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갑자기 위염 걸리고 시험도 준비하느라 바빠서 글 쓸 경황이 없었음
다른 주제들도 잊지 않았으니 언젠가 써올게
존나 우울하니까 이런 거 싫어하는 놈들한텐 추천안함
정신적 부숨도 재밌어서 나름 빠르게 썼음
아주 오랫동안 꿈을 꾼 기분이였다. 하루 아침에 일어나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참사가 이어지는 꿈. 세상이 모두 죽고 홀로 살아남아 창백한 해를 올려다보는 순간에서야 샌즈는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꿈이여야만 했다.
그는 대피소에서 마구 떨며 기어나오던 괴물들과 눈을 마주쳤을때의 감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냐는 싸늘한 눈빛. 그들이 샌즈를 무작정 비난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가지 때문이였다. 그 또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으니까. 물론 몇몇은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으나, 알피스의 빠른 대처로 해골과 괴물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능숙하게 사태를 진압하고 혼란을 잠재운 왕실 과학자가 왕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였다. 알피스는 샌즈에게 같이 일해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해골은 그저 '난 책임 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그 무거운 직책을 회피했다. 그쯤되니 쏟아지는 비평이 두렵지도 않았던 것도 단단히 한 몫을 했고. 애당초 사랑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더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그 뒤로 샌즈는 아주 오랫동안 방 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찾아와 미음과 음식을 가져다주곤 했지만, 해골은 자신에게 넉넉히 음식을 나눠줄 정도로 형편 좋은 괴물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종종 바깥에서 물건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와 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굉음이 이어졌다. 그가 누워있던 방의 문이 부시지지 않은 건 과연 천운이였을까. 구태여 따지자면 아니였다. 어쩌면 그들도 샌즈가 누구보다도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 새, 샌즈. 괜찮아?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체통'이니, '자리를 지키셔야' 한다는 둥의 잔음이 들려왔으나, 샌즈는 메트리스에 누운채로 문을 힐끔였다. 왕이 되었다더니. 저렇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왕 다운' 연설을 하는 알피스의 모습을 떠올리던 그는 곧 느긋하게 눈을 감고서 몸을 돌아 누웠다. 정확히는, 돌아 누우려던 참이였다.
- 그, 그게···.
병사들을 물리는 듯한 명령이 이어진다. ···폭동이라도 일어났나? 아니, 지금 남아있는 괴물들로는 시위를 꾸리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지금의 지하세계는 꼭··· 왕국이 아니라 작은 마을과도 같았으니까. 딱 한번, 샌즈는 이 추억이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거처나 가족을 잃은 괴물들이 호텔에 모여 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재정 문제라기보단, 아직 죽은 가족들의 유해가 풀풀 날아다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탓일테다.
- ······파, 파피루스의 먼지랑, 다, 다른 물건들··· 수습했어.
그래봐야 수습할 게 많진 않았지만. 손을 분잡하게 꿈질거리는지, 문 너머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톡톡 맞물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 다, 다행히도 목도리 아래에 먼지가 나, 남아 있어서. 전부 날아가지는 아, 않았거든.
보아하니 유족들을 위해 먼지와 유산이라도 모아 돌려주고 있었나. 해골은 '다행'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치미는 역겨움을 참아내야만 했다. 누군가가 죽었는데, '내' 동생이 죽었는데. 그 사체가 날아가지 않았음에 감사해야하는 수준이라고. 그 사실을 기어이 직면시켜줘야 속이 시원했나? 얼마나 많은 괴물들에게 저런 말들을 당연하게···.
- ···미, 미안. 생각해보니까 기분이 나빴을수도 이, 있었겠네. 나는······ 그, 그게···. 아예 먼지조차 차, 찾지 못한 가족들도 많았거든.
스노우딘은 찬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이다. 먼지라면 이미 저 멀리로 날아가 흩어지기 좋은 환경. 워터폴이였다면 습기와 엉켜 뭉치는 희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핫랜드는 바람이 불지 않지만, 누군가 지나가다가 발을 헛디뎌 용암에 탈탈 떨어지는 비극이 일어났겠지. ···그게 중요한가?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알피스는 두어번 쯤 말을 더 저리다 '난 가볼게'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서 떠났다. 해골은 비스듬히 고개를 옮겨 몇 주간 열리지 않았던 문을 바라보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가지 않으면, 다시 괴물들이 찾아와 화풀이라도 하며 떠난다면.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유품을 건드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정된 시기가 아니였다. 더군다나 스노우딘은 호텔이랑 가장 먼 마을이라 치안도 좋지 않은 편이고.
······.
샌즈는 한숨을 내쉬고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마나 오래 누워 있었던건지, 움푹 패인 매트리스는 다시금 부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간만에 몸을 움직인 탓에 그는 뼈가 맞물리며 나는 해괴한 소리를 덜걱거리며 문을 열었다. 고개를 내리자 익숙한 붉은색이 눈에 들어온다. 머플러. 한때 누군가의 목에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을 물건. 지금은 고작 갈기갈기 찢긴 천 조각이 되어 주인의 흔적과 함께 돌아왔다.
어느새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던 손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맥없이 손을 뻗어 머플러를 쥐어 올리자, 그 아래에 묻혀 있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해골이 조용히 얼굴에 머플러를 파묻는다. 익숙한 향이 옅게 난다.
금방이라도 너덜거리는 저 대문을 열고 들어와.
집안이 어쩌다 이렇게 어질러진 것이냐며.
하루라도 게으른 형을 걱정되어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그런다정한목소리로자신의이름을부르는그찰나를.
·········.
지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달아오른 이 심장이 다시금 차갑게 식기 전에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오르기 전에 죽어야만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후회했는가. 그 답을 찾을 필요도 없다. 죽으면 돼, 그러면 되는거야.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전등에 머플러를 매단다. 질긴 노끈에 비하면 턱없이 부드러웠지만, 이 가녀린 해골의 목숨을 앗아가기엔 충분할테다. 샌즈는 말없이 런닝 머신의 위로 기어 올라가 뭉글게 말린 붉은 끈을 붙잡았다. 아. ···시야가 흐리다. 얼마나 굶었던거지? 몸을 너무 오랜만에 움직였나?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봤자, 점점 아득해지기만 한다.
나는 널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는구나.
이렇게나 못난 형이라서.
가벼운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약간의 적막이 흐른다. 뒤이어 무언가가 나타나는 소리와 들리우고, 뼈가 뼈를 꿰뚫었을때나 나는 기분 나쁜 파열음이 잇따른다.
38번째 생이자 죽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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