이 방문의 양쪽에 세워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방은 치데르티 모텔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복도 양쪽으로 방이 세 개씩, 층마다 총 6개의 방이 있었으며, 이는 안나가 진입을 할 때 주의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적이 튀어나올 수도 있으며, 문을 열면 부비트랩이 있을지도 모른다.



1층에는 2, 3층과는 다르게 작은 부엌과 그에 맞지 않는 큰 실버색 냉장고가 존재감을 자랑했다. 방은 12개인데, 부엌 한가운데 오크재 테이블에는 각 방향별로 4개의 의자만이 놓여 있었다. 이질적이었고, 접근하기엔 애매했다. 무엇보다도 이두나가 1층에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든 표적에는 경호원 내지 경비가 있을 것이며,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최상층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안나가 치데르티 모텔에서 집주인인 후안의 거처 바로 밑의 401호실에 자리를 잡은 것처럼, 먹잇감이 되면 최대한의 시간을 끌어보려고 먼 곳에 자리를 잡아 기도하기 마련이었다.



안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다시 2층과 3층의 복도를 살펴보았다. 2층에는 적들이, 3층의 방들 어딘가엔 이두나와 적이 있을 것이리라고 안나는 핫라인의 오른쪽 끝 테투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이미지를 모두 확인한 안나는 이번엔 지도를 열었다. 안나가 부탁한 것과는 다르게 50km 축척이 아닌 100km 축척까지 지원되는 지도였다. 적의 적이 나의 친구라는 말은 안나도 익히 들어 본 바 있었지만, 너무 과도하게 친절을 밀어붙이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도에는 안나가 일전에 보았던 것과 거의 비슷한 이두나의 저택을 둘러싼 도넛을 연상시키는 지형이 빨간 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안나는 상단 바를 내려 위치 추적을 켰다. 한스가 위치를 알겠지만, 그가 원하는 건 이두나의 처리와 2호 개체인 엘사를 원하는 것이었기에, 쉽사리 추적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한스는 안나에게 제안을 한 상태였다. 위치가 동기화 되었음을 알리는 화살표가 좌측 상단에 떴고, 안나는 핀 아이콘을 한 번 눌러 위치를 태그했다. 손가락을 좁혀 지도를 축소시켰고, 그린 맨 아미를 연상케 하는 아이콘이 저 멀리서 깜빡거렸다.


축척을 가늠해 보니 이두나의 저택과 안나 일행은 약 20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숲은 이두나의 저택까지 이어져 있었다. 성인의 평균 도보 속도는 시속 5km 내외였고, 엘사와 멜리사의 도보 속도와 숲의 사정까지 고려한다면 못해도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소요될 터였다. 아이들의 특수한 눈은 어둠 속에서도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나는 초능력자가 아니었으며, 야간투시경의 배터리를 모두 소진시키면서 도보를 하고 싶진 않았다.


안나는 에리얼에게 야간투시경 배터리와 충전 케이블을 주문하지 못한 것을 이 순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회는 길게 가지 않았다. 호숫가 건너 편, 안나가 새벽에 보았던 그곳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안나는 스코프의 전원을 켜 겨누었다. 달팽이가 사람이 된 것처럼, 안나는 천천히 숨을 쉬며 스코프 속 붉은 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풀숲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두 마리의 토끼였고, 안나는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와 함께 다섯 발의 총알이 토끼들을 향해 날아가 작고 연약한 몸들에 명중했다. 안나는 곧바로 뒷걸음질을 해 이글루 뒤로 몸을 숨겼다. 안나에게 쏟아지는 총알은 없었다. 안나는 토끼들이 일종의 미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안나는 이글루에서 몸을 다시 내밀어 나왔고, 호숫가 건너편에 새로 탄생한 두 죽음에게 다가갔다. 대략 30cm 크기의 검은색, 그리고 갈색 토끼가 안나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안나는 트루돈 나이프를 꺼내 그 자리에서 토끼들을 검은 색, 갈색 순으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나의 손에는 큼지막한 두 덩이의 토끼 고기가 들려 있었다.



안나는 호숫가로 돌아와 이글루 위에 토끼 고기들을 올려 놓았고, 다시 호숫가 건너편으로 가 가죽과 내장들을 땅에 파 묻었다. 멧돼지들이 주변에 있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냄새는 덮어주어야 했다. 다시 이글루로 돌아온 안나는 근처 숲에서 나무들과 넓직한 돌판들을 가져왔다.


안나는 트루돈 나이프로 그나마 넓적한 나무판에 홈을 팠다. 그 다음 얇은 막대기 하나를 꽂아 온 힘을 다해 비볐다. 스코프 렌즈를 때서 햇빛을 모아 비추는 방법도 있었지만, 스코프는 총 한 정 이상으로 비싼 부착물 중 하나였고, 이두나의 저택에 침투할 때 감시와 교전에 유용할 물건이었다. 10분이 지나고 손에 마비가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나무판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작은 불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나는 나무판 위에 건조한 풀 부스러기들을 올려놓았고, 곧바로 숲 속으로 들어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평지에 나무판을 내려놓았다. 연기가 나오는 것을 피할 순 없지만, 최대한 연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안나는 더 깊은 숲 속을 선택했다. 위치를 기억해둔 안나는 다시 이글루로 들어갔다. 엘사는 멜리사의 머리를 안고 자고 있었고, 엘사는 멜리사의 배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안나는 흐뭇하게 한 번 웃었다.


"꼬맹이들, 이제 일어나야지."


안나가 두 아이의 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멜리사와 엘사의 얼굴이 동시에 찡그러졌다.


""으으웅....""


"아침 먹어야지. 어서 일어나렴."


먼저 몸을 일으킨 멜리사는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크게 하품을 했다. 뒤이어 일어난 엘사는 두 눈에 힘을 주어 깜빡였다. 그리고 눈 앞에 안나가 보이자, 졸음에 취한 헤실거리며 두 아이는 안나에게 웃어보였다.


"잘 잤지?"


안나가 멜리사와 엘사의 눈에 붙은 눈곱들을 떼어주며 말했다.

"응..."

"네에...."

두 아이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은 빵이예요...?"


엘사는 백팩 속에 밀봉해둔 남은 빵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 아침은 고기야. 언니가 진즉에 다 손질해 놓았지. 하지만..엘사와 멜리사의 도움이 좀 필요한데, 해줄 수 있니?"

""네에....""

두 동생이 연달아 하품을 했고, 안나는 아이들을 두 팔로 안아 들어 이글루 밖으로 나왔다.

"예쁘다아...."

멜리사가 눈을 빛내며 호수의 전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엘사도 비슷하게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아침을 올려다 보았다.


"이따 실컷 볼 수 있으니까, 자, 우린 저쪽으로 가야 해."


안나가 동생들을 풀밭 위에 내려놓고 고깃덩이들과 돌판들을 들고 앞장섰다. 그 뒤로 엘사와 멜리사가 졸졸졸 안나의 뒤를 따라왔다.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렴."


안나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고, 등 뒤에선 네에-하고 두 작은 병아리들이 지저귀었다. 머지않아 세 사람은 안나가 봐 두었던 평지에 도착했다. 이미 안나가 피워놓은 모닥불이 타닥거리며 불타고 있었다. 안나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몇개 더 넣은 다음, 두 돌판을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수직으로 세웠다. 그리고 남은 돌판 하나를 들고, 엘사를 보면서 말했다.


"엘사, 이상한 부탁이지만, 눈보라로 이 돌판을 씻어줄 수 있니?"

"네...?"

엘사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못할 건 아닌데...아니, 아니예요. 해 볼게요..."


엘사가 돌판을 향해 손을 뻗었고, 이내 작은 눈보라들이 돌판에 띄워졌다. 눈들이 돌판에 닿아 녹아 물이 되었고, 그 물들을 남은 눈보라들이 세차게 씻어냈다.


"잘 했어, 엘사. 그리고 이것도....부탁해."


안나는 엘사가 씻어낸 돌판을 세워둔 돌판 위에 무너지지 않게 단단히 세워놓고, 엘사를 향해 두 고깃덩이를 보여 주었다. 엘사는 익숙하게 눈보라들을 만들어 내 고깃덩이의 겉과 속을 모두 씻는 데 성공했다. 어느 정도 돌판이 불에 익혀지자, 안나는 트루돈 나이프로 고기들을 적당히 잘라 돌판 위에 올렸고, 이내 치익 소리를 내며 고기들은 익혀지기 시작했다.


"나는 뭐 할 거 없어?"


멜리사가 안나의 다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당연히 있지. 접시랑 포크를 만들 수 있지? 젓가락도 괜찮아."


"음.....일단 시도는 해 볼게!"


멜리사는 두 눈썹을 찡그리며 두 손을 가까이 모아 손가락을 놀렸고, 허공에서 조금씩 얼음들이 만들어졌다. 얼음들이 뭉쳐져 조금씩 형태를 갖춰갔고, 이내 멜리사의 두 손에는 세 장의 접시와 세 개의 포크가 얹혀져 있었다.


"안 차갑니?"


"응, 내가 만든 것들은 안 차갑던데."

"부럽다아...."

우쭐하는 멜리사를 보며 엘사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엘사를 보며 안나는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엘사, 아무리 차가워도 마음이 따뜻하면 된 거야. 괜찮으니까 기분 풀어."


안나가 엘사의 볼을 죽 죽 잡아당겼고, 엘사는 웅얼거리며 바둥거렸다. 고기가 거의 다 익어갈 무렵, 안나는 멜리사에게 받아든 녹지 않는 얼음 포크로 고기들을 하나씩 찔러보았다.


"엘사, 혹시 이 연기들 눈보라로 쫓아낼 수 있니?"


연기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으나 안나는 그래도 최대한 은신 상태를 유지하길 바랬다. 당텍과 한스의 메신저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적혀있지 않았다. 수색대는 없을 것이라고 안나는 짐작했다. 엘사는 안나의 말에 연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 뒤, 눈보라가 퍼지지 못해 나무 위에서 머물고 있는 연기들을 삼켰고, 연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쫓아낼 줄만 알았는데 아예 정화시키는구나..."

"이상한가요....?"

"아니? 충분히 매력적이야, 엘사."

안나가 다 익은 고기들을 얼음 접시들에 담아 엘사와 안나에게 가져다 주었고, 두 동생은 쓰러진 나무줄기에 나란히 걸터 앉아 고기를 조금씩 베어 물기 시작했다.


"아! 잠깐, 잠깐."


멜리사가 잠시 접시를 내려놓고 허공에서 세 개의 얼음 컵을 만들었다.


"엘사, 여기여기!"


멜리사가 컵 안 쪽을 가리켰고, 엘사는 멜리사의 생각을 읽은 듯 컵 안 쪽을 향해 손가락을 돌렸다. 잠시 뒤, 멜리사의 컵에는 살얼음이 뜬 얼음물이 만들어졌다.


"언니도...아."


엘사는 기쁘게 웃으며 안나의 컵에도 얼음물을 만들어 넣으려 했지만, 안나가 얼음물 트라우마가 있는지 잠시 멈칫했다. 안나는 엘사의 난처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일단 한 번 해 줄래?"


안나가 얼음 컵을 엘사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돌판에 뎁혀 먹으면 돼."


멜리사의 얼음은 멜리사의 의지에 따라 녹음의 유무를 정할 수 있었다. 이글루와 접시, 그리고 포크와 컵이 그 증거였다. 반면 엘사의 눈과 얼음들은 손쉽게 녹았다. 모닥불을 꺼졌지만 돌판은 아직 뜨거웠다. 엘사의 얼음물을 컵에 담아 돌판 위에 놓는다면 금새 따뜻한 물이 든 컵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엘사가 안나의 얼음 컵에 손짓을 하자, 멜리사의 것처럼 얼음물이 만들어졌다. 안나가 돌판 위에 올려놓고 접시 위의 고기를 집어먹기 시작하자, 엘사와 멜리사도 같이 돌판 위에 자신들의 컵을 올려 놓았다.


"너희들은 안 그래도 되는데?"


안나가 두 동생의 행동에 의아한 듯이 말했다.


"아침에 찬 물은 속에 안 좋아서 그래."


"맞아요...."


멜리사는 나름 합당한 이유를 밝혔고, 엘사는 멜리사의 이유에 재청했다. 하지만 두 동생들은 어제 있었던 일들 중 하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 차에서 먹었던 찬 물은...?"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맞아요....."









120.

...나비?

아니예요.

정답! 기지개!

아닌데...

우리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

그건 맞지만...정답이 아닌데요.....

대체 정답이 뭐야?

.....폭탄이요.

엥?

언니가 쓰셨던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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