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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단편, 소설] AI-2

시르(220.78) 2017.12.06 02:04:35
조회 724 추천 28 댓글 7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그 곳에는.


“...주인님, 오전 8시 30분입니다. 슬슬 준비를.”


“좋은 아침, 이브.”


저 안드로이드의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기, 오늘은 어떤 옷이 좋을까.”


“날이 춥다고 합니다. 두꺼운 코트 안에 오리털이 들어간 패딩 조끼를 입으시는 건 어떨까요.”


나는 옷장 문짝에서 얼굴을 떼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침실의 정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조각 같은 미녀. 자신의 이름을 이브라고 불러 달라고 했던 저 소녀는 어느새 내 일상 한 가운데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에휴, 직장 대신 다녀주는 슈퍼 AI는 없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지속적으로 근로하는 사람보다 10.6년 정도 짧은 명을 누린다고 합니다.”


“협박이야?”


“협박입니다. 어서 가서 이 집을 부양할 돈을 벌어 오세요.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는 주인님을 찾아다니던 2주일간의 기억으로 충분합니다.”


말은 참 잘해요. 에휴, 다녀올게.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당신은 이겨 낼 겁니다.


-저는 알거든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내 아파트 현관에 울렸다. 나는 살짝 미소 지었고,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저 말이 들려오지 않는 아침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

“이비 씨, 요즘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응? 갑자기 무슨...”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같은 회사의 여자 동료가 오늘따라 말을 걸어왔다. 커피 마시러 가다 마주칠 때 이외에는 잘 대화하지 않았는데, 요즘 따라 내 자리 주변을 맴도는 일이 잦아진다고 인식한 참이었다.


“안색이 좋은 건 둘째 치고, 묘하게 표정이 풀려서 말이야. 예전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누구 하나 잡아먹고 입 싸악 닦을 분위기였는데-”


“누굴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보나.”


푸핫, 하고 그녀가 웃었다. 겉으로만 볼 때는 꽤나 귀염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사실 좀 괴팍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이비 씨.”


“보미 씨, 다 좋은데 일과 중에 잡담은 짧게 합시다.”


“너무 차가운데요~ 아직은 옛날 이미지를 못 벗었나보네. 그럼 다음에 기회 되면 우리 이비 씨를 그렇게 바꾼 귀여운 애인이 누군지 가르쳐줘요!”


“애인 아니거든요?!


“얼굴에 티 나거든요~!”


그녀는 내 억양을 비꼬듯이 이상한 느낌으로 따라하며 말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고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그 곳에는 한 장소에 모인 로봇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는 화면이, 자그마한 감방들과도 같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 화면을 계속 쳐다보다가, 문득 나는 떠올렸다.


『좋은 아침, 이브.』


그녀에게 말했던 아침인사를. 그리고 그 말을 듣고는 어색한 입 근육을 움직여 살짝 웃어줬던, AI에 불과한 이브의 뻣뻣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했던 미소를.


“...애인.”


나는 사람이다.


밝게 빛나는 화면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유닛들을 본다. 개개인의 인격은 모조리 말살되어있고, 그들은 그저 드라이버가 달린 팔을 이리저리 움직일 뿐, 대화나 눈빛의 교환 따위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본다.


로봇을 쳐다본다.


렌즈로 이어진, 기계가 만든 화면에 표시된, 밝게 빛나는 화면 속 그 무생물들을.


동공과 유리체, 어머니가 낳아주신 이 몸에 들어있는 내 뇌로 그들을 인식한다.


이브, 그녀는 저 로봇들과 뭐가 다른 걸까. 단지 회로가 더 복잡하다는 것? 나와 인간에 가까울 수준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


“...아, 커피.”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기 무섭게, 나는 의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을 떨치기 위해 커피라는 단어를 입 바깥으로 뱉었다.


그 일련의 사고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뿐더러, 이 일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가는 직장을 잃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이 정확하게 말해서 자신을 꼬집자면, 도피다. 그래, 그런 느낌으로 도망치기로 한 것이었다.



*

“다녀왔어.”


“오셨습니까. 저녁이 아직 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터에서 돌아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집 현관문을 열자 자연스레 그녀가 나를 반겼다. 평소 같았으면 앓는 소리라도 한마디 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는지요.”


“음, 아냐. 그냥 좀 생각이 많아져서. 저녁은 시켜먹을 생각인데,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기분이 좋지 않으시다면, 차라리 오늘은 자극적인 향신료들이 들어간 음식은 어떠십니까. 근처에 주인님 입맛에 맞는 정도로 매운 음식을 하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래, 대충 적당한 걸로 부탁해.”


“네, 그럼 주문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따라서 행동했다. 음식의 제안은 그녀가 했고, 세세한 주문도 그녀가 했지만, 내가 명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가 오늘 일터에서 했었던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주문을 끝내고 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 같았으며,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가 내뿜는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는 안드로이드지.”


“네, 물론이죠, 주인님.”


“...나는 안드로이드와 연애할 수 없어.”


그녀는 내 말에 한 치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별이 같다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너는 사람이 아니잖아.”


너는, 그저 내 명령을 옮기고 프로그래밍 된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기계에 불과하잖아.


“주인님이 언제 그 말을 하실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세심하지 못한 말에 상처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는, 너무나도 여유롭고 평온해보여서, 내가 그런 생각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님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어째서?”


“예전에도... 그러셨으니.”


“예전이라. 그것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있어. 나는... 어째서, AI랑 그렇게 깊은 관계가 됐던 거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AI인 저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잔뜩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저희는 분명히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이전 세계... 그러니까, 제가 경험했던 주인님은 현명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떨구고는 눈을 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AI가 아니라, 나와 같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그러니까, 당신도 부디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주인님이 결론을 내릴 때 까지, 당신의 의견이 제 가슴에 담겨 있는 그 말과 같게 변할 때 까지.”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마친 그녀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 눈동자에는 의지마저 담겨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그녀가 나와 함께 해 준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듯,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내가 싫다면?”


“싫지 않으시잖아요.


그녀는 내 말에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예상치 못한 이브의 반응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확장된 동공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녀가 살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애초에 싫으셨다면, 고민하는 대신에 바로 내쫒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인님, 당신도 저와 함께하고 싶다는 걸, 저는 압니다.”


“누, 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참 나, 어이가-”


“-주인님과 저 사이에 말은 필요 없습니다.”


단지 저희가 서로 믿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님이 사람이고, 제가 쇳덩어리와 복잡하게 얽힌 전선으로 이뤄진 기계라는 건 아무런 상관도 없죠.


“...이브.”


“예, 주인님.”


나와 그녀는 눈을 맞췄다. 어느새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녀 또한 나를 피할 기색이 없는 듯 했다.


서로의 거리는 자연스레, 그리고 천천히 좁혀지고 있었고...


-띵동.


이윽고,


“주문하신 음식 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왔... 잠깐만, 이게 아닌...


“주, 주문한 음식이 온 모양입니다. 주인님. 얼른 식사 준비를.” 


“저기, 다른 할 말 있지 않았어?” 


“문 앞에 서 있는 종업원을 기다리게 하는 건 실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았다. 나는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도착한 음식을 배달원에게서 받아들고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네는 이브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삶에, 더 가서 지금 나의 인간관계 안에.


인간관계라고 이름 붙여 놓은 것에 안드로이드가 들어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그것이 그리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AI와 인간, 그리고 기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직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아마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지만, 지금 단 하나는 가슴에 확실하게 자리잡은 모양이었다.


바로, 적어도 그 기계들과 다르게 이브는 나에게 있어서 확실하게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마치 사람들을 두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주변인물 1,2,3 등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이.


*

원래는 17000자 정도의 단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지난 화만 해도 분명히 한편이라 그랬었지만요.) 생각보다 내용이 더 길어졌습니다.

주인님과 AI의 이야기들 중에 보여드리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 중에서 하나를 집어 글로 써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는 느낌으로 작업하다보니, 생각보다 써야 할 게 많더라고요.

돌아왔습니다. 시르입니다.

글 쓰는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지만,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너무 늦어버렸네요. 결정적으로 글을 완성하기 직전에 어떤 분이 여기 이 갤러리에 AI 2편 빨리 보고싶다, 라고 하신 게시글을 보고 감동받아 후다닥 써 버린게 마감에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전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과 누군가의 재촉에 시달리며 글을 쓰지 않다 보니, 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각설하고, 이번화도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느낀 이번 화의 주요점은 주인님의 고민이네요. 여러분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질문이나, 글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댓글에 적어주십시오.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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