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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간은 없다지만, 그녀는 완전무결했다.

태정태세문단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16 11:34:50
조회 679 추천 45 댓글 13

라고 시작하는 뭔가 엄청난 걸 보고싶다.




 어릴 적에 동네에서 놀던 애들끼리는 다 알고 있었어. 엘사 아렌델. 그 애가 언제든지 훼까닥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없이 씩 웃는 순간 폭풍이 치기 직전이라도 되는 마냥 고요해지고,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엘사가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워하면서도 기대했지.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라고들 하잖아. 그 셋을 합치면 '엘사짓 구경'이었어. 한 번은 어떤 겁대가리 없는 애가 엘사한테 물총을 쏴버린 거야. 그 날 물에 빠진 사람이 몸에 힘을 빼지 않고 허우적거리면 얼마나 빠르게 물 속 깊은 곳으로 잠기는지 확인할 수 있었어. 엘사가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하면 복수를 당하니까 모두 무서워서 엘사가 하자는 대로 움직였어. 그 무서움에 떨었던 애들 중 하나가 나였고. 엘사에게 딱 한 번 잘해줬을 뿐인데 엘사의 집착이 시작될 줄 누가 알기나 했겠어?


 내가 왜 이 얘기를 지금 했느냐. 지금 내 눈앞에 그 저명한 엘사 아렌델이 웃으며 악수를 청하고 있으니까!


 "반가워요, 안나."


 그것도 멀쩡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엘사의 주변 사람들이 두려움을 감춘 웃음을 짓지 않다니.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내가 숨도 못쉬고 얼어붙어 있으니 엘사는 머쓱하다는 듯 손을 물려서 뒷통수를 긁적거렸어. 주변에서 하하하 웃으며 '안나 씨 많이 긴장했나봐' 하고 속상해하지 말라고 엘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어. 물론 내 어깨도 두드려줬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엘사의 어깨를 두드린 저 손이 3분 안에 부러질게 분명한데 왜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거야! 침을 꿀꺽 삼키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 엘사가 다가와서 내 안색을 살폈어.


 "안나 씨, 괜찮아요? 안색이 창백한데."


 당신. 제정신이라면 엘사 가면은 벗고 다녀. 엘사 가면 쓰고 착한 짓 하면 스파이인 거 티날테니까 제발 좀 더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 가면을 써.


 "아스피린 있는데 그거라도 먹어볼래요?"


 당장 가면 벗고 FBI의 요원이라고 말해줘.


 한동안 엘사의 동태를 살피느라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지만, 이쯤 되면 인정해야할 것 같아. 그 싸이코 엘사가 정말 개과천선했다. 그래, 사실 어릴 적 성격 그대로 성인이 되기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특히 나쁜 버릇 같은 건 보통은 사춘기 때 친구 사귀느라고 고치기 마련이고. 수 년 간의 교육을 통해 인성이라는 게 탑재됐을지도 모르지. 우리 동네 미친개 엘사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니 안심이다. 어릴 때 처럼 집 밖에 나설 때마다 가슴 졸일 필요 없을테니까. 마음의 짐을 놓아버리자 드디어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더이상 상사한테 혼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 작업을 제시간에 다 마치니까 남들이랑 같은 시간에 퇴근할 수도 있고. 그리고 오늘은 팀원들이 근처 펍에서 간단히 늦은 환영회를 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신나서 따라갔지. 얼마만의 술인지. 싱글벙글 웃으며 팀원들 뒤를 따라가니까 엘사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어. 습관적으로 조금 물러나긴 했지만, 더이상 엘사가 예전만큼 무섭진 않으니까 웃으며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웃음이 많아졌네요?"

 "이제 슬슬 새 직장에 적응할 때도 됐죠."

 "아쉽네요. 안나가 긴장해서 뻣뻣해지는 표정이 귀엽고 좋았는데."

 "하하, 그런가...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좋았어요.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난데없이 뺨 맞은 듯한 표정. 그 얼굴을 보려면 정말 뺨을 때려야 할까요? 아, 난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표정은 안나오려나?"

 "음, 네? 어, 저기, 혹시, 기억하시는-"

 "내가 널 어떻게 잊겠니."


 아 젠장. 상대는 엘사라는 걸 간과했다.


 "어떻게 하면 안나가 더 긴장할 수 있을지 집에서 고민 좀 해야겠어요."


 완전무결한 싸이코 엘사 아렌델.




뭐 대충 이런 내용의 윤리의식 따위는 개나 줘버린 엘사와의 우당탕 사내 적응기 같은 거 보고싶다.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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