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선본에게 소정의 서버비를 납부하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천장 하...
언제나 그렇듯, 여기 적힌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며
그것을 길바닥의 방향표시선처럼 여기든, 엉뚱한 헛소리로 치부하든
저마다의 생각과 감상은 스스로 보고 느낀 바에서 치열하게 생각한 끝에 나와야 하며
단순한 동의나 반대를 넘어 이 내용을 밟고 나아가 더 멋진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 전제 사항에 대해 밝히니
계속되는 내용을 읽어주시기를 선택한다면 그것을 감안하고 보아주시기를 양해 바란다
1. 글 올리는 솟붕이는 창작물을 볼 때 복잡한 생각 못 하는 단세포다
창작자가 여기서 감탄하세요~ 여기서 감동하세요~ 여기서 눈물 흘리세요~ 하면
곧이곧대로 그냥 이입해서 보는 그런 부류
2. 글 올리는 솟붕이도 이걸 보는 대부분의 분들이 그랬듯 군 생활을 거쳤는데
거기서 이번 이벤트의 ‘토카레프’가 보여준 그런 감정을 꽤나 깊게 느낀 적 있다
자세한 건 쓸데없는 구구절절이니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대충 요약이라도 하자면
복무하던 처부에서 이전에 있던 간부가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새로 부임한 분이 ‘지휘관’형이었고
그 분이랑 같이 남은 군 생활 하면서 왜 ‘이 사람 명령이라면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라는 일화가 나오는지 이해했다는 그런 것

이번 이벤트를 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부분을 보고 앞서 언급한 과거의 개인적 경험이 떠올랐다
그리고 역사 속의 한 인물도

그가 바로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불후의 병법서를 쓴 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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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軍神)’
오자병법의 ‘오자’로 알려진 오기는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정치가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는 한미한 출신에서 한 나라의 재상까지 자수성가를 이룬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백수 시절 자신의 실패를 비웃은 사람을 수십 명 쳐 죽이거나
성공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등 냉혹함 또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오직 스스로의 명예와 자신이 봉사하는 국가의 안위만을 위해 모든 일을 벌일 뿐
그 외에는 남들의 평판도, 스스로의 안위도 돌보지 않는 일관된 원칙을 보여주었기에
그의 이중적인 면모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는 듯 하다
오기는 봉사하는 국가마다 군사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에서 봉사하면서 수십 번의 대회전을 이끌었고
위태로운 순간에도 전략적 목표를 유지하며 적의 승리를 허용하지 않는 불패의 명장이었다
다만 국가와 군 조직의 합리성만을 주장하는 그의 말과 행동은 반감을 사기 일쑤였고
바른 말 하며 기득권의 예산낭비를 없애고 부국강병에만 몰두하는 그에겐 어딜 가나 정적 뿐이었다
그의 최후 또한 초나라의 재상 직을 맡는 동안 귀족들에게 들어가는 비효율적 국고 낭비를 없애 수십 개 가문으로부터 미움을 산 것 때문이었다
오기를 등용해서 밀어주던 왕이 죽자마자 귀족들은 작정하고 궁궐로 쳐들어가 오기에게 화살비를 퍼부었고 그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오기는 자신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화살을 맞으면서도 열심히 도망쳐 왕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 가 그 위에 쓰러졌다
당연히 오기와 함께 왕의 시신 또한 고슴도치 신세가 되어버렸는데 그 화살들에는 귀족 가문의 문양이 있었다
그 탓에 오기의 암살에 가담한 수십 개의 귀족 가문은 졸지에 왕의 시체에 난도질을 한 역적이 되어 전부 멸문을 당했다
오기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적들의 승리를 허용하지 않으며 불패의 군신으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오기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 국가와 군대에 대한 그의 진심은 여러모로 각별할 정도였는데
특히 군대를 이끄는 장군일 때의 일화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장군은 일반 병사와는 신분의 차가 격이 다른 것이 오늘날도 느껴지는데 전국시대 당시에는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기는 그런 자리에 올라서도 일반 병사와 같은 군복과 식단을 취하며 전용 막사를 치지도 않고 전용 수레도 타지 않았다
그저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자기 군장을 직접 지고 묵묵히 전장까지 갈 뿐이었다
그러다 병에 걸린 병사가 생기면 직접 그들을 돌보곤 했는데,
종기가 난 병사의 환부를 직접 빨아서 고름을 빼 주었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대로 유명하다
그것이 그의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일생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위한 위선이었는지
그것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진심이든 위선이든, 자신이 통솔하는 부대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강구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과 경험은 그의 모든 것이 담긴 정수, ‘오자병법’에도 동일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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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병법’
동양의 병법서 중 최고 으뜸으로 여겨지는 ‘손자병법’에 밀려 콩라인의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엄연히 오자병법은 그에 버금가는 병법계의 필독서이자 손자병법과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는 명저로 일컬어진다
두 병법서는 확실히 드러나는 접근 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손자병법이 국가 대전략과 기존에 존재하는 군대 조직을 이용해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방법론을 담고 있다면,
오자병법은 그러한 국가 대전략와 군대 조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며
그것을 위한 기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행정적, 전술적 방법론을 담고 있다
즉, 손자병법은 국가와 군 조직의 현존 구조에서 얼마나 큰 효율성을 도출할 것인가를 다룬
‘시스템의 최적화’에 대한 것이고
오자병법은 무엇을 통해 손자병법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와 군 조직의 근본과 체계를 만들 수 있는가를 다룬
‘시스템의 설계’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손자병법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오자병법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각각의 병법서가 군 조직을 이루는 병사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손자병법에서는 병사를 전략적, 전술적 승리를 위한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인식한다
개별 물방울이 커다란 흐름의 줄기 속에서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처럼
병사는 국가와 장군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 속의 하나인 것이다
잘 작동하는 기계는 말단 작동부가 중앙 통제 시스템에 따라 착착 움직이는 것처럼
병사와 국가, 군 조직이라는 거대 조직 간의 관계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더 나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손자병법다운 인식이다
이와는 달리 오자병법에서는 병사를 욕망과 의지를 가진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
말단 병사가 거대 시스템의 일부라는 손자병법의 대전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옳지만
그러한 시스템을 조직하는 과정에서는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병사가 목숨을 던져 천 명의 적에 대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운에 기대어 살기만을 바라는 대신 죽을 각오를 다해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군율 아래 훈련과 편제를 통해 일반인을 전사로 깎아내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포상과 격려, 실패에 대한 재기의 기회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형성된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오자병법의 관점이다
그렇게 개별 병사가 국가와 군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게 될 때 시스템은 완성되며
비로소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방법론들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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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된, 한 덩어리로 끈끈하게 뭉친 유기적 조직이 된 군대를 두고
오기는 ‘아버지와 아들과도 같은 군대’라 칭한다
손자병법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전쟁의 목적은 국가와 민중의 생존이다
승리는 생존이란 최종 목적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머리부터 말단까지 그 최종 목적을 위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의 시스템적 위계와 명령 수행의 효율성이 필요한 법이고, 이것을 말한 것이 손자병법이다
그러나 거시적 방법론만으로는 미시적 시스템을 이끌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인간이란 각각이 욕망과 의지를 지닌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각각의 존재들을 전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함께 생사를 걸 수 있는 동반자로 묶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오자병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기’이다
‘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것 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손자병법에서도 말하듯 각각의 병사가 싸워야 할 목적이 국가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손자병법이든 오자병법이든 대적관과 명분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중시한다
소녀전선 이야기 속의 지휘관, 안젤리아, 리벨리온, AR소대, 404소대와 같은 관계가 이러한 형태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와 같을 수는 없다
명분이 아름답고 대의가 고고하더라도 전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병사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 민족, 정치, 체제와 시민 사회가 단단히 결합된 현대사회에서도 그러할진대,
과거 전국시대는 오죽했을 것이며, 각각의 목적과 사정에 따라 모이게 된 그리폰의 인형들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기는 그러한 ‘보통 사람’들에게 싸우고자 하는 동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포상과 격려, 실패에 대한 재기의 기회’ 등등과 같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이다
성과에 따른 포상의 지급을 통해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를 채우고
격려를 통해 더 나은 대우와 보상을 위한 상승욕구를 자극하며
실패에 대한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대신 성공을 위한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병사는 스스로의 전공과 그에 따른 명예에 대한 것을 장군이 지켜보고 인정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고
신뢰감은 각각의 존재가 더 큰 조직과 사회라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형성하게 되며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그것을 더욱 공고히 지켜내겠다는 지속적인 동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자발적인 헌신으로서 각각의 존재들에게 각인된다
이것은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결정이론이나 집단응집력이론과도 맞닿은 개념이다
자기결정이론
- 시스템적 규칙 같은 외적 동기보다 능력 상승과 인적 관계에 대한 자율적 선택이라는 내적 동기가 인간 욕구와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
집단응집력이론
-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선 소속된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고, 그렇게 욕구가 충족된 개인이 집단과 구성원을 신뢰할 때 결속력과 지속성이 유지된다는 것
오기는 이러한 현대적 개념을 수천 년 전에 이미 선취하여 조직 구성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그와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본 이야기 속 지휘관의 행동 또한 이와 맞닿아있다
S09지휘부의 이전 지휘관이 시행했던 것은 일종의 ‘시스템적 효율성’이다
인형들은 전투 훈련에 집중하며 그 외의 시간엔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고
휴면을 통한 자가 정비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며 전장에 투입될 때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것이다
이 자체는 결코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군 생활할 때 간부가 낮에는 전술훈련 시키다
개인정비 시간 되면 체력단련, 총기와 장구류 정비에 집중시키다 칼같이 취침소등 시키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것이 조직의 운영과 목표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일과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병사들의 마음을 얻어 자발적인 충성과 전투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야기 속 ‘지휘관’은 이러한 시스템적 효율성의 큰 틀을 유지하되, 인형들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달리 했다
인형들은 이전의 일과를 유지하되 다음 날의 일과에 지장이 되지 않는 선이라면 식사, 여가 등 무엇을 하든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비유하면, 이제 개인정비 시간을 통제하는 대신에 하고 싶은 여가를 마음대로 하면서
다음 날 문제만 안 일으킬 수 있다면 학습이든 라면이든 TV든 연등까지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간부랑 같이 식사하는 그런 것도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그가 진심을 가지고 병사들과 친해지고자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것도 새로운 일상이 되어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지휘관은 이전처럼 불필요한 대화는 삼가고 공적인 접촉만 하는 대신, 더 많이 대화하고 상호작용하기로 했다
성과를 내면 칭찬하고, 더 나은 결과에 대해 기대하고 격려하면서, 실수에 대해 포용하고 해결방안을 같이 모색한다
각각의 사정과 상황 속에 그리폰이라는 PMC로 모인 인형들에게 승리와 생존이라는 필수요소를 제외하면
‘싸울 의미’에 대한 공통된 ‘이념요소’를 제시하진 않았다
대신 각각의 인형들이 그리폰이라는 조직 속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느끼는 실질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싸울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다
지휘관이 나를 보고 있고, 옆에 다른 동료가 함께 서 있으며, 모두는 그리폰의 승리를 위해 싸워 나간다는 것 말이다
아름답고 고고하지 못하더라도, 직관적이고 와닿는다
‘나는 내 곁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지휘관은 싸워야 할 동기를 먼 곳에서 찾는 대신 가까운 ‘관계’에서 찾도록 조직을 이끌었고, 그렇게 되었다
내 옆에 선 동료를 위해서라면, 내 뒤에 있는 지휘관을 위해서라면
불길 속으로,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뛰어들 수 있다
지휘관은 싸움의 목표를 ‘이념적 설득’ 대신 ‘정서적 유대’로서 전달하였고
그 과정에 자신의 윤리와 리더십을 전력투구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신뢰와 안정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지휘관은 그리폰의 말단 인형들에게 자칫 ‘와 닿지 않는 목적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었을 지옥 같은 여러 전장을
‘어깨를 맞대고 함께 하는 싸움’으로 변화시켰다
비인간적이고 냉혹하기 그지없는 삶을 산 오기조차도 병사들에게 이를 관철하고 무패의 신화를 써내려갔을진대,
언제 어느 때든 ‘인간다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실천하는 지휘관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지휘관은 비록 임시일지언정 모두가 함께일 수 있는 ‘안전한 집’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그 치열한 진심어린 노력에 인형들은 전력을 다해 행동으로 대답했다
카터파의 대대적인 반역 앞에 그리폰 본부가 무너질 때에 인형들은 남는 대신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해 떠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회사가 부도나게 되었을 때 개별 직원이 퇴직금이라도 챙기기 위해 앞 다퉈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을 두고 멋대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리폰의 인형들은 끝까지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모든 것을 던져 불길 속으로 나아갔다
‘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한 명’이 되기를 선택했다
운에 기대어 무사히 빠져나가는 요행을 바라는 대신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을 각오를 다해 망설임 없이 싸우기로 선택했다
위기 앞에서 떠나는 대신, 그리폰 앞 전선을 자신의 고향으로 삼고 싸우기로 선택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떠한 아름답고 고고한 이상과 이념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오직 자신과 동료, 지휘관이 함께 만들어 낸 ‘안전한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Wir, im fernen Vaterland geboren,
nahmen nichts als Haß im Herzen mit.
Doch wir haben die Heimat nicht verloren,
unsre Heimat liegt heute vor G&K
우리, 머나먼 조국에서 태어나
가슴 속에 품은 건 오직 증오뿐이네
허나 우리, 고향을 잃은 건 아니리니
오늘 우리네 고향은 G&K 앞이라네
- '고정점' 엔딩크레딧 마지막, '국제여단가'에서 부분 인용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싸움의 끝에 ‘조국’도 ‘부모’도 잃게 되었을지언정 ‘고향’을 잃지는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끝내 향하고야 말 진정한 ‘고향’은 함께 한 시간 속에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그리폰’이라는 단단한 유대감이었기 때문이다
노래 속 스페인 내전의 국제여단 부대원을 묶은 것이 ‘이념’이라면, 소녀전선 이야기 속의 그리폰 인형들을 묶은 것은 ‘정서적 유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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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이유’
이번 이벤트에서 주역으로 등장한 것은 토카레프를 위시로 한 ‘3성 인형’들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작전능력을 가진 엘리트 인형도 아니었으며, 지휘관과 특별한 접점이 있던 것도 아닌 ‘평범한 인형’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아무런 보상조차 얻기 힘들어 보이는 카리나의 무모한 모험에 끝까지 함께 했던 것일까?
앞서 오자병법을 이야기하며, 오기는 싸울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을 중시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시스템 설계’ 중에서 오기가 특별히 중시했던 것 중 하나는 ‘정예부대’의 확립이었다
이는 일치단결하여 싸우는 군 조직 속에서도 장군의 목적을 위해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전과를 확대시킬 수 있는 그런 부대를 일컫는다
당연히 그런 정예부대를 형성하는 인재의 선발엔 담이 크고 강인한 자, 충성스럽고 용맹한 자, 발이 빠르고 날랜 자가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서 두 부류가 더 포함된다
벼슬을 하다 잘못을 저질러 문책된 자, 패주하여 도망친 자가 바로 그들이다
오기는 이들을 거두어 정예부대에 편입시키고 그들에게 공을 세워 과오를 씻고 다시 명예를 얻을 기회를 주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동기부여의 근본으로 삼은 오기의 이론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평범한 인간의 욕망이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가졌다가 잃은 것을 다시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강한 법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말이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기는 이것을 이용해 엄벌 대신 ‘재기에 대한 관용’을 보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네거티브 동기 대신 성공에 대한 갈망이라는 포지티브 동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상황은 이와 완전히 다르지만 토카레프를 위시로 한 ‘3성 인형’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여지가 있다
지휘관에 대한 강한 접점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들 역시 지휘관과 함께 ‘안전한 집’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한 동료들이다
지난 이야기의 막바지에 그들에게 지휘관을 위한 마지막 싸움에 참가할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니드호그 프로토콜의 제약 속에서 그들은 자의가 아니었을지언정
끝까지 지휘관과 함께 싸우겠다는 ‘명예로운 기회’를 끝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가졌다가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리나가 지휘관을 찾기 위해 이들을 다시 깨웠을 때, 인형들은 지휘관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지휘관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실패’를 넘어 다시 지휘관을 찾아 그를 돕는다는 성공에 대한 갈망을 생각했다
오기는 이러한 자들을 두고 소수라 할지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포위를 뚫거나 성벽을 오를 수 있는 자들이라 일컬었다
그것은 잃었던 것을 되찾아 다시금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토카레프 소대’ 역시 자신들과 지휘관을 위해 부족한 역량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리나를 따라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이전에는 어쩔 수 없이 닿지 못했던 ‘마지막’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마지막’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다해 ‘포위를 뚫고 성벽을 올라’ 카리나를 저편의 지휘관을 향해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토카레프 소대’는 누가 따로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쉬웠던 과거를 떨쳐내고
스스로와 지휘관에 대한 유대감 앞에 떳떳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들은 지휘관과 함께 만들어 낸 ‘소중함’을 지키겠다는 욕망을 실현했다
그리고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욕망 실현을 이끌어낸 것은 계속 반복된 하나의 주제
지휘관이 이끌어 낸 ‘목숨을 걸 이유’가 인연의 깊이 또는 작전능력과 상관없이,
시간과 행동을 함께 한 모두에게 자발적인 헌신으로 내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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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오자병법 또한 여러 부분에서 명장의 조건에 대해 다루며 설명한다
그런데 중간에 뜬금없이 성인(聖人)의 도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읽어보면, 이는 절대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지향하는 목표이다
그리고 그것은 왕, 장군과 같은 지도자가 추구할 바이다
더 나아가 이 내용을 읽고 지도자가 되길 추구하는 독자들 또한 새겨야 할 바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는 곧 명장의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오기는 말한다
도리란 기본에 충실한 것이고, 의로움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여 이루어 내는 것이며,
지략이란 해로움을 막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중요한 핵심은 이뤄낸 성과를 지켜내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은 모두를 평안케 하고자 도리를 지키고, 모든 일에 의로움으로 임하며,
행동에 이를 때 규범에 충실하고, 타인을 대할 때 사람다움을 생각한다
이는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을 뜻함과 동시에 실제 삶 속에서 행하는 실천과 연결된다
이야기 속의 지휘관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의 평안함을 위한다는 근본을 잊지 않고 그것을 지키고자 싸우려 한다
작게는 그리폰이라는 ‘한 집의 가족’부터 크게는 국경을 넘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의로움을 위해 싸움에 임한다
힘으로 누군가를 누르거나 권력을 얻고자 함이 아닌 등 뒤의 모두를 지키는 것이 총을 든 자라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
전장의 규칙에 집중하여 그것을 지키며 싸우고자 한다
위기에 처한 동료를 돕고 싸우는 적 앞에 무자비함이 전장에서 가장 손해가 적고 이익이 많기에
누군가를 대할 때 인간 대 인간이라는 존재적 연결로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무언가를 행하며 이루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끌어 낸 결과를 공고히 하는 것은 신뢰와 유대감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기에
지휘관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에 흔들리고 방황하며 위의 원칙들이 지켜지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들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 포기하고 굴복하는 대신 나아가길 선택하며
주변의 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격려하고 또 격려 받으면서 원칙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지켜가고자 노력한다
그런 ‘인간답고자 하는’ 의지를 모두가 알기에 지휘관을 아는 이들은 그를 믿고 따르고 의지하며
다시 한 번 죽음의 전장 불길 속으로 뛰어들며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기를 선택한다
재미없고 뻔하며 지루하다고 한들, 그러한 이들이 모두를 이끌어왔고 이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세상을 바꾸었고 바꿀 것이다
지나온 시간과 세월 속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이 하늘과 사람의 뜻을 잇고자 하는 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야기 속 인형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대단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제대로 담지 못한, 다 채워지지 못해 부족한 지휘관의 서사와 인형들과의 이야기가
외양과 형태, 물질을 넘어선 존재와 존재 간의 ‘인간다움의 형성’ 끝에 맺어진 신뢰와 결속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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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을 읽어준 다른 솟붕이들처럼 글 쓴 솟붕이 또한 최근의 시나리오에 대해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깊은 인상을 준 많은 등장인물들이 부조리하고 허무한 현실 속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처럼
이 게시글 또한 부조리하고 허무하게 보일 수 있는 시나리오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부분을 찾아 자기 발전을 위한 작은 디딤돌로 삼아보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보고 감동했던 지나가버린 이야기가 그러하였듯,
삶이 덧없을 운명이라도 여러분의 발버둥은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그러니 창작물 속의 인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러분 또한 포기하지 말고 디딤돌을 찾아 미지 속으로 발걸음을 딛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
계절이 돌고 돌 듯, 나쁜 일 지나면 좋은 일도 올 것이고 지루한 이야기 너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일 테니까
아무리 스스로의 빛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들, 억겁의 시간 속에서 그 미약한 빛은 언젠가 머나먼 별에도 닿을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이야기에 또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을 때를 기다리며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길고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선택한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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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일산 코믹월드 부스 홍보

다음 주 주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코믹월드 행사에서 부스 참가합니다
부스 번호는 CF_67

<인문학과 함께 읽는 소녀전선 이야기>
올 초에 인쇄소 비용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 1,000원 인상했었으나
최근에 소액 주식투자한 것이 꽤나 이득을 보아서 다시 원래 가격으로 인하합니다
- 삶이 덧없을 운명이라면 (만성쇼크 ~ 영전하)
- 어둠이 창문을 두드릴 때 (은염색 현상 ~ 합성곱 핵)
하드커버, 각 ₩15,000

<소녀전선 팬픽 단편글 모음>
- 모두가 잠들면 누가 노래하리 (막간)
- 그 눈 속에 보이는 건 햇살 빛이리 (일상)
코믹월드 공홈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는 우수회지 선정작
https://comicw.co.kr/pds_good/602
각 ₩10,000
선입금 페이지 - https://smartstore.naver.com/koenugardr
돌아다니다 와서 다리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의자 제공 가능
이번에 소전 참여 부스 많으니 다른 곳 둘러보시고 나서 혹시 시간 남으시면 구경 한 번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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