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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재벌3세 하나와 주치의 메르시 3

ㅇㅇ(223.33) 2017.08.14 00:02:05
조회 1764 추천 54 댓글 15
														



"박사님, 우리 놀러가지 않을래요?”

상담을 빙자한 수다가 끝나갈 무렵, 아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해왔다.
앙겔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아이의 얼굴을 차분히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입원한 지 벌써 4개월이 흘렀다.
아이는 그 동안 발작을 세 번 일으켰는데, 초반에 발작 비슷한 것을 제외하면 한번은 소아암 환자 병동에서 어린애들을 비행기 태워주다가였고, 다른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다며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다였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앙겔라가 곁에 없을 때였다. 뒤늦게 호출을 받고 달려온 앙겔라는 심장전문의의 응급처치로 상태가 호전된 아이의 웃는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아이가 밝게 웃으며 박사님, 걱정했어요? 미안해요, 하고 말을 건넬 때마다 말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먹구름이 앙겔라의 가슴에 몰려들었다.

아이의 병실 침대에서 잔 이후, 조금씩 아이가 앙겔라의 마음속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앙겔라를 위로하기 위해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열어 보인 아이의 마음은 앙겔라를 충분히 감동시켰고, 그 뒤로 앙겔라의 눈에는 아이의 배려나 호의 같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심란했다. 18살이나 어린 같은 여자의 마음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또 싫지만은 않아서 문제였다. 제 마음의 변화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의 미묘한 태도 변화였다.
처음 재회했을 때는 무덤덤했다가 까칠했다가 깐죽거렸다가 다정했다가 온통 뒤죽박죽이더니, 그 다음부터는 점차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1년간 저를 쫓아다니던 때와 점점 비슷해졌다. 거기까지는 좋은 변화였다. 하지만 뒤늦은 사춘기라 여기던 방황이 끝난 후, 아이의 태도는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앙겔라와 이야기 할 때면 밝게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것은 여전했지만, 가끔 보이는 병원 산책로에 있는 벤치에 홀로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그늘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 작은 머릿속에 대체 무슨 고민을 안고 있는 건지 몇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대답해주면 사귈래요?' 라며 가벼운 장난을 치거나 앙겔라를 놀려대며 깐죽거리기 바빴다. 억지로 붙들고 캐물어봤자 말하지 않을 게 뻔하니 앙겔라도 번번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앙겔라가 아무리 진중한 눈으로 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아도, 아이는 여전히 햇볕에 반짝이는 듯한 맑은 웃음을 입가에 걸어놓고 있었다. …문득 아이의 웃음이 무언가의 방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박사님, 어때요?”

생각을 이어나가려는 찰나 아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앙겔라는 제 왼손을 붙잡고 애교를 피우는 아이 때문에 설핏 웃고 말았다. 아이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래, 상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D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품에 넣고 길렀다는 손녀다. 만약의 일 따윈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과연 그럴까? 앙겔라는 갑자기 고개를 치민 의문에 흠칫했다. 아이가 그런 앙겔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지금 당장은 이 웃음을 볼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앙겔라는 가슴속에 피어나는 의문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놀러가고 싶은데요?”
“음-, 아쿠아리움 어때요? 이번에 새로 개장한 데. 저 거기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아쿠아리움이라.
평소 아이의 밝은 이미지로 보건대 유원지를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도 제 몸 상태를 알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라 해도 응급처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두 번의 발작 모두 몸에 무리를 했을 때 일어났으니 조심하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지난번에 같이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가 무산됐던 약속도 생각났다. 앙겔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얼굴이 활짝 폈다.

“아싸! 진짜죠? 진짜 가는 거죠? 정말이죠?”
“네, 가요. 모레 어때요? 제가 그 날 비번인데.”
“저야 좋죠! 전 언제든 좋아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좀 진정해요. 그러다 발작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해요.”

흥분으로 팔짝팔짝 뛰어대는 아이를 붙잡으며 타일렀다. 아이의 얼굴이 기쁨으로 상기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앙겔라의 가슴 한 켠도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는 하루 종일 잠이나 자려고 했었지만,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하루 정도는 아이에게 할애해도 좋을 것 같았다.

*

“김 교수님, 치글러입니다.”

앙겔라는 김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 교수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연구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아, 치글러 선생. 오늘 날씨가 참 좋지?”
“네, 바람도 좋고 볕도 좋네요. 그래서 말인데, 모레 하나 양과 외출을 하게 됐어요.”
“오, 그래? 잘 놀다 오게.”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내가 연락을 따로 할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어디로 가는지는 안 물으세요?”
“주치의가 자네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앙겔라는 김 교수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김 교수는 아이가 입원하는 동안 몇 번이고 직접 아이의 혈액검사를 하곤 했다.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의사는 차고 넘치는데도, 바쁜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김 교수가 굳이 그런 검사를 하는 것이 앙겔라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의 서류상 주치의는 앙겔라 자신이었지만, 실제 주치의가 김 교수라는 것은 서로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처음 아이를 맡게 되었을 때는 보모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소신을 300억에 팔아넘겼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 밝은 기운에 그런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늦은 밤, 침대 위에 누워 하루를 정리할 때에는 종종 그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랬던 것이 아이를 매일 만나는 동안에 점점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희석되어왔다. 아이가 저를 따르니,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심신의 안정을 위해 지명을 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앙겔라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D그룹 회장이 그토록 아끼는 손녀가 아니던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거의 없었다. 김 교수 또한 수술을 하게 되면 집도는 자신이 할 테니,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아이의 컨디션 조절에만 힘 써달라고 했다. …그러나,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요새 자꾸만 고개를 쳐든다.

아이를 맡을 때만 해도, 이 우습지도 않는 보모 노릇이 길어야 2~3개월에 끝날 거라 생각했다. 장기 기증자는 한 달, 길어야 두 달 안에 나타날 것이라 여겼다. D그룹 회장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충분히 현실로 실현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의 수술은 늦춰지고 있었다. 무려 총 세 번의 발작이 일어날 때까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들뿐이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한 시점에서 이미 심장 기능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 최근 2~3개월 들어 특히 빠르게 약화되었기 때문에 입원 전에 그 징후를 눈치 채기 어려웠다고 생각하려 해도, 10여 년 동안 아이의 주치의를 맡아온 김 교수는 심장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였다. 그런 전문가가 아이의 상태가 이토록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방치.
지금 상황에서는 그 단어가 딱 들어맞았다.
앙겔라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김 교수님, 궁금한 게 있어요. 왜 하나 양의 장기 이식이 이렇게 늦어지는 거죠?”
“늦어지다니… 장기 기증을 몇 년째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는 걸 자네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런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 양이 D그룹 회장이 아끼는 손녀라는 건 누구보다도 김 교수님이 잘 아시잖아요.”

김 교수는 엷게 웃는 얼굴로 앙겔라를 돌아보았다. 앙겔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다. 김 교수의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뇌사자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날 정도로 흔한 존재는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4개월이 흐르는 동안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조건이 맞지 않아서 그러네. 최대한 힘써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정말 최선을 다 하고 있어.”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40년 경력의 심장전문의가 그렇게 말하니 앙겔라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찝찝한 기분만 가슴속에 남았다. 그런 앙겔라를 이해한다는 듯 김 교수가 말했다.

“답답한 기분은 이해하네. 나도 그렇거든. 하지만 자네가 송하나 환자의 주치의를 맡아준 덕에 그 애가 예상보다 훨씬 잘 버티고 있어. 다 자네 덕이야.”
“잘 버티고 있다고요? 벌써 발작이 세 번이나 일어났는데…….”
“그래도 아직 수술실에 들어갈 일은 안 일어나지 않았나.”

김 교수의 발언은 뭔가 묘했다. 분명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현실감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경력에서 우러나온 여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가슴의 불안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아무튼 잘 놀러 갔다 오게. 사진도 많이 찍고.”
“네, 그러려고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찝찝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김 교수의 방을 나섰다. 무리하지만 않고 조심조심 놀다오면 좋을 것 같았다. 앙겔라는 애써 좋은 일만 생각하려 애쓰며 기도실로 향했다. 기도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

아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앙겔라는 아침 늦게까지 밀린 잠을 몰아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했다. 아이가 예쁘게 입고 오라고 하도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평소 자주 입는 블라우스와 슬랙스 대신 투피스를 입었다. 아이가 그러라고 했다고 또 곧이곧대로 그 말을 따르는 자신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웃겼다.

차를 몰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정문 앞에서 앙겔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하얀 티셔츠에 핫팬츠 아래로 쭉 뻗은 다리가 예뻤다. 매일 환자복 위에 카디건을 걸친 차림만 보다가 사복차림을 보니 아이가 달라보였다.

“박사님, 오늘따라 정말 예뻐요!”

아이가 인사 대신 칭찬을 늘어놓으며 차에 올라탔다. 앙겔라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나 양도 오늘 참 예쁘네요.”
“제가 원래 한 미모해요. 밋밋한 환자복을 입고도 빛이 나는데, 사복을 입으니 오죽하겠어요?”

콧대를 세우며 뻔뻔스레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이의 컨디션은 정말 좋아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아쿠아리움에는 사람이 많았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모양이었다. 아이는 모바일 티켓을 보이고 앙겔라와 나란히 입장했다.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것을 느끼며 앙겔라는 아이를 살폈다. 제 나이답게 입은 아이에게서 싱그러운 기운이 풍겨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젊은 남자들이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모르는 것을 보고 앙겔라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싫은 것 같기도 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싫은 기분이 더 컸다.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아이와 걷는데, 아이가 앙겔라의 왼손에 깍지를 끼어왔다. 흠칫 놀라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이는 어쩐지 심통이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하나 양? 무슨 일 있어요?”
“이게 다 박사님이 너무 예뻐서 그래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사님이 너무 예뻐서 다들 쳐다보잖아요! 박사님이 오늘 예쁘게 입고 나온 건 오늘 나랑 데이트하기 위해서인데! 닳으면 어떻게 해요!”

씩씩대는 모습이 정말 화가 난 것 같아서 앙겔라는 푸스스 웃고 말았다. 아이가 앙겔라 근처로 바짝 붙어 걷는 바람에 걸음을 옮기기 힘들어졌는데도 웃음이 멈추지가 않았다. 결국 아이도 앙겔라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을 따라 걸으며 해파리나 게를 구경했다. 아이는 갑각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한참 걸어서 펭귄이 보이기 시작하자 잔뜩 흥분해서 앙겔라의 손을 놓고 그 앞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펭귄 앞에 서서 한참을 떠날 줄을 몰랐다.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것이 제 나이 또래다워서 앙겔라는 휴대폰으로 아이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 찍는 것을 알아챈 아이가 포즈를 취하는 바람에 그 앞에서 또 사진을 찍다보니 금세 갤러리에 사진이 잔뜩 저장되었다.

물개 쇼까지 관람하고 보니 1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아이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틈틈이 확인하며 다시 아쿠아리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앙겔라 역시 그랬다. 그러다 마주친 한 무리의 가족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모습을 아이는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가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앙겔라는 아이의 손을 잡아 쥐었다. 놀란 얼굴로 앙겔라를 돌아본 아이는 맞잡은 손을 보더니 이윽고 꽃봉오리가 톡, 피어나듯 웃음을 베어 물었다.

“사실 저 이런 곳 와 본 게 거의 10년만이에요.”
“그 동안 한 번도 안 온 거예요?”
“네. 아쿠아리움이나 유원지나… 이런 곳은 뭔가 가족이랑 가는 곳 같잖아요. 실제로 가족들도 자주 오고……. 할아버지는 항상 바쁘시니까, 비서 분들 시켜서 저를 데리고 놀러가게 했거든요. 마음은 고마웠지만 아무래도 남이니까 별로 내키지가 않았어요. 게다가 부모님이랑 왔던 곳들을 안 친한 사람들이랑 가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안 좋아하는 척 했어요.”

그랬더니 더 이상 할아버지도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고. 학교 다닐 적엔 친구들이랑 대학로 근처로 놀러가기만 했다고 아이는 말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앙겔라는 아이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이가 손을 마주잡으며 빙그레 웃는 것이 눈에 또렷이 박혀 들어왔다.

“그런 곳에 저랑 와도 괜찮은 거예요?”
“박사님이니까 같이 오고 싶었어요. 나중에 아쿠아리움에 대해 생각하면 박사님이랑 즐겁게 놀다 간 곳이라고 떠올릴 수 있게요.”
“떠올리지 말고 또 오면 되죠.”

아이는 앙겔라의 그 말에 그저 웃었다. 묘하게 서글픈 미소였기에 앙겔라는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이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꼭 같이 와주셔야 해요?”
“그래요. 하나 양이 다 나으면 다시 와요.”

아이는 대답 대신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또 한동안 이리저리 걷는데, 아이가 휴대폰으로 자꾸 뭔가를 확인하더니 앙겔라의 팔을 끌었다.

“박사님, 이쪽이요.”

의아했지만 뭔가 보고 싶은 것이 있겠거니 하며 앙겔라는 아이를 따라 걸었다. 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운 것을 보니 앙겔라의 기분도 좋았다.

아이의 안내 끝에 도착한 곳 입구에는 직원이 서 있었는데, 아이가 핸드폰을 내밀자 휴대폰을 확인한 직원이 길을 비켜주었다. 이런 곳에 전혀 익숙지 않은 앙겔라는 티켓을 따로 구입해야 이용 가능한 곳이구나, 할 뿐이었다.

사방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유리터널에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도 의외라고 생각하며 앙겔라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벨루가 한 마리가 앙겔라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저쪽으로 헤엄쳐갔다.

“예쁘네요.”
“여기가 제일 경관이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이 왜 이렇게 없는 거예요?”
“입장하는 사람 수를 제한하나보죠.”
“그럼 우리는 운이 좋은 거네요.”
“그렇죠.”

아이가 묘하게 웃으며 앙겔라의 말에 수긍했다.

수십, 수백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을 방불케 했다. 아이와 앙겔라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 걷다 멈춰 서서 수조를 구경하고 또 조금 걷다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무인 보트에서 먹이를 뿌리는지, 작은 물고기들이 보트를 따라 사방 데서 몰려들었다. 물그림자와 물고기 그림자가 교차하며 온통 반짝이는 것 투성이었다. 앙겔라가 미소하며 말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날 만큼 아름답네요.”

아이는 앙겔라의 말에 조용히 수긍할 뿐이었다.
뒤돌아볼 때마다 눈이 마주쳤고, 아이는 매번 환하게 웃었다. 모든 풍경을 눈에 담아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앙겔라도 아이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 걸으며 아쿠아리움을 한껏 만끽했다.

이윽고 유리터널의 끝에 다다랐다. 앙겔라는 즐거운 기분을 숨기지 못한 채로 아이를 보았다. 아이 역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져 있었으나, 왠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앙겔라가 물었다.

“무슨 할 말 있어요, 하나 양?”

아이는 입술을 작게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흔들었다. 의아했지만 말을 해주지 않으니 별 수 없었다. 터널 끝에 서 있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니 바깥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이는 앙겔라의 손을 붙잡고 능숙하게 인파를 헤쳐 나갔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거예요?”
“다음 순번 기다리나봐요.”
“아, 그렇군요. 우린 정말 운이 좋았네요.”

사람이 있었다면 방금 전처럼 느긋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을 터였다. 앙겔라가 빙그레 웃자 아이의 얼굴에도 방긋방긋 미소가 걸렸다.

아쿠아리움을 나섰을 때는 다섯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이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예약해 놓은 곳이 있다고 했다. 앙겔라는 물었다.

“어딜 예약해 놓은 거예요?”
“우리 전에 가려다가 못 간 곳이요. 이태원에 있는 레스토랑.”
“아, 거기요.”

앙겔라는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그 지치고 힘들었던 날, 아이가 소등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실 앞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VIP 환자라 해도 병원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왠지 가슴이 쌔했다. 앙겔라는 물었다.

“하나 양, 그날 밤 말이에요.”
“네?”
“그때 왜 수술실 앞에 있던 거예요?”

아이의 웃는 얼굴에 순간 쩡하니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앙겔라의 마음 속에 의혹이 커졌다. 아이는 당황하는 것 같더니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앙겔라는 허리를 조금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가 더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말해줄 수 있죠?”
“저기… 그게…….”

앙겔라는 차분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눈을 방황시키던 아이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답했다.

“김 교수님이 잠깐 불러서요…….”
“김 교수님이요? 그분이 왜 그런 늦은 시간에 하나 양을 부른 거죠?”
“그게… 김 교수님이 그때 병원에 오셔서…….”
“그 늦은 시간에 출근하셨다고요?”
“…네. 비행기가 연착해서 늦게 도착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혈액검사인가요?”
“네.”

아이가 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겔라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새벽에 무슨 혈액검사란 말인가? 혈액검사치고는 너무 잦은 빈도였다. 앙겔라가 아는 것만 대여섯 번이 넘어갔다. 아무래도 김 교수와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레스토랑으로 향하기로 했다. 아이는 앙겔라의 차에 타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오늘은 정말 컨디션도 좋아 보이고 기분도 좋아보였다.

“하나 양, 기분 좋은 것 같네요.”
“네.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요. 이제부터 더 좋아질 것 같네요.”
“이제부터요?”

이제 저녁을 먹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었던가? 앙겔라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아이가 배시시 웃음 지었다.

“박사님, 내일 무슨 날인줄 아세요?”
“내일요? ……. 글쎄요. 별다른 일정은 없는데…….”

앙겔라가 머릿속으로 수술 일정을 되짚는 사이 아이의 얼굴이 한결 더 밝아졌다. 요즘 우울한 기색이 잦았던 아이의 얼굴에서 도통 찾아보기 힘들었던 표정이었다.

“모르시면 됐어요. 이따가 알려드릴게요.”
“…? 그래요, 그럼.”

굳이 캐물어서 아이의 기분을 해칠 필요도 없겠다 싶어 앙겔라는 차를 몰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레스토랑에는 갈 수 없었다.
이태원에 막 도착했을 때 앙겔라에게 긴급 콜이 들어왔던 것이다. 아이도 앙겔라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깬 것은 아이였다.

“박사님, 병원 가보셔야죠.”
“하나 양…….”
“전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오죠, 뭐.”
“…미안해요.”
“미안하실 게 뭐 있어요, 목숨이 달린 일인데. 대신 아쿠아리움은 잘 즐겼잖아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앙겔라는 결국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차를 운전하며 몇 번이나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아이는 생각처럼 많이 우울해보이지는 않았다. 묘하게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체념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표정이 더 마음에 걸렸으나, 앙겔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휴대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말했다.

“레스토랑이랑 취소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 아쉽긴 하다. 오늘 외박 예정이었는데.”

아이가 개구지게 웃었다. 앙겔라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외박이라고요? 전 저녁만 먹고 돌아가는 걸로 알았는데요.”
“그런 말은 안 했잖아요. 코스 다 정해놨는데. 에이, 어쩔 수 없죠.”
“…미안해요.”
“사과하지 마세요, 박사님. …기회를 놓친 건 저니까요.”

아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어보였다. 묘하게 서글픈 미소였기에, 앙겔라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웃음을 계속해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

긴 수술을 마친 앙겔라는 피곤에 찌들어 과장실로 향했다. 분명 오늘은 비번인데 왜 당직을 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한숨을 푹푹 쉬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병원장이 들어왔다.

“아, 치글러 과장. 아직 퇴근 안 했구먼.”
“네, 이제 하려고요.”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지?”

앙겔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급환자라면 콜이 울렸을 테니 다른 용건일 것 같았다. 최근에 병원장과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곤 소아암환자 연구동 건설에 대한 것이 끝이었으므로, 자연히 그쪽 이야기겠거니 했다.

“연구동 건설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응? 아아, 아니야, 아니야. 손님이 찾아오셔서 그러네.”
“손님이요?”

앙겔라는 벽시계를 보았다.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인데다 이제 막 퇴근하려는 직장인에게는 절대 환영받을 수 없는 방문이었다. 그걸 무마하기 위해 병원장이 직접 행차할 정도라니.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들자마자 머리가 답을 내놓았다. 아이의 보호자, D 그룹 회장일 게 분명했다.

“회장님이 자네를 좀 보자시네.”
“역시…….”
“원장실에 계시다네. 어서 가지.”

거절이란 선택지는 병원장의 머릿속에 존재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앙겔라도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기별도 없는 방문이라니, 무례하단 생각이 들었다.

원장실로 향하며 앙겔라는 병원장에게 물었다.

“연구동 건설에는 별 문제 없는 거 맞죠?”
“그럼. 자네가 송하나 환자를 잘 돌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리가 있나.”

병원장은 기꺼운 듯 말했지만, 꼭 문제가 생기면 연구동 건설에 치명적인 문제라도 생길 것 같다는 의미로 들렸다. 역시 기분이 찜찜했다.

병원장을 따라 도착한 원장실 문밖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약간 위압적인 느낌을 받으며 원장실로 들어가자, 앙겔라는 곧장 소파 상석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노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붉은 얼굴이 특징적인 노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는 형형한 눈으로 앙겔라를 보고 있었다. 병원장이 나서서 소개를 했다.

“회장님. 이쪽이 송하나 양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앙겔라 치글러 과장입니다. 치글러 과장, 알고 있겠지만 D그룹 회장님이시네.”
“송갑수요. 밤늦게 찾아와서 미안 하외다. 한 시간 전에 한국에 도착했는데 선생이 아직 병원에 있다고 해서 들렸소.”
“괜찮습니다.”

막 귀국했다는 회장은 조금도 피로해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앙겔라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손아귀가 단단한 것이 아주 정정한 것 같았다.
앙겔라는 회장의 왼쪽 자리에 허리를 내렸다. 병원장도 그 옆에 앉았다. …불편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회장이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선생이 신경외과 전문의라고 하던데.”

이미 알고서 주치의를 바꾼 게 아니던가? 앙겔라는 의아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동안 우리 하나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어떻게 해왔던 거요?”
“아, 여기 치글러 과장은 신경외과 전문이지만 심장질병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발작을 억제하는 주사를 놓고 응급처치를 한 후 곧바로 심장 전문의를 부르기로 되어 있고, 그렇게 해 왔습니다.”
“나는 주치의 선생에게 물은 거네만.”
“예, 죄송합니다.”

힘의 역학관계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병원장을 곁눈으로 보며 앙겔라는 살짝 주먹을 그러쥐었다. 회장에게서 쏟아지는 위압감에 몸이 절로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난 솔직히 지금이라도 주치의를 바꾸었으면 하는데, 우리 하나가 그쪽이 아니면 죽어도 싫다고 하도 우기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로 했소. 젊은 나이에 과장자리에 오를 정도면 실력은 있단 소리겠지. 하지만 보호자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흉부외과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주치의를 맡는다니 걱정이 되지 않겠소?”
“네, 이해합니다.”
“…우리 애랑 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2년쯤 전에 하나 양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가 담당의였습니다.”
“그 뒤로 선생을 쫓아다녔고?”

여상스럽게 묻는 말에 앙겔라는 당황했다. 아이가 앙겔라를 좋다고 쫓아다닌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앙겔라는 회장의 눈을 보며 의도를 읽으려 애썼다. 하지만 회장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그 어떠한 정보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앙겔라는 포기하고 대답했다.

“……네.”
“오늘은 같이 소풍이라도 간 모양이던데. 아쿠아리움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그런 곳을 가자고 조를 애가 아닌데…….”

앙겔라는 가족이 아닌 사람과 가고 싶지 않았다는 아이의 말을 떠올렸으나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회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애가 어릴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잃었소. 어려서 어미를 잃은 충격이 큰 게지. 그래서 그쪽을 그렇게나 따르는 모양이오. 잘 좀 살펴주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회장은 앙겔라의 대답에 흡족한 듯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듣자하니 소아암 환자의 연구동을 처음 기획한 사람이 선생이라고 하더군. 맞소?”

앙겔라는 아까부터 네라는 대답만 반복하는 것 같단 생각을 하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우리 하나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소아암 환자 연구동을 세워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소?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치료받지 않겠다고 우겨대기에 기부를 결정했지. 너무 뜬금없는 조건이기에 조사를 좀 해봤더니 선생이랑 얽혀 있는 게 아니겠소. 우리 애가 그만큼 선생을 많이 믿고 따르는 모양이니 많이 좀 챙겨주면 고맙겠소.”

앙겔라는 머리가 멍했다. 그러니까… 지금 회장은 아이의 부탁에 의해 병원에 기부를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등가교환이 아니었던 걸까? 앙겔라는 충격으로 굳어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애써 굴려 물었다.

“제가…, 제가 하나 양의 주치의를 맡는 조건으로 기부가 된 게 아니었습니까?”
“전혀 아니오. 선생이 거절을 해도 기부는 이뤄졌을 거요. 기부를 하는 것이 치료받는 조건이었으니까.”

앙겔라는 병원장을 힐끗 보았다. 그도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전혀 모르는 내용 같았다. 아마도 회장의 요구를 듣고 병원장이 혼자 짐작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고는 앙겔라에게 전해준 것이리라. 앙겔라는 내심 아이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내 용건은 끝이오. 늦은 시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했소. 이만 가보리다.”
“배웅해드리겠습니다.”

회장이 일어서자 조용히 앉아있던 병원장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앙겔라는 자리에서 서서 그저 목례만 했다. 회장이 떠나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떠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앙겔라는 지친 몸이 더 피곤해진 것을 느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회장에게서도 제대로 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저 회장이 흉부외과 심장전문의가 아닌 앙겔라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과 아이가 어릴 적 부모를 잃어서 그런지 앙겔라를 잘 따른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소아암 환자 연구동 신설을 도왔다는 정보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뭔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대 위에 끌어올려져 상황도 모르고 연극에 참가하게 된 배우가 된 느낌이었다.
앙겔라는 입술을 씹으며 원장실을 나섰다. 아이를 한번 봐야 할 것 같았다.

*

VIP병실이 있는 층은 여전히 조용했다. 앙겔라는 2202호 병실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네- 하는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는 침대에 반쯤 누워서 게임기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도 하지 않는 모습에 앙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소리를 들은 아이가 고개를 돌려 앙겔라를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곤 게임기를 휙 내던졌다.

“어, 박사님? 웬일이에요? 퇴근하신 줄 알았는데.”

방긋 웃는 얼굴이 앙겔라를 또 보게 되어서 기뻐 죽겠다는 듯 빛났다. 앙겔라는 흐리게 미소 짓고 침대 옆 의자에 가서 앉았다.

“저 보러 오신 거예요? 오늘 못한 뽀뽀 지금 해드릴까요?”
“아뇨, 그건 됐어요.”
“단호하시네.”

아이가 궁시렁대고는 오른손을 뻗어 앙겔라의 왼손을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앙겔라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마냥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얼굴로 속에 감춘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박사님, 왜 그러세요? 새삼 제 얼굴에 반한 거예요?”
“…아니에요.”
“아, 아쉽네. 학교 다닐 땐 먹히던 얼굴이었는데.”
“그 때도 저한테는 안 먹혔어요.”

아이가 입술을 삐쭉였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를 불렀다.

“하나 양.”
“네?”
“이야기 들었어요. 하나 양이 입원해서 치료하는 조건으로 소아암 환자 연구동을 세워달라고 했다면서요.”
“아, 누가 그걸 말했대요?”
“왜 그런 거예요?”
“…별 뜻은 없었어요. 예전에 제가 박사님 쫓아다닐 적에 박사님이 흘리듯 말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소아암 환자를 위한 연구동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그런데 반년이 지나도 여전히 감감 무소식인 거예요. 알아보니까 돈이 없다고 해서, 할아버지한테 졸랐죠.”

그러니까 제가 흘리듯 한 말 한마디를 기억해놓았다가 회장에게 조건으로 내걸었단 말이었다. 아이에게 대체 언제 그런 소리를 한 건지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생각해보면 아이는 항상 그랬다. 앙겔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 듣곤 했다.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차올랐다. 앙겔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눈이 기분 좋은 듯 부드럽게 휘었다.
한참 동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앙겔라는 곧 병실을 찾은 진짜 목적을 상기했다.

“하나 양,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왜 저를 주치의로 지명한 거예요?”
“또 그 질문이에요? 저번에 말했는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져서요. …전 심장 전문의가 아니잖아요. 제가 하나 양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매일매일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상담을 빙자해서 한 시간 동안 놀아주는 것뿐이고, 정작 하나 양에게 필요한 건 심장을 제대로 케어해 줄 수 있는 심장의인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이가 앙겔라의 얼굴을 긴밀히 살피며 물었다. 앙겔라가 대답했다.

“하나 양의 할아버님이 오셨어요.”
“아… 그럼 기부 이야기도 할아버지가…….”
“네. 제게 하나 양을 잘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정작 하나 양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 양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아니잖아요. 뭔가… 제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네요.”
“누가 그래요?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아이의 목소리가 한톤 낮아졌다. 아이가 앙겔라의 왼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제가 박사님이 필요했어요. 하루에 한 번씩 박사님 얼굴을 보면 약도 잘 먹고 주사도 잘 맞고 심장도 건강하게 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박사님을 주치의로 지명할 수 있냐고 물어본 거예요. 결과는 좋았잖아요. 지금도 잘 버티고 있고요.”

문득 김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예상보다 훨씬 잘 버티고 있다던. 점점 나빠져만 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면, 김 교수는 대체 얼마나 아이의 상태를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걸까. 문득 갑갑해져서 앙겔라는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풀었다.

“그러니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박사님은 존재 자체로 제게 힘이 되는걸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뭘요. 사실대로 말한 건데.”

그렇게 말하고 수줍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참 예뻤다. 앙겔라는 새삼 눈앞의 아이가 저를 좋아해서 쫓아다녔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아쿠아리움의 유리터널 안에서 저를 보며 아련하게 짓던 눈빛도. …그 모든 게 자신에게서 모성애를 느껴서 그러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입이 열렸다.

“…할아버님 말씀으론, 하나 양이 저를 따르는 게 어릴 적에 부모님을 잃어서라고 하시던데, 혹시 하나 양이 자신의 감정을…….”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앙겔라의 말을 뚝 자르며 단언하고서, 잠시 시간을 들여 앙겔라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박사님도.”
“…….”

아이가 말하는 '모르는 것'에 대한 대상이 다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앙겔라가 그에 대해 묻기 전에 아이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미안해요.”
“…미안하면, 미안할 짓을 안 하면 되죠.”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아이가 서글픈 눈동자로 애써 웃음을 베어물고 말했다.

“박사님. 전 박사님이랑 지내는 거, 되게 즐겁거든요.”
“…그건 저도 그래요, 하나 양.”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죠. 전 특별한 거 말고, 매일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밥 먹고 하는 것들이 즐거워요. 매일이 비슷하면서도 또 다 달라요. 그래서 더 좋아요. 소소한 행복이라 더 마음에 들어요. 살면서 이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다고 생각될 정도예요. 그러니까 이기적이지만, 좀 더 이렇게 지내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요. 그래도… 그래도 돼요?”

아이는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틀림없다. 앙겔라는 아이가 숨기는 사실이 김 교수와 관계된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둘의 공통분모는 심장병밖에 없었다.
아이는 흡사 간원하는 눈빛으로 앙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겠지. 물어서 대답해줬을 정도면 진작 해줬을 것이었다. 앙겔라는 내일 날이 밝자마자 김 교수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제게 애타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아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천천히 차올랐다.

“고마워요, 박사님.”

앙겔라가 그 말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조용한 병실에 작은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활짝 웃으며 방금 전과는 180도 달라진 통통 튀는 목소리로 말했다.

“12시가 넘었네요. 생일 축하해요, 박사님! 제가 제일 먼저 축하해주는 거죠? 아, 원래 이 말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하고 싶었는데!”

생일? 호텔 스위트룸?
그러고 보니 오늘이 생일이었다. 제 생일조차도 잊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앙겔라는 오후, 병원으로 돌아오며 아이가 이것저것 취소한다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저녁 식사를 예약한 레스토랑만 취소하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호텔이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긴급 콜만 없었다면 아이에게 끌려 다니다 어느새 호텔에 묵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일 축하 선물이라고 우겨대면, 평소 억지로 선물 받듯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앙겔라도 아이에게 분위기를 맞추었다.

“말로만요?”
“아, 호텔에 선물 있는데. 진짜예요! 선물이 여러 개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호텔에 맡겨놨는데…… 내일, 아니 오늘 오전에 꼭 드릴게요.”

열정적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며 앙겔라는 푸스스 웃었다.

“됐어요,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어, 진짠데. 이미 선물은 샀으니까 받으셔야해요. 박사님 드리려고 산 거란 말이에요. 아, 혹시 따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선물해드릴게요.”
“뭐든지라고요?”

미심쩍게 묻는 앙겔라에게 아이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요. 제가 이래봬도 재벌 3세거든요. 게다가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빠지는 곳이 없는 완전체란 말예요. 뭐든 말만 해요!”
“…다른 건 몰라도 능력은 뭐예요? 하나 양은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아, 제가 말 안 했어요? 저 중학교 때부터 주식투자 했는데. 수익률이 연 30%가 넘어요. 이정도면 능력 있는 거 아니에요?”

자랑스럽게 콧김을 내뿜는 아이가 귀여워 앙겔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그 웃음을 보고 어떻게 오해를 했는지 열을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 진짠데! 박사님, 뭐 필요해요? 아니면 건물주 만들어 줄까요? 저랑 사귀면 제가 열쇠 3개 다 드릴 수 있는데.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병원도 세워주고, 그리고 또 셔터도 열어주고 닫아주고 할 수 있는데.”

어린 나이에 대체 어디에서 열쇠 이야기는 들은 건지. 아이가 가진 배경이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겠지만, 풀려버린 분위기에선 아무리 열심히 말한다 해도 농담처럼 들릴 뿐이었다.
아이도 그걸 눈치 챘는지 앙겔라를 따라 웃었다.

“아, 나 진짜 진심인데.”
“그렇게 웃으면서 무슨 진심이에요.”

앙겔라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웃음을 그친 아이가 묘하게 눈을 빛내더니 말했다.

“진심인 거 보여줄까요?”
“어떻게요?”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앙겔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 웃음기가 지워지지 않은 앙겔라에게 성큼 다가선 아이의 눈동자가 앙겔라를 담고 있었다. 그 열을 품은 눈빛에 흠칫 몸을 굳혔다. 아이는 간절한 눈으로 앙겔라를 보고 있었다. 갈구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마주친 눈동자가 몹시 깊었다. 보고 있자니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이가 손을 들어 올려 앙겔라의 눈을 부드럽게 감겼다.

어둡게 변한 시야 속에서,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앙겔라의 입술에 느껴졌다. 부드러운 감촉은 한동안 앙겔라의 입술에 머물러있다, 촉, 하는 젖은 소리와 함께 떨어져나갔다.
앙겔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내려간 아이의 손은 앙겔라의 블라우스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앙겔라는 당황으로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그냥 장난과도 같은 입맞춤이라고 여기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너무 당혹스러웠다.

“……박사님 생일인데, 내가 선물을 받아버렸네.”

아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올려 앙겔라의 왼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진정하지 못한 채 떨리는 눈동자로 앙겔라는 아이를 마주보았다. 아이가 그런 앙겔라를 마주보며 속삭이듯 말하고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받고 싶은 거 있으면, 꼭 말해요. 뭐든 드릴 테니까.”

앙겔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앙겔라는 22층 복도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 반이 다 된 시간이었다.
앙겔라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며 병원을 나섰다.

생일 선물이라잖아. 생일 선물.
…선물을 받은 건 자신이 아니고 아이였지만. 평소 예뻐하던 어린아이에게서 받은 뽀뽀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앙겔라의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을 향해 걷던 중, 앙겔라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병원 최상층, 불이 다 꺼진 와중에 한 병실에 불이 켜져 있고, 열린 창 너머로 누군가 서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이였다.

바람이라도 쐬려는 거겠지. 앙겔라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이의 우물과도 같은 눈빛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가슴이 쿵쿵 뛰면서 두 볼이 자꾸만 달아올랐다.




끝.



혹시라도 내가 GG칠까봐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짤 올림.
이제부터 진짜로 시간이 없어서...ㅜㅜ 여태 쓴 글들도 새벽에 얼른 갈겨 쓴 거라...
아무튼 지금 4화 초반까지 써 놓은 상태고 5, 6화 시놉(이라기보다는 그냥 2~3줄 정도 되는 문장) 써놓음.
근데 문제는 아직도 결말을 안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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