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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인류의 주인 7장 (2) - [12호]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0.18 16: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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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칸은 옴니시아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그 엄청난 영예를 누렸던 일이 있었다. 그 작업에 그가 참여함과 동시에, 그것은 그의 전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얼떨떨한 경험이 되었다. 화성에 있는 그에게 소환장이 전해졌을 때 아칸은 그에 응하기 위해 테라로 급히 떠나야만 했고, 그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에게 전해진 소환장에는 테라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우주공항들 중 한 곳으로 향하는 대신,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극북의 툰드라 지대에 그의 상륙정을 정박시킬 것을 지시하는 특별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아칸은 휴화산의 심장부에 설치된 성스러운 연구실, 옴니시아의 비밀 장소들 중 한곳에 들어간다는 엄청난 특권을 하사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칸은 굳게 잠긴 출입구들과 활성화된 방어 시스템들이 즐비한 미궁에서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미궁 내부의 여러 지점들에는 미궁을 돌파하는 데에 실패해 쓰러진 침입자들의 뼈가 쌓여 있었고, 그 사이를 누벼가며 아칸은 마침내 황제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칸은 생애 처음으로 기계-신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내게 절하지 말거라.” 황제가 말했다. 황제의 목소리는 아칸이 상상했던 그대로 기계적이고도 순수하였고, 그 목소리에는 어조에나 강세라 할만한 것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그처럼 단조로운 순수한 음성은, 일반적으로는 오직 특별한 증강 시술을 거쳐야만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칸은 황제에게 지시 받은 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일개 군벌 군주의 모습이 아닌, 그의 시선을 잡아 끄는 여러 형태의 상들이었다. 아칸은 과학자를 보았다. 황동색 갑주를 입은 테라의 정복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멸균된 환경과 적대적인 환경 양측에 모두 적합한 방호복을 입은 사내의 모습이 이전 모습을 대체하였다. 황제는 그의 거대한 연구실의 심장부에 서있었다. 선반에 걸린 유리병들 속에서는 모종의 액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방부용 젤로 가득 찬 실린더들 속에서는 장기들이 고동치고 있었다. 범인(凡人)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범주에 있는 기계들과 기관장치들이 웅웅거리고, 덜그럭거리고, 부르릉 떨렸다. 특별한 지식이 없는 이들의 눈에는 그 장치들이 모두 독립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칸은 그것들을 보자마자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즉각 깨달았다. 그 모든 장치들은 황제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 모든 장치들이, 옴니시아의 이지적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조화로운 화음의 일부로서 기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개의 테이블 위에는 새 종이들 위에 꼼꼼하게 쓰여진 메모들이 놓여 있었다. 종이 쪽지들은 인쇄되어 나온 개념도와, 계획의 청사진을 담고 있는 얇은 플라스틱 판들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과거의 기념물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고대의 두루마리들과, 아무 것이나 손 닿는 곳에서 가져와서는 모서리 위에 종이 누르개로 두어 펼쳐 놓은 양피지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칸은 천재들의 사적인 공간이라면 마땅히 질서정연한 고도의 과학과 무질서가 절충되어 섞여 있는 그런 공간일 것이리라 내심 기대하곤 했었고, 그곳은 그가 상상했던 바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구나.” 기계-신이 말했다. “내게 찾아와 준 데에 말이다.”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아칸이 대답했다. 짜증스럽게도 눈물이 이 중대한 순간을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감정이라 하는 것은 이따금씩 얼마나 성가셔지고는 하는지, 원. 하지만, 진정한 힘이란 바이오닉 장치로 감정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있는 것이었다. 이 또한 그 어떤 다른 이유들보다도 앞서, 오직 옴니시아를 모방하기 위함이었다.

“너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느니라, 아칸아.”


그의 목소리를 부르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특별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 아칸의 청각 센서들은 그 어떤 음성도 인식해내지를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칸은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어조는 아칸에게 다소의 불안을 주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심히 매력적이었다. 그때 아칸은 황제에게 그의 목소리가 주는 영향의 본질에 대해 언젠가 물어보아야 하겠다고 결심했었지만, 그는 지금껏 결코 그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황제는 홀로 작업에 임하고 있었으며, 이 금지되고 잊혀진 지식의 성소 안에서 그 군주는 오직 혼자뿐이었다. 머리 위로 번개 줄기가 가로지르고 지나가며 밤하늘에 상처를 내고, 그 뒤를 따라 크게 으르렁거리는 천둥 소리가 울렸다. 연구실이 깊은 지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의 조명이 내는 빛은 음울한 폭풍의 천둥과 함께 깜빡이고 있었다.


연구실 중앙의 수술대 위에 시체 한 구가 뉘여 있었다. 지나치게 발달된 근육 조직들에, 혈관은 엄지만큼 두꺼운 생명체였다. 그 생명체는 인류의 평균적인 견본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크게 동떨어져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인류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은 그것의 원류가 된 종족에 근접해 있었다. 사실, 그 생명체는 신화 속의 존재와 보다 더 닮아 있었다. 고대 노르딕 부족들의 신화에 나오는 서리 거인들이나, 암흑 시대 이전의 자리쉬 콘클라베-Jarrish conclaves에서 믿었던 신의 자손들 같은 존재들 말이다. 그 생명체에게 남아있던 인간적인 부분들은 기괴하고도 공격적인 부분들에 의해 집어삼켜져 있었다. 죽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체의 거친 얼굴은 음흉하게 찌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그것이 살아있었을 때 알고 있었던 것이란 오직 고통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느 평범한 과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의 황제는 중앙 수술대 곁에 서서, 한 손은 그 괴물 같은 인간의 벌거벗은 근육질 가슴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황제의 시선은 인근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들로 향하고 있었다. 모니터들의 화면 위에는 계속해서 데이터들이 갱신되며 화면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각각의 화면들에는 생물학적 정보들이 디지털 문자로, 이진법으로, 그리고 룬 문자로 펼쳐져 기록되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칸은 수술대 위에 올려져 있는 몸뚱이가 시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모니터 화면은 여전히 맥박과, 복잡하게 왜곡된 뇌파 활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기술고고학자, 아칸은 수술대 위의 몸을 내리비추고 있는 강한 조명이 만들어낸 그늘로부터 걸어 나왔다. 무의식 중에 자신이 수술대 위 환자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의식을 잃은 괴물의 머리에는, 조악하고도 잔혹한 사이버네틱 장치가 이식되어 있었다.


 톱니의 이빨이시여.” 아칸은 나지막이 저주를 내뱉었다.


 황제는 아칸이 입밖에 낸 불경한 말을 눈치채기에는 너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것만 같았다. 피에 젖은 수술 장갑을 끼고 있는 옴니시아는, 미세한 회로망이 내장된 손가락 끝을 거인의 가슴에 대고 꾹 눌렀다. 수술 장갑의 회로망에서 초음파가 발산되었다. 옴니시아의 손가락 끝이 거인의 몸 어딘가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거인의 척추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살을 조악하게 스캔한 체내 스캔 도면이 각기 다른 각도로 설치된 근처의 모니터들에 표시되었다. 신경계를 따라 통증이 일자, 잠든 거인은 묵직하게 경련하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칸은 고통에 일그러진 거인의 얼굴 주위로 걸음을 옮겼다. 금속질의 이빨. 주름진 이마. 겹겹이 난 흉터. 그리고 사이버네틱 장치로 된 드레드록*처럼 두피를 뚫고 나와 있는 케이블 촉수들까지.


(*역주: 흔히 말하는 레게 머리.)


“앙그론.” 아칸은 한숨을 토하듯 그 이름을 내뱉었다.


“그러하다.” 황제는 비인간적이리만치 단조로운 목소리로 그것을 확인시켜주었다. “12호-Twelfth에게 가해진 손상을 무효화시킬 방도를 찾고 있는 중이니라.”


황제는 다른 쪽 손과 마찬가지로 피로 물들어 있는 빈 손을 들어, 여전히 거인의 두개골과 두뇌, 그리고 척추의 모습을 깜빡이는 홀로리튬 영상으로 띄워 올리고 있는 화면 세 개를 가리켰다. 두뇌의 이미지는 수십 개의 검은 촉수들로 찢겨져 있었고, 그 촉수들은 유기물질 이외의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칸은 스캔된 이미지를 응시하며, 그 의미를 천천히 이해해갔다. 그가 지닌 경험과 그가 받은 교육, 그 양면에서 인체 해부학에 대한 아칸의 이해는 완벽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지만, 화면 속 이미지의 두뇌는 인간의 것과는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성하고도 인가된 증강 시술을 통해 진화한 두뇌와도 달랐다.


이것은 좀 더, 신성모독적인 무언가였다.


“이 장치를 전에도 보았을 것이라 믿는다.” 황제가 말했다. “그렇지 않은가?”


“본 적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헥사키온 지하고-Hexarchion Vaults를 찾아 탐험을 하던 중이었지요.”


“네 자신이 제조 장관 켈보르-할의 인가 하에 직접 다시 봉인하기로 결정했던 그 지하고지. 그 안에서 발견했던 모든 것들은 기록되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지식은 도덕적 위협과 인지 왜곡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나이다.”

황제의 손가락이 의식을 잃은 프라이마크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허나 그곳에서 이와 같은 장치를 보았겠지.”


아칸 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헥사키온 지하고 내부에 안치되어 있던 불경한 문서들에는 크루시아멘-Cruciamen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나이다.”


황제는 말없이 손가락 끝으로 프라이마크의 뇌를 스캔하기를 계속했다.

“이것이 이식되어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칸이 고해하 듯 말했다. “그것도 이처럼 특정한 형식으로, 이만한 강도로 설계되어 있는 것은 처음입니다. 스테이시스장 안에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나,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나 말입니다. 봉인된 금고 안에 있던 장치들은 이것보다 좀 더 조악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테지.”


“무한한 지혜를 지니신 분이시여, 어째서 이러한 장치를 프라이마크의 체내에 이식하시었나이까?”


“내가 한 것이 아니니라, 아칸아.”


“허면…. 염치 없사오나 고백컨대, 저는 제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를 않나이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12호와 그것의 군단은 이 장치를 “도살자의 손톱-Butcher’s Nails”이라 부른다.” 황제는 여전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본래 고안한 12호의 견본에 가해진 변형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시적이지만 천재적인 실력으로 이루어진 변형이지. 이 검사가 있기 전까지 나는 누세리아-Nuceria에서 12호에게 가한 증강 시술이 12호의 감정적 불안정성의 근원이라 믿었다. 내 가설은 누세리아인들이 영구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공적인 분노의 감정을 유발시켰다는 것이었지. 허나 진실은 그 반대였다. 누세리아인 외과의들은 변연엽*과 섬피질**을 개조하여, 아예 12호에게서 모든 종류의 감정을 조절할 능력에 장애를 입혀버렸다. 더욱이 누세리아인들은 12호의 쾌락 수용 능력을 개조하여 그것이 분노의 감정 이외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쾌감을 얻지 못하도록 하였다. 12호의 두뇌에서 자유로이 흐르고, 또 배출될 수 있는 유일한 화학적, 전기적 신호는 오직 분노의 감정뿐이다. 그 외의 다른 감정은 무감정해질 때까지 둔화되거나, 극도의 통증을 불러일으키도록 신경이 재연결되어 있다. 12호가 이토록 오랫동안 생존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 프라이마크 프로젝트의 결과물의 내구성을 인증하는 하나의 증거라 하여도 될 테지.


(*역주: 대뇌피질과 간뇌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부위로, 귀 바로 위쪽에 존재함. 담당하는 영역은 감정, 행동, 동기부여, 기억, 후각 등등.)


(**역주: 두뇌 안쪽의 양 측면에 존재하는 부위. 감각을 감정으로 연결시키고, 이를 판단과 의사결정까지 연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자신의 감정이 고통을 유발시키는 것입니까?”


“아니다, 아칸아.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고통을 유발시킨다. 생각하는 것. 감각을 느끼는 것. 호흡하는 것. 이것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은 오직, 분노와 공격성을 유발하는 화학물질로부터 수용하도록 개조된 신경학적 쾌감뿐이다.”

“극악무도하군요.” 기술고고학자가 말했다. “인지 능력을 정화하는 것이 아닌, 왜곡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황제는 그저 성의 없는 관심만을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생리학적 개조 행위는 분명 12호의 보다 고차원적인 뇌기능을 저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악함 치고는 참으로 교묘하게 만들어진 장치로구나.”

“폐하께서는 이것을 제거하실 수 있사옵니까?”


“물론.” 황제는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는 채로 대답하였다.


아칸은 놀란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안간 힘을 다 썼다. “허면, 거룩하신 분이시여, 어찌하여 이 장치를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두시는지요?”

“이것 때문이지.” 황제가 양손을 앙그론의 머리 위에 올려 두었다. 황제는 한 손은 프라이마크의 관자놀이와 뺨을, 다른 손은 케이블 촉수들이 살과 뼈와 맞닿아 있는 대머리의 정수리 위에 올렸다. 여러 화면 위에서 이미지가 즉시 바뀌며, 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띄워 올렸다. 잔혹하리만치 빽빽하게 케이블이 꽂힌 두개골은 조악한 사이버네틱 장치와, 강력한 외과 레이저에 의해 상처 난 뼈로 인해 비참하게 변모되어 있었다.


“보이느냐?” 황제가 물었다.


아칸은 그것을 보았다. 촉수들이 깊이 파고 들어 뇌 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촉수는 신경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거친 코일들은 뱀처럼 구불구불 내려가 척추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이 프라이마크에게 있어서는 모든 움직임이 다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고통은 다시 분노와 악의라는 비천한 감정들을 살찌웠을 것이다.


그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뇌의 변연엽과 섬피질이 그저 이 고문 기계의 삽입으로 손상된 것 그 이상이었다는 것이었다. 앙그론의 변연엽과 섬피질은 외과적으로 공격을 받아, 심지어 장치가 삽입되기 이전에 이미 제거되어 있었다. 장치가 두개골 내부에 거칠게 삽입되면서 그 뇌 부분들을 손상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 장치가 그 부분들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고 추한 사이버네틱 장치가 체내 스캔 화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프라이마크의 뇌조직이 있어야할 부분 그 전체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이 장치들 덕분에 이 분이 살아 계시는 것이로군요.” 아칸이 말했다.

황제는 수면 상태의 프라이마크의 머리로부터 양손을 떼어내었다. 대부분의 화면들은 그 즉시 검게 변해버렸다. 황제는 수술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교육적인 검사였군.”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제가 어떻게 폐하의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너는 내게 큰 도움을 주었느니라, 아칸아. 너는 내가 크루시아멘의 기원에 대해 의심하고 있던 바를 확인시켜주었지. 그 누구도 그리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네게 감사하는 것이니라.”

아칸은 옴니시아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을 이처럼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려니 이 상황이 극도로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이리도 무감정할 수가. 이리도 비인간적이리만치 무감정할 수가.

“거룩하신 분이시여.” 아칸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이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함이 있다 하나 프라이마크는 프라이마크지.” 황제는 여전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엇이더냐, 아칸아?”

랜드는 주저했다. “폐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시로군요. 제가 폐하께서는 감정으로부터 초탈하신 성스러운 분이심을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허면 내가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하였더냐?” 황제는 피로 물든 장갑을 근처의 수술용 카트 위에 올려놓았다. 카트 위에는 이미 붉은 자국이 묻어 있는 메스들이, 방금 막 사용된 채 피에 젖어 있는 다른 도구들과 함께 올려져 있었다. “내가 12호를 위해 애통해 하기를 바랐느냐? 마치 이것이 내 다친 아들이고, 나는 그것을 슬퍼하는 아버지인 것처럼?”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아칸은 조심스레 자신이 할 말을 골랐다. “허나 어떤 이들은 그런 모습을 바랐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황제는 자신이 입고 있는 방호복의 팔뚝에 달린 잠금 장치를 풀고, 지금까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술용 마스크를 벗었다. 이것은 나의 아들이 아니다, 아칸. 그 어떤 프라이마크도 내 아들이 아니다. 그들은 군벌이자 장군이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길러진 도구일 뿐이다. 군단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창조되었 듯이 말이다.”


아칸은 잠들어 있는 반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앙그론의 얼굴이 망가진 신경계와 연동해 뻣뻣하게 굳어진 채,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윤허해주신다면,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나이까, 거룩하신 분이시여.”


황제는 처음으로 눈을 돌려 랜드를 바라보았다. 옴니시아의 응시 아래에 서게 되자 아칸의 혈류를 움직이는 신성한 동력-Motive Force*이 더욱 빨라졌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피는 마치 약한 산성을 띈 것처럼 따끔거렸다.


(*역주: 기계교에서는 머신-갓, 옴니시아, 그리고 모티브 포스라고 대문자 쳐서 부르는 동력을 삼위일체로 섬긴다. 본문에선 그냥 대문자 붙은 모티브 포스만 써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뉘앙스가 잘 전해지질 않아서 “신성한”이란 수식어는 내가 그냥 임의로 붙여 넣었음.)


“말해보아라.”


“프라이마크들 말입니다.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그들은 항상 폐하를 아버지라 불러왔다 들었습니다. 그것은 너무…. 감상적인 호칭이 아닌지요. 폐하께서 어째서 그런 호칭을 용인하시는지가 늘 의문이었습니다.”


황제는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황제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두 눈은 다시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거구의 육체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예전에 한 작가가 있었다.” 황제가 말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는 작가였던 그는, 인간 아이로 재탄생하기를 소망하는 나무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지. 그리고 그 인형, 나무를 깎아서 색칠해 만든 그 자동 인형은 자신이 살과 피, 그리고 뼈를 지닌 존재가 되기를 추구했다. 너는 그 인형이 자신의 창조자를 무엇이라 불렀는지 아느냐? 그와 같은 생물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형태와 생명을 준 창조주를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아버지. 아칸은 자신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해하였나이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그래 보이는구나.” 황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수술대 위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12호의 수명과 전술적 식견을 저하되었을 것이나, 이 고통 유발 장치는 그 대신 다른 면에서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줄 것이다. 12호를 그것의 군단으로 돌려 보내야겠다. 다시 한 번 감사하마, 아칸아. 이곳까지 와준 데에 감사한다.”



그가 옴니시아의 전 앞에 그 홀로 섰던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칸은 그 순간 그가 얻었던 그 특별한 영예를 움켜쥐고, 그것을 양지에 밝혀 그 결과로 뒤따라올 명성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비록 그의 능력을 폄하하는 이들에게서 오만하고 허영심이 강하다고 하는 말들을 들을지언정, 아칸 랜드는 인생에서 가장 참된 그 영예는 다른 이들에게 비밀로 지켰다. 그 비밀을 밝혀버린다면, 그 특별한 영예는 그저 그에게 개인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는 한 순간의 것으로 전락해버릴 터였다. 아칸은 그 순간의 기억을 오직 자신 홀로 있을 때에만 떠올리며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 저녁, 살아있는 신이 자신의 지식을 필요로 하던 그 영광스러운 저녁의 순간을.


승강기의 진동에 아칸의 의식은 다시 현재로 되돌아왔다. 오르도 레둑토르의 요새로 내려가는 승강기가 마침내 멈춰선 것이었다. 삼중으로 이루어진 문은 우드득거리는 금속성의 오페라와 함께 잠금이 풀리더니, 곧 신음하며 한 겹씩 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에어록 문이 마침내 갈라지며 열리자, 문 위에 그려져 있던 황색과 흑색 선으로 된 경고 무늬가 사방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케인은 문 너머의 중앙 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조 장관 케인은 아칸이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던 때 이래로 자신의 신체를 심히 무장시켜, 스스로를 축성한 모습이었다. 잘 어울리시는군. 아칸이 생각했다. 스스로의 실재성에 대한 그 직설적이고 독창성 없는 접근방식에 아주 딱이야.


“제조 장관 각하.” 아칸은 유배 중인 성지 화성의 지배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칸 랜드.” 아칸의 주군이자 주인, 케인이 대꾸하였다. “이리로 오라.”


“즉시 가겠습니다, 도미누스.”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가고일 같으니라고. “무엇 때문에 저를 찾으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모든 것은 곧 밝혀질 것이다.” 케인은 몸을 돌리더니 자신의 무한궤도 장치 위에 올라탔다. 케인은 자신의 기계 팔들을 감아 붉은 망토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따라오도록.”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신성한 파괴를 불러오는 자-the Bringer of Blessed Ruin과 대화를 나누러 가는 것이다. 이제 더는 질문하지 말고, 그저 따라오기만 하도록.”



────────────────────────────────────────────────────────────


앙그론은 그저 파면 팔 수록 눈물만....

저런 미친 장치를 달고 살면서도 이성을 유지하는 걸 보면 저것만 없었으면 앙그론은 분명 성인 군자가 됐을 거다.


가끔씩 보면 갤에 다른 프마가 누세리아에 떨어졌으면~ 하고 썰 풀리는 거 보이던데,

내가 볼 때 저딴 미치광이 기계가 뇌에 달렸으면 불칸도 코른 신도가 됐을 거다,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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