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팀이 월드컵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건 아닙니다. 우리의 뇌리 속에 선명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하면서 어부지리로 사우디와 함께 아시아지역 대표로 본선 무대에 오른 적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한국은 최초로 4강에 올랐고 일본도 16강에 오르면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냈었는데요. 중국팀의 성적표는 처참했습니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코스타리카 전에서 2-0 패, 두 번째 경기인 브라질 전 4-0 패, 마지막 터키 전 3-0패로, 3전 전패 9실점 0득점의 수모를 당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했습니다. 부러움과 질시를 못이긴 나머지 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게 괜히 해코지를 했던 중국인들 때문에 양국 간 외교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후로도 연거푸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도 남들의 잔치가 되긴 했지만 많은 중국인은 다시금 월드컵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남반구의 브라질에서 열리는 만큼 대부분의 경기가 중국 시간으로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실시간 경기 시청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 축구에 미친, 혹은 미칠 준비가 된 많은 직장인들은 월드컵 기간 동안 어떻게든 휴가를 내보려고 온갖 꾀를 짜내고 있습니다. 꼭 보고 싶은 경기가 있는 날에 맞춰 병가를 내려는 직장인들을 겨냥해 한 인터넷 쇼핑몰이 기막힌 상품을 내놨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에는 “월드컵을 맘 편히 볼 수 있게 해 줄 가짜 진단서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올랐습니다. 병가 내는 날짜에 따라 적게는 10위안에서 많게는 3백 위안, 우리 돈 약 5만5천 원을 내면 다양한 허위 진단서를 받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신체검사 서류부터 수금 영수증까지 병원의 직인이 선명히 찍힌 진단서를 샘플로 제시해놨습니다. 인터넷에는 연일 회사에 무리 없이 휴가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인기 검색어로 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 했던 가요.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눈치 빠른 회사들은 월드컵 기간 중 남성 직장인들이 아예 휴가를 낼 수 없도록 선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자국대표팀이 출전하지 못한 대회인데도 이렇게 열광하고 있으니 만일 자국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한다면 어떨지는 짐작이 가실 겁니다. 오죽했으면 자력으로 본선 진출을 못하니 아예 월드컵을 개최해 개최국 자동진출권이라도 따내자는 자조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이 2026년 월드컵 유치 신청을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21세기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고 있는 중국 지도부도 축구 부흥에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주석은 3가지 소원이 있는데 하나는 중국의 월드컵(본선) 진출이고, 두 번째는 중국의 월드컵 개최이고, 마지막은 중국의 월드컵 우승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시 주석은 지난해 6월 중국 국가대표팀이 태국 전에서 1대 5로 참패한 뒤 격노해 "경기 결과를 용인할 수 없으니 모든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라"고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차제에 시 주석을 중국 축구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해 중국의 축구 부흥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경제력 세계 2위, 올림픽 세계 2위 중국의 자존심에 걸 맞는 ‘축구몽’이 이뤄져야 중국이 꿈꾸는 진정한 ‘중국몽’도 가능하려나 봅니다.
임상범 기자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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